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을 그리다 - 문학과 회화의 경계
위안싱페이 지음, 김수연 옮김 / 태학사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도연명을 그리다》는 중국 동진 시대의 시인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도화원기'를 소재로 한 시와 그림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도연명' 그 자체보다 그의 글이 후대에 미친 영향에 대해 자세하고 전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도서관의 '클래식' 동아리에서 선정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생각보다 많이 학술적이라 당황했다. 대충 책장을 넘겨보며 내가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회의도 들었다. 그러나 동아리에서 선정된 책이고 랜선 모임을 앞두고 있었기에 책을 펼쳐들고 공부하듯 다시 읽어 나갔다. 각 페이지에 나오는 시를 읽고 그에 따른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점점 책이 편안해지고, 도연명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었다. 여기서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와 '음주' 20수 중 5수가 자주 나오는데, 도연명 전집을 따로 준비해 음주 20수를 비롯해 다른 시들과 산문들도 같이 읽었다. 여러가지 한자어와 고사성어를 찾아서 기록해가며 자세히 이 책을 읽어 나갔다. '도연명을 그리다' 는 이렇게 음미하듯 천천히 읽어야 빛이 나는 책이다. 

그냥 책장만 넘겨가며 이 책을 읽는다면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도연명은 동진 말에서 송나라 초 시대의 사람이다.

 

도연명은 이처럼 사회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고통을 겪으며, 왕조가 교체되는 혼란기에 살았다. 이러한 가운데 현실과 이상의 괴리속에서 출사(出仕)와 퇴은(退隱)의 문제를 고민하는 도연명의 문학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도연명은 8월에 팽택령이 되었다가 11월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이때 관리 생활에서의 괴로운 심경과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적은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 이다.-도연명 전집, 이치수, 문학과 지성사, p382~p383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는 그를 대표하는 시이다. 그는 80일 정도의 벼슬을 하였으나 독우(지방의 감찰관)의 방문을 앞두고 그들에게 구차하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만두고 그 유명한 귀거래사를 짓고는 표표히 고향으로 떠난다. 

 

'도화원기(桃花源記)' 는 도연명이 지은 유기(遊記)이다. 무릉지방의 복사꽃이 만발한 도화원에 세상을 등지고 모여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보통 유토피아를 표현할 때 자주 인용하는 '무릉도원'이 바로 이 '도화원기' 에서 나온 것이다.

 

 도화원기는 도연명의 이상을 표현했고 그 이상이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p147

 

'화도시(和陶詩)' 는 도연명의 시를 차운(次韻)하여 지은 '추화시(追和詩)'-옛사람을 추모하여, 그 사람이 지은 시의 운자를 따서 지은 시-이다.

 

 후대 시인들은 적막하게 지낸 도연명의 삶을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다투어 화도시를 지었다. 화도시는 내용도 다채롭고 그 양도 방대하다. .....중국의 수많은 시인 가운데 도연명처럼 국경을 초월하여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도연명은 중국 문화를 읽는 키워드이며, 특정한 이상적 삶을 상징한다.-p212

 

위안 싱페이의 '도연명을 그리다' 는 도연명 자체를 다루었다기보다 그가 남긴 시와 산문이 시대가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콘텐츠화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귀거래사와 도화원기는 수많은 후대 화가들의 그림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채국(국화를 따다)', '녹주(술을 거르다)', '호계삼소(호계에서 세 사람이 웃다)'등 도연명과 관련된 일화도 주요 제재가 된다. 그의 시의 운자를 따서 짓는 화도시도 유행처럼 번져갔다. 도연명처럼 속세를 떠난 은사, 망한 왕조의 유민, 높은 관직의 관료와 제왕(건륭제)까지도 화도시를 짓는다. 심지어 도연명의 삶과는 전혀 다르게 권력에 아첨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도 이 시류에 합류한다.

 

송대 이전부터 청대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소개된 그림과 화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인간이란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보편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그림들을 보며 시대와 언어가 달라도 거기에 표현된 것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과는 맞지 않는 삶을 거부하며 갈건을 쓰고 옷자락 휘날리며 표표히 걸어가는 도연명의 모습에서 결연함을 본다. 마음 맞는 벗을 만나 고개를 크게 뒤로 젖히며 한바탕 웃는다. 자신이 쓰고 있던 갈건을 벗어 펼치어 술을 거른다. 공부에 뜻을 두지 않고 놀고 있는 자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술 취한 사람과 취하지 않는 사람은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국화를 따다가 먼곳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는다.......

 

이와같은 소재들을 바탕으로 화가들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채롭고 멋있는 그림들을 그려낸다.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는 각 시대의 화가에게로 가서 그들 각자의 사연과 생각으로 개별화된 모습으로 완성된다. 도연명의 삶을  평가할 필요도 없고 분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의 삶의 모습들을 역사의 흐름에 실어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로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귀거래사에 화운하다. 음주 스무수에 화운하다. 빈사에 화운하다. 귀원전거에 화운하다등 그 무수한 것들의 연결로 도연명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 책은 그림 도록처럼 글과 그림이 짜임새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원문을 같이 실은 시의 해석도 좋다. 오언시와 사(辭)의 원문을 그 느낌에 맞게 잘 번역한 것 같다. 다만 본문의 내용에 대한 주석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

 

지금 이 시대에 사는 내가 도연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그의 태도나 행동이 인간의 자유의지의 표현인지 아니면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숨은 안일함으로 치부해야하는지 갈등했다. 그러다 그 모든 것을 떠나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억지로 뭔가를 하지 못하는 인간 도연명을 만났다. 남들이 답답해하고 왜 저렇게 사느냐고 손가락질을 해도 할 수 없으면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그런 사람이고 나에게도 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가지 않으랴

이미 마음이 몸에 부려졌다고

어찌 구슬프게 홀로 서러워하리오.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이 없고

다가올 일 뒤좇아야 하리.

실로 길을 헤맸어도 멀리 가지 않았거니와

지난날이 그르고 지금이 옳음을 깨달았네.

-도연명, '귀거래사' 중에서,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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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1 00: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귀거래사, 안빈낙도에 삶을꿈꾸며 노래 했던 도연명[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가지 않으랴 이미 마음이 몸에 부려졌다고 어찌 구슬프게 홀로 서러워하리오.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이 없고 다가올 일 뒤좇아야 하리. 실로 길을 헤맸어도 멀리 가지 않았거니와 지난날이 그르고 지금이 옳음을 깨달았네]이시 코로나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를 향해 말하는것 같네요 아파트 숲 벗어나 무릉도원에서 복숭아꽃나무 키우며 살고 싶은 1人

페넬로페 2021-01-21 01:00   좋아요 4 | URL
역시~~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scott님이 말씀하신 것과 똑같아요**

그레이스 2021-01-21 0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하는 그분?
여기서 만나니 반갑네요^^

페넬로페 2021-01-21 10:14   좋아요 1 | URL
앗! 네, 반갑습니다**

미미 2021-01-21 08: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이 이 책에 빠져들었다는 과정이 인상적이네요.👍

페넬로페 2021-01-21 09:07   좋아요 4 | URL
리뷰쓰기전에 그 과정이 꼭 필요할것 같아 적었어요 ㅎㅎ

붕붕툐툐 2021-01-21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학술적 책과 학구적 독자가 만났군요~ 페이퍼에 생각할 거리가 그득해서 넘 좋네욤~😍

페넬로페 2021-01-21 10:15   좋아요 2 | URL
붕붕툐툐님의 말씀이 화도시같아요^^
너무 좋은 해석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scott 2021-02-10 15: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 2관왕 !!
👏👏

페넬로페 2021-02-10 17: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송구스럽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