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
라오 핑루 글.그림, 남혜선 옮김 / 윌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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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읽다가 어느 순간 울컥해서 책을 덮은 뒤 집에와서 마져 다 읽은 책이다. 한 부부가 60년 넘게 함께했던 인생을, 저자인 핑루 할아버지의 그림을 통해 꿈을 꾸듯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핑루 할아버지는 북경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던 지식인 아버지를 둔 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인인 메이탕 할머니도 한약방을 하던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항일전쟁이 발발하고 이들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게 변해갔다. 일본군과 벌인 치열한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기고 살아남은 핑루 할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후 내전(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전쟁)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당시 국민당 세력이 타이완으로 근거지를 옮기고나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들은 더욱 어려운 삶을 살게되었던 것.‘국민당에서 복무한 과거'로 인해 '노동을 통한 정신 개조 대상'으로 분류되어 가족과 22년간 떨어져 살아야했던 것이다. 하지만 퇴직하고 부인을 간병하며 시작한 그림 그리기 실력으로 복기한 본인의 추억이 이 책 <우리는 60년을 연애했습니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누구나 어렵게 살아야만 했던 시절, 긴 스타킹에 구멍이 나면 잘라서 실로 꿰메어 다시 쓰고 또 다시 구멍이 나거나 헤지면 더 잘라서 꿰메어 다시 신고다니곤 하여 짧은 양말처럼 되어버린 결과물을 그려놓은 대목에서는 
누구나 웃음을 머금게 된다. 오랜 탁자 하나도 오래도록 아끼며 쓰다가 돈이 필요해 전당포에 맡긴 후 전당포 주인이 던져 부서진 탁자를 바라보며 울며 마음아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다섯 자녀들 모두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씨를 물려받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박노해 시인의 어느 시 중에서, 한 농부가 평생 몰고 다니던 경운기를 폐차하기 위해 떠나보내기 전날 집에서 상을 차리고 경운기를 향해‘잘 가시게'라고 절하는 대목을 떠올린다. 경운기 하나로 평생 밭을 갈고, 수확을 하여 장에 내다 팔아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들에게 사탕하나 사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는 어느 농부의 마음이 그대로 뭉클하게 느껴졌던 시였다. 핑루 할아버지 가족의 삶에서 보이는 경물(敬物)하는 마음은 요즘처럼 모든 자원이‘낭비'되는 시대에 더이상 발견하기 힘든 마음가짐일 것이다.‘경물'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삶에 대해 겸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두 부부는 60년 넘게...비록 22년 정도 떨어져 살아야 했으나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인간의 연을, 부부의 연을 놓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두 부부에게는 유일무이하게, 독창적인 이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이가 한 살 더 들어서인지, 요즘 부쩍 한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 내 가 살고 있는 시간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핑루 할아버지처럼 결혼을 하고나서 더 실감하고 있다. 종종 편협하고 찌질한 나의 행동들이 아내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았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이 땅에 태어나서 늦게나마 나에게 의지하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나에겐 좀더 기쁘게 해주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

핑루 할아버지와 메이탕 할머니가 만났던 20대의 사진과 60년이 지난 80대 때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가까이 들여다본다. 두 커플이 같은 사람이었는지 잘 알아보지 못하겠다. 아마도 오래도록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핑루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영원히 메이탕 할머니의 20대 모습이 기억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부부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유년 새해에 나는 새로운 바램을 추가해본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 그럭저럭 잘 지냈지?˝라고 말해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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