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과정을 겪은 이후, 우리 사회의 전과 후는 더이상 같지 않다고 한다.

스스로를 소진해나가도록 만든 업그레이된 자본구조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개발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부족하니 반성하고, 좀더 나의 능력을 키우자'는 후기 새마을 운동 전사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자기 계발 열풍이 주춤해질 무렵,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분위기가 휩쓸더니, 기업의 오너들이 인문학 코스프레를 하고, 다시 우리들은 이들이 던지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광한다. 인문학 열풍의 시대에 대학의 인문학과는 사라져가고, 경영학과만 거대한 괴물처럼 규모가 커지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가만히 보면 많은 사회 지도층이 말하는 인문학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인문학을 말하는 듯하다. 회사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관리하고, 최고의 효율을 얻기위한 자기 주도형 인문학. 한병철 교수가 그의 저서에 언급한 바처럼 각자 도생의 자본 구조에서 스스로를 무한 착취하고 스스로 소진하도록 부추긴다.  

 

오늘 온 스팸메일 중에 다음과 같은 홍보 문구가 있다.

***와 함께 Peter Drucker Society(PDS) 함께, 
AI
창시자 Ron Fry 교수에게 긍정혁명 구축 방법론을

직접 사사받을 있는 최고의 교육...."

 

우리가 접하게되는 권위있는 이론, 경영법 등은 모두 서양인들이 공부한 것을 그럴 듯하게 포장해놓은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여전히 경영이론은 우리를 무제한으로 '긍정'하게 만들고, 소진지킬 방법과 동기부여를 제안한다. 우리의 것, 전통과 단절된(보다 정확히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소외시킨 것) 상황에서 우리는 빈약한 정신을 채울 대상을 또 다시 외부에서 받아들인다. 다람쥐 쳇바퀴도는 형상이다. 무한반복이 계속된다.

 

서양은 과거 수백년 전의 글도 후손에게 잘 전달이 되고 연속성이 있으나, 어쩌면 우리는 조상들의 값진 사상들이 우리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 무언인지 반문해본다. '한글 전용'이 옳은가하는 문제는 또 다른 진지한 주제가 될 수 있겠지만, 한글 전용이 '과거의 부정'을 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 같다. 후손이 조상의 사상과 기록을 받아들이는데 제약이 있다면 아마 우리는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있다. 전통은 좋고 나쁨의 판단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지킬만한 것들은 분명히 많다. 조상의 지혜는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나라 사람들 중 100년 전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문맹률은 거의 제로에 가깞지만, 그리고 모두가 영어에 목을 매달지만, 100년 전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가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여전히 문맹률은 99%가 아닐까.

 

평생 아이들을 생각하셨던 이오덕 선생의 <이오덕의 말꽃 모음>을 읽었다. 선생의 많은 글 중 일부분을 모은 책이라 전반적인 글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쉽긴 하지만, 상당부분 공감을 하게된다. 물론 한글 전용에 대한 생각은 선생과 다르긴 하지만. 우연히 보게된 스팸 광고 문구 하나를 보고 또 이런 저런 잡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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