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된 편지들 - 폴 세잔-에밀 졸라 1858-1887
앙리 미테랑 엮음, 나일민 옮김 / 소요서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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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세잔-비커밍 졸라, 그리고 두 예술가의 변함없는 우정

<교차된 편지들>

: 폴 세잔-에밀 졸라 1858-1887

(원제: Lettres croisees: 1858-1887)


앙리 미테랑 엮음 | 나일민 옮김 [소요서가] (2025)

 




이 책을 왜 읽을까? 이 책을 엮은 앙리 미테랑의 표현대로, 그건 폴 세잔에밀 졸라이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이미 서로를 알아본 그 순간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죽마고우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예술가 동지로, 이 두 예술가가 주고받은 신뢰와 우정의 연대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지금껏 졸라가 자신의 소설 <작품>에서 묘사한 실패한 화가가 자신을 모델로 했다는 이유로 분노한 세잔이 절교를 선언했다는, 그동안의 근거 없는 믿음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더욱 느끼는 일이지만, 인간은 몇 가지 MBTI로 사람을 분류하고 정체성을 규정하듯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는 세월 동안 두 친구 사이에 오간 편지 100여 통을 따라가다 보면, 미술 평론가나 역사가들의 시선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 나갔던 실존들의 시선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술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리고 삶을 살아야 했던 인간 존재로서 그들이 떠올렸던 생각의 편린들과 만난다. 여기에 각자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자 분투했던 청년 예술가들의 지독한 목마름을 감지해낼 수 있다. 책에 실린 편지들에는 막 인상주의라 불리기 시작한 미술 사조를 이끌어간 사람들이,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처럼, 또는 유성처럼 스쳐지나기도 한다. 아카데미즘에 저항하고 새로운 시각을 획득하고자 저항했던 이들 화가의 초상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내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점이 이 책의 큰 매력이다.


 

<교차된 편지들>에서 나름대로 재구성해본 화가 세잔은, 당대의 전통적이고 고착화된 화풍과 아카데미즘을 비판하고 자신만의 새로운 작업을 집요하게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에게 돌아온 결과는 기약 없는 실패, 무참한 낙선의 연속이었다. 세잔에게 살롱전의 낙선 소식은 일상의 의식처럼, 혹은 더운 여름 낮잠을 자다 꾼 악몽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작은 일탈과도 같은 사건이면서도 삶의 일부로서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중년이 되도록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자의식 강한 예술가였으리라. 여기에 아버지의 눈길로부터 숨겨둔 동거인과 그녀 사이에 둔 아들의 삶까지 걱정해야 했던 화가였다. 그럼에도 당대의 주류 화풍이나 미술계의 관행, 유행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오랜 시간 실험적인 작품을 추구했기에 화가 세잔이 되었을 터다. 그토록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시각을 발견하고자 분투하지 않았더라면, 피카소가 그린 독특한 시각의 인물들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와 분명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와 달리 에밀 졸라는 우리로 치면 중학생 시절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내던져진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직장 동료로서 아버지의 건설 회사를 법적으로 탈취한 이들에 의해 아버지의 회사도 빼앗긴 채 말이다.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어냈던 인물이었다. 단순히 그 시절을 견디어 낸것만이 아니라 시와 소설과 같이 문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 작가 에밀 졸라를 빚어낸 것이리라. 이때 몸에 각인된 경험 때문이었을까, 홋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은 그에게 경제적 도움을 요청한 세잔을 비롯하여 모네와 같은 당대의 화가들의 지원 요청에 변함없이 친구들을 돕고 글로서도 그들을 평생 지지했다.


 

한편 그의 글은 바로 자신을 그대로 닮아서 너무나 직설적이고 솔직한 나머지 수많은 반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던 모양이다.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던 그는 주류 비평계로부터 배척되기도 한 수모를 겪기도 했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청년 시절, 현실에 굴하지 않고 줄기차게 습작 기간을 견디어 내고 자신을 극복해나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시절을 견디어 낸 그에게 드디어 <목로주점>과 같은 작품이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다주기 시작했을 때 졸라와 세잔의 관계도 조금씩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30년에 걸쳐 왕래한 100여 통의 편지가 실려 있지만, 졸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변하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세잔과 인상주의 화가들을 한결같이 지지하고 도움의 손길을 건넨 인물이었던 것 같다.


 

40-50대에 이르기까지 주류 평단의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일원으로서 세잔을 위대한 패배자라 불러볼 수 있을까. 위대한 패배자폴 세잔과 세기의 자연주의의 대표적 문호에밀 졸라의 존재는, 조금 과장을 섞어 표현해도 된다면, 두 사람을 각각 따로 떼어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우뚝 섰던 두 사람의 존재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잔에게 졸라가 없었다면, 당대의 화가들보다 돋보이는 문학적 소양과 그림에 대한 안목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졸라에게 세잔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열정적으로 인상주의에 대한 분석적이면서 애정을 담은 비평을 쓰고, 화가들을 응원하며 그림에 대한 깊은 안목을 습득할 수 있었을까. 중학교 시절 서로를 알아본 후 집 주변의 강둑에서 함께 옷을 벗어 던지고 강으로 뛰어들던 두 사람. 그들은 이미 오랜 시간 그림과 언어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각자의 안목을 구축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리하면, 졸라와 세잔은 서로가 없었더라면 각자 그만한 문학과 회화에 대한 소양과 깊이을 습득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만큼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역사에 무의미한 가정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편지글은 그 나름의 고유한 형식 때문에, 편지를 작성한 인물들의 의식 일면을 행간에서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청소년 시절, 대학입학자격 시험에 해당하는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서로에게 토로하며 편지를 통해 징징거리기도 했다. 또 편지지에는 그들 나름의 언어유희와 시적 언어를 실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분명히 서로에게 독특한 형태의 소울 메이트였던 모양이다. 150년 전-후의 시기에 작성된 이 편지들을 읽고 나니 이제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터다. 화가 세잔과 작가 졸라는 두 사람을 완전히 떼어 놓고 그들의 삶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라고 말이다. 세잔이 없었다면 졸라의 인상주의에 대한 관심과 비평글, 그리고 루공-마카르 총서에 등장하는 인물의 창조나 그림과 같이 생생하고 감각적인 묘사들은 그만큼 창조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세잔은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는 그 자녀에게는 다행한 일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세잔은 어떤 형태의 조직에서 일을 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세계가 확보되어야 했던 인물 같다. 그는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중년의 나이에 이르도록 아버지의 용돈을 받으면서도 그림만 그리기 원했던 사람. 여기에 인상주의 그림에 대한 조롱을 일삼던 심사위원들이 평가하던 살롱전에 출품하여 줄기차게낙선했던, ‘위대한 패배자였다. 세잔의 나이 50이 가까운 나이에 그린 가르단(Gardanne) 지역의 풍경을 언급하던 1880년대 중반에 그가 친구 졸라에게 보낸 세잔의 편지글을 보면, 그림에 대한 열정이나 자신감의 불꽃이 한풀 꺾인 상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역시 현실의 삶과 인정받지 못한 화가로서의 자괴감이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다.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이 없었겠는가. 스스로 생활비를 벌지 못하여 아버지 몰래 상당 기간 숨겨둔 아내와 아들의 생활비를 졸라에게 요청해야 했을 세잔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여기에 프랑스의 주류 언론계로부터 추방되다시피 했던 친구 졸라가 그의 소설 <목로주점>의 대성공으로 점차 대작가로 부상하는 상황이 세잔 자신의 상황과 더욱 비교가 되었을 터다. 이는 오랜 친구에 대한 단순한 질투라기보다는, 성공가도를 달리던 친구와 대비되는 자신의 변하지 않는 현실이 더욱 큰 고통과 불안감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19세기 후반 회화와 문학 분야에서 이름을 남긴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발견하는 것은 그들이 직업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해낸 사람들임을 확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 역시 고된 현실에서의 삶을 견디어 내고 관통했던 사람들이었음을, 그리고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서로를 빚어내는 데 아낌없는 지지와 시간을 할애했음을 알게 된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신뢰를 평생 이어간 두 사람의 세계를 보다 내밀히 따라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두 사람의 편지를 엮은 에밀 졸라 연구가 앙리 미테랑의 손길 덕분이다. 주류 예술가들과 비평가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았던 인상주의화풍과 그 화가들과 교류했던 두 사람이기에 이 책은 또한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로서, 그리고 예술가/창작자로서 자신의 사명에 임하는 태도와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비교적 형편이 넉넉했던 마네와 드가와 잘 어울리지 못했던 시골뜨기 세잔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 기성 문단이나 주류 예술가들에 도전하던 인상주의 청년 화가들을 실감나고 친근하게 재구성해낼 수 있었다.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화가와 작가의 이름이 이제는 보다 생생하게, 당대를 살았던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책속으로]


[1] "네가 엑스를 떠난 뒤, 친구여, 슬픔의 그림자가 나를 짓누르고 있어. 정말로, 거짓말이 아니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야. 내 몸에서 힘이 빠졌고, 나는 어리석고 굼뜬 인간이 되었지."(69, 파리로 떠난 졸라를 그리워하는 중학생 세잔의 편지, 1858년 4월) - P69

[2] "매일 쓸 약간의 돈만 있다면 나는 바스티동으로 물러나 거기서 은둔자로 살고 싶어. 속세에서 사는 것은 내 일이 아닌 것 같아. 세상 속으로 며칠만 나가도 나는 곧 슬픈 표정을 지을 거야. 그래서 한편으로 나란 사람은 결코 백만장자가 되진 못할 거야. 돈은 내 삶의 관심사가 아니거든."(179, 청년 졸라가 세잔에게 보낸 편지, 1860년 2월) - P179

[3] "나는 네 편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고, 네 편지를 받으면 온종일 행복해. 너도 잘 알잖아. 그리고 사과 따윈 하지 마. 너와 계속 편지를 주고받기 위해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라도 할 생각이니까."(186, 세잔에게 보낸 졸라의 편지, 1860년 3월) - P186

[4] "우리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시로 변하고, 우린 쉽게 그것에 매몰되지. 가장 간단한 인간의 관념을 이해하려고 하는 순간,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지. 그러나 명백하게 모순적인 너의 면모도 이젠 내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나는 너를 좋은 사람이자 시인으로 인정했기 때문이지. ‘나는 너를 이해해.’ 이 말을 영원히 반복할 수 있어."(186, 세잔에게 보낸 졸라의 편지, 1860년 3월) - P186

[5] "네가 보내준 몇몇 시들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어. 쏜살같이 흘러가는 삶과 젊음의 찰나성, 또 그 너머의 죽음까지, 그렇지, 잠깐이라도 그런 것을 생각하면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오지. 그러나 숨 가쁘게 흐르는 존재의 흐름에서 젊음, 이 생명의 봄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스무 살에도 행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나이 들면, 그래서 혹독한 겨울날 아름다운 여름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상념에 빠질 수 없다면, 그것이 더 우울한 그림이지 않을까? - 그러나 그것은 나를 기다리지."(193, 졸라의 편지, 1860년 4월) - P193

[6] "스승을 지나치게 존경하지 말길 바란다. 그 대신 너의 꿈, 그 아름다운 황금빛 꿈을 네 캔버스에 담고, 네 가슴 속 그 이상과 열정을 표현하려 해봐. (...) 무엇보다 빠르게 제작된 그림을 높이 평가하지 말길 바란다."(195, 졸라의 편지, 1860년 4월) - P195

[7] "보통 사람의 눈에는 쓰레기 같은 작품과 걸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야. 보통 사람은 양쪽 모두 흰색과 빨강색이 있고, 붓 자국이 보이며, 캔버스가 있고, 액자틀이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러나 걸작만이 가진 미세한 차이는 뭐라고 이름 지을 수 없는, 생각이나 취향 같은 것을 통해 드러나지. 이 무엇, 그러니까 어떤 예술적인 감성을 발견하고 경탄해야 한다는 뜻이야."(199, 졸라의 편지, 1860년 4월) - P199

[8]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흰 드레스를 걸친 정숙하고 발랄한 수녀처럼 아름다운 수레국화를 한 아름 안고 걸었지. 맙소사! (...) 나는 그걸 안고 초원을 달렸어. 더는 인가가 보이지 않아서 나는 행복했고 (...) 나는 혼자였고, 거기선 누구도 나를 염탐하거나 조롱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서 기쁜 마음으로 계속 꽃다발을 만들며 걸어갔지. 수레국화는 정말 매혹적인 꽃이야."(212, 졸라의 편지, 1860년 6월) - P212

[9] "좋은 순간을 즐기고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또 괴로운 순간에는 욕을 하고 창문을 깨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지. 장단점을 동시에 가진 것이 (그/그녀가 선하든 나쁘든)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 물론 정말로 현명한 사람이라면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즉 마음에 어떤 증오도 들어설 수 없는 그런 모습이겠지."(217, 졸라의 편지, 1860년 6월) - P217

[10] "미래의 불확실함이 너를 힘들게 하겠지, 안쓰럽게 생각해. 그러므로 나는 더욱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 이것 혹은 저것,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진정한 변호사 아니면 진정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 물감으로 더러워진 법복을 걸친 무명의 존재로 남지 말길 바란다."(234, 졸라의 편지, 1860년 7월) - P234

[11] "너는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어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진지하고 정기적으로 그것을 실천하지 않았으니 자신을 무능하다고 여길 권리가 없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용기를 내."(235, 졸라의 편지, 1860년 7월) - P235

[12]"너는 붓을 택했고, 잘한 일이야. 자기만의 길을 찾아야 하니까, 너에게 색을 버리고 다시 펜을 들어 너만의 스타일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싶진 않아. 한 가지 일에 뛰어나려면 그것에 전념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나는 지금 네 안에서 사라지는 한 시인을 위해 애도하고 있어. 반복건대 네 토양은 비옥하고 풍요롭기에 약간의 경작만으로도 많은 수확을 할 수 있지."(240, 졸라의 편지, 1860년 8월) - P240

[13] "나도 너희 생각대로 작가라면 이미 끝을 낸 작품에 다시 손을 대선 안 된다고 생각해. 물론 시인이라면 글 전체를 다시 읽으며 여기저기 선을 긋고 본래 생각을 고수하되 수정할 수는 있지. 그 자체는 문제가 없고 필수적인 과정이라고도 생각해. 그러나 몇 주, 혹은 몇 달,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작품을 거꾸로 뒤집고, 여기저기 손을 보며 재구성하려는 것은 어리석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242, 졸라의 편지, 1860년 8월) - P242

[14] "나는 월계관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시를 위한 시를 사랑해. 그 누구도 내 꿈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펜과 종이만큼은 나를 이해해주지. 같은 생각을 나누는 친구인 너희들을 좋아하듯이 나는 나의 시, 그러니까 이야기 그 자체를 사랑해. (...) 기다리자, 삶과 시간이 우리에게 내보일 거야."(244, 졸라의 편지, 1860년 8월) - P244

[15] "돈을 생각하지 말고, 의식 있는 작가로서 자기만의 시와 소설을 창작해야 해. 그러기 위해서 만일 2년이 필요하다면 온전히 그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또 돈에 관한 관심이 예술 행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거야."(245, 졸라의 편지, 1860년 8월) - P245

[16] "현실은 계속 나를 속이고 배신해서 이제 나는 보이는 것만 믿게 되었어. 현재 소유한 하나가 미래에 가질 두 개에 대한 희망보다 더 낫다고 생각해."(257, 졸라의 편지, 1860년 10월) - P257

[17] "진정한 예술가라면 모두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목적, 즉 비극이나 드라마 등의 거짓된 장르를 하지 않고 새로운 극 형식을 창조하길 소망할 거야. 진정한 인간의 이성과 정열을 담은 걸작을 창조하고, 진실로부터 문학의 위대함을 길어 올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품는 고귀한 야망일 것이고, 그 책임은 막중하면서 고통스럽지."(259, 졸라의 편지, 1860년 10월) - P259

[18] "나는 육체만 사용하고 지성을 억누르는 거친 활동에는 게으르지. 하지만 예술은, 영혼을 채우는 이 행위야말로 내게 기쁨을 주지. 그래서 나는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그 순간에 가장 생산적이지."(302, 졸라의 편지, 1861년 3월) - P302

[19] "내 간절한 바람은, 그러니까 매일 내가 생각하고 꿈꾸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내 자리를 찾는 것이지. 나만 생각하며 살 수 없는 상황이 나를 움츠리게 한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만일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내가 조금씩 더 약해지면, 그건 스물두 살의 나 같은 조숙한 청년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모두 잃는다는 것을 뜻하지."(306, 졸라의 편지, 1862년 2월) - P306

[20] "오늘의 슬픔에서 나는 행복을 느끼네. 오늘 저녁 나는 자정까지 글을 쓸 것이고, 어제처럼 멋진 문장을 또 쓴다면 내일의 기쁨을 비축하는 일이겠지. 얼마나 가여운 바보인가, 나는! (...) 현실을 잊기 위해 힘들고 치열하게 일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야. 식욕을 억제하려면 많이 먹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 나는 지금 몹시 배가 고파."(311, 졸라의 편지, 1862년 9월) - P311

[21] "우린 늘 다른 이들과 똑같은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침묵해야 할까? 우리가 나눈 긴 대화들을 기억하는지? 그 어떤 새로운 진실도 분노와 야유를 일으키지 않고선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고 했던 것을 말이야."(354, 졸라의 편지, 1866년 5월) - P354

[22] "회화는 그럭저럭 진척되고 있으나 낮이 너무 길게 느껴져. (물감이 마르길 기다리며) 유화로 작업하지 못할 때도 계속 작업할 수 있도록 수채화 물감을 한 상자 사야 할 것 같아. 내 그림 속 인물들을 모두 바꾸려고 해. 이미 델팡은 다른 포즈로 (아주 약간) 바꿨어. 그렇게 그를 표현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아."(358, 세잔의 편지, 1866년 6월) - P358

[23] "나는 책을 거의 읽지 않나. 자네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또 동의하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나는 점점 예술을 위한 예술이 촌스러운 허세라는 것을 깨닫고 있지. 이건 우리 둘만의 이야기로 남겨두자고."(363, 세잔의 편지, 1866년 10월) - P363

[24] "알렉시네 시골 마을 근처 철로를 달리다보면 동쪽으로부터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라운 모티프 하나가 펼쳐지지. 바로 생트-빅투아르 산과 보르쾨이를 뒤덮은 암석들이야. 나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티프인가’라고 말했고, 그는 ‘선이 너무 흔들린다’라고 했지."(456, 세잔의 편지, 1878년 4월) - P456

[25] "과연 우리에게도 좋은 날이 올까? 요즘 날씨를 보면 먼 이야기인 것 같아. 얼마 전 강물에 손을 담가보았는데 물은 여전히 차더군."(492, 세잔의 편지, 1879년 6월) - P492

[26] "나는 계속해서 나의 회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네. 자연은 내게 가장 어려운 대상이지."(497, 세잔의 편지, 1879년 9월) - P497

[27] "흐린 날뿐만 아니라 맑은 날에 대한 습작 여러 점을 시작했다네. - 자네가 하루빨리 정상 상태를 회복해 작업에 몰입할 수 있길 바라네. 내 생각엔 그것이야말로 다른 모든 대안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자신의 만족을 얻을 유일한 피난처이니 말이야."(525, 세잔의 편지, 1881년 5월) - P525

[28] "나는 계속 조금씩 작업을 해. 하지만 자주 의욕을 잃어."(527, 세잔의 편지, 1881년 6월) - P527

[29] "자네에게 조언을 좀 구하려 하네. 유언장을 어떤 형식으로 써야 할지 도움을 좀 줄 수 있겠나?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내가 죽으면 내 수입의 절반을 어머니에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아들에게 상속하고 싶어."(538, 세잔의 편지, 1882년 11월) - P538

[30] "작업은 계속하는지? 만족스러운지? 나는 새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 이게 내 삶이지. [그것]외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고, 우린 계속 자리 잡는 중이며, 꽤 잘 지내고 있어."(545, 졸라의 편지, 1883년 5월) - P545

[31] "예술이 너무나 표피적인 것으로 되어가면서 평범하고 하찮은 형태로 변하고 있어. 동시에 조화에 대한 경솔한 태도는 채색의 부조화에서 나타나고, 더 심각하게는 색조의 과장됨으로 드러나지. 이렇게 한탄하고 난 뒤에는, 그토록 아름다운 빛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태양을 위해 만세를 외치자고. 반복하지만 나는 자네의 충실한 벗이라는 것, 그리고 졸라 여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말길 바라네."(552, 세잔의 편지, 1884년 11월) - P552

[32] "나는 미쳤거나, 제정신이겠지.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욕망으로 움직인다!(Trahit sua quemque. voluptas!)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고 용서를 구하네. 현명한 이들이여 행복하여라!"(554, 세잔의 편지, 베르길리우스 <목가>의 한 구절 재인용, 1885년 5월) - P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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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펜하이머 청문회
하이나어 키파르트 지음, 양도원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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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성공하기로 할 것인가, 실패를 선택하고 책임을 질 것인가?’

-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 풍경을 조명한 희곡

 

<오펜하이머 청문회>

하이나어 키파르트 지음

양도원 옮김 [지만지드라마] (2024)




 

(원폭실험을 하던) 그때 나는 두 가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 실험이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오펜하이머가 보안청문회에서 언급한 말)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광선이 눈부시도록 하얀 불덩어리가 되어 점점 커져서는 하늘과 산을 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에 나는 내가 그때 가지고 있었던 힌두교의 찬가에 나오는 두 가지 시구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수천 개의 태양으로 된 햇빛이 하늘에서 홀연히 비친다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는 모든 것을 삼키는 죽음이다. 세계를 모두 흔들어 놓는 자다였습니다.”

 



올해(2025)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가운데 의식 있는 꽤 많은 시민들, 심지어 명사들 마저도 우리의 광복이 미국의 덕분이라고, 특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뜨린 원자 폭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의 기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표현으로 정리해버리고 마는 이들이 내게는 온전한 인식을 갖춘 것은 아니라고 여겨진 까닭이다.


 

1945년 초부터 일본 군부는 연합국 측에 항복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타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군부는 원자 폭탄의 위력을 실제로 사용해서 위력을 검증하고자 결정을 내린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문제가 있다. 미국의 역할 없이는 우리의 광복이 분명히 쉽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가 국외에서 활동하던 임시 정부와 국내 진공 작전의 준비, 그밖에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목숨 건 투쟁과 희생, 여기에 더불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이들의 희생을 놓쳐서도, 잊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세의 도움만으로 무기력하게 독립을 얻어낸 것이 결코 아니다.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지우려는 세력은 바로 이런 부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 군부가 일본에 투하하기로 결정한 우라늄과 플루토늄 기반의 원자 폭탄은, 일본에 대한 승리를 목적으로 떨어뜨린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나치 독일이 먼저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전에 미국에서 개발하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먼저 패망한 후 개발된 원자 폭탄 제작 사업은 사라진 초기의 목적 대신 새로운 명분이 필요했을 터다. 이는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에서 지적하며 이후의 수소 폭탄 계획에 비판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원자 폭탄 제조 이후 수소 폭탄 제조로 경쟁하듯 이어지는 대량 살상 무기 개발 사업은 그 한계 설정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성격을 간파한 오펜하이머는 수소 폭탄 개발 경쟁이 결국엔 인류의 실존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미 군부가 우리의 독립에 관심을 두고 있기 보다는(이건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부수적 효과에 불과하다) 한 때 손을 잡았고 일본과 싸웠으나 이제는 적대 국가로 부상한 소련(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견제의 측면이 더 중요했다는 점을 읽어낼 수 있다. 이는 미국 내에서 거세지고 있는 반공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사건으로 볼 수 있을 터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극작가 하이나어 키파르트의 희곡 <오펜하이머 청문회>를 관심 있게 읽으며, 영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보았던 오펜하이머 청문회 과정을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미국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가 시작한 보안청문회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자 폭탄 제조 계획(맨해튼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이었던 오펜하이머가 얼마나 고립된 상황이었는지, 그리고 만들어진 신과 같은 국가라는 실체가 개인에게 가할 수 있는 국가 폭력의 메커니즘과 더불어 오펜하이머 개인의 복잡한 심경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지극히 복잡하고 다층적인 존재인데 말이다. 분명하게 무언가를 경계 짓고자 개인을 강요하고 폭력적으로 재단할 때 그 공동체에는 무엇이 남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희곡 대본은 단순히 공적 인물로서 오펜하이머의 고난과 희생의 국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라는 복잡한 존재가 마주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과 강요된 선택의 딜레마에 초점을 맞추고 독자에게 질문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국가 주도 사업(첫 원폭 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의 성공 여부에 대한 공인으로서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지, 공동체에게 큰 영향력을 지닌 한 인간이 갖게 되는 무거운 책임감과 윤리적 결정의 경계에서 주저하던 인물의 내면을 상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만, 과학자의 책임 문제에 대해 오펜하이머는 일본에 투하된 무기에 희생된 일본인들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무기를 투하할 만한 지점을 선정하는 데 과학적기술적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언뜻 이해가지는 않지만, 그의 논리에 따르면 개인적인 양심과 국가 혹은 공동체를 위한 공인으로서의 행보 사이에서 주저했을 법하다. 그는 과학적/기술적 정보만을 제공한 것이라 말했다. 최종적인 결정은 정치인들이 내린 것이라고 선을 긋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의 책임은 면제되는 것일까? 정답은 없지만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애초에 폭탄 제작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했다 하더라도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만을 가지고 그를 비롯한 당대의 과학자들을 비난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또 개개인의 복잡한 심리와 입장 차이에서부터 국가 간의 민감하고 첨예한 이해관계 등을 고려할 때, 개인의 양심에 따른 결정과 행동이 늘 간결하고 명료하게 정리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과학 활동이 수행될 때, 이는 이미 과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을 넘어 공적인 역할을,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결정을 수반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가 과학적 연구 결과의 책임을 온전히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현대 과학 연구는 특성상 개인의 아마추어적인 유희적 특성을 훌쩍 뛰어 넘어 버린 지 오래다. 공공에 대한 의무, 공적 특성과 보다 많이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의 책임은 그가 속한 사회, 나아가 지구 위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무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성공적으로 원자 폭탄을 만들어 내었으나, 이후 이어지는 (원자 폭탄 위력의 1만 배 이상 강력한) 수소 폭탄 개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매카시 광풍의 희생자가 되었다. 개인의 모든 사생활이 낱낱이 파헤쳐 공개되었다. 이후로도 오랜 세월 감시 및 도청당했으며, 학자로서의 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사실상 막혀버린 셈이었다. 청문회 과정에서 잠시 언급된 수소 폭탄 개발과 사용에 있어서, 만약 한국 전쟁 당시에 한반도에서 수소 폭탄이 사용되었더라면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오펜하이머 청문회>에 언급되는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의 핵무기 중에서 현재 러시아에만 핵무기가 1만 여기, 미국에는 9000 여기가 있다. 오펜하이머의 우려대로 전 세계의 핵무기 경쟁에는 상한선이 없어졌던 셈이다. 핵무기 경쟁에서 유일한 제약이 될 수 있는 조건은, 오로지 폭탄 제조에 필요한 원료의 수급가능성 밖에 없는 듯하다. 이제 우리 인류는 잠재적 인류 공멸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사실이야말로 그로테스크하지 않은가. <오펜하이머 청문회>는 올해 80주년이 되는 광복절을 맞아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으나, 영화 <오펜하이머> 보다 오펜하이머가 겪어야 했을 개인적 고통과 청문회의 풍경을 좀 더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는 텍스트였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여겨진 국가 주도 사업의 책임자가 자신이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성취해내면 인류가 위기에 처하게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을 때, 당신은 일단 성공하고볼 것인가, 아니면 성공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류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음에 안도하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기꺼이 감수하겠는가. 여기에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좀 더 높은 기댓값으로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은, 오펜하이머라면 또다시 똑같은 행보를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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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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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 물과 맺어진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 곳

<언더월드>

(The Underworld)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까치] (2025)

 



최근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서 진도 8.8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전후로 태평양을 마주한 일본의 해안에 향유고래 4마리가 밀려왔다는 기사를 보고 마침 지난 81일이 탄생 206주년을 맞은 허먼 멜빌도 생각이 났더랬다. 이번 향유고래 기사와 같이 바다 깊은 곳에서 발생한 지진을 감지하는 바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심해 갈치가 제주 해안으로 떠올랐다는 기사도 비슷한 사례다. 이런 동물들의 행동을 보면 <모비딕> 1장에서 이슈메일이 혼잣말하듯 내뱉은 우리는 영원히 물과 맺어져 있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이번 더위에 느릿느릿 읽은 책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수전 케이시의 <언더월드>는 이슈메일의 말이 뜻하는 바를 피부에 와 닿게 전하는 책이다. 우주 속의 섬, 그 섬의 표면에서도 3분의 2가 바다인, 이 기적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면 분명히 실감할 일이다. 나아가 표면아래 바다 깊은 곳까지 고려할 때, 모든 생물권의 95퍼센트가 심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을 터다. 동시에 우리가 바다에 대해 이토록 무지하고, 또 무관심했던가 싶기도 할 것이다. 지구를 떠나려는 계획에 엄청난 자원과 자본을 쏟아 붓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바다에 투자하는 노력과 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책은 바다, 무엇보다 심해에 초점을 맞춘 심해 안내서다. 심해에 다가고자 한 인간의 노력들, 심해와 인간과의 관계, 심해의 존재가 행성 지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취재하고 고찰한 기록이기도 하다.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서 빛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이제 상식이다. 하지만 태양광이 아예 도달하지 않는 심해저의 암흑 속에서, 그러니까 대략 수심 3,000미터 이하의 깊이에서 저자가 눈으로 확인한 생태계는 미사만 존재하는 죽은 사막 같은 곳이 결코 아니었다. 심해에서 생물은 어디에나 분포되어 있었”(74)던 것이다. 심해에는 지표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생태계가 실재하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수심이 비교적 얕은 유광층과 박광층에서 볼 수 있는 구성원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물들이 풍부한 곳이었다. 수심 7000-8000미터 아래에서도 살아가는 쥐꼬리물고기나 덤보문어, 붉은새우 등의 생물들, 암흑 속에서 마치 별이 반짝이듯 자체적으로 빛을 내어 먹이를 유인하는 여러 발광생물들과 마주했을 때, 저자가 느꼈을 황홀함, 1100기압을 견디고 있는 두꺼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대상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감각을 한 번 상상해보라. 이런 감정들은 우리가 직접 바다 밑으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위험을 무릅쓴 탐험가들이 직접 유인 잠수정을 타고 심해 탐험을 한 이들의 공통된 반응이기도 하다. 이들은 하나같이 한 번 심해를 보고 올라온 사람이라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올라온다고 말한다.


 

한편 바다 깊은 곳에서는 생물들만 풍요로운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심해 탐사의 선구자들과 직접 만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우주선 제작만큼 혹은 이보다 더 제약조건이 까다로운 잠수정 제작의 역사와 현재를 소개한다. 여기에 바다 속 지형의 격렬한 활동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는다. 지구는 인간의 눈으로 파악하기에 지극히 느린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변해가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바다 밑은 지각 아래에서 생성된 마그마가 지금도 분출하며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동시에 어느 곳에서는 지형과 지형이 충돌하는 곳도 있음을 과학자들은 알아냈다. 지형이 충돌하는 곳에서 한 쪽 지형은 다른 쪽 지형 아래도 들어가는 섭입대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저자는 특히 이 지역에서 격렬한 지각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섭입 과정이 이루어지는 일본의 해저,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역만 보아도 화산활동이나 지진이 멈추지 않고 격렬하게 일어나는 이유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유인 잠수정 심해 탐험가들은 바로 이런 현장을 바다 밑에서 직접 목격해왔다.


 

현재까지 인간이 알아내고 탐험한 초심해저대의 깊이는 수심 10,000미터가 넘는다. 저자가 해준 이야기 가운데 특히 기억나는 내용은, 지상과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초심해저대의 장소에서도 인간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는 이야기였다. 바다 밑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맥주 캔이 버드와이저라는 심해 탐험가들의 씁쓸한 경험담이나, 수심 10,000미터 넘는 심해 바닥에서 발견한 곰인형, 그리고 심지어 친환경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비닐봉지가 떠다니는 순간과 마주했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감정을 경험했을까.

 


2020년에 발견된 한 심해 단각류의 이름이 에우리테네스 플라스티쿠스라고 지어진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의 상황을 더욱 실감나게 웅변한다. 이 생물의 학명이 농담처럼 들리지만 정말 진지하게 붙여진 이름이었다. 초심 해저대에서 채취한 모든 생물 표본의 내장 안에서 플라스틱 미세 섬유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염물질과 하나가 되어버린 이 종은 우리가 바다의 가장 깊은 곳과 가장 작은 생물들까지 플라스틱으로 오염시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였다.”(417) 이제 이로써 지구상에 남아 있는 어느 곳도 미세 플라스틱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이 배출한 온갖 독성 물질이 오염되고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을 들려주는 저자의 말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 담긴 듯했다.


 

이런 사례들로부터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은, 심해가 지표의 생물권과 결코 동떨어진 섬과 같은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구 생물들이 살아가는 95퍼센트가 심해 영역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심해는 인간이 배출한 과도한 탄소를 흡수하고, 바다를 지구적으로 순환시켜주는 완충지대이기에 지구 전체의 기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바닷물은 비열이 큰 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태양열을 지표보다 더 흡수하고 온도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하여 지구 생태계를 지금껏 지켜준 환경요소다. 이 역할의 해심에 바로 심해가 있었다. 선구적인 심해 탐험가가 조금씩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심해의 고마운 역할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늦었을지 모르지만 심해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소중한 인류의 환경으로 이 지역을 지구적으로 공유하고 심해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작은 위안을 준다. 인류의 미래는 99%이상이 지구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우주 보다는 모든 이가 예외 없이 영향을 받는 바다에 있다. 바다, 나아가 심해의 중요성이 바로 이러하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달이나 화성으로 탐험을 하고 식민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국가는 많지만 바다 깊은 곳의 가치를 실제로 이해하고 여기에 투자하려는 이들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그나마 바다에 대한 관심은 세계 여러 국가들의 자원 확보 경쟁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생태계 환경으로서 보다는 무한한 자원의 보고로서 심해에 눈독을 들이는 상황인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심해 채굴 움직임은 단순한 우려를 넘어 심해 생태계가 심해 채굴의 위협으로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는지, 나아가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바다를 보호하고자 설립된 국제 해저 기구가 여러 글로벌 기업의 편에 서서, 인류 공동의 자산인 해저 생태계를 채굴 권한을 국제 사회의 검토와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극소수의 세력이 인류 전체를 앞장서서 위협에 빠뜨리는 행보가 아닌가. 이 현실을 보고하는 저자의 문장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저자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심해 채굴에 상당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반대한다. 저자는 무작위로 이루어지는 심해 채굴 방식과 후유증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심해저의 어느 지역을 채굴하게 되면 표면에 있는 모든 것(모든 생물과 암석들)을 거대한 기계에 넣고 갈아내는데, 이때 기계에서는 걸쭉한 혼합물이 만들어지며 이를 수면 가까이로 퍼 올리려 폐기해버리게 된다고 한다.


 

심해 채굴을 추진하려는 기업인들은 이 과정이단지 먼지가 조금 나는 정도뿐이며, 큰일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문제를 일으킨 행위의 주체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안전평가라고 사람들에게 제시한다면 당신은 그 결과를 믿을 수 있는가? 이런 결과에 대한 신뢰는 확보되기 어렵고, 그저 사람들의 우려만을 더 부추길 뿐이다. 어느 해양학자가 심해 채굴에 대해 직접적인 채굴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어떤 생명체든 살아남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습니다. (...)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347)라고 경고를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심해가 해양의 화학적, 생물학적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이런 균형을 위태롭게 만드는 심해 채굴과 파괴 행위는 되돌릴 수 없기에 더욱 신중해야할 일이다. 파괴된 심해가 원상 복구되려면 지질학적 시간만큼이 또다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심해가 복구되긴 할 것이다. 문제는 그동안 인류가 여전히 그 때까지 생존할 가능성이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 책은 심해 탐험과 이와 관련한 저자의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이 과정에서 탐험팀과 함께 했던 저자는 점차 바다에 대한 경외감과 겸허함을 배우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원 확보를 향한 여러 국가들의 무모한 심해 탐험과 경쟁은 과거 서구 세계의 식민지 쟁탈 과정의 역사를 지극히 닮아 있었다. 공공 기관의 역할을 자임한 해저 심해 기구가 한술 더 떠서 심해 채굴권을, 극소수의 단독적인 결정으로 심해 채굴을 신청한 기업에 판매하고 있는 현실을 다시 떠올려보자. 식민지의 역사가 인류의 자원 및 시장 확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이들의 행동은 과거에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던 행보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패턴으로 다가온다. 다만 정복의 대상이 달라졌을 뿐이다.


 

반면 심해 탐험가들과 저자는 직접 위험을 무릅쓰고 심해로 들어가 풍요로운 생물과 격렬한 지구의 활동을 목격한 이들이다. 이런 풍경을 본 이상, 수면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더 이상 정복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생명의 아름다움과 겸허함의 감각으로 충만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는 듯했다. 이들은 심해의 법칙에 복종하는 것 말고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복종이란 표현은 대상(심해)에 대한 우리의 존중과 사랑을 요구한다. 또 이 표현은 인류 공동의 책임을 자각하고 참여를 필요로 한다.


 

다시 확인하는 부분이지만, 이 책은 심해에 관한 저자의 매혹과 사랑을 진하게 고백하는 책이기도 하다. 독자들도 저자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면 독자의 마음가짐 역시 이에 반응하여 여기에 맞추어질 것이다. 또 심해 곳곳이 인간의 활동에 의해 오염되어 있는 현실을 알게 되면, 인류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자연으로부터 취하기만 해 왔는지 상상해본다. 인간은 문명의 편리함과 이익을 추구하느라 앞으로 인류가 치러야 대가가 얼마나 될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를 우리는 조속한 시간 내에 좀 더 진지하게 마주할 기회가 필요하단 생각을 해본다. 저자는 우리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지만,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빼기의 과정”(405)이라고 일러준다. 심해로 잠수하는 과정만 보아도 잠수정으로부터 공기를 빼고, 또 내려가면서 빛이 빠진다. 나아가 심해의 법칙에 복종하며 자아를 빼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과 통제라는 환상을 빼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문명의 편리함과 이기심을 비운 이후에야 그 빈자리에 비로소 진정한 겸허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인식의 변화를 채워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취재 활동과 참여를 통해, 독자는 우리와 너무나 멀리 존재하던 심해가 실제로는 우리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감나게 전한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으로부터 안전한 장소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심해는 현재 우리에게 낯선 세계이지만, 동시에 지구 생태계를 이 정도나마 유지하게 해준 주요 요소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나아가 우리는 지구의 가장 깊은 곳과 가장 작은 생물들을 오염시킨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의 손에 결정적인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 심해를 파괴하고 정복함으로써 우리의 문명이 심해에 처박힌 곰인형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열어둘 수 있을 것인지는 우리의 결정과 행보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우리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에서 영원히물과 맺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자신의 존재로 받아들인 심해의 매혹과 애착 그리고 지구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겸허함을 조금이나마 함께할 수 있다면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책 속으로>



[1] "심해의 가장 작은 거주자들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생물 세력이다. (...) 미생물이 없다면 우리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 P33

[2] "사실 우리의 생존은 바다에 달려 있다. (...) 이제는 자연이 상호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작동하며 심해가 그 기반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심해는 우리가 만든 과도한 탄소를 흡수하고(적어도 지금까지는) 바다를 순환시키며(따라서 기후에도 영향을 미치고) 지구의 화학적 성질을 조절하고(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여분의 열을 흡수한다(이 또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 P34

[3] "초심해저대와 그곳이 품은 태고의 아름다움, 격렬함, 진실에 매혹되고 그곳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곳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장소들이 있다는 증거이다."(저자의 말)

"왜 우리는 심해의 그토록 많은 부분을 그토록 오랫동안 무시해 왔을까?" - P239

[4] "유네스코는 해저에 남아 있는 배의 수를 약 300만 척으로 추정한다." - P248

[5] "침몰한 배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무엇인가가 있다. 불행한 운명을 맞이하여 물속에 잠들어버린 배들은 있어서는 안 될 곳, 있어서는 안 될 시간 속에 갇힌 인류 진보의 상징이다." - P256

[6] "인류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구해야 할 때 대단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세계 최대 펀드 회사 창립자 레이 달리오의 말) - P301

[7] "지구의 비밀스러운 파티가 가장 웅장하고 생생하게 펼쳐지는 곳."
(박광층에 대한 설명) - P310

[8] "그곳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장소였다. (...) 심해에는 늦은 것도, 이른 것도 없었다. 오직 심원한 시간, 지구의 지질학적 시계가 무한히 느리게 째깍거리는 소리뿐이었다." - P327

[9] "지구 생물권의 95퍼센트는 심해이며 그 바다의 역사는 40억 년에 달한다."

"심해의 숭고한 차원 앞에 머리를 조아릴 때 찾아오는 은총도 있다. 사물의 진정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깨달음으로써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이다."

"우리는 빛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빛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사실 생물권의 대부분은 어둠 속에 존재한다." - P328

[10] "놀랍게도 나를 덮친 감정은 슬픔이었다. 쿡쿡 쑤시는 듯한 아픔, 어렴풋한 그리움으로 시작된 그 감정을 처음에는 억눌렀다. 흥분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 터무니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가 심해에서 올라올 때 느낀 감정) - P332

[11] "직접적인 채굴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 어떤 생명체든 살아남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습니다. (...)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MIT 해양학자 톰 피콕의 말) - P347

[12] "바닷속에 떠다니는 이 물질들(채굴 후 바다에 버린 잔재들)이 해양 생태계에 심각하고도 다양하며 전 지구적 규모의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은 무서울 정도로 명백하다."
(심해연구자 스티븐 해덕과 어넬라 초이의 말) - P358

[13] "(생물량/몸집이 커야만 생명 체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생물 다양성, 즉 종의 만화경, 생태계 내의 방대한 유전적 저장소이다. 생물량과 달리 생물 다양성은 대체 불가능하다." - P363

[14] "우리가 지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선의 기회에요.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오래된 숲이든 온전한 사막이든 초원이든 간에 현재까지 남아 있는 자연적인 탄소 포집 체계를 지키는 일이에요."(해양학자 실비아 얼의 말) - P371

[15] "잠수정 밖에서는 실체와 무게를 가진 박동이 거대하고 평온한 존재의 길고도 느린 심장 박동 같았다. 나는 빛과 어두움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심해의 모습을 사랑했다." - P397

[16] "우리는 언제나 더 많은 것을 원하지만,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빼기’의 과정이다. 공기를 빼고, 빛을 배고, 날씨를 빼고, 수평선을 뺀다. 자아를 뺀다. 인간의 우월성과 통제라는 환상을 뺀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비로소 다른 것을 더할 수 있다. 진정한 겸허함,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시각, 변화된 인식, 때로는 낯설기도 한 생명의 표현 방식 말이다." - P405

[17] "심해에서는 그러한 신비를 엿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다. 그곳에서 고정된 지점은 나 자신의 의식뿐이다. 시간을 빼고 나면 존재만 남는다. 심해에서는 방향을 잃는 대신,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마지막 문장)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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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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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을 매개로 한 지적 탐구의 역사

- 책을 쓰는 과학자들

: 위대한 과학책의 역사


브라이언 클레그 지음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2025)

 




요즘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챗GPT를 비롯하여 AI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미 AI를 활용하여 쓴 책을 판매하고 있는 저자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 인류에게 AI라는, 이제는 일종의 이 되어버린 기술이 우리의 삶 속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한편에서는 AI에 대한 위기의식을 말하며 AI가 가져올 수 있는 미래를 경고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AI가 가져올 인류의 미래상에 대한 논의와 기대감이 함께 공존한다. 이 모든 혁신과 혁명적인 삶의 조건들을 압축적으로 일구어낸 성취의 근간에는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지적 전통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전통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에게 책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책은 인류가 발명한 문자를 기록하고 인간의 지성을 키운 요람이었다.


 

책을 쓰는 과학자들은 과학 분야의 도서들에 관한 서평을 많이 게재하는 사이트 파퓰러 사이언스의 편집자 브라이언 클레그의 책이다. 인류의 고전에 속하는 도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과학 저술가답게 저자는 인류사에서 큰 영향력을 미친 과학책 150권을 추려내 소개하고 있다. 고대에 문자를 기록한 역사로부터 과학적 전통의 맥락에 닿아있는 분야의 도서들과 그 저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풀어 놓았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무엇보다 본문에 수록된 풍부한 그림 자료들이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책은 전문 필경사들의 손에 의해 옮겨졌다. 당시의 지적 유산은 이들의 관점에 의해 재해석되고 기록에 남게 되었다. 따라서 필사된 책들은 인류 지성사의 최전선에 있었던 필경사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거울인 듯도 했다. 지식을 매개했던 당사자들의 영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상상해 보라. 500년 전 천체 망원경도 없던 시절, 육안으로 천체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황도12궁과 함께 화성의 위치를 계산할 수 있도록 정교한 수치를 담은 표를 수록한 천문학 책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과학책의 역사를 통해 단순히 책 제작의 역사를 넘어 인류의 지적 전통을 견인한 지성사의 여러 장면들을 실감하고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한편, 이 책은 고금의 위대한 과학책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다분히 서양 과학의 전통이 중심을 이룬다. ‘과학분야가 서양의 지적 전통으로부터 크나큰 영향을 받아 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반면 이 책에는 동양의 과학적 전통으로 AD200년 경에 완성되었다는 중국의 <구장산술>이나 7세기에 인도에서 발간된 <우주의 창조에 관한 해설서>의 소개 정도로 비서양 문화의 과학책이라는 관점에서는 제한적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이 서양에만 과학적 전통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아는 아라비아 숫자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인도에서 출현하여 아라비아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서양의 지적 전통, 특히 과학 분야의 전통이 중세 이후 본격적으로 일어나기까지는 지금의 지중해 및 중동 지역의 지적 전통을 고려하지 않고서 과학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도 과학의 역사는 결코 서양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인류가 발전시켜 온 과학의 역사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좀 더 다양하게 서술될 여지는 충분할 테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동서양의 여러 과학사가들이 과거에 인류의 과학적·지적 전통을 이야기할 때 답습해 온 서구 중심의 과학사관에서 탈피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정황을 발견한다. 저자의 관심사로부터 이 책에서도 일부나마 이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갖는 제약에도 이 책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매력들이 상당함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우선 과학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여 전 세계의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또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과학책을 만나는 장()으로서, 인류 지적 편력의 역사를 일별하는 즐거움이 있다. 무엇보다 과학책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유명한 과학책을 둘러싼 뒷이야기가 과학책의 역사에 관한 책읽기에 풍성함을 더한다. 여기에 더하여 독자는 인류 지성사에 큰 영향력을 지닌 과학책의 원서 표지와 내부 삽화 일부도 볼 수 있다. 책에 수록된 다양한 책에 대한 지식을 풀어 놓는 저자의 입담과 폭넓은 관심 분야에 번번이 놀라기도 하지만, 번역서임에도 저자의 위트와 유머를 곳곳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을 만나보자.


 

책을 읽으려 한 사람 대비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의 비율에 있어서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 비견할 만한 책이 등장했다. 1945년에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의 인지과학 교수 더글러스 R. 호프스태터가 쓴 <괴델, 에셔, 바흐>(1979). ‘영원한 황금 노끈이라는 부제와 함께 광범위한 생각을 펼쳐 낸 이 책은 심오한 사상이 담겨 있다는 찬사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아 왔다.”(291)


마치 나의 책읽기를 저자가 지켜보고 내게 귀뜸해 준 것처럼 뜨끔하기도 하다. 불현듯 학창 시절에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읽기에 도전했다가 제대로 이해한 대목이 없어 낭패감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이 책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나만의 경우는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동지 의식마저 느낀다. 이제야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에 기본적인 물리학 지식을 갖추기도 전이었으니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책읽기의 과정에 관해서라면, 나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운(?)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책을 읽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일단 바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우선 앞에서 나온 관련 내용을 다시 살펴보거나 다음으로 넘어간다. 아니면 책을 덮고 다른 책을 먼저 보기도 한다. 과거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집착하지 않게 되니 오히려 책 읽기가 더 편하게 다가왔다고 볼 수 있겠다. 언젠간 지금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언젠가 이해가 될 순간이 올 것이라 믿으며 읽게 되었다. 저자가 소개해주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는 내게도 색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이었다.


 

저자 브라이언 클레그가 소개한 과학책 속에도 그 책을 저술한 저자의 삶이 담겨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특히 과학책은 저자가 자연,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았던 관점이나 태도가 저자를 둘러싼 세계와 만들어낸 상호작용의 산물이기도 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과학책과 저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인류의 위대한 지적 전통의 한복판에서 그들이 남겨 놓은 발자국이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인류의 지성이 불과 몇천 년 만에(?) 이만큼 성숙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과학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중립적일 수 없는 인간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류의 번영을 앞당겨온 지적 전통이었을 뿐만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인간의 지적 전통이 어느덧 도달한 AI의 시대에 과학책의 역사를 통해 과학과 인류의 지적 전통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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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지금 어디에 있니 - 역사적 트라우마에 저항하는 단독자 1949~1992 아티스트웨이 2
김응교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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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 따라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누기도 하는 하루키. 보다 진득하고 작품과 작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물씬 느껴지는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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