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태 대표는 주간지 편집기자 생활을 시작으로하여 한겨례에 입사한 뒤 편집자, 편집장 등 언론분야에 30여 년 몸담았던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책에 대한 내용 보다도 ‘유치한 생각이 어떻게 아이디어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기획과 편집자의 시선으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라는 것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글쓰기(기사쓰기와 같은)와 기획의 관점에서 적용되는 아이디어로 적용 범위를 좁혀야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우선 본인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책 두 종을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강연 참석자 중에는 대부분이 언론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았습니다. 언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이미 면접을 봤던 사람도 있었구요. 우선 고경태 대표가 본인의 글쓰기에 큰 자극을 주고 심지어는 ‘혁명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책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와 박경리 작가의 《토지》였습니다. 두 종을 이야기했는데, 각각 여러 권의 책이라 다 읽기에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자의 글쓰기 방침은 우선 쉽게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쉬운 입말’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문어체보다는 입에서 나오는 구어체로 쉽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단문쓰기를 언급했습니다. 물론 박경리 선생의 문장은 복문도 많은 편이지만 잘 읽히는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구요.
고경태 대표는 ‘유치한 것’, ‘유치한 생각’이란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이기에 낮은 곳에서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곧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입니다. 질문이란 문제의식을 갖는 것, 그리고 돌 같은 침묵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되어 한 곳을 파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인(이미 6권의 책을 펴낸 저자로서)의 경험을 돌아보면, 책을 썼던 것이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더라는 말이구요. 유치한 생각은 (당대의) 큰 담론을 일상의 것으로 끌어다 놓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고경태 대표가 한겨레에서 일하는 동안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주제는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서울대공원 돌고래 ‘제돌이’의 방사와 동물권 논의, 형제복지원 사건 보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등과 같은 굵직 굵직한 이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언론인들, 기자들에게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과 같은 시간이 꽤 지난 사건들오 여전히 제대로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하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탐사를 해보라고 말합니다. 아직 해결해야할 숙제가 많다고 말이죠. 이런 점에서는 유치해보이더라도
역사의 ‘맥락’을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일, 시대 정신 혹은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노력을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게된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사진에 나오는 《한겨레 21》에서 ‘시노하라의 8·15’
표지 기사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 60년대 일본 전공투 세대인 아버지, 그리고 당시 20대인 대학생 아들, 이렇게 3대가 맞는 일본의 패전 기념일(8월15일)의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거대한 주제의 담론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개별주체들이 받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상당히 인상적인 기획 취재였습니다.
저는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 고경태 대표에게 두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1] 책 《굿바이, 편집장》에서 인문학 칼럼 연재를 중단한 ‘안 착한 필자’ 1, 2가 나오는데, 실명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죠.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대답하진 않겠습니다.
[2] 책 중에 ‘형제복지원’ 관련 보도를 3부에 걸쳐 장편의 글을 연재했는데, 이 기사가 ‘소설 구조를 차용한 글쓰기’를 시도한 기사입니다. 저도 이 글쓰기 방식이 궁금해져서 질문했는데요, 제 질문은 기존의 탐사 보도와 관련 기사 글쓰기와 이 기사가 어떤 점이 다른가를 물었습니다. 자세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만, ‘소설 구조’를 적용한 기사라는 젓은 서사 내러티브를 사용하여 긴 호흡의 글을 썼던 것인데, 각 편이 200자 원고지 120매정도의 글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A4용지 한 장에 대략 1500자로 계산합니다만, 그렇다면 이 기사는 A4용지 16장 정도의 기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기사 치고는 상당히 긴 글인 셈입니다.
이렇게 서사가 있는 논픽션 글쓰기 방식이 실제 기사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일단 호흡이 길기 때문에 요즘에는 흔히 활용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서사 내러티브를 적용하려면 탄탄한 구성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긴 호흡의 글과 탄탄한 구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으며, 독자가 잘 읽지 않으려 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상 고경태 저자의 저서 《굿바이, 편집장》출간 기념 강연회를 다녀온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