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한국미술 2 - 변화와 도전의 시기
김영나 지음 / 예경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김영나 교수는 글을 참 쉽게 잘 쓴다.

현대미술은 너무 사변적이라 어렵고 공감이 힘들 때가 많은데 저자의 책들은 수준있는 내용들을 평이한 문체로 쉽게 설명해 줘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1권은 더 옛날에 나온 책이라 흑백 도판이 많아 아쉬웠는데 2권은 전부 컬러라 그림 보는 즐거움도 크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1) 밀레는 농민화가인가?

사실은 부농 출신으로 가난한 화가가 아니었고 파리의 근대화에 거부감을 느끼고 바르비종으로 들어가 과거 회귀적으로 농민들의 삶을 이상화 시켜 그렸다는 점은 전에도 들었던 것 같다.

<만종>에 그려진 바구니에 죽은 아기가 있었다는 설도 있을 만큼 가난한 농민의 삶을 고발한 체제 전복적인 그림이다는 주장은 이제 한물 간 이론인 듯하다.

19세기 자본주의화 되어 가면서 농민들은 소외되어 갔고 사실은 근대화에 발맞춰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싶었으나 밀레 등의 도시민은 옛날 농민의 삶을 예찬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느낌도 든다.

마치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이 근대화 된 것을 어쩌다 한 번 시골에 와서 옛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비난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밀레의 농촌 지향성은 청교도 정신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1920년대에 일본과 한국으로 건너와 크게 유행을 한다.

오죽하면 이발소 그림으로 불려졌을까 싶다.

계급 투쟁이 벌어졌던 19세기 파리에서는 위험한 그림일 수 있었으나 미국에서는 있는 그대로 농촌의 건강함을 표현하는 그림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재밌는 것은 미국에서도 그렇고 훗날 일본이나 한국, 중국에서도 산업화가 활발해진 시점에 농촌에 대한 향수 때문에 밀레의 그림이 유행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밀레의 농민들은 마치 로랭이나 푸생의 풍경화처럼 성스러운 분위기로 이상화 되어 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린 쿠르베의 사실주의와는 차이가 난다.


2) 평양의 거대 기념물과 김일성 동상에 대한 고찰이 신선했다.

더불어 레닌과 스탈린, 모택동, 히틀러 등을 함께 비교하는데 개인 숭배라는 점에서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매우 닮아 보인다.

히틀러의 파시즘은 전 세계가 비난을 하면서 정작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체제 안에서 개인을 한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공산주의의 비판은 왜 주저하는 것일까?

공산주의는 독재자를 숭배하고 개인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미술도 개인의 창작 욕구를 억압하고 수단으로 전락해 프로파간다화 돼버린다.


3) 김세중이라는 유명 조각가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국가의 대형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고 행정직을 독차지 해서 관권지향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개인으로서는 예술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회환이 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광화문 한 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이순신 장군상을 건립한 그는 20대의 나이에 서울대학교 교수에 임용되고 천여 개에 달하는 공공조각에 참여한 유명 인사였지만 5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기 전, 행정적인 일 말고 내 예술적 작업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해방 직후 조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많은 작품을 의뢰받고 높은 행정적 지위를 누리기도 했지만 한 예술가로써의 야심을 실현하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 어려웠을 것 같다.

전에 읽은 큐레이터의 자선전에서도, 이미 당대에 매우 유명해진 작가들이라 해도 여전히 역사에 길이 남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야심을 불태우면서 작업 현장을 떠나질 않는다고 했다.

해방 직후 불모지에서 예술하던 사람이 갖는 딜레마가 이해되는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스만 제국 시대의 무슬림-기독교인 관계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9
이은정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이슬람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고 이어서 읽게 됐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나라라 재밌게 읽었다.

15세기에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 반도까지 진출하여 기독교인들을 수용할 때는 개방적이었으나 제국이 넓어지면서 점점 지방 태수들에게 정권을 위임하는 분권화가 진행되자 강력한 국민국가로 성장한 유럽 열강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민족주의 물결을 타고 쪼개지면서 무너져 가는 과정을 보는 느낌이다.

17~18세기의 분권화 과정을 거친 후 19세기에는 러시아 등의 공격에 밀려 그리스와 발칸 반도들이 독립하고 근대화에 실패하면서 1차 대전 패배 이후 모든 영토를 잃고 오직 아나톨리아 반도만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엘리트들은 세속주의를 추구했으나 국민들의 정서는 기독교인인 서구 열강에 대적하는 과정에서 이슬람을 정체성으로 인식하게 됐다.

오늘날 터기가 이란이나 사우디 등과는 다른 세속주의적 국가이면서도 여전히 나라 전체는 이슬람적 분위기가 강한 역사적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신정국가를 추구하는 다른 이슬람 나라들도 서구 열강의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한 반동으로 종교를 민족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세속화가 늦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슬람이 서구의 기독교처럼 나라와 민족을 넘어서는 보편 종교라 서구 세력에 대한 안티 테제로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오스만 제국의 탄지마트 개혁 과정을 보면서 마치 개항 이후 구한말의 혼란스러운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오스만은 지중해 일대에 제국을 형성할 정도의 강력한 국가였기에 서구의 강제 근대화 세력에 대한 반발과 자괴감이 훨씬 컸을 것 같다.

근대화 정신이 결여된 겉모습의 근대화는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사회 전반의 변화가 뒤따랐다는 점에서 매우 놀랍다.

오스만 제국도 잘 나갈 때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다 포용했으나 민족주의 유행에 따라 그들이 독립을 추구하고 힘으로 누르기 어려워지자 점점 불관용의 태도를 보이다가 급기야 아르메니아 학살에 이른다.

이 부분의 정확한 학문적 평가는 여러 정치 세력의 입장 때문에 여전히 어려운 듯하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는 또다른 문제인 것 같다.

저자는 중동 지역의 이슬람 정체성이 외부의 시선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기독교도의 무분별한 선교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단순히 종교를 전파하는 차원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입국 금지인 곳까지 기어이 선교를 하겠다고 찾아가 외교 문제를 일으키는기독교인들의 무분별한 행태를 생각하면 과연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슬람 제국 - 무함마드와 살라딘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류광철씨 책은 대체적으로 재밌다.

아프리카 독재자 이야기와 십자군 전쟁에 대한 책을 흥미롭게 읽었고, 이슬람 제국이라는 아주 관심있는 제목에 기대감을 갖고 읽었는데 부제인 무함마드와 살라딘 두 사람의 평전 같다.

너무 상세하게 전투 과정들이 묘사되어 좀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무함마드가 어떻게 종교 지도자가 되어 아랍 세계를 통일했는지, 또 살라딘은 십자군을 어떻게 몰아냈는지 상사하게 알 수 있었다.

이슬람인이 아닌 제3자의 눈으로 평가해서인지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아 코란을 작성한 걸 측두엽 간질 가능성으로 언급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문맹이었고 성직자도 아니었던 상인이 어느날 느닷없이 천사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아 경전을 읊조려 신도들을 모았던 것을 보면 오늘날 정신과적 관점으로 보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 같다.

신내림 받은 무녀들도 비슷한 케이스였을 듯하다.

유대교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당시 아랍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널리 퍼져 있었고 무함메드 역시 이들로부터 기본 교리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지난번 성경에 관한 책에서도 구약이 당시 중동이나 이집트 신화를 얼마나 차용했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모양이다.

확실히 무함메드는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는 아니었을지 모르나 아랍인들을 하나로 모아 종교로써 이슬람 공동체를 우뚝 세운 놀라운 열정과 언변의 소유자 같다.

신흥종교가 이렇게 보편적인 전세계적 종교로 발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참으로 놀랍다.

무함메드가 하루에 다섯 번씩 정결의식을 거치면서 기도를 바치는 것에 대해 불안장애를 해소하기 위함으로 해석한 부분이 재밌다.

비신도의 눈으로 보자면 확실히 강박증적 요소가 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것이야 유대인들도 지키는 의식이니 전통이라 할 수 있는데, 술을 금지했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사막에서 살아 남기 위해 신앙의 힘으로 뭉쳐서 규율을 엄격하게 유지하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고 주변을 정복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저자는 무함메드가 당시 기준으로는 페미니스트였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공식 부인만 13명이고 특히 9세의 아이샤와 혼인한 점은 오늘날의 관점으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슬람의 문제는 당시로서는 아랍 지역을 통일할 수 있는 진보적이고 보편적인 종교였을지 모르나 7세기의 가치관을 21세기 사회에도 적용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무함마드가 신으로 받들어진 예수와 같은 선지자가 아니라 사막에서 동료들을 이끄는 생활인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2부의 살라딘 평전도 재밌게 읽었다.

그의 제국이 100년도 못 되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잊혀졌지만 십자군을 몰아내고 이슬람 세계를 지킨 고결한 인격을 갖춘 이슬람 영웅의 이야기도 재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이슬람
야히야 에머릭 지음, 한상연 옮김 / 삼양미디어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슬람 사회나 문화권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원했는데, 이슬람교의 교리 설명에 치중한 책이다.

저자가 이슬람 교인이라 자신의 종교에 대한 오해를 풀고 근본적인 정신에 대해 쉽게 설명해 주는 것은 좋지만, 외부의 비판적인 시선은 배제하여 결국은 자기변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테러리즘 때문에 이슬람 교인들이 전 세계의 오해를 받고 특히 9.11 테러로 인해 사회로부터 인권 탄압을 받은 일은 가슴 아프다.

걸프전도 사담 후세인과 미국의 전쟁이었는데도 마치 이슬람 전체와 서구권이 대립하는 이미지라 독재자에 반대했던 주변 이슬람 국가들로서는 억울했을 법하다.

이슬람교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처럼 알라, 즉 유일신으로부터 가장 마지막에 계시받은 종교라 그런지 확실히 유대교나 기독교에 비해 합리적이다.

나도 한때 기독교인이었지만 삼위일체, 더 정확히 예수가 과연 신인가, 우리는 원죄를 갖고 태어났는가, 왜 야훼신은 특정 민족하고만 계약을 맺었는가 등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 때문에 죄인으로 태어났고 오직 신의 아들인 예수의 대속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논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수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원죄를 씻을 수 있었는가?

복음이 전해지지 못한 곳의 사람들은 구원이 불가능한가?

야훼는 전 우주를 관장하는 유일신인데 왜 특정 민족만 선택하여 그들에게만 계시를 내렸는가?

결국 야훼는 유대인들의 민족신이 아닌가?

이슬람은 이런 기독교 교리의 모순을 말끔히 해소하여 단순명료하게 천명한다.

신은 오직 알라 뿐이고 특정 민족하고 계약 따위를 맺지 않는다.

이슬람도 그저 알라를 믿는 민족일 뿐 특별하게 선택받지 않았다.

야훼와 알라는 결국 같은 개념의 유일신이고 유대인과 기독교인도 같은 신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알라는 대속할 아들이 필요없고 오직 인간이 자신을 믿고 최후의 심판일에 그 행동에 따라 구원 여부를 결정할 뿐이다.

인간은 원죄 같은 것 없이 그냥 무의 상태로 태어나 자유 의지에 따라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책임을 지고 마지막 날에 알라의 심판을 받을 뿐이다.

무함마드는 예수 같은 신이 아니고 최후로 알라의 계시를 전하는 선지자일 뿐이다.

다만 그 후로 다른 계시자는 없고 이것을 신앙고백으로 매일 외운다.

이슬람은 교회 밖의 구원을 인정하는가?

가톨릭에서는 그렇다고 알고 있고, 개신교에서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오기 전까지의 선지자들, 이를테면 모세나 예수, 심지어 석가모니, 조로아스터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의 지도자들도 알라의 계시를 전하는 사람으로 인정한다.

다만 무함마드는 마지막 선지자이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이슬람이 가장 알라의 계시를 정확하게 유일하게 전달하므로 이슬람 외의 새로운 종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와는 달리 강제 개종을 하지 않는 이유가 이런 까닭인 모양이다.

이런 점은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이슬람의 교리 자체는 명확하고 직관적이라 받아들이기가 더 쉽다.

그러나 종교와 세속의 삶이 분리되지 않은 현재의 이슬람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서구의 기독교는 국가와 완전히 분리되어 심지어 문화마저 지배하지 못하고 그저 매우 개인적인 신앙 생활을 이룰 뿐이다.

그러나 이슬람은 여전히 거대한 국가 권력이고 법적인 처벌권을 갖고 개개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여성의 복장마저 규제하는 이슬람을 21세기에 보편적인 종교로 수용하기는 매우 어려운 듯하다.

저자는 이슬람의 여성 차별에 대해 오히려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임을 강조하나, 여성이든 남성이든 다른 사람의 보호가 필요없고 오직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동등하게 똑같이 대우해주길 바랄 뿐이다.

군인이나 경찰을 뽑을 때도 기준에 맞는 사람을 뽑으면 되지 남자 여자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법고시나 의사고시, 공무원 시험 등을 볼 때 남녀 구분을 안 하는 것처럼 군인이나 경찰도 마찬가지로 해당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면 된다.

공평한 기회가 필요할 뿐 특별한 배려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줄곧 이 책에서는 여성을 배려해야 할 약자로 취급해서 남성과 똑같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존재로 한정짓는다.

요즘의 여성할당제 역시 여성을 보호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다.

순종하지 않는 아내를 때리라고 한 것은 정도가 매우 심할 때에 한정되는 것일 뿐이라는 해석은 얼마나 황당한가.

여성은 남성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족의 부양은 오직 남성에게만 한정된 것이므로 여성을 보호한다는 관습들도 결국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가정을 이룬 성인은 당연히 가족을 부양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종교적 교리를 세속의 법에 적용하고 있는 이슬람을 긍정하기가 힘들다.

기독교 교리도 많은 모순이 있겠으나 서구권은 이미 종교가 세속국가로부터 분리되어 개인의 영역에서만 기능하고 있지만 이슬람은 여전히 국가와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어 21세기의 보편적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고대 도교
장인성 지음 / 서경문화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도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의 도교문화"를 본 이후부터다.

아쉽게도 그 때 도록은 못 샀던 것 같고 나중에 정재서 교수의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책에서는 조선 시대 선비들 중 도교를 추구했던 사람들, 이를테면 김시습 같은 단학파가 소개됐고 이 책에서는 삼국시대에 포커스를 맞췄다.

삼국 시대 역사 이야기가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도교가 반드시 중국에서 시작된 토착 종교라 할 수 없고 샤머니즘, 산악숭배, 조류숭배 등의 특징을 동북아시아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생적 요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저런 무속 신앙은 너무나 보편적인 전통적 신앙이라 신선을 추구하는 중국의 도교라는 종교적 형식과는 별개인 듯하다.

도를 추구하여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된다는 개념 자체가 중국에서 체계화된 도교의 특성이라 생각된다.

샤머니즘, 특히 산신을 숭배하는 것이 도교인가?

오히려 도교가 들어와 샤머니즘과 융합된 것은 아닐까?

사극을 보면 주문을 외워 사람을 저주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런 呪禁 이 바로 도교 의식 중 하나라고 한다.

막연히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찔렀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종교적 체계가 있는 행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이런 주금을 엄금하고 극형에 처하기도 했다.

고구려가 당으로부터 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연개소문 이전의 영류왕 때라고 한다.

당나라는 불교가 성행한 나라라 생각했는데 국초에는 도교를 가장 중요시하고 주변 국가에 퍼뜨렸다.

무위지치, 혼란에 빠졌던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 다스림을 최소화 하는 정치를 펼쳤던 것이다.

고구려의 영류왕은 당의 도사를 받아들여 도교를 정권의 안정에 이용한다.

도교는 연개소문 시기에 성행했지만 그 이전에 당과의 원만한 외교관계를 위해서, 또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 영류왕이 먼저 청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도교는 백제에서도 성행했다.

저자는 궁남지나 월지 같은 연못과 그 위의 누각을 전부 도교적 요소라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좀 의아하다.

신라는 불교가 융성했으나 화랑도의 풍류를 도교적 요소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국 도교의 비조라는 최치원이 당에서 모신 절도사 고변이 바로 도교 신봉자였다.

당에서는 도교가 매우 성행했고 최치원이 그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도교적 색채를 풍겼으나 신라로 돌아온 후로는 신선이 되어 속세를 떠나기 보다 제세구민을 추구하는 불교와 유학을 더 강조했다고 한다.

확실히 삼국시대는 호국불교가 기본 이데올로기였으나 중국의 영향과 무속 신앙 등이 합해져 도교적 색채도 많이 남아 있었던 듯하다.

신선이 되기 위해 광물질을 갈아 만든 단약을 복용하다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약초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서양의 연금술사 같은 개념이었나 보다.

도교 자체의 내용도 재밌지만 삼국시대 도교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 이야기가 흥미로운 책이다.


<오류>

134p

무왕 이전의 왕위계승을 보면 위덕왕이 장기간 집권한 후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혜왕이 즉위하여 재위 2년 만에 사망했고

-> 일본서기에 따르면 혜왕은 위덕왕의 동생, 즉 성왕의 아들로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