내가 사는 아파트 입구에 있는 놀이터를 지나올 때, 한 번씩 어떤 초등학생을 본다. 그는 매번 긴 벤치를 책상으로 삼
고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수학 문제지를 풀고 있다. 아마 학원에 가기 전, 급하게 숙제를 하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불편한 곳에서 공부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는 않는다. 오늘도 지나다가 그 학생을 봤는데, 그는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계산기를 사용하며 문제를 풀고 있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초,중,고에서 계산기를 사용하는 수학 문제 풀이가 통용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계산기를 사용하는 그 초등학생의 수학공부는 완전한 것이 못되는 것일까? 어른이 되면 『수학』이란 학문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지금 왜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해야하는지를 불평하는 학생도 많다. 어른이 되면 우리는 수학을 하지 않을까?
《나는 수학으로 세상을 읽는다》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접하는 통계나 수치가 계산기를 사용한 정확한 값보다는 추정값이나 어림값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어림짐작한 근삿값이 정확한 참값보다 훨씬 쓸모 있고, 더욱 믿을 만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한다.
계산이 필요할 때 우리는 무심결에 계산기에 의존하지만, 영업이나 의사결정을 할 때 순간적인 어림 계산 능력이 훨씬 더 성공으로 가는 길을 보장해 줄 지도 모른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같은 굴지의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채용할 때 지원자에게 엉뚱한 수학 문제를 낼 때가 많다. 그럴 때 역시 추정과 어림의 능력은 면접관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좋다. 그 능력은 자신의 두뇌가 뛰어나고 창의적이라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림 계산법은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삶의 지혜다. 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장점은 아니다. 어림 계산법은 그 자체로 두뇌를 자극하는, 예리하고 흥미로운 훈련이다.(p10)
어림 계산을 잘하기 위해서는 산술 능력이 당연히 필요하다. 산출이란 사칙연산뿐만 아니라 양이나 비율등을 계산해내는 것(좁은 의미)인데, 단순한 계산이란 측면에서 ‘수학’이란 학문에 비해 폄하되기가 쉽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산술 능력을 위한 공부 역시 상당히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고, 두뇌 회전과 정확성, 논리적인 사고에 도움이 된다.
수학과 산술 사이에는 겹치는 부분이 매우 많다. 수많은 산술적 기법과 지름길은 깊은 수학적 사고로 연결되며, 학교를 떠날 때까지 공부하는 수학에는 대부분 산술이 필요하다.(p50)
이처럼 한국에서도 고등학교까지는 산술능력이 바탕이 되는 수학을 하기 때문에 놀이터 벤치에서 계산기를 사용해 수학 공부를 했던 학생은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머리를 사용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나중에 학교 정규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기 힘들 것이다. 또한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없다.
그러면 그 학생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본인은 나중에 수학이 필요없는 일을 하겠다고....소위 말하는 ‘일머리’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단순한 노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생각을 요구한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노동은 자신에게 유용할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수학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 생활의 바탕이 되는 사고력과 정확성은 스스로 해낸 수학공부에서 길러진다. 또한 지금 이 시점에서 세상이 돌아가는 추세를 알기 위해서도 기본적인 산술 능력과 수학적인 사고는 필요하다.
이 책에는 각 장마다 ‘몸풀기 연산’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생활에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나와 있다. 마지막 장에는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의 추정법을 소개한다. 충분한 데이터 없이 수행하는 계산을 ‘페르미 문제’하고 한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두뇌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고 피곤하지만, 문제해결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서 수학이 필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쉽게 살기 위해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재산이나 주식 시세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정작 정부의 정책이나 실업률, 빈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수학에는 눈감아버리는 어른은 아닌지....
살다 보면 수학머리가 꼭 필요한 순간이 온다. 이 책은 그 순간을 위해 쓰였다.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숫자에는 함정이 있고 우리는 올바른 숫자를 찾아 답을 빨리 구해야 한다. 마트에 나열된 물건값을 비교하고, 얼마나 저축해야 1억을 모을 수 있을지, 뉴스가 말하는 취업률 수치가 정말인지 알고 싶을 때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일상의 수학이 필요하다.-책의 뒷표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