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의자왕 평전 - 우매한 폭군인가 불운의 성군인가
양종국 지음 / 서경문화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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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은 세세한 이야기까지 너무 상세하게 다뤄 지루하기 마련인데 백제 시대라 자료가 워낙 귀해서인지 꼼꼼하게 분석하고 저자의 견해를 달아 흥미롭게 읽었다.

평전을 쓰다 보면 그 인물에 너무 몰두하여 긍정적인 쪽으로만 해석하게 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을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김정희가 당시 동아시아 최고의 문예가였다는 평가에 무척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내 짧은 지식 탓인가 싶었는데 다른 학자의 책을 보니, 김정희가 조선에서는 최고 문예가였겠지만 국제적으로 봤을 때는 청나라의 최신 경향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철 지난 사조를 뒤늦게 받아들여 지역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책 역시 의자왕이라는 망국의 군주에 대해, 특히 신라에 비해 덜 알려진 백제인의 일생을 애정어린 눈으로 입체적 분석을 시도한 점은 높이 사지만 동의할 수 없는 평가들이 보인다.


1) 의자왕의 항복은 자발적이었나, 예식에 의한 반란이었나?

예식의 묘지명이 발견되어, 사비성에서 탈출한지 5일만에 공산성에서 항복한 이유가 예식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잡아 당나라에게 끌고 갔다고 알려졌다.

저자는 이 의견에 반대하며 예식은 단지 의자왕을 호위하여 출성했을 뿐이고, 의자왕이 5일 만에 항복한 이유는 백성들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한 자발적인 결단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주장한다면 을사오적의 한일합방도 나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하겠다.

예식의 묘지명까지 발견됐는데도 가볍게 넘어가는 점은 이해가 안된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이 망국의 군주가 당나라로 끌려간 후 포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금방 풀려나 후손들이 당나라 조정에서 일하고, 웅진도독부를 세웠으며, 증손녀 부여태비는 당 황실과 혼인까지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점에 중점을 두고, 의자왕이 백제의 혼란을 막기 위해 빨리 항복하고 대신 아들인 부여융은 웅진도독부를 통해 백제를 다시 재건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웅진도독부라고 하면 당이 백제땅까지 지배하려는 야욕이고, 조선총독부와 비슷한 개념이 아닌가?

당나라가 그저 친당 정권을 세우려고만 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지배 야심을 품었던 것인지 이 책만 가지고는 모호하다.

당에 의해 세워진 웅진도독부가 단지 백제 태자가 수장이 되었다고 해서 주체성을 가진 백제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고조선 멸망 후 세워진 한4군도 같은 의미로 생각해야지 않나?

백제 멸망이 당의 조공 책봉 정책에서 벗어나 독자적 길을 간 백제를 응징한 당의 13만 대군에 의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외교정책을 통해 당의 군대를 이용하고 훗날 이들의 지배 야욕을 꺾은 신라의 통일 노력을 너무 가볍게 치부한 것은 아닌가 싶다.

고조선 멸망 후 오랫동안 한4군이 한반도에 세워졌던 것처럼, 당 역시 웅진도독부를 통해 백제의 옛 땅을 지배할 수도 있었으나 신라의 용감한 항전을 통해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의 통일을 이뤄낸 점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2) 의자왕의 모후는 미륵사지 서탑 사리봉안기에 나온 사택왕후이다.

나도 이 부분에 동의한다.

선화공주는 문학적 영역이므로 사택왕후의 유물까지 나온 마당에 더이상 역사의 실존 영역에 끼워넣기 힘들 것 같다.

미륵사가 3탑 3원 구조라는 이유로 서탑에서 사택왕후의 사리봉안기가 나왔으니 나머지 탑에서 다른 이가 발원한 기록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일축한다.

미륵사는 처음부터 3탑 3원 구조로 건립됐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세워진 서탑에 최종적으로 발원자를 밝히는 봉안기를 넣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의자왕의 출생년은 부정확하지만 대략 35세 이후에 태자 자리에 오른 것으로 추정한다.

무왕이 40년 넘게 즉위했던 까닭에 의자왕은 40이 넘어 왕위에 오른다.

의자왕은 왜 이렇게 늦은 나이에 태자가 됐을까?

선화공주의 아들이라 외가인 신라를 견제하는 세력 때문에 늦게 태자가 됐다는 주장에 대해 저자는 선화공주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당시 신라와 백제의 치열한 공방전을 보면 이런 국혼은 불가능했을 것 같다.

송나라 태종이 재위 20년이 지나 아들 진종을 태자로 책봉한 예를 들어, 전쟁이 너무 치열한 당시 상황에서 아들을 좀더 보호하기 위해 책임있는 자리에 최대한 늦게 올린 것은 아닌가 추정한다.

찾아보니 진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큰아들이 궁궐에 불을 지른 사건 등으로 폐위된 전력이 있다.

진종이 늦게 태자가 된 궁궐의 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의자왕 역시 무왕의 큰아들이 아니고 알려지지 않은 백제 내부의 사정 때문에 늦게 태자가 됐을 것 같다.

반면 부여융은 의자왕 재위 4년째 태자로 책봉된다.

적장자였고 의자왕의 나이가 많아 바로 태자 책봉이 이뤄진 모양이다.

저자는 일본에 가있던 부여풍을 의자왕의 서장자로 생각한다.

어떤 책에서는 5남으로 추정하고 있어 확실한 기록이 없는 모양이다.

부여풍이 일본으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백촌강 전투를 치룰 때 당에서는 부여융을 내세웠는데 풍이 서자였기 때문에 태자였던 융이 있는 당측에 훗날 흑치상지 등이 항복했다는 저자의 견해가 독특하다.

흑치상지가 단지 백제를 배신하고 당에 부역한 것이 아니라, 정통성이 있는 태자 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당시 심정은 그랬을 수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백제 부흥을 막은 배신자가 아닐까?

개인의 소회를 밝힌 글이 없으니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이 당 조정에서 활동했던 것을 보면 당은 확실히 국제적인 나라였던 것 같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백제는 신라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나라를 잘 유지하고 있었고, 초반에는 당의 조공책봉 체제 안에 순응했으나, 신라 쪽으로 기운 당나라가 백제에게 신라 공격을 멈추라고 여러 차례 조서를 보내자 이를 거부하고 자주 노선을 취하다가 당에게 망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백제가 신라말 혼란기처럼 나라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은 단지 친당 정권만 세우는 정도로 그치려고 했고 이 의도를 알아차린 의자왕은 쉽게 항복을 했다.

그러나 신라에서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당을 몰아내고 결국 백제는 영원히 망하고 만다.

의자왕은 적극적으로 신라를 공격하면서 설마 당이 대군을 이끌고 직접 원정을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고조선이 한나라에게 정벌당한 것을 보면 중국은 충분히 한반도에 원정을 감행할 수 있는 나라인데 의자왕의 대외정책이 너무 안이했던 셈이다.

또 당을 움직인 신라의 외교정책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결국 당과 대립하다가 나라가 망한 고구려와 같은 처지가 되버렸다.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가 국가 존립의 중요한 변수인 셈이니 선조들이 조공 체제 안에서 순응하려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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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4-06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중국 교수의 주장으로는 의자왕의 어머니는 선화공주나 사택왕후가 아닌 빈천한 시절의 무왕의 아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선화공주 존재에 대해 부정적이지도 않더라구요. 의자왕의 어머니에 대한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화공주의 존재의 가능성을 따지는 부분에서는 어느정도 동의가 가더군요. 선화공주와 관련된 설화가 통일 신라에 만들어 진 것인데, 그 시절에 굳이 신라 왕실을 모독하는 내용을 넣을 수 있냐는 것이죠. 그리고 서동요를 비롯하여 미륵사지를 창건하였다는 문헌적 사실에서 창건을 청한 주체인 선화공주만 부정하는 것도 이상하다라는 것 요지였어요.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책 자체는 읽고 싶어 지지는 않네요.

marine 2020-04-06 10:4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노중국 교수는 긍정하는 쪽이더라구요. 역사서에 기록된 설화를 무조건 아니다고만 딱 잘라 얘기하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이 책에서 선화공주의 실존 유무보다, 백제가 의자왕의 자주노선 때문에 당에 의해 멸망했다는 견해가 인상적이었어요.
 
유일신 야훼 - 역사와 그의 실체
김기흥 지음 / 삼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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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이어 내 기독교적 회의감에 쐐기를 박는 또 하나의 책이다.

저자는 신학자나 고고학자가 아닌, 신라사를 전공한 한국 역사학 교수인지라 이스라엘 역사와 유대교에 대해 과연 얼마나 전문성을 가질런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인용된 자료들이 최근 고고학 성과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신뢰감이 생기고 무엇보다 저자의 논증과 문제제기에 깊이 공감했다.

저자는 시종일관 야훼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이고 어느 날 갑자기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약소 민족으로서 강대국 틈바구니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민족의 통합을 위해 야훼 신앙을 다지고 특히 바빌론 포로기 시절 이방인으로까지 신에 대한 관념이 확대되어 우주 전체의 창조자 유일신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 중동의 강대국들 틈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은 야훼 신앙 아래 단결했다.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명멸했으나 수천 년의 디아스포라 끝에 살아남아 여전히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유대인의 야훼 신앙은 참으로 놀랍다.

저자는 이러한 신앙이 처음부터 유일신 형태가 아니었고 여러 신들 중 하나를 이 약소 민족이 선택하여 보편적 창조주로써 변모해 가는 과정을 논증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

1) 유대인은 기원전 13세기 무렵 이집트의 압제에 시달리던 가나안 하층민들이 철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중앙 고원지대로 모여들어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민족으로 변모해 갔다.

저자는 핑컬스타인의 최소주의설을 받아들여 고고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출애굽도 부정하고 당연히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도 없었으며 기원전 10세기 무렵 솔로몬 성전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나도 핑컬스타인의 책을 읽고 출애굽의 실체에 대해 부정하게 됐다.

고고학적 증거들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그 때는 다 이해를 못했었는데 확실히 이 책의 저자는 역사학자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알려준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는 산간 지대로 올간 가나안 토착민들이었던 셈이다.

람세스 2세의 아들인 메르넵타 석비에 이스라엘이라는 민족명이 나오므로 이 무렵 이방인들에게 하나의 민족으로서 인식되었다고 본다.


2) 북이스라엘은 당시 유행하던 가나안의 황소 신상을 야훼의 표상으로 경배했고 남유다에서는 언약궤를 중심으로 내세웠다.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먼저 멸망하자 거기서 내려온 제사장들과 남유다의 왕들은 자신들에게 정통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들이 우상숭배 때문에 망했다고 천명한다.

유다 왕국은 이집트와 바빌론 등 외부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야훼 신앙을 중심으로 종교 개혁을 하고 기원전 7세기 무렵 요시아왕 때 신명기가 저술된다.

그 후 바빌론 유수 때 모세 오경이 완성됐다고 본다.

그러므로 창세기의 창조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신화 등이 섞여 있고, 성경의 저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히기 보다는, 야훼 신과 언약을 맺고 애굽을 탈출했던 것처럼 바빌론으로부터도 해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강조하기 위해 성경을 썼다.

그러니 21세기에 당시 중동인의 관점에서 본 천지 창조설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은 넌센스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야훼라는 유일신이 객관적인 실제가 아니라 관념의 신이고 상호주관적인 신이라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약소 민족인 이스라엘인들이 거대한 제국의 압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내부 결속을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관념적 실체가 바로 신이고, 그 개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해 왔다.

예수 탄생 후 삼위일체라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를 접목해 보다 보편적인 종교로써 전 세계에 퍼지게 됐지만 과학의 시대에 더이상 문자 그대로의 성경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종교는 인류가 발전시키고 쌓아온 문화와도 같아 인류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화해 왔으므로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우리가 추구하는 바람직한 가치의 총합을 바로 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관념적 존재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비단 기독교에만 신의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가톨릭의 보편성이 좀더 바람직한지도 모르겠다.

21세기에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과연 한국 기독교가 현대인들에게 바람직한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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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
오수창 지음 / 그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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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의 이본이 워낙 많아 그 성격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갈래인 모양이다.

딱 집어 이러이러하다 설명해 주면 이해하기 편하련만, 다양한 해석들을 소개하고 나중에 취합하는 방식이라 약간 산만한 느낌이다.

대체적으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1. 춘향의 신분은 기생이다.

남원 부사로 왔던 아버지 성참판이 대비속신을 해 줬다는 이본도 있어 기생이다 아니다로 해석이 분분한 모양인데 춘향전을 흐르는 전반적 기류로 봤을 때 저자는 춘향의 신분이 기생임을 분명히 한다.

이도령과의 대화 속에도 자신의 신분이 기생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신관사또 부임 후 점고에 나가지 않은 것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기안에 등록이 안 됐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춘향은 본인이 이도령의 정실 부인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기껏해야 기생첩의 위치라도 얻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신관사또에 대한 춘향의 수청 거부는 올바른 항거일까?

신분제나 탐관오리에 대한 항거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일부종사라는 열녀 개념이 하층민에게까지 내제화 됐다는 해석도 있는데, 내 생각에는 이도령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권력자의 강압적인 희롱을 거부한 게 아닐까?

책에도 춘향의 항거 이유에 대해 사또의 모욕적인 언사를 들고 있다.

열녀 관념이니 피지배층의 항거니 이런 거창한 개념이 아니어도 첫사랑에 대한 지조를 지키고 싶어 하는 열 여섯 어린 소녀의 강인한 의지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꼭 성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하지 않은 남자에게 술을 따르고 희롱을 당해야 하는 심정은 너무나 비참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일 것 같다.

더군다나 위계와 폭력에 의한 강요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2. 기생의 수청은 합법인가?

관행적으로는 수령들의 성접대 요구에 응해야 했겠으나 법적으로는 금지됐다고 한다.

가족을 데리고 임지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변방 같은 경우 일부러 성욕을 충족시켜 줄 관비를 배정한다고 들었는데,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저자의 말대로 그게 합법이면 조선은 성노예제가 법적으로 있었던 셈이니 말이 안 되긴 하다.

다만 관행적으로는 술시중에 이어 당연히 성적 요구에도 응해야 했다.

춘향의 거부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용기인 셈이다.

그래서 신관사또도 수청거부를 죄목으로 치죄하기 보다는, 관장능욕 등을 내세웠다.

춘향의 성정 또한 보통이 아니었는지, 여자에게 정절을 버리라 하는 것은 당신에게 역심을 품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대든다.

반역 운운했으니 사또 입장에서는 뒤로 넘어갈 만하다.


3. 암행어사는 봉고, 즉 관아의 창고를 봉하고 출입을 금할 수는 있었으나, 파직은 불가능했다.

관리 임명권은 국왕의 중요한 권한이었으므로 잘못한 수령에 대해 보고할 수는 있었으나 현장에서 어사가 파직시킬 수 없었다.

암행어사라는 직책 자체가 국왕을 대신해 사찰하는 임시직이었으니 이해가 된다.

다만 봉고파직이라는 용어가 실록에 같이 쓰인 까닭은, 봉고 후 파직 조치가 일반적으로 따라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책객의 존재.

책에서 이 부분이 제일 신선했다.

수령이 외지로 부임하면 아전과 향리들에게 둘러 싸이니 자기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관청의 회계 업무 등을 봐 주고 여러 사안들을 의논할 수 있는 일종의 책사 같은 존재이다.

사적인 직책이었으므로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는 두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는 수령에게 필요한 존재였을 것 같다.

사적으로 월급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고 관아에서 숙식을 제공해야 하고 수령 옆에 있으면서 사사로이 권한도 행사했을 것이니 실무를 처리하는 아전 입장에서는 불편한 존재였을 듯하다.


맨 마지막에 이광수가 쓴 <일설 춘향전>이 일부 소개됐는데 확실히 근대소설이라 그런지 묘사가 너무 재밌어서 따로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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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이 왜 이상한 것을 믿을까 - 대체의학의 진실
사이먼 싱 외 지음, 한상연 옮김 / 윤출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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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일까?

제목 한 번 잘 지었다.
스켑틱과도 통하는 책이고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떠올리는 책이다.
공동저자 중 한 명이 쓴 <대체의학이라 불리는 사기>를 먼저 읽어서 같은 내용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더 재밌고 이해하기 쉽다.
아주 명료하게 과학적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반 대중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려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서구권에서는 대체의학이라고 하고 한국에서는 한의학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은 독특하게 의사 면허 외에 한의사라는 면허가 따로 있어 현대의학이라는 범주가 좀 애매한데 책 내용에 따르면 침술과 약초 요법이 해당되므로 대체의학 범주에 속한다.
한의학의 존재 때문인지 한국 사람들은 현대의학을 양의학이라고 따로 지칭하지만 현대의학, 주류의학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의사들은 전 세계의 표준적인 보편적 의학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동양의학, 서양의학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체의학 혹은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서양의학도 20세기 들어서 치료 효과가 입증되기 전에는 사혈이나 체액설 등을 믿었다.
책에도 사례가 나온다.
조지 워싱턴이 사혈 요법을 받다가 지나친 체액 소실로 사망했다.
대체의학을 침술, 동종요법, 카이로프랙틱, 약초요법 네 가지로 나눠서 과연 이 치료들이 임상적 효과가 있는지를 검증했다.
침술은 두통과 구역 증상에 효과가 있는 경우가 간혹 있고 동종요법은 전혀 효과가 없으며 카이로프랙틱은 허리 통증 완화에 한해서 효과가 있다. 
약초요법은 약리효과가 있는 유효성분은 약으로 정제되어 사용하고 있으므로 약리학에 속하고 그 외에 전체 식물을 다 먹어야 하는 경우는 오히려 부작용을 걱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임상실험을 통해 임상효과를 내는지로 검증했다.
과학만능주의라는 말로 비판을 하는데 저자들은 과학이란 의견이 아니라 진리를 밝히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공정성이나 문화다원주의 이런 의견적 영역이 아니라, 치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아무 감정없이 입증하는 것이 바로 임상실험이고 의학이고 과학이다.
그러므로 실험을 통해 치료 효과가 입증되면 현대의학의 영역에 받아들여 표준적인 치료법이 되는 것이고, 효과가 없다면 배제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무작위 이중 맹검법의 설계를 통해 효과를 입증하는데 이 방법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공들여 설명한다.
침술의 경우 아픈 부위에 자극을 주면 통증이 경감되는 효과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신경자극을 통한 치료가 IMS 기법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특정 부위에 침을 놔서 다른 장기의 질병을 낫게 한다는 방식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간단히 말해 동양의학에서 주장하는 기라던가 혈자리, 경락 같은 개념이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일종의 철학 체계라는 것이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이렇게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은 해부가 가능했는지 차이라고 한다.
일리있는 말 같다.
저자들은 동양에서는 신체 해부가 금기시됐기 때문에 당시 의사들이 신체에 대해 상상의 체계를 만들었으리라 추정한다.
오장육부나 기 같은 추상적인 철학 체계 말이다.
저자들은 대체의학이 효과가 있다고 느끼는 까닭이 전적으로 플라시보 효과라고 단언한다.
의미가 있는 치료라면 언제나 누구에게서나 일정한 효과를 내야 하는데 대체의학의 여러 시술들은 이러한 임상실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래서 현대의학에 들어오지 못했다.
괴혈병의 치료법이 라임을 먹는 것이고, 말라리아 치료법이 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키니네를 복용하는 것처럼 효과가 있으면 현대의학에 속하게 되고, 동일한 효과를 내지 못하면 배척된다.

플라시보 효과만으로 대체의학의 의미가 있지는 않을까?
저자들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주장한다.
1) 부작용 우려.
의사들이 처방하는 모든 약은 성분과 부작용, 사용 용량 등이 표기되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의학에 사용되는 약초들은 위생당국의 규제로부터 벗어나 있다.
대체의학의 약초들이 정식의학으로 인정받으려면 임상실험을 통과하여 허가받은 약들과 똑같은 기준에 맞춰 그 성분을 공개해야 한다.
2) 잘못된 의학적 조언들
비근한 예로 예방접종을 못하게 하는 안아키 같은 경우다.
잘못된 조언이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
3) 과도한 비용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크다.
저자들은 카이로프랙틱과 물리치료가 큰 차이가 없지만 비용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도수치료 같은 게 해당되려나?
효과의 차이가 미미한데도 환자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많은 돈을 쓰게 된다.
이런 대체의학이 건강보험으로 허용이 된다면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4) 진실의 문제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다.
단지 심리적 위안이라는 측면에서 마치 그것이 사실인양 현대의학 안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가기 힘들다.

현대의학이 가져다 준 엄청난 혜택, 이를테면 주산기 사망률 감소, 예방접종의 효과, 항생제, 외과적 수술, 당뇨,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치료, 항암요법 등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의학을 불신하고 뭔가 다른 그럴 듯한 치료법이 있지 않을까 주변을 둘러본다.
꼭 같은 경우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이 종교적 심성을 갖고 있고 여전히 인류는 달에 가지 않았다고 믿고, 진화가 아닌 인격신이 목적을 가지고 인간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믿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건강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므로 올바른 의학적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니 정치적 공정성, 도덕성 이런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과연 이 치료가 부작용이 없는지 효과는 입증이 됐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번역이 매끄러워 잘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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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그림 - 명화 속 눈먼 욕망과 연애 유희
최정은 지음 / 세미콜론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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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읽을 때의 기쁨이랄까, 이런 책을 읽고 나면 지적 충만감이 가득 느껴진다.

작은 판형에 비해 도판의 인쇄 상태도 훌륭하고 활자 크기나 편집도 가독성 있고 가벼워 보이지 않아 참 좋다.

다만 제목이 너무 진부하다.

이렇게 좋은 책이 이렇게 뻔한 제목으로 출간되다니, 책의 매력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제목만 보고 로코코 시대 명화 소개인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읽었던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저자임을 알고 기대감을 갖고 읽게 됐다.

네덜란드 정물화에 대한 흥미로운 책이었고 나를 그림의 세계로 인도해 준 책 중 하나다.

네이버에 연재된 글 모음이라는데 네이버 수준이 이렇게 높았나 싶을 정도로 17세기 네덜란드 사회와 18세기 로코코가 유행하던 프랑스 사회를 그림을 소재로 하여 너무나 깊이있게 설명하고 있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솔직히 17세기 네덜란드의 장르화는 별 재미가 없었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언제나 매혹적이지만 그냥 그림 자체로 좋을 뿐 거기에 담긴 사회상이 특별할 게 없어서인지 서술 내용도 심심했다.

그렇지만 18세기 로코코 시대로 넘어오면 정말 흥미진진하다.

역시 유럽 사회를 이끌던 프랑스의 문예사조라 그런지 프랑스 대혁명까지 이어지는 시대상이 정말 흥미롭다.

나는 루벤스 풍의 바로크 그림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와토나 프라고나르의 페트 갈랑트 회화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로코코 회화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회화의 매력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됐다.

<예술이 되는 순간> 이라는 책에서 와토의 그림 "제르생의 간판" 을 설명하면서 색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알게 됐을 때의 놀라움이랄까.

로코코 시대의 우아한 귀족들의 그림들은, 그들이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동양의 초일적 이상향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마지막 문장이 너무나 공감이 된다.

바로크 시대의 고전문화가 절정에 다다라 귀족들의 삶이 곧 예술이 되는 시대, 그것이 로코코 시대였고 민중들의 피땀을 전제로 한 그들의 부유함과 번성함은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파국에 이르고 말았다.

18세기는 계몽주의가 꽃을 피운 이성의 시대인데 이 시대정신을 널리 퍼뜨린 사람들이 바로 살롱의 여주인들이다.

중세 궁정에서 귀부인을 숭상하는 기사도 문화가 살롱 문화의 배경이 됐다고 한다.

여성들은 비록 공식적으로 교육을 받거나 사회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귀부인들은 살롱을 열어 사적으로 계몽주의자들의 토론의 장소를 제공하고 그들을 후원함으로써 널리 퍼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이 대표적인 후원자이고, 그녀는 세브르의 도자기 산업을 이끌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규방에 갇혀 사회적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던 조선 사회 상류층 여성들의 삶이 안타깝다.

프랑스는 중세 신학으로부터 벗어나 계몽주의로 나갈 수 있었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까지 이르러 세상을 바꾸었지만, 조선은 이렇게 꽁꽁 닫힌 사회였으니 자력에 의한 사회 변화는 불가능했던 것 같다.


좋은 책은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싶다.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면서 관심의 폭을 넓혀 주고 대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책.

저자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255p

"어쩌면 그들은 풍족한 상류사회의 삶을 누리는 유쾌하고 초연한 자신들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보고자 한 것은 아닐까. 동아시아권의 표현으로 超逸 에 비할 만한, 가벼우나 경박하지 않고 초연하면서도 정중한, 우아함이 깃든 당당한 모습은 엘리트 계층이 그들 자신을 보고자 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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