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무슨 생각 하고 있어요?
니콜 드뷔롱 지음, 박경혜 옮김 / 푸른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첫인상은 '조금 낯섦'이었다. 책 표지로서는 무슨 내용의 책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고, 읽어내려 가면서는 '오십대 여성의 일상 풀어가기'라는 내용이 의외였다. 톡톡 튀다 못해 시니컬하기까지 한 문투는 몰입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프랑스적이라는 느낌까지. 독자에게 자꾸만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그걸 자기자신으로 느끼게 하는 묘한 특성도 낯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이 책에 매우 익숙해졌다. 어쩌면 이리 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 작가는! 성향이나 성격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누가 몰래 카메라를 들이댄 듯 절묘하게 나와 같았다. 물론 프랑스 특유의 몇 가지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을 제외하고서이기는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거나 사람을 대할 때, 작가처럼 나도 두 가지의 생각을 동시에 한다. "네~~"하고 말할 때 많은 경우 속으로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한다. 특히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너무나 상반된 두 종류가 뒤섞여 그걸 정리하는 데 오랜 세월을 쏟아부어야 했을 정도다. 좀 과장하자면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저 멀리 유럽에 사는 어느 작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인생을 영위하고, 그걸 글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Ditto, ditto, ditto.


  정중하게 은퇴당한 남편. 늙었다고 많은 걸 놓기에는 젊고, 또 무엇을 새로 해보기에는 늙은! 오랫동안 악전고투 끝에 글 읽고, 글 쓰는 일로 생활의 방편도 삼고 성취욕을 놓치지 않는 아내는 그 남편의 느슨해진 일상까지도 계획하거나 채워주어야 한다. 남자란 스스로 무얼 채우지 못하는 존재이므로. 심지어 '남자는 말다툼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일 때는 자기 딸들에게 직접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마치 왕처럼 단호한 어조로 당신에게 말을 하고는 전하라'(102쪽)고 하는 비겁한 존재들이다. 자신은 '나라 걱정 하느라 바쁘니 다른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우리 남편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러나 결국 잔소리하는 것을 포기해 버리는 많은 우리들.(109쪽)

  남자에 대한 울화통은 친구들끼리의 수다판에서나 푼다.

  "그만해! 남자들 뇌는 참새 뇌만 한 데다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도 전혀 알아채지도 못 하는 것 알면서 그러니!" / "나도 잘 알아! 그래도 어떤 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121쪽)

  그러나 매번 나(우리)는 남자를 감싸안는다. 일정 부분 마마보이를 벗어날 수 없는 그들은 자칫하면 '하얀 돌멩이 없는 헨젤'(153쪽)이 되어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 꼴은 또 못 본다. 그래도 그들을 사랑하므로. 때로 놀랄만한 인내를 보여주거나 아픈 내 등을 쓸어내려주는, 속알머리가 조금씩 빠져 맨살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그들을.

  하여간 이 작가는 징그럽게도 여자 마음을 잘 풀어놓았다. '여자들이 권세를 잡게 되면 만사가 잘 풀릴 것이 틀림없다'(181쪽)고 하는 생각도 나와 똑 같다. 그리고 유머가 하늘을 찌른다. 이사를 앞두고 루이 16세 양식 서랍장의 거취에 대해 늘어놓다가 갑자기 도둑들에게 귀엣말을 하는 작가라니! 182쪽에 괄호를 치고 이렇게 써놓은 것이다. '작가가 도둑님께 드리는 한 마디 : 이 서랍장은 작가의 상상에서만 존재하므로 일부러 오실 필요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대목에서는 키득키득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더러 진짜로 찾아오는 도둑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 책을 읽을 정도의 도둑이라면...

  첫 사랑에 대해 작가는 '당신은 가끔 그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당신 이름을 부르며 죽는 것을 상상해 본다.'고 썼는데, 찔끔했다. 또 모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음식을 꾸역꾸역 처먹이려고 한다고 썼는데, 동감이다. 내가 살찐 이유, 구할은 우리 시어머니 때문이다. 남편은 이상한 사람 보듯 하면서 절대로 인정하지 않지만.

   아, 무슨 이런 작가가 다 있담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는 아주 조금 눈물도 흘렸다. 끝까지 먼 이국에 사는 '나의 이야기'를 후벼파는 희한한 작가. 골프 너무 즐기는 남편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데, 남자의 속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저러나, 중간중간 낀 극중 화자의 소설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짜증내며 읽었다. 마치 출판사 편집자가 된 심정으로, 도대체 글이나 쓸 일이지 뭔~ 하는 생각까지 하면서. 문제의 추리소설 이름은 '트로카데르의 식인마들'이다. 참, 233쪽의 한국식 마사지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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