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ㅣ 미네르바의 올빼미 4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 정종훈 그림 / 푸른나무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잉에 아이허
숄 지음
유미영 옮김/정종훈 그림
그리고
서경식의 <내 서재 속 고전>
‘백장미를
기억하던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겹쳐읽기
소설책의 제목을 닮은 이 책의 원제는 ‘백장미’이다. ‘백장미’는 나치에 저항했던 독일 뮌헨 대학 학생들의 조직 이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백장미’ 소속의 학생이자 나치에 체포되어 처형된 한스 숄과 조피 숄의 누나이자 언니인 잉에 숄이다. 서경식 교수의 책 <내 서재 속 고전>에서 이 책에 대해 쓴 글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치하에서 독일인이 저항했던 역사를 훨씬 훗날에나 알게되었을 것이다. 마침 얼마 전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를 읽고 강한 인상이 아직 남아 있던 차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어 바로 읽어보게 되었다. 가토 슈이치는 나에게 ‘방관자이기를 그만둘것’과 ‘아무리 과거의 일이든, 나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든 알아야한다’는 교훈을 주었기에 더욱 진지하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독일 학생 및 교수가 ‘백장미’활동으로 처형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나치의 만행을 알리고, 히틀러에 대항해서 투쟁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삐라 6종을 42년에서 43년에 걸쳐 살포한 혐의다. 마지막 삐라를 뿌리던 날, 학내 나치당원인 수위에게 발각되 체포되었고, 몇일 후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은 날 바로 처형되었다. 나치는 유대인에게만 끔찍한 일을 자행한 것이 아니라 반발하거나 동조하지 않는 독일을들을 감시하고 탄압했던 것이다. 이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는 나치에 동조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 두려움으로 인해 행동으로 표출된 사례는 매우 드문 것 같다.
잉에 숄이 남긴 이 얇은 책을 통해 더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나치가 장애인과 다운 증후군 같은 증세가 있는 아동들을 집단 학살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아이들이 아리아 인종의 우수성을 저해할 여지가있다고 나치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계사에 관심이 덜했던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의 나라에서 자행되었다고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무엇이 나치를 이런 광기로 몰고 갔던 것일까? 어떤 이유로 750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학살을 당해야 했던 걸까? 이러한 집단 학살이 가능했던 이유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기술하듯, 나치 동조자인 아이히만의 ‘생각없음’으로만 설명 가능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보다는 이러한 결과를 체계적이고 집요하게 추진하게했던 동인(動因)이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잘못된 사상에의 믿음이 절대적인 정치권력의 힘과 결합하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 역사는 보여주고있다.
서경식 교수는「‘백장미’를 기억하던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에서 나치의 역사를 거쳐 다시 현재 일본 사회를 조망한다. 일본 자민당의 ‘헌법 개정 추진’ 움직임으로 눈을 돌린다. 이 헌법 개정의 뼈대는 ‘자위대를 국군으로 바꾸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하여 외국인의 인권을 명백히 부정’하려는 내용이라고 경고한다. 일본의 이 ‘파시즘’화는 어디까지 진행될까? 이것은 우리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안보나 외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고,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발전과 연관된 모든 일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토 슈이치가 말한 ‘방관자이기를 그만두라’ 그리고 ‘알아야한다’는 명제는 현재 우리에게도 중요하고 절실한 물음이라 생각한다.
‘백장미’ 활동으로 체포되어 처형된 독일인들을 기억해보려 한다. 괄호 뒤의 날짜는 이들이 처형된 날짜이다.
조피 숄(1921-1943.02.22): 당시 철학, 생물학과 학생
한스 숄(1918-1943.02.22): 당시 의대생
크리스토프 프로프스트(1919-1943.02.22): 당시 의대생
알렉산더 슈모렐(1917-1943.07.13): 당시 의대생
쿠르트 후버(1883-1943.07.13): 당시 신학및 철학과 교수
빌리 그라프(1918-1943.10.13): 당시 의대생
이들 외에 약 백여명의 사람들이 더 체포되었고, 이후 재판을 거쳐 사형되었을 것이라고 잉에 숄은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나는 현대 실존 철학의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나치에 동조하고 몸을 사렸던 하이데거보다는 이 학생들 및 교수를 포함한 백장미단이 더 위대해보인다.
조피 숄이 처형을 앞두고 다른 수감자에게 한 말
"나는 죽는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아. 우리의 행동이 몇 천 명의 사람들 마음을 흔들고 깨우칠꺼야. 틀림없이 학생들 반란이 일어날 거야."
한스 숄이 교수대에서 마지막으로 외친 말
"자유는 살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