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과 한평생 - 초대박물관장자서전
김재원 지음 / 탐구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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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출간 책이라 최근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이럴 수가!

책의 1/3이 한자다.

어쩐지 보존서고에 있더라니.

2013년도 판은 새로 찍은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읽은 책은 1992년도에 나온 것 같고, 이 당시만 해도 한자어가 이렇게 많이 쓰였다는 게 놀랍다.

인물명이 전부 한자라 특히 읽기 힘들었다.

30년 사이에 이렇게 글쓰기 환경이 많이 바뀌었나 놀랍다.

저자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이 분의 딸 김영나 교수의 책을 재밌게 읽어 관심을 갖게 됐다.

딸 셋 중 두 분이 모두 미술사 전공이라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었고, 둘째 딸은 소아과 의사였으니, 여자가 사회 진출하기 어렵던 시절에 참 대단하다.

부인도 일제 시대 때 동경의전을 나온 여의사였다고 한다.

가족사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 이 부분이 아쉽다.

무척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제목답게 박물관에 바친 한평생에 중점을 둔 자서전이라 그런 모양이다.

1909년에 함경도에서 태어났고 조실부모 했으나 조모가 계시고 부잣집이라 무려 일제 시대 때 독일 유학을 가게 된다.

아버지가 21세에 사망하고 어머니는 저자의 나이 8세 때 재가해 버렸으나 숙부 손에 크게 된다.

함흥 시내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숙부의 소실 집에서 숙식했다고 하니 드라마에 나올 법한 스토리다.

저자도 장티푸스에 걸려 1년을 병원에서 지냈는데, 숙부들과 사촌까지 이 때 죽고 만다.

정말 옛날에는 단명했던 것 같다.

요즘도 유학가는 게 쉽지 않은데 1920년대에 일본도 아니고 독일로 유학가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독일인 와이프와 귀국한 사촌을 보고 자극을 받아 저자도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게 된다.

독일 유학 당시 근대 미술사에 나오는 배운성이라든가, 이미륵 등과 교제한 이야기가 나와 흥미로웠다.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미술사 조교로 일하다가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자 한국으로 돌아와 보성전문학교에 강사로 출강하다가 해방을 맞았는데 이 때 미군정에게 뽑혀 박물관을 맡게 됐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전문 인력이 부족할 때라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전부 대학 교수가 되던 시절이라 대학으로 가지 않고 박물관에서 일한 것도 큰 결단이었다고 한다.


36세에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맡아 25년 동안 재직하면서 대학에 출강도 나가고 고분 발굴도 하고 해외 전시도 개최하는 등 많은 공적인 일을 수행하는 과정들이 나온다.

전 세계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모습들도 흥미롭게 읽었다.

해외여행이 제한되던 시절에 이런 기행문들이 신문에 실리면 화제가 됐을 것 같다.

한 사람의 일생을 정리하는 자서전이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맞물려 아주 흥미로웠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무척 자상한 아버지였을 것 같고, 북에 두고 온 친척들 이야기는 없어 궁금증이 생긴다.

정년퇴직할 때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자동차를 선물한 얘기가 나오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일반인은 운전면허 따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는지 선물로 받은 자동차를 유지하기 위해 운전수를 고용하고 기름값 등 유지비 때문에 고생한 얘기가 나와서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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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후예들 - 티무르제국부터 러시아까지, 몽골제국 이후의 중앙유라시아사
이주엽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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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준에서는 어렵다는 말 밖에는...

표지 디자인도 예쁘고 책 판형도 읽기 딱 좋게 잘 만들어졌으나 중앙아시아사에 대한 배경지식 부족으로 저자가 설명하는 바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적인 내용은 몽골이 원 제국 멸망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주치 울루스, 차가다이 칸국, 일 칸국, 대원 제국으로 나뉘어졌고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며서 19세까지도 계속 지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칸국은 러시아나 청나라에 흡수됐을지라도 혼인 정책과 고위직 등용을 통해 그 나라 역사에 중요한 인적 자원을 제공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흔히 오이라트를 서몽골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이들이 비록 몽골어를 쓰지만 국외자라는 확실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몽골인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민족적 기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중앙 아시아 유목민이라고 해서 다 몽골인은 아니라는 얘기.

반대로 러시아와 중앙 아시아의 여러 칸국은 물론 오스만 제국이나 사파비 왕조, 무굴 제국 등도 넓은 의미의 몽골 후예로 보고 있다.

투르크와 몽골이 전혀 다름을 강조하면서도 몽골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좀더 공부가 필요한 지역사다.


<인상깊은 구절>

38p

몽골제국 계승국가들의 유목민 지배층은 스스로를 몽골인 혹은 몽골인의 후예로 여겼다. 이들에게 돌궐제국, 셀주크제국, 호레즘제국, 카라한 왕조, 킵착 유목민 등과 같이 몽골제국의 출현 이전 존재했던 투크르계 국가나 집단을 선조로 여기는 계승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13세기 전반기에 몽골제국에 정복된 다양한 투르크계 언어 사용 집단들은 결코 하나의 민족 혹은 종족 집단이 아니었다. 우선 이들은 체질인류학적으로 다양한 집단을 이루었다.이들은 주로 황인종에 속했지만 적잖은 수는 혼혈 인종 혹은 백인종에 속했다. 유전학적으로도 단일 투르크 민족이란 현재뿐 아니라 몽골제국 시기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예컨대 현대 킵착 부족민(현 카자흐스탄의 한 부족), 투르크멘인(오구즈인의 후예), 유구르인(위구르인의 후예), 사하/야쿠트인(철륵 유목민의 후예)은 유전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이한 부계 기원을 갖는다. 이들이 공통의 선조 집단으로부터 갈라져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런 까닭에 중세 시기의 위구르인, 킵착 유목민, 셀주크제국의 오구즈인, 카라한 왕조의 투르크인 등은 서로 다른 기원 신화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를 동일한 민족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몽골제국 내에서 주치 울루스나 차가다이 울루스를 구성한 유목민들이 '소수의 몽골인'과 '다수의 투르크인'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몽골인과 다양한 부계 기원과 정체성을 가진 비몽골인 집단들로 이루어졌다. 후자 그룹에 속한 유목민들은 스스로를 하나의 '투르크' 민족이라고 보지도 않았고, 동시대인들고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이들은 개별적인 차원에서는 오히려 몽골인에 비해 소수였고 결국 칭기수 울루스들에 포함되어 '몽골인'이 되었다.

따라서 중앙아시아와 킵착 초원의 몽골제국 계승국가들은 몽골제국 등장 이전에 이미 소멸했거나 몽골제국에 정복되어 소멸했던 돌궐제국, 셀주크제국, 호레즘제국, 카라한 왕조, 킵착 유목민 집단 등을 자신의 선조로 내세운 적이 없다. 티무르제국, 무굴제국, 우즈벡 칸국, 크림 칸국의 공식 역사서들과 카자흐 칸국의 구전 설화들은 공통적으로 칭기스 칸과 몽골인을 자국의 선조로 기술한다. 주치 울루스와 차가다이 울루스의 몽골 후예들은 몽골어는 잊었지만 몽골인의 정체성을 잃은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41p

티무르제국의 지배층을 구성한 유목민 집단은 바블라스, 잘라이르, 술두스, 아를라트, 카라우나스 등과 같은 몽골계 부족민들이었다. 이들은 스스로를 '차가다이인'이라고 불렀다. 즉, 티무르제국은 '차가다이 울루스' 그 자체였고, 그 지배층을 이룬 집단은 '차가아티 몽골인'들이었다. 따라서 티무르제국의 출현은 차가다이 울루스 내에서 권력의 중심이 칭기스 가문에서 몽골 바를라스 부 출신의 티무르 가문으로 이동한 것을 의미했을 뿐이다. '몽골계' 국가가 '투르크계' 국가로 변모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43p

여기서 간과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러한 투르크 정체성이 돌궐 정체성과는 무관했다는 사실이다. 돌궐제국에 대한 기억은 몽골제국의 등장 이전 이미 내륙아시아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사실상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편 현 우크라이나에서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초원 지역, 즉킵착 초원의 몽골제국 후예들은 투크르 집단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애당초 투크르 집단명은 서돌궐계 부족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카자흐인과 크림 타타르인 같은 몽골제국의 후예들뿐 아니라 볼가강 유역의 여러 투르크계 언어 사용 집단들은 투르크 집단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54p

티무르는 정복지 대부분을 토착 세력을 통해 간접 통치했다. 방대한 전역을 적접 지배하기에는 차가다이인의 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반면 정주 농경 지역이었던 서차가다이 울루스와 일 칸국의 옛 영역은 자신과 아들들이 직접 통치했다.

57p

투르크멘은 9세기 들어 아랄해 북안의 초원 지대에 등장한 오구즈 유목민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구즈 투르크계 유목민들은 몽골제국의 등장 이전에는 셀주크제국을 세웠고 그 이후에는 오스만제국, 카라 코윤루, 악 코윤루, 사파비제국을 세웠다.

투르크멘 유목민들은 일반적으로 황인종에 속했던 다른 투르크계 유목민들과는 달리 혼혈로 인해 이란계 정주민의 외모를 갖게 된 집단이었다. 투르크멘인이 기후 등의 조건 때문에 작은 눈과 코, 넓은 얼굴 등을 특징으로 하는 투르크인의 형질을 상실하고 타직인(이란계 정주민)의 외모를 갖게 된 집단이라고 기록한다.

몽골제국 후예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티무르제국의 일원들은 투르크멘 유목민들을 동족으로 보지 않았을뿐더러 이들을 멸시하거나 적대시했다.

59p

몽골계 바를라스 부 출신의 티무르 일족은 칭기스 일족을 포함한 몽골 후예들과의 통혼을 통해서 몽골인 혈통을 이어나갔다. 이는 티무르제국을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로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이다.

67p

무굴제국 황제들이 몽골어를 사용했던 것도 아니고 3대 황제 악바르 이후로는 더 이상 중앙아시아인의 외모를 지녔던 것도 아닌데 무굴제국을 몽골제국의 계승국가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무굴제국의 건국자 바부르가 칭기스 칸과 티무르의 혈통을 이어받은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무굴제국의 건국 집단 및 핵심 지배층이 바부르와 함께 중앙아시아에서 당시 힌두스탄이라고 불린 인도로 이주해 온 '차가다이인'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란계와 인도계 모친을 둔 무굴 황제들은 중앙아시아인이 외모를 상실했지만 자신들이 몽골인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75p

바부르가 말하는 '투르크인'은 현대적 의미의 '투르크인'이 아니었다. 바부르는 '투르크인'이라는 집단명을 티무르 제국의 일원으로 지칭하는 데만 사용했다. 다른 투르크어 사용 집단인 우즈벡인, 카자흐인, 오스만인, 키질바슈인(사파비 제국의 투크르멘인)은 '투르크인'이라 부르지 않았다. 현대 터키인의 선조인 오스만 투르크인은 '룸Rum인', 즉 로마인(비잔틴인)이라고 불렀다. 한편 바부르는 칭기스 칸은 '모굴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바부르가 사용한 '모굴인' 명칭 역시 현대적 의미의 '몽골인'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 바부르의 투르크인 정체성은 현대적 의미의 '투르크인' 정체성이 아닌 '티무르 일족 정체성'이었다.

몽골와 포스트 몽골 시기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인'은 '타직인/사르트인'이라 불린 이란계 정주민에 대비되는 내륙아시아 유목민을 의미했으며 몽골인이 투르크인의 주류라고 인식되었다. 즉, 나바이는 칭기스 칸을 따라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온 몽골제국의 건국집단을 자신의 선조로 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바이나바부르의 '투르크인' 정체성에 대해 논할 때 이들이 차가다이 울루스 이전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카라한 왕조나 셀주크제국의 투르크인이 아닌 '몽골인'을 자신의 선조로 여겼었던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94p

모굴인은 차가다이인이나 두 주치 울루스계 민족인 우즈벡인과 카자흐인과 마찬가지로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동차가다이인의 몽골인 정체성은 몽골어가 아닌 몽골인 후예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들은동차가다이 울루스의 모굴인을 '몽골인'으로, 서차가다이 울루스의 차가다이인, 즉 티무르제국의 일원들을 '투르크인'으로 보는 일부 시각은결코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119p

일 칸국은 이외에도 이란이 시아파 이슬람 국가, 이란계, 투르크계 주민 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가 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시아파 이슬람은 울제이투 칸의 후원을 받았으며, 많은 수의 투르크어 사용 유목민이 몽골지배기에 이란으로 유입되었다. 따라서 '근대 이란'을 일 칸국의 유산으로본다.

131p

맘룩 술탄국은 일 칸국의 침공을 여러 차례 격퇴했는데 특히 키트부가가 이끄는 몽골 원정군을 격파한 1260년의 아인 잘루트 전투는 몽골 군대의 불패 신화를 깨고 몽골제국의 북아프리카 진출을 저지한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승리였다. 따라서 맘룩 술탄국은 동시대인들에게 이슬람 세계의 수호자로 여겨졌던 국가이다. 그러나 맘룩 술탄국은 몽골 세계의 일부를 이룬 국가이기도 했다. 맘룩 술탄국 내에서 활약한 몽골계 맘룩들이 그 증거다.

143p

모스크바 대공국은 몽골제국의 지배가 남긴 유산이었다. 몽골제국의 러시아 정복 이전의 모스크바는 외딴 시골 소도시에 불과했고 모스크바 공국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모스크바가 15세기 후반 러시아를 통일하게 될 신흥 국가로 발전하는 데에는 주치 울루스의 정치, 군사적 비호가 결정적인 역할을했다.

주치 울루스의 우즈벡 칸은 유리 3세를 자신의 누이 콘차카와 혼인시켰고, 유리의 후임 이반 1세에게는 러시아 전역에 대한 조세 징수권을 주었다. 이때부터 모스크바 대공국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다른 공국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해 주치 울루스의 수도 사라이에 보내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부를 축적한 모스크바 대공국은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공국으로 성장했다. 주치 울루스는 아울러 러시아 내 반몽골 반란 진압 임무도 모스크바에 맡겼다. 그 결과 타 지역의 주민들이 계속해서 부유하고 안전한 모스크바의 영토로 몰려들었고 이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인구 증가와 국력 강화로이어졌다. 러시아 정교회의 대주교 관구도 블라디미르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왔는데 이는 모스크바가 14세기 초중반 러시아의 중심부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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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2020-07-1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몽골의 후예라고 동시대인들은 모두 생각했다를 쓴 독자입니다

이견을 제시해서 죄송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오스만 제국이나 사파비 왕조가 몽골의 후예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이 책의 몇 페이지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고 보시나요? 무굴 제국과 그 전신인 티무르 제국은 몽골의 후예라고 보았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공식적으로 몽골의 후예라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이 책에서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설명)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유익한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초기러시아제국, 청제국, 오스만제국, 사파비왕조가 그 출현 및 발전 과정에서 몽골 제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지 이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몽골 제국의 후예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몽골 제국이 이들 제국들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준다는 점입니다. 이런 책은 아주 드뭅니다.

그리고 몽골 제국이 우즈벡 칸국, 카자흐 칸국, 북원 등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중앙아시아사학자들에게는 상식적인 일입니다. 별로 새로운 주장이 아닙니다. 이 주장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이들이 가졌던 몽골 제국 계승성을 실제로 규명하는 일입니다. 이 책만큼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책은 없습니다.

이 책은 투르크와 몽골이 전혀 다르다고 강조한 바 없습니다. 어느 페이지에 그런 내용이 나오나요? 이 책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투르크란 민족은 근대 이전에는 없었다라는 점입니다. 투르크계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들은 많았지만 이들 대부분이 투르크란 집단명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보지 않았다고 최신 연구들을 통해 밝힙니다. 투르크 민족의식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투르크어를 사용하던 칭기스 칸의 후예들이나 몽골계 부족민들 혹은 이들에게 동화된 집단들이 스스로를 몽골인 혹은 몽골 제국의 후예라고 여길 수 있었다고 이 책은 설명합니다. 특히 1장의 상자글들에서요.

이 책에서 몽골 제국의 후예로 다루는 집단들은 저자가 그렇게 규정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칭기스 칸의 혈통을 이어받았거나 몽골계 부족들이 주축을 이룬 집단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 스스로가 몽골 제국의 후예라고 주장했습니다. 저자가 그렇게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marine 2020-07-10 16:53   좋아요 0 | URL
반박글은 쓸 수 있지만 ˝이 책을 읽어 보신 게 맞는지˝와 같은 표현은 매우 무례하게 느껴집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니 좀더 예의를 갖춰 주길 바랍니다. 제대로 이해를 못했을 수는 있겠으나 책을 읽지도 않고 감상문을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1) 제가 이해하기로는 저자는 몽골이 단순히 북원 멸망 후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라 주치 울루스, 차가다이 울루스, 북원, 일 칸국 등의 형태로 계속 존재했다고 강조합니다. 모스크바 대공국이나 청나라, 사파비 왕조 등에 혼인정책과 고위직 등용을 통해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넓은 의미˝의 후예로 본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학술적으로는 올바른 표현이 아닐 수는 있겠으나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독자의 느낌으로 쓴 문장입니다.
148p
˝모스크바 대공국으로 이주해 온 칭기스 일족과 군 지휘관들은 러시아의 지배층에 편입되었다. 이들이 16세기 러시아 상류층에서 차지한 비율은 17~20%에 달했다. 이는 모스크바 대공국 내에서 몽골제국의 후예들이 차지하던 위상을 잘 보여주는 수치다. 특히 몽골인의 혈통을 계승한 러시아의 귀족층 인사들 중에는 러시아의 국가 수반의 자리에 오른 이들도 여럿 있었다.˝
287p
˝오스만제국의 일부 문인들은 칭기스 일족과 오스만 황제들이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다고 보았다. ... 오스만 왕조가 단절될 경우 크림 칸국의 칭기스 왕조가 뒤를 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견해도 오스만 지배층 내부에 존재했다.
몽골제국은 근대 이란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16세기 초부터 18세기 초중반까지 이란을 지배한 사파비제국은 이슬람 신비주의 종단인 사파비야에서 기원했는데, 이 종단은 일 칸국과 잘라이르 왕조의 후광과 재정 지원을 받으며 일 칸국의 중심부였던 아제르바이잔 지방에서 번성한 종교 집단이었다. 일 칸국의 후예들은 투르크멘 유목민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다고 추정되는데 이런 까닭에 19세기 이란을 지배한 투르크멘계의 카자르 왕조는 칭기스 칸과 몽골인의 후예를 자처했다.˝

2) 투르크와 몽골인에 대해서 인용한 부분은 너무 길어서 본문에 따로 적겠습니다.


책사랑 2020-07-1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marine님이 무례하게 느끼신 표현 죄송합니다. 책을 읽어 보셨냐는 표현은 삭제하겠습니다. 본문에 인용하신 <인상깊은 구절> 부분만 보아도 세심히 읽어 보셨습니다.

저는 marine님이 평이한(?) 평점을 주신 이유가 글 끝에 언급하신 ˝(이 책이 오스만, 사파비, 무굴 등을 몽골의 후예로 보는 것은) 몽골의 범위를 너무 넓게 잡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라는 평가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marine님께서 적으신 <인상깊은 구절>들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근대 이전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정체성의 본질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하고 또 몽골인들도 그러한 투르크 정체성에 ˝포함˝되었다고(상자글들과 ˝투르크인의 계보˝라는 책 제목 설명에서도 언급) 이야기합니다. 투르크와 몽골을 구분하는 게 아니라 양집단/개념의 올바른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몽골 제국의 (사파비, 러시아, 오스만에 대한) 영향과 (직계 후예 국가들에게 이어진) 계승성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인용하신 부분들은 객관적 사실(러시아와 사파비가 받은 몽골 영향)이거나 이들 나라들의 자체 주장(오스만의 몽골관, 카자르의 몽골관)입니다. 이 책이 이들 국가들을 몽골로 규정한 사례들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 이 책의 특징은 몽골의 범위를 넓게 잡은 점이 아니라 무엇이 몽골이고 왜 몽골인가를 설명하는 데 있어 역사적 근거가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또 수많은 관련 정보들을 제공한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이런 점들에서 드문 책입니다. 몽골 제국을 과장적으로 다루는 책, 글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성격의 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덧붙이자면 몽골 제국이 러시아, 이란, 오스만, 델리 술탄국, 맘루크 등에 미친 영향 관련 내용들은 이 책이 처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연구들을 요약 소개하는 것들입니다. 출처들을 분명 표시하고 있습니다.

앞 글에 포함되었던 제 무례한 표현 죄송합니다. 사실 marine님이 위의 감상문에 적으신 느낌이 사실 제 소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받는 느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달아 주신 것도 고맙습니다.





marine 2020-07-11 12:17   좋아요 0 | URL
저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역사에 관심이 많은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다만 책읽기에 아주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 읽어 보지도 않고 대충 서평을 쓴다는 점 때문에 저도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 자체가 어려워서 100% 다 이해를 못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사는 저에게는 아직 너무 어려워서 댓글에 대해 정확히 반박도 못하겠구요.
책 한 권을 읽으면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알라딘에 몇 줄 감상문을 쓰지만 제 개인 블로그에는 몇 시간에 걸쳐 중요한 문장을 옮겨 적고 있습니다. 나름 이렇게 열심히 독서를 하는 사람이라 저도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습니다.
제 수준에서는 맞다 틀리다 더 주장을 못할 것 같고 다만 제가 옮겨 적은 저 부분들을 읽고 막연히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책사랑 2020-07-1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직장생활을 하시면서도 개인 블로그에 몇 시간에 걸쳐 중요한 문장을 옮겨 적으신다니 존경스럽습니다. 진정한 독서가이자 연구자이십니다. 위에 발췌하신 부분이나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는 역사 전공자이신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말이다
후지사와 마치오 지음, 임희선 옮김 / 일빛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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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재밌다.

막연히 이탈리아 유적지에 역사적 사실들을 가볍게 섞은 책인 줄 알았는데 본격적인 평전이다.

열 명의 이탈리아 위인들을 선정해 당시 시대상을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코시모 메디치가 어떻게 피렌체의 정권을 잡고 독재를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너무너무 재밌다.

무산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1인 독재를 뒤에서 조종하기.

요즘 정치 상황과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원래 똑똑한 사람들은 민중을 움직이는 작업을 잘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비공식적인 공작 정치는 독재자가 보이지 않는 조율을 아주 잘 해야 하기 때문에 코시모의 후손들은 이 복잡한 조정에 실패해 쫓겨나고 만다.

왜 이탈리아는 근대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나 의아했었는데 바로 이 상업 세력이 지배하는 자치 도시들의 힘이 워낙 셌고 교황까지 가세해 군주가 이들을 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시칠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의 통일 노력은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실패하고 만다.

오히려 그의 자손들은 프랑스에서 건너 온 루이 9세의 동생 카이로 1세에게 밀려 왕권까지 뺏기고 만다.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 등이 절대주의 왕정으로 변모했던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하는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도 여러 자치 도시들이 난립하는 반도의 통일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살아 움직이는 이탈리아 역사 이야기, 인물을 통해 만나 보는 이탈리아의 역사가 이렇게 재밌었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책이었다.

왜 이런 재밌는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못 되는 것일까?


<오류>

121p

노르만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굴리엘모 2세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숙모인 콘스탄차가 왕권의 유일한 계승권자였다.

-> 콘스탄차는 굴리엘모 2세의 숙모가 아니라 고모 할머니다.

318p

대비의 눈에 든 사람은 도를레앙 공작의 딸인 안이었다. 그녀는 루이 14세의 손녀였으므로 다시없이 좋은 자리였다.

->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의 부인이 된 도를레앙 공작의 딸 안은, 루이 14세의 손녀가 아니라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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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동철 외 옮김 / 이산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산뜻한 표지와 달리 내용은 너무 지루하고 어려웠다.

일제 시대 때 나온 책이라니, 이렇게 오래 된 책인 줄 몰랐다.

아무리 역사서라 해도 역시 새롭게 해석된 책이 좋은 것 같다.

당나라 때라고 하면 무려 1400년 전 전인데 이렇게도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나 놀랍다.

확실히 당나라는 북방 유목민과 서역계 문화가 많이 전파되어 개방적이고 활달했던 것 같다.

측천무후의 잔치에서 무용수 900명이 춤을 췄다니 스케일이 정말 대단하다.

여자들도 말을 타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고 폴로를 하던 시대이니 유교 문화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다.

정월 대보름의 연등 축제는 황제인 중종 부부가 궁 밖으로 구경을 나갈 정도로 성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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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코란 - 무엇이 같으며 무엇이 다른가
요하임 그닐카 지음, 오희천 옮김 / 중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요즘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있어 독서 생활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25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이슬람교의 본질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이슬람의 교리와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탕이 되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대비시켜 설명하므로 본질적인 면들이 훨씬 선명하게 이해된다.

성경과 코란이라는 제목은 차이점 보다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구약을 바탕으로 창시된 것처럼, 이슬람교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 아래서 만들어진 새로운 종교다.

동양의 불교나 힌두교와는 전혀 결을 달리하는 "유일신"교이다.

이 세 종교의 핵심은 바로 유일신의 천지창조를 믿고, 세상의 종말과 사후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구약 역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이집트 신화에 많은 부분 차용했음을 여러 학자들이 밝히고 있다.

고대로부터 중동 지역에서 발생했던 종교의 원형이 세월이 지나면서 다양하게 변용되어 오늘날 보편적인 종교의 위치를 점하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이니,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이슬람교는 필연적으로 아라이바 반도에 전파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승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함마드는 삼위일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아라비아 반도의 특성에 맞는 유일신 운동을 전개한 것은 아닌가 싶다.

본문에도 여러 번 언급된다.

예수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였고, 무함마드 자신도 그 계보를 잇는 자이며, 다만 마지막으로 세상에 완벽한 계시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무함마드는 예수를 신과 동격으로 삼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했고 하나님은 인간사를 초월하신 절대자, 오직 한 분임을 주장했다.

사실 기독교 신학 중 가장 핵심이면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예수가 곧 신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예수 생전에 그는 자신을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후대에 신으로 높여진 것이다.

삼위일체는 무함마드의 오해처럼 세 명의 신으로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 보인다.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 문화에 맞게끔 유대교와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을 개조한 것이 바로 이슬람이라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그러므로 이 세 종교는 사실 같은 뿌리를 가진 셈이다.

보다 엄격하게 유일신 신앙을 지향하는 이슬람이 신학적으로 훨씬 선명해 보이면서도, 그런 분명한 교리 때문인지 여전히 세속과 분리되지 않아 현대사회에서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독교가 됐든 이슬람이 됐든 궁극적으로 신앙은 문화의 일부로 남아야 존재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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