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봉역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연주한 Free Jazz Guitarist 최성호 특이점의 공연 후 즉흥 감상'
2016년 11월에 발매된 '최성호 특이점'의 2집 앨범 이후, EBS에서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을 중심으로 공개녹화를 진행하였다.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즉흥음악이란 무엇일까 나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몰라서 궁금증이 생긴것이었는데, 물론 나에게도 답은 없다. 그저 음악을 취미로 듣지도 않았던 나에게는 사실 매우 어렵게만 느껴지는 음악이다. 하지만 공연 중 최성호는 자신의 작곡과정을 지극히 '소소하게' 얘기했다. 그의 작곡과정은 일상에서 맞닥드리는 '작은 사건'을 모티프로하곤 한다는 것.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한 주제를 가지고 난해한 음악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너무나 싱겁게마저 느껴지는 일상의 어떤 순간이 최성호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고', 이것이 그에게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글세...기타(최성호), 베이스(김도영), 이한얼(피아노), 드럼/퍼커션(백선열) 이렇게 네 명이 모여 연주를 하는 쿼텟 구성으로, 연주자들 바로 앞에서 이들의 연주를 들으며 문득 어떤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도시의 일상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나는 도시를 멀리서 조망하는 그런 느낌말이다. 마치 디오라마 형식의 도시 사진처럼 작은 장난감 같은 전철이 한강의 다리를 건너고 있고, 벼룩같은 차들이 분주히 자기 갈길을 재촉한다. 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미세한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런 도시의 원경이 떠오른다. 우리의 일상은 누가 뭐래도 각자 알아서 분주히 진행되고 있다. 거리를 지날 때, 스쳐지나가는 어느 여인은 누군가와 전화로 이야기하며 지난 주 소개팅한 남자를 흉보는 그런 대화가 잠시 들리다 사라지는 그런 도시의 일상이 떠오른다.
즉흥 연주의 본질적인 특징일까. 특이점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들의 즉흥 연주는 마치 '문어'와 '불꽃놀이'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문어'는 주변 환경의 색과 표면 특성에 따라 순식간에 주변 환경과 동화를 이루는 능력을 갖는다. 특이점의 연주도 이와 비슷하다. 네 명의 악기가 각자가 내는 불협화음과도 같은 소리가 어느 순간 어떤 패턴을 띠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는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드럼 연주자가 갑자기 어느 리듬을 다르게 치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머지 밴드의 연주가 마치 문어 다리의 색이 순식간에 변해가는 것처럼 이들도 새로운 패턴을 따라간다. 너무나 예민한 '촉'을 훈련받은 사람들같다. 라이브 공연이라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들은 기타리스트의 색다른 시도에 다른 멤버들이 순식간에 이에 호응한다. 탄탄한 기본실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런 예측하기 힘들어보이는 변화에 대응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다. 마치 문어의 한 몸처럼 이들은 자신의 색을 순식간에 바꾸는데 아주 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이점의 즉흥 연주는 '문어'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한편 최성호 특이점의 연주는 '불꽃놀이'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불꽃놀이를 유심히 보면, 하늘로 올라가는 하나의 거대한 불줄기로부터 작고 여러 가지 불줄기로 나뉘고, 이들이 퍼지는 동안 또다시 어느 순간 각자의 점이 새로운 불줄기를 결과하는 프랙탈 구조같은 연주같다는 생각을 했다. 번져가던 작은 불줄기의 점들이 어느 순간 새롭고 더 작은 불꽃의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더 작은 불꽃을 내뿜는 계기는 연주자가 의도한 새로운 연주가 진행되기 시작할 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특이점의 연주는 이렇게 폭죽이 터지는 양상과 유사한 것 같다는 생각을 연주를 들으며 해보았다.
예술의 장르는 서로의 경계를 넘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스스로 존재해나가는 것일까. 최성호 특이점의 연주를 들으며 기타리스트 최성호가 언급한 작곡 과정의 모습들은 마치 현대 사진의 과정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는 듯하다. 근대적 사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투디움'적 요소, 다시말하면 어떤 학습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 정보에 해당하는 요소들보다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반응을 일으키는 '푼크툼'적 요소에 보다 큰 자리를 내주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가 '푼크툼'을 언급할 때 사진을 바라보거나 어떤 오브제를 바라볼 때 관찰자의 내부로 관통해 들어오는 어떤 충격의 요소까지는 아닐지라도, 관찰자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어떤 인자를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최성호의 음악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눈이 고요히 내리는 광경을 무심코 지켜보다가 문득 바람이 불어 눈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을 그는 포착한다. 또는 한강변을 걷다 바람이 불어 자신이 하고있던 생각의 편린들을 바람에 실려보내는 듯하다고 말하는 그는 온 몸과 마음의 힘을 빼고, 지극히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하는 연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최성호 특이점의 즉흥연주를 바라보면 Free Jazz란 연주자 중심의 지극히 개인적인 장르이면서도 그 나름의 보편적인 주관성을 갖는 '반응'의 음악이라 나 나름대로 정의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Free Jazz의 본질적인 특징을 현대 사진의 맥락에서 그 유사성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 '주관적이면서 무의식적인 반응성' 때문일 것이다.
EBS 공연 팜플렛을 보면 최성호가 한 말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즉흥 재즈하면 뭔가 추상적인 대단한 의미를 담은 음악인 것 같지만, 저의 음악은 대부분 일상 속에서 느끼게 되는 지극히 평범한 감정들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자 합니다."
최성호는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긴밀히 교감하는 연주자란 생각을 해본다. 그에게 작곡의 대상은 일상에 '촉수'를 드리우고 있는 한 무궁무진할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해하고 있던 즉흥 음악, free jazz의 난해함과는 달리 최성호의 음악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자주 나온다. 이런 부분이 그 만의 독특한 특징일까. 즉흥 음악이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그가 연주하는 이런 서정적인 멜로디의 적용도 역시나 낯설긴 마찬가지다. 최성호는 이런 자신만의 특징을 억누르거나 감추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으로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점은 본인이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인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최성호 특이점'이 해나갈 앞으로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연주자로서 만들어나가는 정체성을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