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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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첫인상은 '조금 낯섦'이었다. 책 표지로서는 무슨 내용의 책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고, 읽어내려 가면서는 '오십대 여성의 일상 풀어가기'라는 내용이 의외였다. 톡톡 튀다 못해 시니컬하기까지 한 문투는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프랑스적이라는 느낌까지. 독자에게 자꾸만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그걸 자기자신으로 느끼게 하는 묘한 특성도 낯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이 책에 매우 익숙해졌다. 어쩌면 이리 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 작가는! 성향이나 성격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누가 몰래 카메라를 들이댄 듯 절묘하게 나와 같았다. 물론 프랑스 특유의 몇 가지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제외하고서이기는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할 때, 작가처럼 나도 두 가지의 생각을 동시에 한다. "네~~"하고 말할 때 많은 경우 속으로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한다. 특히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너무나 상반된 두 종류가 뒤섞여 그걸 정리하는 데 오랜 세월을 쏟아부어야 했을 정도다. 좀 과장하자면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 멀리 유럽에 사는 어느 작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인생을 영위하고, 그걸 글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Ditto, ditto, ditto.


  정중하게 은퇴당한 남편. 늙었다고 많은 걸 놓기에는 젊고, 또 무엇을 새로 해보기에는 늙은! 오랫동안 악전고투 끝에 글 읽고, 글 쓰는 일로 생활의 방편도 삼고 성취욕을 놓치지 않는 아내는 그 남편의 느슨해진 일상까지도 계획하거나 채워주어야 한다. 남자란 스스로 무얼 채우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심지어 '남자는 말다툼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일 때는 자기 딸들에게 직접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마치 왕처럼 단호한 어조로 당신에게 말을 하고는 전하라'(102쪽)고 하는 비겁한 존재들이다. 자신은 '나라 걱정 하느라 바쁘니 다른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우리 남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러나 결국 잔소리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많은 우리들.(109쪽)

  남자에 대한 울화통은 친구들끼리의 수다판에서나 푼다.

  "그만해! 남자들 뇌는 참새 뇌만 한 데다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도 전혀 알아채지도 못 하는 것 알면서 그러니!" / "나도 잘 알아! 그래도 어떤 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121쪽)

  그러나 매번 나(우리)는 남자를 감싸안는다. 일정 부분 마마보이를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은 자칫하면 '하얀 돌멩이 없는 헨젤'(153쪽)이 되어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 꼴은 또 못 본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므로. 때로 놀랄만한 인내를 보여주거나 아픈 내 등을 쓸어내려주는, 속알머리가 조금씩 빠져 맨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그들을.

  하여간 이 작가는 징그럽게도 여자 마음을 잘 풀어놓았다. '여자들이 권세를 잡게 되면 만사가 잘 풀릴 것이 틀림없다'(181쪽)고 하는 생각도 나와 똑 같다. 그리고 유머가 하늘을 찌른다. 이사를 앞두고 루이 16세 양식 서랍장의 거취에 대해 늘어놓다가 갑자기 도둑들에게 귀엣말을 하는 작가라니! 182쪽에 괄호를 치고 이렇게 써놓은 것이다. '작가가 도둑님께 드리는 한 마디 : 이 서랍장은 작가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므로 일부러 오실 필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키득키득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더러 진짜로 찾아오는 도둑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책을 읽을 정도의 도둑이라면...

  첫 사랑에 대해 작가는 '당신은 가끔 그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당신 이름을 부르며 죽는 것을 상상해 본다.'고 썼는데, 찔끔했다. 또 모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음식을 꾸역꾸역 처먹이려고 한다고 썼는데, 동감이다. 내가 살찐 이유, 구할은 우리 시어머니 때문이다. 남편은 이상한 사람 보듯 하면서 절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아, 무슨 이런 작가가 다 있담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는 아주 조금 눈물도 흘렸다. 끝까지 먼 이국에 사는 '나의 이야기'를 후벼파는 희한한 작가. 골프 너무 즐기는 남편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데, 남자의 속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저러나, 중간중간 낀 극중 화자의 소설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짜증내며 읽었다. 마치 출판사 편집자가 된 심정으로, 도대체 글이나 쓸 일이지 뭔~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문제의 추리소설 이름은 '트로카데르의 식인마들'이다. 참, 233쪽의 한국식 마사지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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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의 한국과 한국인 - 21세기 지성학 강좌 21세기 지성학 강좌 1
이어령 외 지음 / 아카넷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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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조국이 있다. 점차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이합집산이 이루어진다 해도 여전히 국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토대이다. 그런 의미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 속의 개인으로서 무얼 어떻게 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숙고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글로벌시대이다. 지구라는 천체를 공유하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이 사실은 절체절명의 깨달음이다. 나비효과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 어떤 것도 지구 전체와 관계되지 않은 것은 없다. 이 책에서 이어령 교수가 말한 글로컬리즘의 시대는 우리의 필요불가결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세계시민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글로벌 시대의 한국과 한국인>은 삶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 불씨를 놓아 온갖 생각으로 번져가게 하는 책이다. 이어령, 최열, 조장희, 정운찬, 김성진, 한승헌, 오명, 진대제, 서정돈, 이길여 등 대표적 석학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젊은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해보여주는 강의내용을 정리한 책인데, 구절구절이 가슴에 와 박힌다.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글도 있고, 우리의 자존심을 드높이며 자랑스러움을 심어주는 글도 있고, 생각의 틀을 바꾸어주는 글도 있는데, 때로 감격에 겨워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며 읽었다.

  금언과도 같은 글들. 다시 읽고, 또 읽고 하려고 줄쳐놓은 부분이 많지만, 그중 한 대목을 소개한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강의 중에서.

  "여러분은 네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첫째, 지금 중요한 것. 둘째, 지금 중요하고 앞으로도 중요한 것. 셋째, 지금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점점 중요하지 않을 것. 넷째, 지금 중요하지 않지만 앞으로는 점점 중요해질 것."-52쪽에서 인용-

  자, 이 중 무얼 선택할 것인가? 무얼 선택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그는 수면제 먹을 시간이라며 환자를 깨우는 간호사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또, 한승헌 변호사는 유머란 것이 지식과 감성을 모두 갖춘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특성이라며 여러 가지 유머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

  "한 골목에 간판도 없는 식당이 호황을 누리자, 바로 옆에 음식점이 새로 생겨 '한국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는 간판까지 달았습니다. 그에 질세라 그 옆에 또 한 식당이 개업을 하고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집'이라는 간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옥호도 없던 첫 번째 식당주인은 고민을 하다가 무릎을 탁 치고 이런 간판을 걸었답니다. '이 골목에서 제일 맛있는 집'.-168쪽에서 인용- 

  절묘한 사고의 역전이다 싶어 한참 웃었다. 이런 식으로 인용할 부분은 무수하다. 그만큼 경험과 성공과 사고가 농익은 이들의 글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분들, 워낙 잘난 사람들이라, 잘난 이야기를 하기는 한다. 그러나 명불허전. 진심으로 인정! 그들이 자신들의 깨인 삶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려 애쓰는 마음이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든 사흘 동안 내 무딘 가슴에도 새로운 의지가 솟구치고 낡고 가라앉은 생각을 활기차고 도전적인 생각으로 갈아채우는 듯한 느낌이 즐거웠다. 부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이 책으로 인해 보다 진지하고, 성숙된 대한민국 국민,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을 일구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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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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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참 식상한 느낌의 어휘다,하고 책을 받아들면서 생각했다. 졸업식에 눈물이 없어진 날부터 이 말은 그저 그런 느낌이 되어 버렸다. 인생에서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때를 졸업이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식상하다. 표지 그림도 의미심장해 보이나, 한때 유행했던 스타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예상 외의 호감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솟아올랐다.

  이야기가 매우 새로워서 그런 것이 아니고, 너무 익숙해서이다. 식상할 만큼 익숙해서. 딱 나이 마흔이면 느낄 인생의 그런 것들이 딱 알맞게 책에 농축되어 있고, 그것이 마흔 나이에 슬하에 둔 자녀들의 인생과, 또 짧거나 길게 죽음을 앞둔 마흔 나이 사람들의 부모들의 인생과 마침맞게 어울려 개개의 삶, 그리고 삶들의 고리에 대해 마침맞게 펼쳐져 있다.

  아마 작가 나이 마흔에 썼던 (혹은 마흔에 기획했던) 솔직한 자전적 단편소설들이리라 그렇게 여겨졌다. 그만큼 솔직하고 감정에 군더더기 없다. 마흔이란 나이는 자녀가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삶의 굴곡이 깊어지고, 부모가 암 따위로 세상을 떠나는 나이다. 그 자신 기존에 매달려 왔던 삶에서 떨려나거나 스스로 멀어지기 십상인 나이이고, 앞으로 살아갈 젊지 않은 날의 무게가 양 어깨에 턱하니 내려앉는 나이다.

  이 책에는 그 나이의 삶에 닥치는 네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째 이야기 '졸업'은 전형적 일본식 어투가 거슬리는 가운데도 자살한 남자와 그 남겨진 임신한 아내, 태어난 아이, 가장 친하다 여겨졌던 친구(나이 마흔), 임신한 아내의 새 남편이자 아이의 새아버지인 남자의 삶을 보여주며, 마흔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낙마라든가 청소년의 왕따 문제도 건드리는 노련함이 돋보인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찰기록이랄까. 그러나 제목, 역시 식상하다.

  두 번째 이야기 '행진곡'은 마흔 살의 비교적 잘 나가는 직장인이 격조했던 홀어머니의 임종을 앞두고, 여동생과 더불어 병실을 지키면서 풀어나가는 과거, 현재의 이야기다. 노골적이면서도 함축적인 가족에 대한 성찰이 독자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우리 주변에 편재하는 사람 사이의 불통, 인생유전.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한다.

  세 번째 이야기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은 엄격한 선생님이자 아버지였던 암 환자의 아들, 그 역시 선생님인 마흔 살 남자가 화자로 등장해 또 다른 색으로 삶과 죽음에 대한 단상과 더 깊은 생각을 들려준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같은 느낌이 있지만 훨씬 정서적으로 우리와 가깝다. 툭하면 암에 걸려 고통 속에 마지막 나날을 보내는 수많은 우리 부모들 모두가 선생님이었을 거라는 동질성을 느끼게 한다.

  네 번째 이야기는 어릴 적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죽어간 어머니의 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새엄마로 대표되는 다른 세상과 어떻게 불통의 나날을 살아가다 화해에 이르는가를 담담히 엮어간 '추신'이다. 역시 마흔 살.

  참 공감가는 이야기들이다. 주인공 연배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마치 일기를 읽듯이 차분하고 저릿하게 읽힌다. 남 이야기기 같지 않다. 대단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지만 일기가 그렇듯 써내려가는 것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니까 할 말 해버린 느낌이 후련하다. 오히려 책 소개에서 두드러져 보이던 청소년이란 부분은, 물론 매 작품에서 건드리고 있으나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모두 뭉뚱그러져 사람살이를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어떤 나이이든 자기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을 듯하다.

  마흔 살 주인공들의 이야기. 아마 화자가 자살을 꿈꾸는 청소년이 되었다가, 남편 잃고 자식을 키우는 어머니가 되었다가, 죽음을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되었다가, 이렇게 종횡무진했더라면 공감의 폭이 많이 줄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마흔 나이의 남자가 마흔 만큼의 이야기를 하고, 그 눈으로 살아왔던 날, 살아갈 날을 이야기하니까 청소년 이야기도 되고, 노년의 이야기도 되는 것 아닐까 싶다.

  다시 강조하는 공감. 자기 이야기만 해도,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청소년보다도 오히려 마흔 나이에 처했거나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우리들의 자서전 혹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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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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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일본 소설에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툭하면 무릎을 꿇거나, 울거나, 나이 많은 사람들이 별 것 아닌 일에 쉽게 고개를 숙이는 그들의 문화에 적잖은 거부감을 지녔기 때문이고, 어릴 때부터 일본 소설에서 보아 온 특유의 화법이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런 느낌은 최근 요시모토 바나나나 츠치 히토나리를 읽으면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뭔가 불편한 낯섦.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반감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섬세하다 못해 선병질적인 예민한 감성에 깊은 감동을 느꼈다. 보통 남과 맺고 사는 인연에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보통을 뛰어넘는 특별한 인연에는 그런 섬세함이 바탕이 된 깊은 소통이 필요할 수 있겠구나 싶은 느낌이 처음으로 들었다.

  옛날에 수학박사였다던 꾀죄죄한 작은 노인. 그는 교통사고로 1975년에 멈춘 채 80분간만 기억이 유지되는 장애를 앓고 있다. 미망인인 형수가 별채를 내주고, 파출부를 고용해 주어 생계를 유지하지만 예상대로 파출부는 쉴 새 없이 바뀐다.

  얼핏 보면 그는 필요도 없는 수식에만 매달려 하루를 보내는 정신 이상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돈 받고 정해진 일만 하면 되는 파출부라고 해도 다음 날 완전히 새로운 기억회로로 갈아 끼우고 똑같은 질문을 해대거나 자기 세계에 빠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는 지저분한 노인네를 상대하는 일에는 익숙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소통이 쉽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에게는 소통이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출부이거나 기억이 정지된 노인네라고 하더라도. 또 파출부 엄마와 둘이서만 살아가는 소년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파출부와 소년은 결국 박사와 친구가 된다. 어떤 의미로 그들은 이미 가족이다. 소년의 손이 베이자 너무 슬퍼하며 패닉 상태에 빠지고, 소년에게 날아오는 파울 볼을 그 약한 몸으로 대신 막아내는 박사는 소년의 멘토이기도 하고, 빈자리를 채워주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소년에게 스며있는 마이너스 1을 채워주는 1과 같은 사랑이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애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파출부와 소년은 스스로 수식의 아름다움에 동화됨으로써 박사와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결의 통로를 지니게 된다. 박사에게 수식이 영원불변의 진리이자 아름다움이듯, 그리하여 사랑할 수 없는 형수를 사랑한 마음만 깊이 품고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듯 파출부와 소년 루트에게도 진실은 진실이었다.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자기 앞의 생>의 에밀 아자르는 말했다. 박사도 사랑하는 대상을 지녔으므로 그 반복되며 끊어져 결코 되살아나지 않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사랑한 것은 내보일 수 없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진실, 마치 수학공식과도 같이 불가해한 질서를 통해 아름답게 레이스를 그리며 존재하는 진실이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을 단 하나, 오가와 요코는 수식이라는 단어 뒤에 진실이라는 단어를 숨겨놓았을 것 같다. 

  박사의 말 한 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종이에 진정한 의미의 직선을 그리기란 불가능하다. 진정한 직선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여기에밖에 없어.” 그가 가리킨 곳은 자기 가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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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킬러 2007-10-3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대문에서 우연히 들어와봤는데.. 리뷰가 단정하면서도 잘 읽히고.. 책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듯해서 좋네요..
영화는 보고 책은 못본 상태인데.. 궁금해지는 책이에요..

파란흙 2007-10-31 08:3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일독을 권해 드립니다.
 
톨스토이 단편선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보리스 디오도로프 그림 / 푸른숲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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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를 접해보지 않고 자란 이가 없을 것이다. 어릴 적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전집의 <러시아 동화집>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바보 이반'을 읽은 것이 내게는 이 문호와의 첫 만남이다. 그때 이들 동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처럼 논술이 활발한 시절이 아니라 책을 읽고 누군가와 토론을 해보지도 않았고, 그저 좀 독특한 재미가 있다는 느낌만 가졌다.

  그의 책을 다시 접한 것은 청소년 시절 읽게 된 <안나 카레니나>와 <부활>에서였다. 그때도 내게 이 책들은 ‘어둡다’는 느낌만으로 모호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안나와 카추샤는 왜 그렇게 꼬인 인생을 살아가야 했을까 싶었고, 안나의 비극적 선택이나 카추샤의 인생은 굽이굽이 비현실적이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다 자란 어느 날 내게 톨스토이의 작품은 한꺼번에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몰려왔다. 도대체 나는 무엇으로 살 것인가 하고 깊이 고민하던 날에 그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대단한 무게로 다가왔고,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 하는 노동이란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날에 ‘바보 이반’은 얼마간 명쾌한 해답을 주기도 했다. 이어 나는 안나가 되어보기도 하고, 카추샤가 되어 보기도 하며 삶의 진실이란 것에 다가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던 얼마 전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이란 책을 우연히 얻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란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의 고뇌에 조금은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그가 백작의 아들에서, 혈기 넘치는 청년 장교에서, 한 가정의 가장에서, 세계적 문호로서, 농민운동의 핵심인물로서 살아가며 겪은 고뇌. 깨어 있는 양심과 행동가로서의 톨스토이는 자신이 생득적으로 얻은 것들, 문호로서 얻게 된 것들을 모두 버리고자 했으나 한 남편, 아버지로서의 톨스토이에게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심지어 톨스토이를 이중인격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했으나, 그 역시 남자로서의 톨스토이를 겪어온 그 아내에게는 진실이었으리라 싶은 공감이 있었다.

  어쨌든 톨스토이의 단편은 운동가로서의 그의 실천적 행위의 일환이었다. 러시아 문학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형규 역자에 따르면 많은 이야기들이 민화에서 모티프를 가져다 재편한 것이고, 많이 배우지 못한 대중 누구나 읽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고려가 문장 하나하나에 숨어 있다 한다. 톨스토이 스스로 자신의 논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참다운 예술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적 감정을 토대로 민중들에게 흥미를 주어야 하고, 또 그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려면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와 형식이 단순하고 간명하고 정확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고.

  요컨대, 하느님 말씀대로 살라. 그러기 위해 욕심을 버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내어줌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노동의 신성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라. 이런 메시지를 자못 노골적으로 풀어낸 것이 그의 단편들이다. 문학의 순수성을 선호하는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한 대목이다. 그러나 그에게 문학의 순수성이란 오로지 현실의 실천을 담보로 하는 것이어야 했던 듯하다. 지역, 학교, 공동노동생활체, 잡지의 이름이었던 ‘야스나야 폴랴나’는 그의 실천의지의 표상이었다.

  실제로 여러 단편을 통해 보이는 톨스토이는 사유재산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고, 공동 노동과 나눔이 더 이상적이라 여겼던 것 같다. 신분제를 비판하고, 어쭙잖은 지식과 지식인의 행태를 비판하며, 심지어 교회나 성경이라고 하는 전범이 지닌 오류를 정면에서 공격하고 있기도 하다. 그 시대에!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한 사회의 모습은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원시공동체 사회의 그것과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간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며, 심지어 와일드나 보들레르 등의 유미주의에 꽤 오래 열광해온 내 문학성향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문학을 위한 문학이든, 실천적 삶을 위한 문학이든 완결성과 아름다움, 교훈과 감동이 잘 어울려 있다면 무슨 상관이랴 싶기도 하다. 그 모든 걸 완벽하게 지어내는 톨스토이라는 작가가 존재하니까 말이다. 불꽃처럼 삶과 사상과 문학의 혼연일체를 이루려 분투한 톨스토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서.

  자, 그러니 이런 그의 사상을 치밀하게 풀어낸 작품들을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청소년이 읽기 좋게 한다는 이유로 그저 줄거리만 전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음 또한 당연하다 싶다. 이번에 푸른숲에서 새로 나온 <톨스토이 단편선> 서문에는 그런 식의 편의에 따른 번역이 지닐 수 있는 오류를 경계하며 다시 만들어낸 책이라고 씌어 있어 관심 있게 보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극히 일부분의 톨스토이 단편, 동화라고 이름붙일 만한 정도의 강도를 지닌 책들 외에 이 책들에는 좀 더 센, 훨씬 많은 단편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2편으로 가면 신분이나, 재산, 갖가지 형태의 사랑, 죽음, 세월, 부부간의 배신 등등에 대한 더 노골적이고 풍자적이며 비극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과연 문장이 비교적 짧고 평이한 단어로 구성되어 꼬임 없이 스르르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당대 러시아의 말투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여럿 보인다. 주전자라고 하지 않고 사모바르라고 쓴 뒤 조그만 적갈색 글씨로 러시아 전래의 주전자라고 표기한다거나, 마부라고 하지 않고 어자(馭者)라고 쓴 뒤 말을 부리는 사람으로 설명해 놓은 것과 같은 부분이 많다. 귀얄이라든가 우듬지 같은 우리말을 쓴다거나, ‘땅은 귀로 차 있다’는 러시아 속담을 그대로 쓴 뒤 ‘낮말은 새가 듣고~’와 비슷한 뜻의 러시아 속담이라고 해설해 놓은 부분 등 세밀한 신경을 쓴 점이 돋보인다. 물론 간종거리면서 등의 우리말이 오히려 낯설어 읽는 속도에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만, 찾아보며 읽는 것 또한 맛이려니 싶다.

  이 책은 러시아의 인민화가라는 칭호를 받는 보리스 디오도로프가 그림을 그려 더욱 원전의 향기에 가깝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덕분에 바보 이반이 어떻게 생겼는지, 악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근접한 그림을 보여줄 수 있을 듯하다.

  책이 180도에 가깝게 활짝 펼쳐지면서 단단히 묶어진 점이나, 크지도 작지도 않은 판형, 조금은 두툼하다 싶은 두께, 튼실한 느낌을 주는 내지 종이까지 플러스를 줄 요인이 꽤 많은 책이다. 그 중에서도 2편 말미의,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역자의 해설, 개개 단편에 대한 전거, 상당히 자세한 연보가 매우 매력적이다.

  솔직히 깨 쏟아질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고, 밤을 꼴딱 새워 가며 읽게 되는 흡인력이 있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톨스토이는 필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고, 더 늦기 전에 톨스토이 단편을 이나마 섭렵할 수 있었던 기회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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