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모비딕》 읽기 (51장-66장)

《일러스트 모비딕》

(51장-66장, 374-476p)

허먼 멜빌 지음  | 록웰 켄트 그림  |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오늘 읽은 부분은 피쿼드호가 다른 포경선과 사교적 방문을(gam) 하는 이야기와 ‘타운호’호라는 포경선에서 벌어진 선상 반란에 대한 이야기, 고래 그림들, 그리고 피쿼드호의 선원들이 처음 향유고래를 잡아들이는 사건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소설이 긴 호흡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불길한 상황을 암시하는 징후들 역시 곳곳에 숨겨두고 있다.

이어지는 불길한 징후와 ‘죽음’의 이미지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하나의 공동 운명체가 된 선원들은 사소해 보이는 사건도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앞서 언급한 내용들처럼 ‘흰 색’과 관련한 대상이 ‘죽음’의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달빛에 피쿼드호가 ‘상앗빛’이라고 한 대목은 페달라의 ‘흰 색 터번’ 및 하늘에 뜬 달과 결부되어 신비스럽고 음울한 이미지로 드러난다. 피쿼드호가 다른 포경선 앨버트로스호와 만났을 때, ‘흰 고래’에 대해 누군가가 묻자마자 앨버트로스호의 선장이 꺼낸 나팔이 바다에 빠진 일은 피쿼드호의 선원들에게 역시 불길한 징후로 읽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징후의 등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이 ‘크림색’의 거대한 오징어와 만났을 때 이등항해사 스터브가 ‘오징어를 본 이들이 살아서 항구로 돌아간 이가 거의 없다’는 예언에 가까운 불길한 이야기를 스치듯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편 에이해브 선장이 한쪽 다리에 고래뼈를 깎아 만든 의족을 한 체 일정한 소리를 내며 걷는 모습에서 이슈미얼은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읽어내기도 한다. 

“그의 살아남은 한쪽 다리가 갑판 위에 활기찬 울림을 만들어내는 동안, 죽은 다리는 매번 움직일 때마다 관이라도 두들기는 듯한 소리를 냈다. 이 노인네는 삶과 죽음 위를 걷고 있었다.” (376면)

멜빌이 묘사하는 에이해브라는 인물의 캐릭터는 이처럼 삶과 죽음을 한 몸에 지니는 모순을 지니는 인물로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곧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삶과 죽음의 영역이 그의 몸 내부에서 서로 요동하고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에이해브의 인물을 드러내는데 멜빌의 탁월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다만 이 표현의 번역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데, ‘관이라도 두들기는 듯한 소리’는 ‘sounded like a coffin-tap’을 번역한 것이다. 만약 이 ‘coffin-tap’을 단순히 관을 두들기는 소리라고 하기보다는, (시신을 관에 안치하고) ‘관에 못을 박는 소리’라는 점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했다면 독자에게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멜빌의 서구 문명 비판

스터브가 처음 향유고래 사냥에서 고래를 죽이고 나서 꼬리부분의 고래고기 요리를 맛보는 대목이 나온다. 제65장에서는 “스터브 같은 인간이 고래의 기름으로 밝힌 등불 옆에서 고래를 먹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이한 일로 보이기에…”(470면)로 시작하며 고래 요리의 역사와 철학을 이야기한다. 멜빌은 이슈미얼의 생각을 통해 ‘고래를 잡은 후 곧바로 고래의 기름으로 밝힌 등불 아래에서 고래고기를 먹는 것은 고래를 해치고 사체를 모욕까지 한 상황아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문명인(서구인)의 동물 살해 관습으로 이어지는데, 멜빌은 문명인이 과연 식인종을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 있을지를 반문하고 있는 듯하다. 

“토요일 밤에 정육 시장에 가서 살아 있는 두발짐승 무리들이 죽은 네발짐승들이 길게 내걸린 모습을 오렬다보고 있는 걸 좀 보라. 식인종도 입을 쩍 벌리게 만들 광경이 아닌가? 식인종? 식인종이 아닌 자, 그 누구란 말인가? 다가올 기근에 대비해 야윈 선교사를 소금에 절여 지하실에 저장해둔 피지 사람들이 더 참아줄 만하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일이 닥쳐오면, 거위를 땅에 못으로 박아놓고 간이 터질 정도로 배불리 먹여 만든 파테드푸아그라를 포식하는 문명화되고 개화된 그대 대식가들보다 그 검약한 피지 사람들이 더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472면)

현대의 관점에서 과거 조상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아도 멜빌의 동물살해에 대한 문제의식은 남다르고 솔직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 문명 사회가 식인종들을 미개한 사람들로 무시하고 낮추어 바라보지만, 멜빌은 과연 서구 문명이 윤리적으로 우월한가에 대해서 반문하고 있는 것 같다. 멜빌이 관습의 경계에 서서 양쪽을 들여다보려는 ‘경계인’의 시각을 갖춘 인물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그에게 이러한 성찰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포경선에 승선해본 경험 때문일 것이다. 포경선이라는 제한되고 특수한 공간은 식인종-문명인, 유색인종-백인의 구분없이 모두가 공동운명으로 연결되어 각자의 역할이 모두 중요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매우 드물게 멜빌은 보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경험한 셈이다. 소설에 언급되어 있듯이, 포경선은 멜빌 자신에게 ‘예일대학이자 하버드대학’과 다름없는 배움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표현들

오늘 읽은 범위에서 재미있던 부분은 포경선이 망망대해에서 상선과 조우할 때, 군함을 만날 때, 혹은 노예선을 만날 때, 그리고 해적선을 만날 때 이들이 보이는 반응들이었다. 예를 들면 포경선이 해적선을 만났을 때, 이들이 가능한 빨리 서로에게서 멀어지려는 이유는 “양쪽 다 지독한 악당들이라 서로가 서로의 악랄한 모습을 너무 오래 지켜보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편 제55장에서 멜빌은 문헌에 등장하는 ‘어처구니없는 고래 그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재치있는 스터브가 고래의 옆 지느러미에 대한 해부학적인 사실을 이용하여 농담을 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옆 지느러미에 대한 해부학적인 사실이란, 고래의 옆 지느러미뼈는 엄지만 제외하고 나면 ‘인간의 손뼈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느러미에 네 개의 손가락에 해당하는 검지, 중지,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들어있는 셈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스터브의 농담에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래가 때로 아무리 무모하게 우리에게 덤벼든다 해도, 권투 글러브를 벗고 우리를 손봐주겠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거야. ”(422면)    

또 고래를 쫓는 과정에서 작살잡이들이 보트의 선두에서 노를 힘껏 저은 다음 고래에 다가갔을 때, 기진맥진해진 작살잡이들이 작살을 있는 힘껏 던질 수 있겠냐며 작업의 비효율성을 언급하는 대목도 있다. 

“작살 던지기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확보하려면 이 세상의 작살잡이들은 잔뜩 고생만 하다가 벌떡 일어날 것이 아니라, 잔뜩 게으름을 부리다가 벌떡 일어나야 할 것이다.” (456면)

이슈미얼이 지적하고 있는 이 말은 재미있으면서도 하나의 뼈 있는 농담처럼 들리기도 한다. 바로 효율성만을 최우선으로 한 체 번아웃되는 현대인들에 대한 충고로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