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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울 것
임경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글을 쓰는 작가의 결과물을 읽을 때 그 저자의 살아온 궤적이 궁금해진다. 물론 책이나 출판사에서 소개하고 있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나온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작가의 삶에 대해 좀더 다가가 이해한 후에 다시 읽어보면 분명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물며 에세이는 작가가 자신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공개하는 글쓰기다.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 있고, 독자는 작가의 신변잡기적인 정보와 주관적인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연히 임경선 작가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최근에 출간한 에세이집 <자유로울 것>을 접하게 되었다. 내가 작가를 잘 몰랐던 것은 에세이나 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문체를 보면 또 나 혼자 작가는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같다란 상상의 나래를 펴며 작가에 대해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물론 에세이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펼치는 장이기에 저자의 생각에 공감을 하게되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다만 자신의 이야기를 성실히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고 나는 우연히 저자를 새롭게 알게되어 저자의 삶의 일면을 엿보게된 무심한 독자일 뿐이다. 저자의 글쓰기와 문체는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진다. 그 소재의 평범성이 오히려 에세이란 장르를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주기도 한다. 현학적이거나 화려한 문장을 써서 에세이를 썼다면 오히려 끝까지 읽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평범하고 진솔하게 써내려가는 저자의 문장들은 내가 상상하기에 저자의 삶을 많이 닮았을 것이라 느껴진다. 책에 사인을 받거나 유명세를 탄 이후 연락을 해오는 오래전 친구들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도 저자의 생각들은 자신이 쓰는 문장들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설을 쓰고, 에세이를 쓰며 삶에 대한 성찰을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는 저자는 여성이기 이전에 자신의 일을 가지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독립적인 인간으로서의 자세를 견지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여러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 그리고 직장에서 일반 회사원으로서 10년 넘게 살아온 경험때문이었을까, 저자는 사회나 집단이 강요할 수 있는 제약 속에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한 개인으로 살아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특히나 결혼 전 두 번, 결혼 후 두 번에 걸친 암치료 과정을 거치며 그 과정에서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글쓰기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면 왜 많은 독자들이 저자의 꾸밈없는 문장들을 따라가며 공감하게 되는지 알게된다.
산고의 고통과도 같은 글스기 과정을 매번 거치면서도 다 쓰고 나면 ‘온몸으로 그 때를 그리워하는’ 저자도 ‘재능’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내비친다. ‘재능’에 대한 평가와 견해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다. 재능은 어느 누구의 선천적, 후천적 개인사의 총체라고 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 선천적인 영향에 방점을 찍고 그대로 수용한 나머지 후천적인 영향을 간과해온 것이 아닌가 한다. 장석주 시인은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서 “졸렬한 글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가 재능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전업작가가 아닌 평범한 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뭔가 특별한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좋아하던 것을 꾸준히 하며 행복해하면 충분한 것이 아닐까. 저자가 인용한 <파이 이야기>의 한 구절(“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서 생존은 시작된다.”)은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는 공감대가 된다.
아마도 여성 독자들은 작가의 생각들이 속속 이해가 잘되고 공감이 잘 될지 모른다. 다만 저자와 비슷한 나이또래인 중년 남자로서 나는 ‘예술가의 삶’을 이야기하며 두 영화를 언급한 대목에서 상당히 공감을 하게 되었다. <본 투 비 블루Born to Be Blue>와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가 그것인데, 두 영화 모두 에단 호크가 나오고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였다. 아 저자는 이 두 영화를 이렇게 보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는 (나와는 다른)관점에 대해 알게되기도 하였다. 온전히 저자의 견해에 공감을 하게 되지 않아도,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독자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는 느낌은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의 삶에 대한 성찰을 따라가보며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란 느낌이 주는 막연한 기대와 긍정의 기운을 이어받아 올 한 해 더욱 성장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올 해 말 내가 살아온 한 해를 되돌아볼 때, 작가가 적어둔 한 구절이 떠오를 것 같다.
“우리의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인 것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않고 지금 내야 해야 하는 일을 찾아내 최선을 다해 하기로 한다. 어차피 긴 시간에 걸친 승부다.” (48면)
지금 현재, 내 앞에 놓인 삶에 주목하고 집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사항인지 나이들어가면서 피부로 보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 좋아하는 일이나 희망하는 삶의 모습에 가깝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할 때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최선을 다하면서 하던 일이 새로운 기회에 요긴하게 쓰이는 경험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보면 한 사람의 경험치라는 것, 연륜이라는 것은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개개인의 지혜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내 앞에 남아있는 ‘시간의 무게’는 내가 누린 20대의 시간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저자의 삶에서 나온 솔직한 성찰은 그 힘을 지니고 성장하고 있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경험치가 또 달라져있을 시점에서 저자의 에세이를 또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