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권정생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9-10면)
‘바람처럼 오셨다가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
다녀가신 후, 별고 없으셨는지요?
바람처럼 오셨다가 제(弟)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 일평생 처음으로 마음 놓고 제 투정을 선생님 앞에서 지껄일 수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많이 읽었지만, 역시 만나 뵙고 난 다음, 더욱 그 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우리 것을 가지신 분이라 한층
미더워집니다.
어저께는 안동 김성영 씨를 만나, 선생님 얘기를 입이 마르도록 나누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무엇이나 아껴 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행복이란, 외모로 판단되는 값싼 것이 아닐 겝니다. 선생님이
걱정하시는 마음이 제게 많이 통하고 있다고 당돌하나마 말해 봅니다. 착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죠.
소리소리 지르며 통곡하고 싶은 흥분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가슴으로 자꾸만 모아들이이는 아픔이란,
선생님은 더 많이 아실 것입니다.
체험하지 않고, 겪어 보지 않고는 절대 모르는 설움을 무엇 때문에 외면하면서 설익은 재롱만으로 문학을
한다는 것부터,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안동에 오시는 기회가 있으시거든 종종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원고는 며칠
더 기다려 주세요. 그동안 사정으로 아직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추위에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뵈올 때까지
안녕히!
1973년 1월 30일
권정생 드림』
: 1973년 1월,
권정생 선생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나서 이오덕 선생이 직접 권정생 선생을 방문합니다. 당시 혼자 살던 권정생 선생은 서른일곱,
이오덕 선생은 마흔 아홉. 띠동갑(12년차)
두 남자는 이렇게 만난 이후, 권정생 선생이 보낸 편지 입니다. 이 두 분은 이후 30년 가까운 우정을 지속하게 됩니다. 한 평생 이런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참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특히 12살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이오덕 선생은 편지에서도 언제나 권정생 선생을 존대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출판하도록 여러 모로 배려를 하는 이오덕
선생의 인품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두 분이 나눴을 문학에 대한 얘기도 조금 엿볼 수 있는데,
자신의 체험을 통한 솔직한 문학, 솔직한 글쓰기에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글이 표피적으로 나아가지 않으려면 개인의 체험이 녹아나야한다는 것. 글을 쓰는 과정은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느 순간 부터 어렵다고 느낄 때, 내가 이전에 끄적거린 글들을 다시 보고 얼굴이 화끈거릴 때 무언가를 쓴다는 것이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오네요. 이럴 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소탈한 마음이 보이는 이러한 글들이 적힌 책을 가만히 넘겨보게 됩니다. 30년 가까운 남자들의 우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흔적들을 보면서 다시금 길을 잃지 않으리라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