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할례’라고 불리는 여성 성기 절제는 잔혹하고 위험하며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내려 온 현재의 습속입니다. 대체로 아프리카 북부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이 시술은 면도날로 여자 아이나 청소년의 음핵이나 포피, 음순 같은 성기 중 일부나 전부를 도려내는 악습입니다. 극단적으로 외과수술을 통해 질 입구를 좁히거나 아예 막아버리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이 악습은 여성 순결을 보장해 적합한 혼인 상대로 만들기 위한 수단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여아와 청소년은 매력적인 결혼 상대가 아니며 부도덕한 존재로 취급받습니다. 심지어 해당 소녀뿐 아니라 가족의 미래까지도 위협받는 일로 간주됩니다. 이집트의 어느 조사에 따르면, 할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엄마일지라도, 결혼 적령기 딸이 할례를 하지 않았을 경우 혼인 상대로 꺼려질까봐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딸의 건강과 생명을 걸고서라도, 딸의 미래를 지키고자 할례를 시킵니다. 

















지금 북아프리카 지역의 할례가 순결의 상징이라면, 원시사회에서는 순결이 바로 악덕이었습니다. 원시시대 처녀는 애를 못 낳는다는 말이 돌까봐 두려웠지, 순결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혼전 임신은 애를 못 가질 거란 의구심을 단번에 잠재우고 아이를 잘 낳을 거란 보장이기에, 남편감을 찾는데 해보다 득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녀인 여자는 인기가 없어 멸시 당했습니다. 캄차달족(러시아 동부 캄차카 지방의 원주민족) 신랑은 신부가 처녀인 사실을 알게 되면 장모에게 ‘딸을 막 키웠다’고 호되게 화냈습니다. 순결이 결혼에 걸림돌이 되는 곳은 상당수 달했습니다. 그래서 결혼에 방해가 되는 이 금기를 깨고자 아가씨들이 낯선 이방인에게 스스로 몸을 맡기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티베트에서는 엄마들이 자기 딸을 처녀에서 벗어나게 해 줄 남자를 찾았으며, 인도 말라바르에서는 아가씨들이 스스로 지나가는 행인에게 간청하기도 했습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혼전 관계를 맺는 게 다반사입니다. 그래서 성생활을 절제하느라 욕망이 쌓이는 일이 없고 따라서 아내를 선택할 때도 욕망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원시 사회엔 성적 욕구가 생기면 지체 없이 바로 충족할 수 있었기에 미의식이 그다지 강하게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사물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상당 부분 상상력에서 비롯되는데, 성적 대상을 상상력으로 미화시킬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젊은이들은 욕망을 지체 없이 충족하지 못하기에 사랑을 이상화하고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게 되는데, 원시 사회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원시부족에게는 사랑에 관한 노래를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애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례나 순결 같은 습속은 사회적인 성(性)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성은 생물학적인 성(sex)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문화적인 성, 곧 사회에서 창조되는 성(gender)으로 ‘구현’되거나 ‘강요’됩니다. 정치철학자인 아리스 마리온 영(1949~2006)은 『계집애 같이 던지기』(1980)에서 남녀 몸동작이 왜 서로 다른지 설명해줍니다. 여성이 공이나 돌을 던질 때 흔히 취하는 ‘썩 마음 내켜 하지 않는 듯 보이는 몸동작‘은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이 어려서부터 자신 신체를 ‘다른 사람, 즉 나중 아기를 위한 몸’으로 여기도록 만드는 담론이나 관습에 물든 산물이라고 영은 주장합니다. 여성에게 부여된 규범이 여성 몸동작이나 움직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대다수 여성이 ‘육체적으로 불리한’ 존재가 됩니다. 



신생아 때부터 습득하는 젠더 학습은 무의식에서 일어납니다. 아이가 스스로 사내아이 아니면 여자아이로 규정하기 전에 다양한 형태로 암시를 받습니다. 가령 신생아에게 남녀 성인은 서로 다르게 인식됩니다. 아기는 여성과 상호작용하면서 맡게 되는 화장품 향내를 남성 냄새와 다르게 연상합니다. 부모나 의사의 머리 모양 등에 나타나는 차이가 신생아의 양육과 학습 과정에서 암시로 작용합니다.



두 살 무렵이면, 아이는 젠더가 무엇인지 부분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접촉하는 장난감이나 그림책,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모든 것에서 기존 고정 관념인 남성과 여성 차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아이는 자신이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인지를 파악하게 되며, 또한 주변사람을 정확히 성별로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은 젠더 사회화의 위력이 아주 막강하다는 사실입니다. 젠더에 대한 도전은 현실을 뒤엎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젠더가 ‘주어지면’, 사회는 우리 각자 개인이 ‘여성’ 또는 ‘남성’으로 행동하길 기대합니다. 
















원시시대에는 너무 말라 몸이 나약한 여성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경제적인 자산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혼 자체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이 결혼을 해 힘을 합쳐 일하면, 각자 혼자 일할 때보다 더 부유해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원시 사회에서 남성은 값싸게 여성이라는 노동력을 얻고, 양육의 덕을 보고, 때맞춰 밥을 먹기 위해 결혼했습니다. 애정은 결혼과 전혀 별개였습니다. 



결혼은 단지 상업적인 거래일 따름입니다. 배우자를 고를 때 감정을 누르고 실용적인 면을 더 강조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실용성보다 감정을 우선시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일 수 있습니다. 남녀가 찰나의 성적 욕구에 사로잡혀 한평생 서로 옭아매며 사는 우리 관습을 원시인들이 본다면 왜 그렇게 사는지 우리에게 설명을 요구할 지도 모릅니다. 체스터필드 경(1694~1773)의 지적처럼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 기쁨은 순간적이고, 입장은 우스꽝스럽고, 비용은 지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지구상 어디서나 결혼은 가족이 상업적으로 계약한 매매혼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경제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하는 결혼이 가장 건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은 일의 대가로 제공되는 존재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경 <창세기>(29:20)를 예로 들면, 야곱은 라헬과 결혼할 생각에 7년 동안 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랑은 결혼예물이나 돈을 여자에게 보냈고 신부 아버지는 딸의 혼수금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매매혼 흔적이 우리 결혼반지에 남아있습니다. 결혼할 때 반지를 주는 풍습은 로마에서 시작됐는데, 아내를 돈으로 사는 매매혼 때문에 결혼할 남성이 대금결제 증거로 철제 반지를 주었습니다. 

 















인도 역시 근래까지도 연애결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당사자들이 서로 선택한 결합에 ‘간다르마 결혼’이라고 이름을 붙이고는 ‘욕망의 열매’라고 낙인찍었습니다. 그런 결혼이 허용은 되었으나 존중받지 못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감정은 변하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혼이란 변덕스러운 개인적인 선택인 낭만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열정에 빠져 결국 환멸과 쓰라린 마음으로 끝나게 될 결합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결혼을 주선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 또한 혼인은 개인 뜻이 아니라 집안 이해관계로 결정되었습니다. 부모는 충분히 숙고한 뒤 환경이 비슷한 사람과 혼인을 맺어주었습니다. 부부는 경제적, 문화적인 배경이 유사했기에 근대 이후처럼 감정으로 대립하거나 갈등하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조선에서는 남성 집안과 여성 집안이 비교적 대등하게 혼인했기에 남성이 여성 집안에 의존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에게 아내는 단순한 아내가 아니었습니다. 처가의 대표자였습니다. 조선에서 여성들이 혼인 후에도 자신 성(性)씨를 유지한 것도 바로 여성 집안의 대표자라는 표시였습니다. 강력한 중국 영향 아래 있었지만 조선에 전족이 없었던 이유도 비슷합니다. 조선 여성은 남편 애정에 따라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한 조선 여성은 성적인 이미지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조선 시대 여성은 중국과 달리 집안 공동 운영자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남녀 사이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18세기 이전 유럽에서조차 사랑이란 우발적인 일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이 불안정함을 기반으로 하는 남녀 결합을 거부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나머지 남녀 관계에 사랑이 우선시되지 않았습니다. 유럽 중세뿐 아니라 로마법도 결혼 목적이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것이라 명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할 남성은 여성을 부양할 만큼 부유하다는 사실만 진지하게 증명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18세기 후반기에 이르자 열애에 빠지는 일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 상태에서 비롯되는 경험이며, 낭만적인 사랑에 빠진 커플이라면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가족으로서 사적인 만족을 지속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인간 성향이라는 생각이 생겨나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인류 발명 중 하나입니다. 



낭만적인 사랑이란 그 대상을 이상화함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설명할 수 없는 게 되었습니다. 누구하고든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또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부추겨져 사랑에 대한 모든 전제 조건이 철폐되었습니다. 낭만적인 사랑은 이를 다루는 소설의 대중화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소설의 저변이 확대되면서 너나할 것 없이 낭만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역사학자 존 보스웰(1947~1994)은 오늘날의 낭만적인 사랑이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한지 언급합니다. 예전에 혼인은 집안 재산을 세습하려는 경우 아니면, 집안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얻고자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낭만적인 사랑이란 잘해 봐야 약점으로 치부되거나, 최악의 경우 질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 태도와는 정반대입니다. 

 


오늘날 우리 대다수에게 당연히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낭만적인 사랑은 일상적인 관행이 아닙니다. 낭만적인 사랑에 기반 한 관계는 매우 최근까지 유럽 사회에서 보편화되지 못했으며, 물질적이고 실용적인 이유가 우선시되는 그 밖 문화권에서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관행입니다. 예전엔 거의 경제적인 목적으로 부모나 일가친척이 소개한 맞선 형태로 결혼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지금이 예외적인 시기입니다.



낭만적인 사랑은 만남 초기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일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할 경우 미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시간을 두고 발전하고 변해갑니다. 시작할 때 느낌만으로 발전하고 변하는 사랑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원시인’보다 미성숙하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낭만적인 사랑은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이제 낭만적인 사랑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삶의 선택지가 다양해졌습니다. 예전에는 이혼하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했지만, 낭만적인 사랑에 빠져 결혼한 남녀는 혼인 생활이 원만하지 않을 경우, 더 이상 삶의 동반자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 같은 추상적인 단어가 뜻하는 애정 유형이 항상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일을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가정하려 듭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1889~1995)은 이런 가정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랑’이라는 욕망은 관계나 애정 유형이 너무나 다양해 단일하고 공통된 속성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말이나 관념을 가지고 있는 민족은 흔하지 않았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비슷한 말은 있지만 남성과 여성 간의 특별한 관계와 감정을 뜻하는 개념은 거의 없습니다. 한자의 애(愛)도 원래 고전 용례에서는 ‘아끼는 마음’, 가령 백성을 아끼는 마음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었습니다. 일본어에서 근대 이전에 많이 등장하는 이로[色]라는 말은 게이샤나 유녀들과 관계를 이르는 말로 지금 ‘사랑’과는 아주 다른 뜻이었습니다.
















사랑은 대상에 대한 욕망이나 볼 때 느끼는 행복이나 각별한 감성, 상대에 대한 배타적인 의리, 보호하고 싶은 소망 등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다양한 현상이 사랑입니다. 여러 가지 현상을 제외하고 사랑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통된 속성을 정의하려는 목표 자체가 아예 잘못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실체를 다루는 생물학에서조차 공통된 특성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꽃’ 같은 정도는 아주 간단하게 그 정의와 특성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꽃은 그 크기나 모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다양합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을 속씨식물이라고 하는데, 종의 수는 대략 26만여 종이나 됩니다. 나비나 나방, 딱정벌레, 벌, 베짱이, 메뚜기 같은 곤충은 100만 종이 훌쩍 넘습니다. 딱정벌레만 해도 그 종류가 4만5,000종이 넘고 지금도 매일매일 새로운 종이 발견되는 실정입니다. 생물은 무척 광범위하고 다양하기에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작가 룰루 밀러의 책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020)처럼 말입니다.
















자연이나 인간 삶은 보편적인 이름 하나로 단순화하기엔 너무나 구체적입니다. 세상은 추상적인 무엇인가로 채워져 있는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으로 가득합니다. 자연과 인생은 지극히 넓은 데다 깊고 오묘합니다. 어떤 것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현상으로 ‘한정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삶의 다양성과 해석의 주관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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