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 도교
장인성 지음 / 서경문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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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도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의 도교문화"를 본 이후부터다.

아쉽게도 그 때 도록은 못 샀던 것 같고 나중에 정재서 교수의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책에서는 조선 시대 선비들 중 도교를 추구했던 사람들, 이를테면 김시습 같은 단학파가 소개됐고 이 책에서는 삼국시대에 포커스를 맞췄다.

삼국 시대 역사 이야기가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도교가 반드시 중국에서 시작된 토착 종교라 할 수 없고 샤머니즘, 산악숭배, 조류숭배 등의 특징을 동북아시아에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자생적 요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저런 무속 신앙은 너무나 보편적인 전통적 신앙이라 신선을 추구하는 중국의 도교라는 종교적 형식과는 별개인 듯하다.

도를 추구하여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된다는 개념 자체가 중국에서 체계화된 도교의 특성이라 생각된다.

샤머니즘, 특히 산신을 숭배하는 것이 도교인가?

오히려 도교가 들어와 샤머니즘과 융합된 것은 아닐까?

사극을 보면 주문을 외워 사람을 저주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런 呪禁 이 바로 도교 의식 중 하나라고 한다.

막연히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찔렀던 것이 아니라 나름의 종교적 체계가 있는 행위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라에서는 이런 주금을 엄금하고 극형에 처하기도 했다.

고구려가 당으로부터 도교를 받아들인 것은 연개소문 이전의 영류왕 때라고 한다.

당나라는 불교가 성행한 나라라 생각했는데 국초에는 도교를 가장 중요시하고 주변 국가에 퍼뜨렸다.

무위지치, 혼란에 빠졌던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 다스림을 최소화 하는 정치를 펼쳤던 것이다.

고구려의 영류왕은 당의 도사를 받아들여 도교를 정권의 안정에 이용한다.

도교는 연개소문 시기에 성행했지만 그 이전에 당과의 원만한 외교관계를 위해서, 또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 영류왕이 먼저 청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도교는 백제에서도 성행했다.

저자는 궁남지나 월지 같은 연못과 그 위의 누각을 전부 도교적 요소라고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좀 의아하다.

신라는 불교가 융성했으나 화랑도의 풍류를 도교적 요소로 이해하기도 한다.

한국 도교의 비조라는 최치원이 당에서 모신 절도사 고변이 바로 도교 신봉자였다.

당에서는 도교가 매우 성행했고 최치원이 그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도교적 색채를 풍겼으나 신라로 돌아온 후로는 신선이 되어 속세를 떠나기 보다 제세구민을 추구하는 불교와 유학을 더 강조했다고 한다.

확실히 삼국시대는 호국불교가 기본 이데올로기였으나 중국의 영향과 무속 신앙 등이 합해져 도교적 색채도 많이 남아 있었던 듯하다.

신선이 되기 위해 광물질을 갈아 만든 단약을 복용하다가 수은 중독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약초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서양의 연금술사 같은 개념이었나 보다.

도교 자체의 내용도 재밌지만 삼국시대 도교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 이야기가 흥미로운 책이다.


<오류>

134p

무왕 이전의 왕위계승을 보면 위덕왕이 장기간 집권한 후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혜왕이 즉위하여 재위 2년 만에 사망했고

-> 일본서기에 따르면 혜왕은 위덕왕의 동생, 즉 성왕의 아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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