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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ㅣ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Knocking
on Heaven’s Door)
리사 랜들 (Lisa Randall) |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 북스
우리는 흔히 ‘나노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이 나노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고려하게 되는 길이의 척도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한 달에 나의 머리카락이 1 센티미터가 자란다고 가정하면, 대략적으로 내 머리카락은 1초에 4 나노미터가 자란다는
계산이 나온다. DNA의 염기 하나의 크기가 대략 0.1 나노미터라고
한다면 그만큼 내 몸안에서 매 순간 격렬하게 단백질이 수 나노의 길이만큼 형성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나에게
나노미터의 과학하면 바로 이런 크기 수준에서 물리적 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이보다 훨씬 작은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의
크기에서부터 우주적인 크기의 광대한 영역에 걸친 물리학을 다루고 있다.
저자 리사 랜들은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 교수로서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바꿔말하면 물질로 이루어진 가장 작은 영역과 가장 큰 영역을 모두 탐구하는 이론 물리학자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 특히나 여성 과학자로서 그녀의 이력은 돋보인다. 여성 과학자가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성이 더 많이 있는 과학, 특히 물리학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과학자이다. 번역자가 책의 후반에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리사 랜들은 미국에서 가장 엘리트적인 교육을 받은 과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에 유럽에서 이주했던 뛰어난 유럽 과학자가 아니라 리처드 파인만처럼 미국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엘리트인 셈이다.
이 책은 2011년에 출간되었는데,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rdron Collider: LHC)로 하는 ‘거대 과학’ 연구의 최전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거대한 실험 장치는 2008년에 완성되었으나 초기의 사고로 1년에 가까운 수리과정을 거쳐 2009년에 다시 가동을 시작하고 2010년 첫 실험이 성공을 하고 있다. 2012년에 LHC과학자들이 찾는 입자 중의 하나인 ‘힉스’입자를 발견하게되고, 그 결과 기존에 이
‘힉스’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이론 물리학자에게 노벨상이 주어진 것이 그 이듬해인 2013년이다. 따라서 이 책은LHC이 양성자 충돌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흥분된 분위기(아직 ‘힉스’ 입자가 발견되기 전이긴 하지만)와
기대를 가진 상태에서 저술되고 출판되었을 것이다.
우선 책의 내용을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은 상당한 양과 수준높은 물리학적 개념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미 대중에게도 유명한E=mc^2이외의 수식은 보이지 않을정도로 수식이 없는 물리학 대중서를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역히
보인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책은 입자물리학 전공자가
아니라면 모든 상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상세한 물리학적, 기술적 지식이 없거나 이해하기 힘들어도 최신의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분야에서 어떤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연구의 최전선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으로는 손색이 없다.
저자 리사 랜들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강조한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행동하라’라는
강령을 받아들인다면 우선 이 책에 대한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접근하기 쉬울 것 같다. 이 책은 크게 보아 3부분으로 나뉘어
있다고 이해하면 될 것같다. 어린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을 가장 크게 그린다는
사실처럼 저자에게 가장 중요한 첫 부분이 가장 크다. 곧 리사 랜들의 주요 연구 분야의 하나인 입자물리학
분야는 1부에서 4부까지에 이르는 (1-18장) 영역에 걸쳐있다. 앞부분에서는 스케일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시작으로 입자탐색에 필요한 거대 장치인 LHC연구가 필요한 이유 그리고LHC를 건설하는 지난한 과정 및 장치에 대한 상세 설명, 측정과정과 예측 및 모형에 대한 이야기, 결과와 데이터 해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번 째 영역은 저자의 다른 연구 분야인 우주론 분야를 5부 (19-21장)에서 다루고 있다. 입자 물리학과의 관련성을 언급하며 서로 다른 대상을 연구하는 영역이 어떻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우주와 물질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하는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지막
6부에서 저자는 창조성과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 책은 크게 입자물리학과 우주론 연구의 최전선을 대중에게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 연구의 방법론과 과학적 사고의 가치에 관하여 세계정상급 과학자가 솔직하고 세심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에서 가장 큰 영역인 입자물리학 연구와 관련한
1-4부에서는 일반적으로 ‘크기 척도’라고 이해할 수 있는 ‘스케일(scale)’에대한 이해를 출발로 하고 있다. 상세한 물리학적 지식을 떠나 스케일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크기가 다른 관심 영역에서 다른 물리학적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점이다. 뉴턴 역학으로 대변되는 고전물리학은 우리가 볼 수 있는 폭넓은 범위에서
관찰되는 물리현상에 두루 적용할 수 있다. 야구와 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우주탐사및 우주선 개발(물론 우주선에 사용된 반도체 칩은 양자역학을 적용한 것이지만)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전히 유효하다.
반면 보다 작은 스케일 예컨대 앞에서 언급했던 나노미터의 스케일만 하더라도 뉴턴 역학으로 예측할 수 있는 현상말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작은 크기의 영역에서는 양자 물리학에서 적용하는 물리학의 규칙을 적용해야한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다른 스케일, 즉 크기 영역에서 다른 물리학의 규칙을
적용해야한다는 점이다. 이는 어느 한 쪽의 물리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야구와 농구라는 다른 스포츠의 영역에서
다른 규칙을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논의가 좀더 확장되면 뉴턴 물리학이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우주에서도
좀더 다른 추가적인 규칙이 필요할 때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예컨대 일반적인 속도가 아닌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를 다룰 때,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하여 물리적 현상을 이용할 것이며,
일반적인 우주 공간에서의 밀도와 달리 극적으로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 물리적 현상을 이용할 때,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물리 현상에 적용하게 된다는 식이다. 결국 물리학에서의 연구
방법은 여러 가지 길이 있겠으나 이론에 합당한 가장 단순한 ‘모형’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조건을 덧붙이고 새로운 조건에서 물리적 현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따져간다. 그리고 실험을 통해 간단한 모형부터 검증해나가며 복잡해져가는 상황을 추가적으로 점검하게
된다. 따라서 실험이 점점 더 고도화되고 어려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 책의 1부와 2부에서 다루는 스케일에
관한 요점은 바로 이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추가적으로 스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나서 저자 본인의 연구분야인 입자물리학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은 스케일을 관찰하기위한 도구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본다’라는 행위는 가시광선이라는 극히 제한되고 좁은 전자기파의 영역이라면 원자보다도 작은 입자들을 관찰해내기 위해 새로운 도구의 필요성으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원자보다 작은 아원자 입자들을
관찰해내기 위해서는 이 원자들을 깨뜨리고 이를 검출하는 방법이 있는데 여기에는 고정된 표적에 가속시킨 입자를 충돌시키는 방식과 두 입자를 가속시켜
이 둘을 충돌시키는 방식이 있다고 한다. 고정된 표적에 가속 입자를 충돌시키는 방식은 보다 쉽지만 물리학적인
이유로 인하여 여러 가지 한계와 결과 분석에 어려운 점이 있으나 두 가속 입자를 충돌시키면 더 높은 에너지를 얻고 보다 풍부한 충돌 사건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두 입자를 가속시키는 방식은 기술적으로도 매우 어려우므로 입자 빔(beam)을 잘 통제하고 조절해야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3부와 4부에서는 보다 본격적으로 입자물리학 연구의 최전선을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완성된 거대 과학 시설인 ‘대형 하드론 충돌기(Large Hardron Collider: LHC)’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장치들, 그리고 지난한 건설과정과 문제해결과정,
관련 연구자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소개되어있다. 이 시설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보다
큰 에너지를 가진 가속 입자를 얻기위해 인류가 만든 가장 큰 과학 시설로서 두 가속 입자를 반대 방향으로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실험 장치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저자인 리사 랜들은 2부에서 이미 LHC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읽을 때 ‘도대체
왜 높은 에너지를 가진 입자를 얻기위해 LHC와 같은 거대하고 값비싼 장비를 건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이 부분이 불만스러웠는데, 2부 5장에 이르러서야 저자는 그 이유를 처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보다 작은 세계를 탐구하려면 보다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45면) 여기서 답을 간단히 얻었다고 해도 저자의 연구 분야인 입자물리학에서 그토록 작은 스케일을 탐구하는데 왜 이렇게 큰 장비가 필요한지는
충분히 납득이 가진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을 저자는 그 다음 장인 2부의 6장에서 또 다시 비밀스럽게 답을 내놓고 있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짧은 파장은 높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 양자 역학은 이렇게 높은 에너지와 짧은 거리를 연관시킴으로써 물질의 내부 구조와 상호 작용을 알아내려면 고에너지에서 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쳐 준다. 이것이 물질의 기초를 이루는 핵심을 탐사하는 데 입자를 고에너지로 가속하는 가속기가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이다. (…)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가 짧은 거리를 큰 운동량과 연결시켜 주고, 다시 특수 상대성 이론이
에너지, 질량, 그리고 운동량을 관계지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밀하게 탐사할 수 있다.” (154면)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입자물리학에서 기본 입자를 탐색하기위해서는 양자 역학적 원리에 의하여
아주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기 위해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충돌시켜야하고, 이를 위해 거대한
LHC같은 장비가 필요하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리사 랜들이 이야기하듯 결국 LHC는 아주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한 초고성능의 현미경인 셈이다.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파동, 곧 짧은 파장을 갖는 파동과 분해능과의 관계를 저자는 ‘그물’에 대한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이해가 잘 되는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곧 “이것은 잡동사니 더미 속에 묻혀 있는 여러분의 지갑을 그물로 걸러 찾는 일과 비슷하다. 그물의 눈(파장의 크기)이 충분히 촘촘해 지갑(탐색 입자)보다 더 작아야 지갑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아주 작은 스케일 내부를 보려면 그것을 분간해 낼 만큼의 분해능을 가져야 한다. ” (153면)
완벽하진 않지만 이 정도를 이해하고 나면 이제 입자 가속기가 역사적으로 왜 계속 규모가 커져왔는지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기존에 검출이 어려웠던 입자들을 검출할 수 있다는 기대가 LHC처럼 새롭고 규모가 더 큰 시설이 생겨남에 따라 더 커지리라는 것에도 수긍이 간다. 다만 스케일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장비를 통한 간접 측정의 필요성과 LHC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조금 더 앞부분에 배치되었다면 이 두 부분이 좀더 부드럽게 논리가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거대한 LHC시설을 보면서 그토록 작은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이토록 큰 장비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면서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물리학적으로) 적절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LHC의 구조와 연구 방식 관해 내가 이해한 바로는 우선 가속기를 운영하는 준비 단계로서 초전도 자석을 냉각시키는 단계, 입자 가속 단계, 검출 및 데이터 기록 단계, 데이터로부터 물리적 의미를 파악하는 단계가 될 것이다. 우선 준비 단계로 입자 빔이 통과하는 튜브 주위의 초전도 자석을 냉각시키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온도를 1.9 켈빈(K), 곧 대략 섭씨 영하 271도 정도로 낮추어야 자석이 초전도 상태가 되고 강한 자기장을 형성하게되며, 가속하는 하전 입자들을 원형 링의 튜브에 부딪히지 않도록하고 방향을 조절할 수 있으며, 입자들의 ‘뭉치’를 더 작은 영역에 고도로 집중시킬 수 있다는 말이되겠다. 일단 이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초전도 자석의 링을 1.9 켈빈으로 냉각시키고 나면 입자 빔을 낮은 에너지 상태로 가속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에너지 수준에 이르면 더 큰 링으로 입자 빔을 보내 더 높은 에너지 상태로 가속시킨다. 여러 단계를 거쳐 가장 큰 링에서 반대방향으로 회전시켜 가장 높은 에너지로 가속된 두 입자들의 뭉치들을 충돌시키면, 수많은 충돌 사건이 일어나고,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때로는 새로운 입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 이 모든 입자들의 궤적은 거대한 검출기에서 검출된다. LHC에 설치된 두 검출기의 이름은 CMS와 ATLAS라는 검출기이다. 이 검출기들은 무게가 최소 7000천 톤이 넘고 길이가 20-40미터에 이르는 거대하고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검출기가 된다. 기본적으로 검출기는 충돌 사건을 통해 나타난 입자들의 궤적을 검출하는데, 전하를 띤 입자와 중성인 입자, 상호작용의 정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누어 입자를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때 엄청난 양의 ‘빅 데이터’가 발생하는 데, 이를 무리없이 기록하고, 대부분의 쓸모없는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솎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가려낸 데이터를 다시 실험 및 이론 물리학자들은 데이터를 구성하여 그 의미를 파악해내기위해 데이터와 씨름하게 된다.
한편 저자는 LHC건설 과정에서 생긴 기술적인 어려움 외에 예기치 못했던 현실의 문제들과 과학적인 사고와 연구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군데 군데 많이 하고 있다.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 부족이 두려움으로 변하여 LHC연구에 대해 한 일반인이 소송을 건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가속이 내부에서 고에너지 입자들을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면 순간적으로 매우 강력한 블랙홀이 생길 수 있는데, 이 블랙홀이 지구를 집어 삼킬지도 모른다는 것이 소송 내용의 주요 골자이다.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소송자의 패소로 결정이 났지만 과학자들이 대중에게 과학 연구의 내막을 알리고 소통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바로 과학자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리사 랜들은 또한 입자물리학과 같은 기초 물리학 연구의 중요성을 여러 곳에서 역설하고 있는데, 유럽의 입자 가속기 연구소에서 연구원끼리 데이터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려는 용도로 만든 내부 네트워크가 현재의 월드와이드웹으로
발전하게 된 기초 기술을 제공해주었다고 말한다. 한편 대부분의 자동차에 부착되거나 모바일 기기에 내장되어 있는 GPS장치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나 의료분야에서 사용되는 양전자단층 촬영 장비(PET)나 MRI장비를 기초과학의 연구로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이라고 말한다. 이런 부분은 기초과학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구체적인 사례가 되기도 하면서 향후 가속기 연구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것이다. 실용주의자로서 리사 랜들은 한편으로 ‘모형’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LHC같은 시설에서 검증을 하려는 과학자이다. 저자는 과학에서의 ‘모형’이라는 것이 ‘이론’과는 다르다고 그 특징을 부연한다. 곧 ‘모형’은 외삽의 한 방법으로서 파워포인트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모형’과 ‘이론’을 멋지게 구분하고 있다. “이론을 파워포인트의 템플릿이라고 한다면, 모형이란 여러분이 만드는 프리젠테이션 자료이다. 이론에는 파워포인트의 모든 애니메이션 효과가 포함될 수 있지만 모형에는 발표의 요점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애니메이션 효과만 들어있다.” (388면) 또한 저자는 연구 방법으로서 두 가지 다른 접근 방식을 하향식 방법(간단하고 기본적인 원리로부터 구체적인 현상을 설명한다, 플라톤적 방법)과 상향식 방법(구체적인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근본적인 의미를 파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방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론을 세우고 현상을 설명하려 할 때, 미학적 기준에 상당히 제한을 받는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리사 랜들은 “아름다움이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진리에 대해 신뢰할 만한 심판자가 될 수 없는 주관적인 기준일 뿐이다.”(372면)라고 미학적인 기준에 경도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모형을 만들어 설명하려는 저자의 연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고민하여 모형을 만들어가면서 ‘열린 마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이 열린 마음은 사람의 지위가 높아지고 권위를 가지려면 견지하기 매우 힘든 자세이다. 하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자인 저자가 이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동료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모습은 그녀가 왜 최고의 과학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리사 랜들의 주요 관심 분야인 입자물리학, 매우 작은 세계를 탐구하는 이야기를 했다. 5부에서는 저자의 다른 관심분야인 우주론에 대해 간단히 다루고 있다. 공교롭게도 우주론은 물리학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영역, 가장 큰 스케일에서 나타나는 물리적 현상을 다룬다. 어떻게 저자는 이 전혀 달라보이는 두 극단의 영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나같은 문외한의 경우, 이 두 영역은 그다지 연관이 없어보이지만 리사 랜들은 이 두 극단의 영역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다른 스케일에서 다른 물리법칙을 적용한다는 앞에서의 언급처럼 작은 입자들의 세계에서는 중력은 너무나도 미미해서 무시되고, 입자 사이의 핵력과 전자기력이 주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 반면 우주적인 스케일에서는 짧은 거리에서만 유효한 핵력과 전자기력보다는 중력이 매우 중요해진다고 한다. 우주론을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 앨런 구스(Alan Guth)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 두 분야(우주론과 입자물리학)의 관심사가 접근함으로서 우주에대한 비밀을 더 밝혀내고 있으며 더 의미있는 고찰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허블 상수에대한 보다 정확한 측정으로 우주의 나이를 137.5년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나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복사(WMAP) 실험을 통해 우주는 실제로 ‘평평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할 때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파이같은 우주라니!) 더욱이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을 검증하는 데는 최고의 정밀도와 정확도가 필요하다.’라는 대목을 읽은 날 공교롭게도 나는 ‘아인슈타인의 중력파 검출’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어떤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닐텐데 여전히 세계 어딘가의 연구실에서는 우주를 바라보고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자연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소식이었다. 특히 여전히 그 정체를 모르고 있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탐색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은 연구분야인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암흑 물질 탐사 현황을 언급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암흑물질 탐사를 하고 있다. 이 실험은 지하 깊숙히 들어가야하므로 강원도 양양의 폐광에 검출기를 설치하여 암흑 물질을 검출하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이러한 기초과학 분야는 빠른 시일에 그 결과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지속적인 연구비 지원과 일반 과학 기술 분야의 연구 평가 방식이 분명 달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논문 수로만 연구 능력을 검증하는 일은 분명 훌륭한 연구자들이 있어도 지반이 아직 튼튼하지 못한 국내 기초과학의 토양마저 황폐하게 만들 소지가 있다. 특히나 기초과학의 연구 분야에 있어서는 효율성과 다산성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리사 랜들 역시 ‘기초과학 연구의 이익이나 포기에 따른 경제적인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기는 매우 어럽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인이 노벨 과학상을 받는 일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는 장기간의 투자와 튼튼한 인프라 구축(인적, 물적, 문화적 측면에서)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런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벨상을 타기위해 마치 올림픽에서 메달 따듯 선수를 길러내려는 자세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인프라와 연구에 대한 투자가 진정성있고 내실이 있어야만 LHC연구와 같이 성공적이고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책을 덮고 생각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리사 랜들은 창조성과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당부를 하며 짧은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천재의 자질을 이야기하는데, 어떤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영향보다도 눈앞의 문제에 인내심을 가지고 집념해내는 자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고공 줄타기 예술가 필립 프티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는데, 필립이 실제로 줄타기 전에 수많은 건물의 도면과 계산을 통해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재료의 특성 등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집념을 가지고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세부적인 사항을 고려하고 몰두해내는 능력이 곧 천재의 자질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상자 밖에서 생각하기’라는 표현처럼 새로운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것을 우리에게도 권하고 있다. 문학에서 흔히 얘기하듯 ‘낯설게 보기’가 바로 이러한 접근 방식이 아닐까 한다. 상자의 틀 밖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생각하면 새로운 인식을 통해 새로운 질문하기가 가능해진다. 리사 랜들은 이러한 방식을 ‘커다란 전망과 디테일에의 집중’이라는 멋지고 간결한 표현으로 결론짓고 있다. 다시 말하면 넓은 시야를 갖고 전체를 조말할 것과 현재 하는 일의 의미,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라는 이야기에 덧붙여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끊임없이 검증해나가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천국의 문을 두르리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 책의 세부적인 사항이 어렵고 수준이 높다는 점이었다. 나만 이해하기 힘들었을까. 아무래도 독서 경험이 짧은 나로서는 이해하는 시간이 좀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책 속에 너무나 많은 물리학적 개념들이 담겨 있어서 개별적인 의미를 일일이 다 파악하기 전에는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점이다. 이 책은 최신 입자 물리학 연구의 현황을 보여주는 대중서라고 할 수 있지만, 다만 대상 독자(target
reader)가 일반적인 대중은 아닐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입자 물리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 혹은 물리학과 학생들이 입자 물리학의 최신 연구를 살펴보는데 적합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책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씌여진 것이라면 대상 독자를 예상하는데 있어 좀 어긋난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논의하고 결의하는 교토의정서에 반대한 것에대해 비판하는 대목(279면)과 신자유주의 경제 전문가들의 시각에대해 비판하는 대목(288면)에서는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이해하기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의 최전선에 있는 연구를 소개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첨언: 번역에 관해)
우리 글의 문장 구조에 콤마(,)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영문 텍스트의 문장에 사용된 콤마를 충실히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 문장에도 일괄적으로 적용한 것이 아닐까 생가하는데,
문장 부호가 영문에서 보이는 것처럼 발달되지 않은 언어에서 과연 일률적으로 문장부호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울러 접속사 although내지는 though를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이 너무나 많이 보인다. 이 표현은 일본에서 많이 쓰는 방식으로 알고 있는데,
이수열 선생은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 “많은 사람이
필요없이 상투적, 확일적으로 써서 말과 글의
세련미를 해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언어라는 것이 유동적이고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으므로 많이 사용하게 되면 이것을 잘못되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에 나오는 글에서는 보다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부분이 있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우리가 연구하는 극히 작은 물체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를 발견해 온 과정의 총합이다." (19면)
"전제하고 있는 가정의 불확실성이 아주 크다면, 위험이 적다는 예측은 아무 의미가 없다. 예측이 가치를 가지려면 불확실성을 완전히 고려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268면, 11장 물리학과 위험관리)
"이론을 파워포인트의 템플릿이라고 한다면, 모형이란 여러분이 만드는 프리젠테이션 자료이다. 이론에는 모든 애니메이션 효과가 포함될 수 있지만 모형에는 발표의 요점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애니메이션 효과만 들어있다." (390면, 15장 진리, 아름다움 그리고 그밖의 과학적 오해들) ‘이론’과 ‘모형’의 차이에 관해 설명한 부분
"이러한 이유로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479면) "지금 우리는 미학적 기준을 가지고 어떤 모형을 다른 것보다 더 좋아하고 있을 뿐이다." (480면) - 솔직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저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
"모든 창조적인 사람에게 필수적인 능력은 옳은 질문을 하는 능력이다. (…) 가장 훌륭한 과학은 대개의 경우 광범위하고 중요한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몇몇 사람들만이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명백히 작은 문제나 세부 사항에 집중하는 것 모두를 필요로 한다." (557면) - 과학적 태도. 왜라고 질문하고 의심하라.
이 말은 리차드 파인만이 한 다음의말을 떠올리게 한다.
"Of all its many values, the greatest must be the freedom to doubt."
곧 의심할 수 있는 자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일게다.
"예비 조사와 기술적인 재능, 집중력과 인내력, 올바른 질문, 자신의 상상력에 대한 주의 깊은 신뢰 모두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법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 (568면)
"이 책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의 다른 주요한 요소는 스케일, 불확실성, 창조성, 그리고 이성적인 비판적 추론 등의 과학적 사고에 대해 말해주는 개념들이다." (571면) 이 책의 핵심을 저자 자신이 잘 요약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비판적인 과학적 사고야말로 우주의 구조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데 있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방법이다." (571면)
"과학적 사고는 불확실성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이것은 위험을 적절히 평가하고 단기간과 장기간의 영향을 설명한다. 또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생각을 허용한다." (576면) - 과학은 무조건적으로 `정확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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