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 가 나에게 왔을 때, 소문으로 이 책의 분량이 적다는 걸 알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크기와 페이지 수가 훨씬 더 적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난 이 책을 남쪽 바닷가에 접한 소도시에 사시는 엄마를 뵈러가는 기차안에서 읽을 예정이었다. 번거롭게 다른 책을 한 권 더 가방에 넣어야 하는지 잠깐 고민하게 만들 정도로 이 책은 얇았다.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적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난 두 가지가 궁금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라는 것과 그 아버지의 세대가 저지른 일본의 만행들을 작가는 어느정도까지 언급했을지의 여부였다.
70세가 넘은 작가는 잔잔하고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얽힌 일화를 얘기한다. 작가의 어린 시절, 어느 여름 날 오후 아버지와 해변에 암고양이를 버리러 간 일상의 이야기로 이 책은 시작된다. 버려진 그 고양이는 자신들보다 더 먼저 집에 와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 대목에서 나도 한참 읽기를 멈추고 생각해보았다. 고양이가 어떻게 그들보다 먼저 집에 돌아올 수 있었는지 참 의아했다.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에도 고양이를 등장시킨다. 가족이란 이 믿을 수 없는 멋진 추억을 공유하며, 그 무한한 집적으로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책의 첫부분과 끝부분을 이렇게 연결시키는 작가의 절묘함에 감탄했다. 짧고 압축적인 글에서 많은 것을 얘기할 수 능력이 있기에 이 작가에게 글은 길게 늘일 필요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1917년에 태어난 작가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씨는 사립 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이며 학문과 문학을 좋아하고 하이쿠를 열심히 짓는 분이셨다. 그러한 배경이 하루키옹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청년이 된 지아키씨에게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된다. 길지는 않지만 세 번이나 징집되는 그 시대의 청년은 불행할 수도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침략과 잔인함의 전쟁을 거시적이기 보다는 미시적으로 한 청년에 초점을 맞춘다. 문학과 학문을 좋아했던 청년에게 그 전쟁은 힘들고 많은 트라우마를 안겨준 것이라고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결국 아버지도 사람을 죽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그렇게 추측의 문장들로 아버지를 얘기한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전쟁에 참여한 그 쳥년들이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를.
똑같이 잔잔하고 담담한 하루키의 문체가 전쟁을 얘기할 땐 굉장히 조심스럽고 소심하게 읽히는 건 단지 나의 느낌때문일까?
작가 후기에서 작가는 전쟁이 한 인간-아주 평범한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다- 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를 말한다. 그리고 역사는 흐르고 연결되지만 그것을 메시지로 쓰고 싶지 않았다고 밝힌다. 아마 하루키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선 지아키씨가 아닌, 지아키씨의 본연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으로.
다만 그것은 리얼하게 표현될 수 없기에 작가의 추측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다.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루키옹은 20년 이상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그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겨우 화해 비숫한 것을 한다. 그 갈등이 뭔지는 모르지만 가족이란 우연의 결과로 필연을 짊어지고 사는 존재들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기에 난 그 두 사람이 안타까웠다.
예상치 못한 폭설과 한파, 코로나로 인한 걱정으로 난 결국 노모를 보러 가지 못했다. 기차가 아닌 집에서 '고양이를 버리다' 를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좋은 문장들을 읽으며 돌아가신 아버지와 고향에 계신 엄마를 생각했다. 정말 한 번 씩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너무 당신을 잊고 사는 딸이 원망스러워 아버지가 나타나는 것 같다. 그는 내가 여기 이곳에 존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중요하고 신비로운 것을 계승할 수 있는 경이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자꾸 잊게되어 미안하다.
세계적인 거장의 문장으로 표현되는 무라카미 지아키씨의 생애가 부럽다.
불초한 난 이 밤에 잊혀진 내 아버지를 추억하는 걸로 미안함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의미가 어디에 있겠는가? - P51
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 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마치 요즘 젊은 세대 사람들이 부모 세대의 신경을 일일이 곤두서게 하는 것처럼.- p63~64 - P62
뭐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멋지고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때 해안의 파도 소리를,소나무 방풍림을 스쳐 가는 바람의 향기를,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런 소소한 일 하나하나의 무한한 집적이, 나라는 인간을 이런 형테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 P87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 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 P93
역사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의식의 안쪽에서 또는 무의식의 안쪽에서, 온기를 지니고 살아있는 피가 되어 흐르다 다음 세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쓰인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구성하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 P97
그것은 내 어린 시절의, 고양이에 얽힌 또 하나의 인상적인 추억이다. 그리고 그 추억은 아직 어린 내게 생생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훨씬 어렵다‘ 하는 것이다. 보다 일반화하면 이렇게 된다.-결과는 원인을 꿀꺽 삼켜 무력화한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고양이를 죽이고, 어떤 경우에는 사람도 죽인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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