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송태욱 옮김, 샨티, 2003, 118-119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114)

월요일 아침

  월요일 아침, 새 책을 펼친다. 통근 전철 안이다. 새 책은 월요일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린다. 책 속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풍경이 있다. 지금까지 몰랐던 관계성의 세계가 있다. 그 한 권의 책은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도 읽고, 집에 돌아가 내 방 안에서도 읽고, 그렇게 해서 주말까지는 다 읽는다. 다시 말해 내 독서는 주 단위이다. 일주일에 한 권, 따라서 한 달에 네다섯 권 정도를 읽게 된다.

   특별히 일주일에 한 권 읽기로 정해 놓은 것은 아니다. 하루에 세 번 식사하는 것이 딱 정해진 일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간이 돌고 돌아 아침에서 낮으로, 다시 어스름한 저녁으로 옮겨가는 것처럼, 한 권의 책을 새로운 주가 시작될 때 읽기 시작하여 요일이 돌아 한 주가 끝나는 지점에 다 읽는 것이 내 생활에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정말 그뿐이다.

   읽는 양과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표준적인 척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독가들의 독서량에서 보면 일주일에 한 권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터이다. 스기우라 민페이는 나이가 들고 병 등으로 체력이 쇠약해져서, 결국 한 달에 1만쪽, 즉 권수로 해서 평균 34-35권 내지 38-39을 단념하고 새로이 한 달에 열 권 이상이라는 할당량을 정했다. 이제 곧 일흔 살이 되어갈 무렵의 일이었다. 이것과 비교해 보아도 내 분량은 그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일주일에 몇 권, 한 달에 몇 권, 일 년에 몇 권 읽으면 표준이고 그 이상은 다독, 그 이하는 과독(寡讀)에 해당한다는 말도 아니다. 누구나 자기 생활에 고유한 시간의 사이클이 있게 마련이다. 생활의 시간 사이클에 의해 책을 읽는 방법은 저절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생활보다 먼저 독서가 있고 생활이 그 뒤를 좇아가는 것이 아니다.

   엔도 류키치는 생활의 어떤 일보다 독서를 우선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엔도 류키치는 자신의 저서인 <독서법>밤에서 아침으로 걸치자라고 쓰고 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자려고 할 때는 베개 위에 책을 놓고서 그 펼친 쪽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좋다. 전등을 끄고 책을 덮었다면 그 책에 대해 생각하자. 이내 졸음이 와 잠이 들고 말지만,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곧바로 그 책을 다시 펼쳐 읽자. 그것이 밤에서 아침으로 걸치자의 의미이다.

 

 

 

 

나는 여기에 발췌한 부분에서 새 책은 월요일 아침에 가장 잘 어울린다.라는 대목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새 책을 들고 첫 장을 읽어 나갈 때의 설레임은 발걸음이 무거운 월요일의 출근길에 새로운 활력을 준다. 새 책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것이다. 월요일 아침에는 박민규 작가의 유머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유머(진지하고 점잖아 보이는 글 속에 반전이 있는 유머)가 담긴 문장을 만나면 출근길이 더 즐겁다. 나 혼자 킥킥 거리며 가기도 한다. 어려운 책보다도 바로 이런 글들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이 월요일 아침을 즐겁게 해주는 존재가 아닐까.

   나는 작년에 거의 매일 야근을 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지하철에서 책을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버스 안은 대개 불빛이 어둡고, 이리저리 많이 흔들리므로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읽으면 멀미가 난다. 하지만 지하철 안은 밝고, 적어도 나에게는 책을 읽을 때 멀미가 나지 않아 나에게 잠깐 짬을 내어 책을 읽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는 것보다는 (적어도 혼자 다닐 때에는) 지하철을 주로 이용한다. 그리하여 지하철에서 주로 책읽기를 하여 작년에 80권정도의 책을 읽은 것 같다. 물론 간단한 그림책, 사진책을 제외해도 나름 진지한 주제의 책들을 50권은 넘게 읽은 셈이다. 작년에는 태어나서 처음 1년에 20권 넘게 읽은 셈이다! 야마무라 오사무도 장석주 시인도 지적하듯이 자투리시간을 잘만 활용해도 일년에 50권은 읽을 수 있다는 말은 내 경험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읽은 책의 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온 장석주 시인처럼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매일 2~3권의 책을 읽을 재간은 없다. 나에게 맞는 독서 스타일은 그저 꾸준하게 읽고, 의미를 곱씹어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이 될 것이다. 책에 메모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주로 스마트폰을 꺼내 페이지와 주목할 부분을 간단히 메모하거나, 그 때 문든 떠오른 생각들을 잊지않기위해 메모한다. 그 외에는 주욱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혹은 책의 성격에따라 지하철에서 집중이 안되거나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경우에는 잠시 책을 덮고, 눈을 쉬거나 이해가 잘 안되었던 부분에대해 생각을 하곤한다. 책을 덮고 스마트폰을 하지 않은 경우, 지하철에서는 옆 사람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는 줄 알고 나를 처다보는 경우가 많아 민망하다. 그러면 나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거나, 어떤 광고에 시선을 고정시킨채 딴 생각을 하곤 한다.

   참고로 나는 일본 지식인들의 어떤 방법, 기술들을 얘기하는 부분은 좀더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읽는다. 이들은 각자 개인이 선택하여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여기에 오래동안 천착해왔기때문에 나에게 잘 맞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가끔 이들이 권하는 어떤 방법(혹은 여기에 나오는 독서술마져도)이 나에게 적절하지 않은이상, 나에게는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나의 편견인지도 모르나, 일본 지식인들의 경우 나에게 적용할만한 범위가 매우 제한되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좀더 비판적으로 이들의 조언을 살펴보되 나에게 맞는 방법을 따로 찾아보려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읽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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