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주원장이 숙청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몽골 이상으로 싫어했던 강남의 유력자들입니다. 만 명 단위의 처형은 대부분 강남 사람들을 상대로 이뤄졌습니다.
명은 역대 중국 왕조 중에서 유일하게 강남 지역에서 흥기한 왕조입니다. 강남은 경제가 발전하여 화북에 비해 지주나 유력자가 많았고, 주원장은 이러한 세력을 잘 활용해 위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런 강남을 왜 탄압했을가요?
주원장이 염두에 둔 것은 남북의 경제 격차 해소입니다. 원 말기의 혼란으로 정부에서 발행한 지폐가 휴지조각이 되자 그 영향은 생산력이 낮은 화북에서 더욱 심각했습니다. 화북과 강남은 12세기 전반에 금과 남송이 대립한 이후 오랫동안 분리 상태에 있었습니다. 몽골 정권 또한 강남의 경제력으로 회복을 지탱하는 정치 체제를 취했기에 남북의 통치는 일률적이지 않았고 달리 행해졌습니다. 그 결과 화북은 강남보다는 오히려 유목민 정권과의 연계가 깊어졌습니다. 강남에서 흥한 명이 자신의 정권을 ‘중화’라고 표방하려면 이 분리된 화북과 강남을 하나로 묶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외이를 몰아내는 것만으로는 남북을 통합할 수 없었습니다. 남북 통합에는 양자 사이에 있는 막대한 경제적 격차를 해소해야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어느 한 쪽을 다른 한 쪽 수준에 맞추면 됩니다. 이상적으로야 경제력이 낮은 쪽을 높은 쪽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합치시키는 것이지만, 낮은 쪽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일단 불가능합니다. 높은 쪽을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려 맞추는 것은 쉽지는 않아도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주원장이 단행한 것이 ‘현물주의’를 중국 전역에 적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현물주의’란, 화폐를 배제하고 재정 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망합니다. 경제에서 후진적인 화북에서 그때 나타났던 현물거래, 물물교환 현상을 항구화, 제도화한 것입니다. 이 정책을 전국적으로 실시해 세금은 현물로 징수하고, 정부는 모은 현물을 그대로 소비했습니다.
현물주의를 단행하면 왜 강남의 경제력을 빼앗는 결과가 될까요. 답은 현물주의에 근거하여 재정 운영을 실시하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면 나옵니다. 물자와 노동력을 직접 확실하게 징수하려면 과세 대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세 대상자가 몇 명이고, 그 사람들이 얼마만큼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지 조사하고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조사하고 작성한 것이 ‘어린도책’과 ‘부역황책’이라고 불리는 두 종류의 장부였습니다. pp. 225-226.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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