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21년 봄 191호)
: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
한영인(문학평론가) [창비]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를 읽고
요즈음 편리한 기계 장치를 이용하면서도, 인간의 삶, 혹은 당장 나의 삶에 주는 변화에 대해 고민을 하곤 합니다. 기계가 인간의 작업 영역을 대체하기 시작한지도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현대기술사회에서 인간과 기계가 공유하는 작업 영역이 앞으로 어떻게 이동해갈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어 갈지 많이 궁금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앞으로 노동의 모습은 정말로 많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동이 새롭게 지니게 될 의미와 인간의 위치 혹은 인간과 기술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이번 <창작과비평>의 문학평론에서는 ‘우리 시대의 노동 이야기’를 우선 읽어봤습니다. 문학평론가 한영인은 세 편의 소설에서 그려지는 보다 현실적인 ‘노동’의 문제를 다룹니다. 아직 문학평론이라는 글의 형식이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필자가 “노동은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은 물론이고 생명 보전과도 밀접하기에 인간 존재와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대면하고자 하는 작가일수록 이 과제를 피해가기 어렵다.”라고 언급한 부분에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은 작가뿐만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모든 이의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한영인 평론가는 세 편의 소설에 담긴 노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소설가 장강명의 「공장 밖에서」와 김혜진의 「9번의 일」은 소설 속 주인공이 속하고 노동을 수행하던 집단에서 퇴직할 위기에 몰린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 반면, 김세희의 「프리랜서의 자부심」은 앞의 소설들 속의 주인공이 이후에 선택할 만한 노동의 모습(프리랜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체로 한영인 평론가의 분석은 작품들에서 다루어지는 인물의 묘사가 단편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듯합니다. 혹은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에서의 변화가 설득력 있게 뒷받침되고 있지 않다는 아쉬움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평론가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다양한 페르소나를 탐구해야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평론 중에서 필자가 김세희 작가의 소설 한 대목에 대해 언급한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작품의 마지막에 민용이 한 말 “마침내,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에 대해 덧붙인 필자의 한마디. ‘독립한 개인만이 타인과의 대등한 결합에 두려움 없이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소설이란 이야기를 통해 각자 나름의 답을 발견하는 공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먼 멜빌이 자신의 소설에서 ‘과수원의 도둑들’이라고 언급했던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노동은 인간의 본질을 규정할 정도로 인간과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불안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는 요즈음입니다.
아울러 노동자 투쟁에 대한 장강명 작가의 중립적인 시선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선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일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사회에서 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의 아래층’을 꾸준히 마주하고 바라보는 일은 계속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작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역할이니까요. 사람들이 겪는 문제와 고통, 아픔을 제일 먼저 감지하고, 이를 들여다보고 각자의 작업에서 재현해내는 작업이 이들의 역할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창작과비평>을 읽는 계기가 아니었으면 선뜻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문학평론을 읽으니 소설 속에서도 이렇게 사회와 인물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평론에 소개된 소설에서 작가들이 바라본 노동에 관한 진실이 어떤 것이었는지 추가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