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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역사학자의 토론과 해석
오수창 지음 / 그물 / 2020년 1월
평점 :
춘향전의 이본이 워낙 많아 그 성격에 대한 해석도 여러 갈래인 모양이다.
딱 집어 이러이러하다 설명해 주면 이해하기 편하련만, 다양한 해석들을 소개하고 나중에 취합하는 방식이라 약간 산만한 느낌이다.
대체적으로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1. 춘향의 신분은 기생이다.
남원 부사로 왔던 아버지 성참판이 대비속신을 해 줬다는 이본도 있어 기생이다 아니다로 해석이 분분한 모양인데 춘향전을 흐르는 전반적 기류로 봤을 때 저자는 춘향의 신분이 기생임을 분명히 한다.
이도령과의 대화 속에도 자신의 신분이 기생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신관사또 부임 후 점고에 나가지 않은 것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기안에 등록이 안 됐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춘향은 본인이 이도령의 정실 부인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하고 기껏해야 기생첩의 위치라도 얻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신관사또에 대한 춘향의 수청 거부는 올바른 항거일까?
신분제나 탐관오리에 대한 항거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일부종사라는 열녀 개념이 하층민에게까지 내제화 됐다는 해석도 있는데, 내 생각에는 이도령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권력자의 강압적인 희롱을 거부한 게 아닐까?
책에도 춘향의 항거 이유에 대해 사또의 모욕적인 언사를 들고 있다.
열녀 관념이니 피지배층의 항거니 이런 거창한 개념이 아니어도 첫사랑에 대한 지조를 지키고 싶어 하는 열 여섯 어린 소녀의 강인한 의지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닐까?
꼭 성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랑하지 않은 남자에게 술을 따르고 희롱을 당해야 하는 심정은 너무나 비참하고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일일 것 같다.
더군다나 위계와 폭력에 의한 강요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2. 기생의 수청은 합법인가?
관행적으로는 수령들의 성접대 요구에 응해야 했겠으나 법적으로는 금지됐다고 한다.
가족을 데리고 임지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특히 변방 같은 경우 일부러 성욕을 충족시켜 줄 관비를 배정한다고 들었는데,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저자의 말대로 그게 합법이면 조선은 성노예제가 법적으로 있었던 셈이니 말이 안 되긴 하다.
다만 관행적으로는 술시중에 이어 당연히 성적 요구에도 응해야 했다.
춘향의 거부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용기인 셈이다.
그래서 신관사또도 수청거부를 죄목으로 치죄하기 보다는, 관장능욕 등을 내세웠다.
춘향의 성정 또한 보통이 아니었는지, 여자에게 정절을 버리라 하는 것은 당신에게 역심을 품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까지 대든다.
반역 운운했으니 사또 입장에서는 뒤로 넘어갈 만하다.
3. 암행어사는 봉고, 즉 관아의 창고를 봉하고 출입을 금할 수는 있었으나, 파직은 불가능했다.
관리 임명권은 국왕의 중요한 권한이었으므로 잘못한 수령에 대해 보고할 수는 있었으나 현장에서 어사가 파직시킬 수 없었다.
암행어사라는 직책 자체가 국왕을 대신해 사찰하는 임시직이었으니 이해가 된다.
다만 봉고파직이라는 용어가 실록에 같이 쓰인 까닭은, 봉고 후 파직 조치가 일반적으로 따라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4. 책객의 존재.
책에서 이 부분이 제일 신선했다.
수령이 외지로 부임하면 아전과 향리들에게 둘러 싸이니 자기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관청의 회계 업무 등을 봐 주고 여러 사안들을 의논할 수 있는 일종의 책사 같은 존재이다.
사적인 직책이었으므로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는 두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는 수령에게 필요한 존재였을 것 같다.
사적으로 월급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고 관아에서 숙식을 제공해야 하고 수령 옆에 있으면서 사사로이 권한도 행사했을 것이니 실무를 처리하는 아전 입장에서는 불편한 존재였을 듯하다.
맨 마지막에 이광수가 쓴 <일설 춘향전>이 일부 소개됐는데 확실히 근대소설이라 그런지 묘사가 너무 재밌어서 따로 읽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