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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치유, 인간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년 1월
평점 :
‘태초의 알’, 신화가 지니는 힘
- 《신화, 치유, 인간》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신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지역과 무관하게 이야기의 보편성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구비설화 탐색자 겸 연구자로 소개하고 있는 신동흔의 《신화, 치유, 인간》을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호모 사피엔스’의 주목할 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언급한 바 있다. ‘허구’, 곧 만들어진 하나의 서사는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신화야말로 인간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서사다. ‘최초의 인간’들을 이어준 보이지 않는 끈이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양과 서양의 신화를 아우르며 광대한 인류의 정신세계를 촘촘한 사유로 풀어내었다.
저자는 신화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미력한 자기를 부여안고 한없이 흔들리는 일”(113)이기도 하다는 것. 바로 나와 세계가 관계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이는 괴테가 일생동안 수정한 역작 《파우스트》가운데 한 마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파우스트》, 전영애 옮김, 길(도서출판), 2019)란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노년의 대문호가 애정과 연민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았을 법한 구절이라 생각했는데, 신화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에서도 우리 인간의 모습을 비춰주는 표현을 만났다.
신화 속에서 인간의 모습, 나아가 ‘나’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은 세계가 나와 만나는 일이다. 이는 자연 만물과 인간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나(개인)와 사회(집단)가 ‘서사적 연대’를 이루는 접점이 신화라 할 수 있다. 개개인은 신화에서 수많은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신화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안에 비슈누와 브라흐마와 시바가 있는 것처럼 티탄족과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과 제우스가 우리 안에 있다.”(42)
따라서 저자는 세계의 신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과 인간의 생명적 연결성’(72)을 말한다. 지금 전 세계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기능적으로 지구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조직체나 다름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개개인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어쩌면 신화를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끊은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는 우리 안의 ‘자기서사’에 주목하는 일을 언젠가부터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우리가 세계와 다시금 이어나갈 수 있는 해법이 신화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저자는 나를 세계와 연결해주는 신화가 치유의 힘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신화와 만남으로써 신화를 되새기고 나를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변혁의 길, 거듭남을 꾀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변혁, 거듭남을 거쳐 결국 나 자신을 확장할 수 있게 한다. 신화는 이 과정에 필요한 역치를 넘어갈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신화는 자기 재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화적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신화가 단순하고 원초적인 이야기의 모음인 줄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신화, 치유, 인간》에서 저자는 신화의 서사가 지닌 강렬한 생명력, 치유의 힘과 자기 변혁의 힘을 독자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저자는 신화의 사례를 들어 ‘노아의 방주’와 ‘어머니의 자궁’이 ‘태초의 알’이라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신화야말로 인류에게 삶을 견디게 해주고 치유의 힘을 건네는 ‘태초의 알’이 아닌가 싶다.
[1] "우리 안에 비슈누와 브라흐마와 시바가 있는 것처럼 티탄족과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과 제우스가 우리 안에 있다."(43)
[2] "그 홍수는 태초의 물이며, 방주는 태초의 알이라고 할 수 있다."(55)
[3] "결국 신화를 완성해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58)
[4] "신화는 자연 만물과 인간의 생명적 연결성을 말한다. 무엇하나 귀하지 않는 것들의 신령한 연결이다."(72)
[5] "마음 깊은 곳의 신명을 이끌어내서 사람들과의 서사적 연대를 더욱 강화해 가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래 흘러온 신화가 전해주는 본원적 해법이다."(107)
[6] "관계는 존재의 분리로부터 시작된다."(177) - 사랑의 원형에 대한 언급
"존재하는 일이란 관계하는 일이다."(178) -끝없는 부딪침과 밀어냄의 역학을 신화는 이야기한다.
[7] "시바의 파괴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다. 창조를 향한, 새 생명을 향한 파괴다. (...) 지금의 나를 죽임으로써 시바의 서사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찾아가야 할 서사적 길이었다. 달리 말하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변증법적 초극이다."(234)
[8] "현실 부정을 통해 스스로를 깊은 동굴에 가둘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신화로 읽는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 스스로 동굴에 들어와 웅크리고 있지 않은지를."(251)
[9] "덧붙여 깨닫는 것은 그러한 살아냄이 제대로 된 죽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다시 나를 죽여야 할 때다. 일어서서 거듭나기 위하여."(257)
[10] "그 우주적 연결의 중심점이 어디인가 하면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다. 그 연결성을 오롯이 인지하고 구현해낼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화가 될 수 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나 자신의 존재성은 세상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다. 설령 그가 신이라 하더라도!"(270) -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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