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Hier》
아고타 크리스토프(Agota Kristof)
지음 |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1] (글쓰기에 대한 열망)
소설에는 작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토비아스 호르바츠)이 등장한다.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헝가리 태생이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고국을 떠나 스위스에 정착, 생애 대부분을 시계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써냈던 인물이다. 그리고 소설의 토비아스는 작가의 아바타인 셈이다. 이 주인공 역시 가족과 고국을 떠나 이방인으로서 공장에서 일하며 글을 쓰곤 한다.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한 주인공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남다르다.
“나는 어디를 가든 항상 글을 쓴다. (…) 나는 하루종일 내 머릿속에 썼던 글들을 저녁마다 종이에 옮겨적으면서 내가 왜 이런 글들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서, 왜 쓰는가?” (16면)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야망은 작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한 관찰 )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와 표면상 분리되어 있으나 분리될 수 없는 대상이다. 자신을 버린 생물학적 아버지의 등에 칼을 꽂고 도망쳐 나온 주인공은 타지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십 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이방인이다.” (49면) 저자가 시계공장에서 하루 열 두시간씩 오랜 시간을 일하며 글쓰기를 했던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 또한 공장에서 그리고 저자와 같은 이방인으로서 여전히 분리될 수 없는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걸었다. 간혹 다른 행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가벼워 보였고,
무게가 없는 사람들 같았다.
뿌리가 없는 그들의 발은 결코 상처받지 않았다. 그것은 집을 떠난 사람들,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 가는 길이었다.” (115면)
소설 전체를 통해 주인공이 내던져진 운명은 사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경험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이 그녀를 평생 지배해왔으므로. 따라서 크리스토프는 고국을 떠난 이방인들에 대해 민감한 관심을 갖고 여러 군데에 그녀만의 스케치를 배치해두었다.
“시간이 갈라진다. 유년의 빈 공백은 어디서 다시 찾을 것인가?
어두운 공간에 갖힌 일그러진 태양은? 허공에서 전복된 길은 어디서 되찾을 것인가? 계절들은 의미를 잃었다.
내일, 어제,
그런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가 있을 뿐.
(…)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동시에.
왜냐하면 사물들은 내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다.”(115-116면)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기 힘든 이방인들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인지도 모른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거의 공백, 과거에 대한 상실감은 이방인에게 회복할 길 없는 무력감만을 안길 것이다. 오로지 현재만을 붙들 수밖에 없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이런 이방인의 실존적인 모습을 민감하게 포착해 내었다고 생각한다.
[3] (인생의 깊은 상실감-꿈을 잃는다는 것의 슬픔)
자신의 이복동생을 사랑하게 된 토비아스의 결말은 순탄치 않을 것을 예비하였다. 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이복동생 캐롤린은 이미 결혼하여 아이도 키우는 주부였기에 더욱이 금지된 사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린의 가족이 해체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되면서 토비아스는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내 인생에 대해 말하자면 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 린이 왔다가 다시 떠났다라고.” (134면)
짧은 한 문장이지만 여기에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깊은 상실감과 자조, 우울감이 느껴진다.
토비아스는 린이 떠난 후 여자친구 욜란드와 결혼하여 큰 딸 린과 작은 아들 토비아스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여전히 주인공은 시계공장에서 일하지만 그에게 세상은 이미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간결하다.
“나는 이제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140면)
아파트가 인생일대의 ‘꿈’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에게 ‘글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의미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너무 뜽금없는 주문일까. 토비아스에게는 한 때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이었던 글쓰기, 그리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은 삶의 좌절 앞에 무너저 버렸다. 한 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달에 꿈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꿈꾸어야할까를 생각해보게된다. 꿈을 버리고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토비아스 호로바츠는 오늘날 꿈을 잃고 표류하는 우리들의 모습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꿈을 잃은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