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면)
"'바라보다'함은 시선을 떼지 않고, 공들여 바로 본다는 것이니까.
다른 모든 것을 제외하고 한 곳을 선택한다는 뜻이며, 눈과 마음과 몸이 합작하여
(대상을) 바라 (대상을) 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박연준 시인은 그를 '자주 바라보았'노라 고백한다.
(44면)
"그를 생각하는 일을 '손톱 걸음'이라고 불렀다. 손끝이 눈을 시켜, 생각을 걷게 하는 일이니까."
시인은 또 한 명의 시인인 '그'에 대해 좋은 것을 질투나게도 구구절절 이야기한다.
도대체... 시인은 '그를' 얼마나 바라보고 사랑했기에
이렇게 그에 대해 좋은 것을 술술 이야기할수 있을까싶다.
또 시인은 그를 생각하며 손톱 걸음을 걸을 때면, 모래알처럼 쏟아지고 싶다라고 표현한다.
물에 젖게되면 무거워지는 모래알 처럼, 한 사람을 생각할 때 모래알만큼 무거워질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45면)
'손톱 걸음'을 걸으며 시인이 지은 시는 그야말로 타작을 거친 알곡만 모아놓은 소쿠리 같은 시이다.
(46면)
'한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의 육체와 정신, 영혼뿐 아니라
장점과 강점, 눈부심이나 의협심뿐 아니라
비겁함과 비루함
어두운 미래와 헝클어진 과거,
때와 땀과 똥을
똑같이!
사랑하는 일이란다.
바다가 뒤척이는 것은 바다가 덜 무겁기 때문
사랑이 뒤척이는 것은 사랑이 덜 무겁기 때문'
그리고 이어 시인은 '나는 자주 그를, 바라보았다.'라고 되뇌인다.
이 과거형의 문장은 내겐 미래형이자 다짐으로 보인다.
이 시에서 '남자'를 '여자'로 바꾸면 나에게 그대로 해당될 수 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대상을 보다 면밀히 그리고 공들여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내겐 꽤 인상적이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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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부부'라는 제목의 (10년도 더 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고 김정흠 교수의 에피소드를 본 기억이 난다. 고 김정흠 교수는 해외 유학 1세대에 속하는 물리학자로서 한국전쟁 당시 국내 물리학계를 일으켜 세운 분이다. 다큐멘터리 방영 당시 사모님은 10년 넘게 '식물인간'과 같은상태로 집에 누워계셨던 모양이었다. 내가 십 수년도 지난 이 프로그램의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김정흠 교수의 매일 매일의 일과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출근 할 때, 그리고 퇴근 하고 나서 항상 부인의 사진을 하루도 빠짐없이 담으셨다. 언어로 의사 소통도 안되고, 본인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부인 앞에서 매일 부인의 사진을 찍고, 때로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기사를 매일 읽어주셨던 모양이었다. 부인이 언젠가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게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서 알려주고 있노라 말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울러 부인의 사진을 찍는 이유를 담당 PD가 물어보자, 김정흠 교수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부인의 사진을 매일 찍는 이유는 평소에는 부인을 제대로 보지않기 쉬운데, 사진을 찍게 되면 부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있다."
결국은 부인의 사진을 매일 찍었던 고 김정흠 교수의 일과는 박연준 시인의 '손톱 걸음'과 '바라보기'와 결국 같은 행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