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으로》
(원제: Reader, Come Home )
매리언 울프 지음 | 전병근 옮김
| [어크로스]
《책
읽는 뇌》에서 저자인 매리언 울프는 난독증과 창조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독서를 하게 되면 뇌의 여러 부위가 활성화됨을 알게 되었다. 뇌의 신비함은 이런 외부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신경 세포의 연결 방식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일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지성인들 중에 (말이 아닌) 글을 늦게 깨우친 사람들, 심지어 난독증으로 읽기에 어려움을 가졌던 사람이 많음을 언급하고 있기도 한다. ‘읽기’란 행위가 우리의 유전자에 예비된 기능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문화적으로 익히고 만들어주어야 하는 기능이라는 말이다.
또 요즘 모든 부모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아이들이 언제부터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도록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조카들이 여럿 있는 내 경우도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독서에 관한 사항에 보다 관심있게 주목해 지켜보고 있다. 왜냐하면 두 돌도 지나지 않은 조카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화면에 몰입한 채 손가락으로 영상을 넘기며 보거나 전화를 하는 광경을 본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이가 울지 않고 조용히 있으니 부모는 안심하지만, 스마트폰의 화면이 아이의 관심을 붙들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어렸을 때부터 전화기를 소유하면서 화면과 또다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만다. 나는 매리언 울프의 첫 책을 읽고나서 이런 부분이 염려스러웠는데, 최근에 출간한 두번째 책 《다시, 책으로》은 바로 이런 부분에 대한 염려와 고민이 담긴 결과물이라고 보인다.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 중에서 젊은 세대의 ‘공감’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공감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대다수가 몰랐던 불안한 현실입니다. (…)
지난 20년간 젊은이들의 공감 능력은 40펴센트 감소했다고 합니다. 특히
지난 10년 사이에 말입니다.”(88면)
어딘지 익숙한 내용이 아닌가. 물론 여기서 나는 흔히 ‘요즘 젊은이들은 이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개인마다 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내 주변 지인들로부터 젊은이들에게 무언가 공통적인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 시작했다. 이런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런 의문을 저자인 매리언 울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연구자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한민국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 보이고 있다. 저자가 언급한 터클 교수의 말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온라인 세상에서 현실 속의 대면 관계를 희생시킨 것이 공감 능력을 급감시켰다’고 한다. 이어서 저자는 “그 결과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인적 정체성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생각까지 바뀌고 있습니다(89면)”라고 이야기한다. 광고의 카피문구나 과학자들이 하는 말 중에 ‘기술이 사람들을 연결시킨다’는 표현이 있다. 그러나 인터넷 기술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물리적 연장(extension)으로서의 연결성은 증가했지만 마음(공감)은 이러한 기술의 전개방식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이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증가시켰지만 한편으로 기술이 사람들 간에 거리를 만들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감은 ‘타인을 동정하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타인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에도 관계한다고 이야기한다. 뇌영상 연구를 통해 느낌-사고의 신경망 전체가 공감에 관여한다는 결과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특히 우리가 어떤 소설을 읽는다고 할 때, 다시 말해 집중해서 읽을 때,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묘사를 감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고, 심지어는 등장인물들의 ‘느낌과 행동’과 관련된 뇌 영역도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소설 속의 인물, 혹은 실생활에서 상대방에 대한 공감능력은 이런 독서를 통해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어렸을 때부터 ‘연극 활동’을 한다면 책을 깊이 읽고 타인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폭넓게 키워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를 외움으로써 몰입과 텍스트에 대한 깊이 읽기의 바탕이 되고, 이를 행위와 감정을 상상하고 이를 표현하는 행위를 통해 저자가 이야기하는 ‘공감’하는 뇌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작품의 의미에 대해 계속하여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연극에 참여한 경험은 없는 이들에게는 책을 깊게 몰입하여 읽으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공감하며 읽는 과정으로 그 효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하나, 저자는 ‘내부의 배경 지식’과 ‘외부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부의 배경 지식’은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책을 깊이 읽고 얻은 지식과 느낌의 경험 모두를 의미한다고 이해된다. 그리고 ‘외부 지식’은 (진위가 명확하지 않은) 검색을 통한 정보나 인터넷 뉴스 등을 염두에 두면 될 것 같다. 저자는 점점 ‘내부의 배경 지식’이 줄어들고 ‘외부 지식’에 대한 의존도가 커져가는 상황을 우려한다. ‘외부 지식’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것은 ‘진위 구분’ 기능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최근에 읽은 미치코 가쿠타니의 저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서 ‘사실’이 ‘거짓 정보’ 혹은 ‘개인적인 의견’에 가려지는 현상과 연결 지을 수 있겠다. 가쿠타니는 이런 현상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다수가 가쿠타니의 견해를 비판하고(예를 들어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한다’와 같은 비판) 동의하지 않아도 나는 그녀가 용기 있게 제기하는 의문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99.9%가 주장하는 어떤 결론 혹은 암묵적인 사회의 공통 관념에 대해 딴지를 걸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가 받아들이는 ‘외부 지식’이 과연 맞는지에 대해 검토해보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부 지식’에 점점 의존하게 되는 현상을 저지할 수 있는 관점이자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읽기의 전문가 답게 매리언 울프는 ‘책을 깊이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우리의 배경지식과 깊이 읽기의 ‘호혜적 관계’에 주목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 부분을 역설적으로 어휘의 ‘마태 효과’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의도하는 ‘마태 효과’란 신약 성서 마태 복음(25장 29절)의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곧 어휘의 ‘부익부 빈익빈’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책을 폭넓게 제대로 읽은 독자는 앞으로의 읽기에 적용할 자원이 점점 많아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적용할 자원이 적어져 “추론과 연역, 비유적 사고의 기초가 부실해지고 결국에는 가짜 뉴스든 날조 뉴스든 불확실한 정보의 희생물로 전락하기(97면)”쉽게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책을 제대로 깊이 읽으면 우리가 가짜 뉴스의 희생물이 될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매리언 울프의 글은 번역과 무관하게 술술 읽히지 않는다. 특히 《책 읽는
뇌》는 조금 더 읽기 힘들었는데, 아마도 생소한 분야의 개념에 접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고, 군더더기 없이 촘촘하게 얽힌 저자의 글쓰기 방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번에 나온 《다시, 책으로》은 좀 더 읽기 편하다. 아무래도 저자의 첫 번째 책을 공들여가며 읽어서 일 수도 있다. 그녀의 말 대로 첫 번째 책을 천천히 깊게 읽은 경험을 통해 ‘내부의 배경지식’이 조금 마련되었고 이어서 새로운 지식이 들어와 이해되는 과정에 도움이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책 읽는
뇌》를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독자로서 책을 읽는 과정은 저자와 대화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좀 더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아직 책을 읽어가는 과정이지만 오늘 하루 메모해둔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