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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부스의 유럽 육로 여행기 - 동화 속 언더그라운드를 찾아서
마이클 부스 지음, 김윤경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4월
평점 :
《마이클 부스의 유럽 육로 여행기》
(원제: Just As Well I’m Leaving: To the Orient
with Hans Christian Andersen)
마이클 부스(Michael Booth) 지음
| 김윤경 옮김
| [글항아리]
어린 시절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릴 적 그림동화책을 읽었던 기억으로 다시 완역된 동화를 읽어보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우가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아도 상당히 잔인해 보이는 사건들이 즐비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린이를 위해 만들어진 그림동화책에는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제외되었을 것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의 경우도 나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몇 가지 환경적인 요인과 개인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정말 안데르센의 발자취를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여행기의 저자 마이클 부스는 배우였던 덴마크인 배우자를 따라 덴마크로 이주하게 되면서 이 모든 사건을 예비하게 된다. 덴마크어 어학원에 다니며 과제로 나온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읽은 부스는 내 경험처럼 과연 안데르센의 동화가 이런 배경과 맥락을 갖고 있었나하는 깨달음과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던 모양이다. 물론 동화 자체에서 시작한 관심은 물론 작가인 안데르센 인물 자체로 옮겨간다. 안데르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를 맞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사람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안데르센은 꾸준히 일기를 썼기에 후대 사람들이 안데르센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부스는 안데르센이 1842년에 출간한 《시인의 바자르 A Poet’s Bazaar》라는 여행기를 읽고, 안데르센이 여행했던 발자취를 따라가보기로 결심한다. 평생 여행을 다니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다시 여행을 꿈꿨던 안데르센의 발자취를 따라 갈 계획을 세우며,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의
끼를 발산할 궁리를 하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부스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을 시작으로 유럽의 7개국 8개 도시를 안데르센의 기록에 따라 방문해나가고 있다.
【안데르센의 여행 중독
혹은 그
배경】
글로 첫 성공을 하게 된 안데르센이 자신의 돈을 모두 부어 한 일이 바로 ‘여행’이었다. 안데르센이 좋아한 독일의 문호 하이네와 괴테가 오랜 여행을 글로 남겼듯이 안데르센도 숱한 여행을 하며 이를 글로 남겨놓았다. 당시에는 이미 문호와 좋은 가문의 귀족들이 유럽을 여행하는 ‘그랜드투어’가 이미 유행했을 터이고, 안데르센도 이런 여행을 꿈궜을 것이다. 각국을 다니며 왕과 귀족을 만나고 친분을 넓히고 교류하는 일,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다만 단순히 안데르센이 성격상 여행을 좋아한다거나 여건이 되었기에 떠난 것 같지는 않다. 부스는 안데르센이 남긴 일기와 여러 서신 등을 통해 여행을 떠났던 동기에 주목하고 있다. 지극히 귀족 중심적이고 배타적인 덴마크 지식인 사회를 견디기 힘들어 했던 정황을 저자는 더욱 파고든다. 당시 덴마크 지식인들은 ‘듣보잡’ 노동자 출신이었던 안데르센의 글에 대해 혹독한 비난을 했었고, 인정욕구가 무척이나 강했던 안데르센에게는 이 좁은 우물에서 비난이라는 직격탄 세례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부스의 평가대로 안데르센의 여행은 ‘불행의 도피처’가 되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세계를 폭발적으로 넓혀주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매
순간을 소비하고 모든 것을
보려고 애쓰며 항상 쉬지
않고 움직인다.”(301면)
“오, 여행, 여행이란! 가장
행복한 운명이다! (…)
그렇다, 여행은 우주
만물의 강박
현상이다.”(63면)
지금처럼 여행이 쉽지 않은 19세기에 안데르센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욕으로 여행에 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덴마크에서 들려오는 자신의 글 또는 상영된 자신의 연극에 대한 비난과 거리를 둔 체 안데르센은 타국에서 유명인사를 만나기도 하며,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환대를 받는다. 여행 중에는 생소한 장소와 환경에서의 익명성을 통해 타자가 되어버린 고립감을 극복하기도 하며 여행을 했다. 마이클 부스는 자신의 특기인 유머와 위트로 새로운 장소에서 좌충우돌하며 안데르센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여기서 안데르센 자신이 남긴 자서전과는 또 다른 제3자의 시선에서 안데르센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다 분명히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여행은 분명히 안데르센에게 또 다른 학교이자 자신의 숨을 쉬게 해주는 구원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넓은 세상을 자신의 학교로 삼았던 안데르센은 여행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여행은 자신의 심기증과 까탈스러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경험하고 싶은 기회, 심지어 성적흥분까지도 느낀다고 기록할 정도로 그에게 여행이란 ‘안데르센’이라는 인물을 만들어준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안데르센이라는 인간을 다시
생생히 그려내다】
“안데르센은 거의 평생
혼자인 듯
살았어요.”(360면)
마이클 부스가 안데르센의 여행 경로를 따라 그리스 아테네를 방문했을 때, 부스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심리학자 미르토의 말이다. 그녀는 안데르센의 고독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부스가 그려내는 안데르센은 너무나 독특하고 복잡한 인물로 보인다. 그가 그려낸 안데르센이라는 인간은 귀족도 아닌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스스로 자신의 길을 부단히 개척했던 사람, 언제나 인정욕구에 메말라 있고 허영심이 대단하면서도 겸손하기도 했으며, 심각한 심기증을 갖고 있던 사람, 성적으로 모호한 잠정적 양성애적 성향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말만 들어도 단순하지 않아보이는 안데르센은 글쓰는 재능과 같은 장점 외에 수많은 단점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부스는 그를 애정어린 시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안데르센이 형식에 참신한 문학적 상상력과 미묘한 재치를 가득 더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이야기 수집가도 해내지 못한
일, 다시 말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을 해냈음을 알게 되었다.”(37면)
과거의 한 인간을 이해한다는 말은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을 긍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장점과 단점(이 판단 기준 자체도 영원한 것이 아님에야) 모두를 인정하고 사회의 규범이나 도덕을 한 사람에 대한 결정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어떤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은 쉽지만 말의 무게에 걸맞게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이클 부스는 안데르센이 했던 여행기를 읽고, 그 경로를 따라가며 이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마이클 부스는 안데르센의 면모를 군데군데에서 재미있게 표현하면서도, 이 복잡한 인물의 속내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면모를 균형있게 지적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신경증에 걸린
공주와 자만심이 강한 쇠똥구리, 사랑에 우는 인어공주, 미운오리 새끼를 하나로 합쳐놓은 인물이었다.”(51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인생의 멱살을 잡아 벽으로 밀친 뒤
주머니에 든
것을 다
꺼내 놓으라고 한 사람이었다. 그는
100퍼센트 자기 의지로 행동한 인물로서, 유년
시절의 가난과 (제독과 국왕들의 전유물이었던) 국제적 명성이라는 눈부신 상 사이에 놓인,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애물들을 차례차례 해체해 나갔다.”(172면)
원래 안데르센은 동화작가가 아니라 희곡작가로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희곡작가보다는 위대한 동화작가로 후대에 남아있는 그는 사실 우리가 주로 어린 시절 동화책을 접하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일반 독자들의 정당한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는 안데르센이 14살의 나이에 뜻을 세우고 성공하기 위해 코펜하겐으로 입성했던 1819년도 부터 정확히 200년이 되는 해이다. 유명 발레리나를 찾아가 무턱대고 그 앞에서 춤을 추다가 쫓겨난 이야기나, 덴마크 물리학자 외르스테드의 도움으로 자신에게는 제2의 아버지가 되는 자선가 요나스 콜린을 만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이야기, 그리하여 자신의 인생을 역전할 계기를 만든 이야기들 각각은 이 에피소드 자체만으로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오늘날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공장에서 규격품을 만들어내듯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키워내는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다. 안데르센이 살았던 삶에는 분명 누구나 흉내내기 힘든, 날 것의 삶이 그대로 베어있다. 안데르센은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살아가고 자신의 꿈을 이루어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이클 부스의 에피소드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분명히 마이클 부스가 새로운 장소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따라가는데 있다. 저자는 낯선 도시에서 현지 사람들과 부대끼고, 때로는 이들의 불친절함에 소심한 복수를 계획하기도 하며, 때로는 유곽을 찾아가서 안데르센의 성적 취향을 궁금해하는 솔직함과 천진난만함을 보여준다. 그뿐만아니라 로마에서 덴마크 대사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쫓겨난 데 대한 소심한 복수로, 로마에 방치되다시피 한 성 크누트 예배당(덴마크 성인을 기념하는 예배당)의 관리 실태에 대해 비난을 하기도 한다. 또 불친절한 카페 종업원에 대한 복수로 독자에게 이 카페 주소를 공개하며 여기를 지날 때 소변을 보라고 한 것에서도 저자의 유머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앞 부분에서 다소 과장된 유머가 있거나 혹은 문화적인 차이로 정확히 전달이 안되는 부분이 보이긴 하지만, 부스는 안데르센의 여행 경로를 따라가며 이 인물의 면모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점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나아가 이 모든 과정은 안데르센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여행 중에 저자가 기록해 놓은 생각들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긴 여행기이긴 하지만 마지막 장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어머니와 조우한 뒤 다뉴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의 에피소드는 다소 지친 마음을 충분히 보상해줄만큼 재미있다. 작가가 재미있게 각색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선상에서 부스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만 보아도 작가의 어머니 또한 작가 못지않은 유머와 위트가 있는 분 같다. 한편 안데르센은 ‘로마는 나를 아름다움에 눈뜨게 해준 곳이다’라고 로마에 대한 가치와 호감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부스는 로마를 방문하여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안데르센에게 만족스러움과 흥분을 가져다준 이탈리아, 특히 로마에서의 경험과 부스가 안절부절 못하고 불편해하며 소심한 복수까지 하는 장면을 비교하여 읽다보면 더 흥미로웠다. 부스의 여행기는 독특한 입담과 유머로 재미있는 여행기를 남긴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마이클 부스처럼 히데오 역시 일본 내 혹은 한국을 비롯하여 주변국을 여행하며 사회를 관찰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치있는 에세이를 남긴 바 있다.
거의 2세기 전에 안데르센이 자신을 이해해주지도 받아들여주지도 못하는 고국을 떠나 여행을 시작했던 것은 한편으로는 고생길의 시작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 다른 운명의 길을 열어주었다. 안데르센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고향 오덴세를 떠나 코펜하겐에 입성한 이후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행은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의식이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인식의 지평선을 확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확장의 폭은 사람마다, 어떤 경험과 지식을 얻고, 어떤 사유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행과 다른 점은 새로운 장소, 새로운 문화 유산을 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이들과 교류하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오늘날의 여행을 ‘지식의 성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또 다른 차원에서 여행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런 관점에서 부스가 안데르센을 따라가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한 여행이 우리에게 보다 흥미를 주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배우자의 고국에서 살기위해 익숙한 영국을 떠났던 부스가 안데르센의 발자취를 따라 다시 덴마크를 떠난 것만 보아도 부스는 안데르센 못지않은 노마드가 아닐까. 끝으로 안데르센이라는 복잡하고 흥미로운 인물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면, 안데르센 자신이 남긴 상당한 양의 자서전과 함께 마이클 부스의 여행기를 함께 읽어보면 좀더 입체적으로 인물을 이해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