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고종희 지음 / 한길아트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오랫만에 읽는 르네상스 그림 이야기다

한동안 서양화에 빠져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 그림들만 열심히 탐독했는데, 몇 권 읽다보니 중복되는 얘기가 너무 많아 잠시 밀쳐 뒀는데, 마침 도서관에 주문한 책이 도착해 열심히 읽었다

피사 대학에서 르네상스 그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저자의 약력이 말해 주듯, 꽤 수준있고 좋은 설명들과 엄선한 그림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현학적이지 않아 더욱 좋다

 

조토 이후 갑자기 뛰어난 솜씨를 보인데는, "명화의 기법"에서 호크니가 지적했듯 광학의 발견이 한 몫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거장들의 솜씨는 놀랍기 그지없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만 다뤘는데, 앞뒤 표지에 모자이크 식으로 배치된 수많은 초상화들을 보면서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는데 놀라는 게 아니라, 인물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라 감동적이다

그 순간의 인상과 느낌을 포착해 수백년 후의 독자들에게도 그림 속의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독일의 위대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초상화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가 직접 그린 세 점의 초상화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도를 도입했는데, 정말 성자처럼 보인다

또 그의 후원자였던 막시말리안 1세의 초상은 푸른 배경과 어울려,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라파엘로가 그린 "교황 율리우스 2세"라든가, "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 등을 보면, 고집스럽고 권위적이며 탐욕스럽기까지 한 역대 교황들의 이미지가 잘 포착된다

사진처럼 정교하다고 하지만, 사진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르네상스인들에게 사진과 대가의 초상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으면, 역시 초상화 쪽을 택했을 것 같다

라파엘로는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 보다 후대에 훨씬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고 한다

무릎까지 보여주는 도상이라든가, 대각선 방향으로 앉아 시선을 아래로 두는 방식 등, 기존 초상화 형식을 탈피해 후학들에게 라파엘로 양식을 모방하게끔 했다

그는 홀로 작업한 미켈란젤로와는 달리, 중소 기업 수준의 공방을 거느리고 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눴다는데, 붉은 색의 강렬한 색감이나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본떴음에도 신비한 분위기 보다는 인물의 사실적 분위기를 강조한 "마그달레나 스트로치" 등을 보면 과연 세속적인 영광을 누리고자 한 적극적인 성격이었을 것 같다

 

흔히 화가라고 하면 고흐처럼 예술혼이라는 광기와 싸우면서 세상과 대립하는 외로운 존재라 인식되기 쉬운데, 르네상스 화가들을 보면 그림이 출세의 방법이라는 느낌이 든다

(사실 화가도 직업인 이상, 세속적 성공을 지향하는 걸 탓하는 사람이 이상하기도 하다)

루벤스가 17세기에 유럽 왕실을 돌아다니며 외교관 역할을 한 것처럼, 르네상스 화가들도 교황과 제후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 갔다

특히 티치아노 같은 경우는 그의 초상화 모델이 되기 위해 서로 경쟁할 정도였다고 한다

교황 파울루스 3세 같은 경우는 그를 로마로 부르기 위해, 티니아노의 아들에게 성직을 수여한다고 꼬실 정도였으니 가히 그 명성을 알 만 하다

(티치아노는 아들의 성직 수여가 차일피일 미뤄지자, 교황의 초상화를 스케치만 하고 베네치아로 돌아가 버린다 감히 교황의 초상화를 그리다 말다니, 대단하다!!)

뒤러나 라파엘로 등도 화가로서의 명성을 이용해 작위까지 수여받았을 정도로 교황과 제후들의 총애가 대단했다

 

오늘날 르네상스 시대의 명작들을 보면서 그 위대함에 감탄하지만, 실은 대중에게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제작됐다는 속사정을 듣고 보면 왠지 모를 허탈감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 경위나 화가의 돈벌이 수단이었다는 외적인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림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이야 말로, 아무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쏟아 부을 수 있는 부르주아들의 경제적 여유를 피력하기 좋은 장르라고 한 부어스틴의 정의를 다시금 확인한다

베네치아나 피렌체, 플로방스 등의 산업 발전이 없었다면 르네상스의 화려한 예술도 부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예술 후원을 당연시 하는 그 전통이 부럽다

돈만 많으면 대접받는 게 아니라, 예술을 이해하고 후원할 수 있는 심미안까지 갖춰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셈이다

 

다 빈치는 초상화를 겨우 다섯 점 밖에 그리지 않았는데 (그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림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그 명성에 걸맞게 신비롭고 긴 여운이 남는다

"모나리자"야 워낙 유명하니까 달리 말할 필요도 없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지네브라 데 벤치"라든가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등의 매력도 상당하다

이 두 여인의 초상을 한 번 보면, 쉽게 그 형상이 잊혀지지 않는다

"모나리자"의 매력이 보일듯 말듯 한 신비로운 미소에 있듯, 다른 두 그림도 독자에게 묘한 인상을 준다

입술을 앙 다문 지네브라 데 벤치나, 담비를 안고 있는 우아한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인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체칠리아는 스포르차 궁의 가장 매력적인 여인이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 미모를 짐작할 만 하다

다 빈치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세 초상화에 모두 잘 드러난다

 

명작에 관한 책은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인쇄된 그림으로 봐도 가슴이 설레는데, 실제로 보게 되면 얼마나 흥분할지 모르겠다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고흐의 "해바라기"를 직접 본 이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림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쌓고 미술관에서의 관람에 도전해 보고 싶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정말로 인간의 기본 욕구인 모양이다

이렇게 많은 그림책들이 나와 눈을 즐겁게 해 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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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위한 변명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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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어스틴이 쓴 "이미지와 환상"에 이런 말이 나온다

위대한 문학 작품의 명성은 다 알고 있고 수없이 인용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베스트셀러와 고전의 차이는 사람들이 읽느냐, 읽지 않느냐의 차이라고까지 한다

그의 지적처럼, 카뮈는 흔히 회자되는 작가이면서도 정작 그의 작품인 "이방인"이나 "페스트" "반항인" 등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어쩌면 이 책을 쓴 저자의 말처럼, 위대한 작품을 어렵게 해석함으로써 먹고 사는 평론가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카뮈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평범한 독자인 나로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 카뮈를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평론집을 집어 들었다

적어도 저자 박홍규는, 복잡하고 난해한 말로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노벨상 수상자 혹은 프랑스 문학의 대가라는 점 때문에 무조건 찬양되고 숭상되는 우리 평론 분위기에 일침을 가하고 싶어 한다

 

제목은 "카뮈를 위한 변명"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비판적이다

저자는 카뮈에게 씌워진 지나친 찬사를 벗겨 내고 그 안에서 인간 카뮈를 찾고 싶었던 모양이다

첫 장에서 저자는 알제리와 식민 조선의 비교를 장황하게 늘어 놓으면서 카뮈의 식민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저자의 이런 시도는, 어찌보면 참 위험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이며, 온통 그에 대한 찬양 일색인 우리나라 주류 평론가들을 무시하는 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변증법의 논리대로 참이라고 인정되는 모든 명제에는 반드시 반론이 따르는 법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한 사상이라도 제발 이런 기본적인 법칙은 수용되었음 좋겠다

세상에 100% 완전무결한 게 도대체 존재하기나 한단 말인가?

 

저자는 카뮈를, 식민지 조선에 살던 일본 작가로 비유한다

일제가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를 참조한 것만 봐도 상당히 적절해 보인다

식민지 조선에 태어나 자랐고 조선의 자연을 사랑했음에도, 정작 식민지인으로서 느껴야 할 조선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작가의 소설에 어떤 조선인이 감동할 수 있겠는가?

카뮈는 할아버지 때부터 알제리로 이주해 젊은 시절을 그 곳에서 보낸 만큼, 알제리의 자연을 사랑하고 평생의 고향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소설에서 식민지인 알제리 국민이 느꼈을 고통과 억압에 대해서는 일절 서술하는 법이 없고, 알제리가 독립 전쟁을 치룰 당시도 그의 어머니가 알제리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독립을 반대한다

이런 카뮈의 작품은 당연히 알제리에서 금서 목록에 올랐다

우리 역시 일제 치하의 식민지를 경험한 이상, 제국주의자인 프랑스 보다는 식민지 알제리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의 평론가들은 그저 카뮈를 일방적으로 찬양하기만 하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저자는 통탄한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강대국 프랑스와 동일시하고, 예술과 자유와 평등, 인권의 나라에 대한 동경심에 비롯된 문화 사대주의가 아닌가 의심한다

흔히 프랑스 하면 떠올리는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도 실은 파리의 일부 상류 계층에 국한된 것이고, 우리는 지나치게 큰 환상에 쌓여 있다고 꼬집는다

문득 최연구가 쓴 "프랑스 문화 읽기"가 생각난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최연구는 미국 자본주의와 대립되는 프랑스의 위대한 문화에 대해 찬탄을 아끼지 않고, 미국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사대주의 의식을 비판했는데 정작 그 역시 프랑스 문화 사대주의 냄새를 풍긴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화, 세계화는 좋지만, 미국 대신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 문화가 대장이 되는 것도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프랑스 문화 사대주의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적인 찬양이나 비판은 지양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 같은 비판 방식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오히려 정말로 카뮈가 원했던 것, 진짜 카뮈의 모습을 찾길 바란다

실제로 카뮈는 꽤 잘 생겼다

험프리 보가트를 평생 좋아했다고 하는데, 나란히 배치한 사진을 보니 세계적인 영화배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준수한 외모다

더구나 노벨상을 탈 만큼 글도 잘 쓰고 프랑스의 지성인이라 인정받았으니, 여자들이 많이 따를 법 하다

카뮈는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알고 있었는지, 수많은 여자들과 사랑을 나눴다

절대 못 끊는 게 있다면 담배와 섹스(혹은 사랑)였다고 하니, 그의 성향을 알 만 하다

결혼하지 않고 보부아르와 계약 결혼 상태에서 자유로운 사랑을 나누던 샤르트르와는 달리, 결혼한 상태에서 간통한 셈이 된 카뮈는 본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고 싶으면 샤르트르처럼 결혼이 주는 안정과 특혜도 거부해야 "양심에 꺼리끼지 않는" 게 아닐까?

민중의 자유와 인권을 논하면서도 정작 함께 사는 배우자에게는 간통으로 인한 끊임없는 괴로움을 주는 이중적인 심리 구조를 보는 기분이다

(그런데 그의 두 번째 아내 역시 십 여살이나 어린 아름다운 여배우였던지라, 카뮈도 아내 마리아를 둘러 싼 남자들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다고 한다)

 

저자는 카뮈를 아나키스트로 본다

아나키스트란 무정부주의자라기 보다는 권력과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로 보는 게 옳다고 한다

그는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했지만, 그렇다고 프랑스의 지배를 지지한 것도 아니다

알제리인과 프랑스인이 모두 화합하여 국가의 지배가 없는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자고 했다

이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저자의 표현대로 일제 치하의 조선인들에게 일본인과 함께 사는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자고 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다

카뮈는 자신이 낳고 자란 알제리의 현실에 너무나 둔감했다

늘상 옆에서 지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식민지인으로 겪어야 할 알제리인의 고통과 억압에 항상 무지했다

그의 소설 "이방인"을 봐도 태양 때문에 무심코 저지른 살인의 희생자 알제리인에 대해서 어떤 묘사도 없다

 

카뮈가 식민지 알제리에 대해 어떤 문제 의식도 안 가졌던 것처럼, 그는 조국 프랑스에 대해서도 별다른 자부심을 갖지 않았다

프랑스는 그저 우연히 태어난 곳일 뿐이다

카뮈는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자유를 옹호하는 신념에 따라 레지스탕스 활동도 하고,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한다

물론 공산주의가 더 큰 억압을 가한다는 것을 깨닫고 당령에 반항하다 추방당한다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찬미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려고 입대하나, 결핵 때문에 거부당한다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확실히 카뮈는 권력과 억압에 저항하고 부르주아 속성을 비판한 비공산주의 좌파였던 모양이다

샤르트르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이 속한 계급의 모순을 깨닫고 좌파 지식인의 선봉에 섰던 것과 달리, 카뮈는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이 주는 괴로움을 내적으로 승화시켜 노동자 편에 선 인물이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처럼,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 선 사람은 반드시 그 내부에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가 자리잡기 마련이다

저자는 표현은 안했지만, 카뮈보다 샤르트르를 더 높게 평가하는 듯 하다

 

연극을 사랑한 카뮈는 여러 소설을 각색하고 연출했으며, 스스로 배우가 되기도 하고 연극의 여주인공들과 실제로 사랑을 나눈다

문학이 지배자로 군림하려고 하나, 실상 허공에 군림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반면, 연극이야 말로 여러 사람들이 어울려 대등한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룬다고 예찬한다

그가 정말로 원했던 사회는 바로 이런 평등한 공동체, 혹은 권력과 억압이 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연극 같은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연극에서나 가능한 이상향일 뿐이지만 말이다

 

300페이지가 채 못되는 길지 않은 평전인데, 역시 위대한 작가의 평전이라 쉽지는 않다

비교적 저자가 쉽게 풀어 쓰긴 했지만, 카뮈가 나타내려고 한 부조리한 세상의 고발이 쉽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이방인"과 "페스트"를 새롭게 읽어봐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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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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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엄마, 아빠와 함께 비디오로 "위대한 게츠비"를 본 기억이 난다

전체적인 내용은 잘 모르고, 자기 집 수영장 에어 매트 위에 엎드려 쉬고 있을 때 한 남자의 총을 맞고 그대로 죽어 버린 가엾은 개츠비 역의 로버트 레드포드만 생생히 기억난다

그 장면이 어찌나 인상적이었는지, 그 후 나는 레드포드의 팬이 되어 그가 나오는 영화는 모조리 섭렵하곤 했다

오래 전부터 숙제처럼 미뤄 두던 "위대한 게츠비"를 이제서야 비로소 읽게 됐다

늘 그렇지만 영화는 소설과 참 다르다

 

한 여자에게 일생을 걸어 성공한 뒤 다시 그녀에게 나타났으나, 그녀가 낸 교통사고에 휘말려 희생자의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내용이라 알고 있었는데 소설은 독특하게도 제 3의 인물에 의해 서술된다

개츠비가 평생 사랑했던 여인, 데이지의 사촌인 닉이 화자이다

단순한 서술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주인공이고 게츠비와 데이지 이야기는 그저 한 사건에 불과한 느낌까지 준다

어쩌면 피츠제럴드가 말하고 싶었던 건 단순한 사랑 얘기가 아니라, 서부의 시골 청년이 동부의 뉴욕으로 건너와 성공했으나, 치정 사건에 휘말려 허망하게 죽고 만 부질없는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1920년대 미국의 서부는 시골이고 동부는 출세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야망이 숨쉬는 곳이었나 보다

화자인 닉 역시 증권맨으로 성공하고자 뉴욕에 건너 오지만, 게츠비 사건을 계기로 동부를 떠난다

그는 아마도 출세와 성공의 덧없음을 봤을 것이다

 

데이지란 이름은 흔한 것 같으면서도 산뜻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데, 게츠비가 사랑한 여인은 그 이름에 잘 어울린다

어떤 평론에서 본 것처럼 그녀는 물질주의에 경도되어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없는 부박한 영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저 비난만 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그저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복잡한 것을 꺼리는 태도는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데이지는 부잣집 딸인데다, 사교계에서도 촉망받는 여성이었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개츠비는 부유하고 아름다우며 세상 근심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이 아가씨에게 넋이 나간다

아마도 데이지는 게츠비에게 이루고 싶은 꿈이고 목표였을 것이다

게츠비는 데이지를 통해 자기가 얻고 싶은 구체적인 미래를 실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돈 때문에 데이지를 사랑한 것은 절대 아니다

데이지가 그의 곁을 떠난 후 5년 동안 돈을 모아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 후 사랑을 고백했듯, 게츠비는 기본적으로 신실하고 순수한 청년이다

게츠비에게 있어 데이지란, 평생 이루고 싶은 소망과 목표의 결정체였고 하나의 이상형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돈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수 없다

만약 그가 데이지를 동경했던 것이 단지 돈 뿐이었다면, 부자가 된 후에 다시 데이지 앞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돈만 많으면 다른 여자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법이니까

 

이 소설을 피츠제럴드의 자전적 이야기라고도 하는데, 그 역시 부유한 판사의 딸이었던 젤다를 얻기 위해 많은 애를 쓴다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젤다는 가난한 청년 피츠제럴드에게 별 관심이 없고, 그는 젤다를 얻기 위해 열심히 글을 써서 마침내 사회적 명사가 된 후 그녀와 결혼한다

이 두 부부는 사교계의 유명한 커플이었다고 한다

연예인과 비슷할 정도로 그들의 동정은 뉴스의 대상이 됐다

비록 결말은 불행하지만 말이다

 

데이지는 그저 게츠비를 사랑할 뿐이다

게츠비가 그녀를 우상으로 섬기는 것과는 다르게, 가벼운 연애 감정을 대한 것 뿐이다

사실 우리 주변의 사랑이란 데이지가 한 때 게츠비에게 끌렸던 것처럼, 호감을 느끼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수준이다

게츠비처럼 자기 삶 전체를 바치는 그런 사랑이 오히려 드물고 특이하다

문제는 게츠비의 이 열정과 지고지순함을 데이지가 알아 줘야 하는데, 이 데이지란 여자는 목숨을 건 사랑의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아주 단순한 여자라는 사실이다

게츠비가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 진절머리가 난 그녀는 또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그와 어울리고 자신이 낸 사고를 게츠비가 덮어 썼을 때도 그에게 일절 말 한 마디 없다

오히려 그녀는 복잡한 사건을 피하기 위해 남편과 여행을 떠나 버린다

게츠비가 희생자의 남편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했을 때 조차 그녀는 장례식에 참석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될까 두려웠을 것이다

도대체 게츠비는 겨우 이런 평범하고 소심하며 도덕성이 결여된 한심한 여자를 우상으로 섬겼단 말인가!!

그의 열정과 순수함이 가엾다

결국 그녀가 저지른 죄값을 대신 치른 게츠비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아무 의미도 보람도 없는 개죽음에 불과했다...

 

데이지의 남편이란 작자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그녀의 남편 톰은 데이지 차에 치어 죽은 머틀의 정부였다

뻔뻔하게도 톰은 머틀이 죽은 후, 남자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던 그녀의 남편 윌슨에게 게츠비를 들먹거린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차를 타고 있었는데, 물론 톰은 운전자를 게츠비로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남편에게라도 고백할 용기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윌슨에게 차의 주인이 게츠비라고 알려 주고, 사실은 그가 머틀의 정부였다고 거짓말까지 한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틀과 자신의 관계가 탄로날까 봐 조마조마 하던 톰은, 이 기회에 게츠비에게 뒤집어 씌우고 자신은 쏙 빠져 나온 것이다

정부와의 관계에 진실한 사랑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죽은 머틀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닐까?

한 때 사랑을 나누던 여인이 차에 치여 죽었는데, 자기가 빠져 나올 궁리만 하다니, 그 아내에 그 남편이라 할 만 하다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던 닉은, 진실을 알리지도 못한 채 조던에게 이별을 고하고 뉴욕을 떠난다

조던 베이커는 골프 선수에다 사교계를 주름잡는 멋진 뉴욕 여성인데, 데이지의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뉴욕에 머물면서 조던을 사모하기도 했으나, 진실함이 결여된 화려한 겉모습은 부질없는 짓이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닉은 조던의 모습에서 데이지를 발견했을 것이다

데이지나 조던은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편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그저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개츠비의 사랑과 헌신이 너무나 위대해, 평범한 우리들은 부끄럽고 초라해진다

데이지가 그 사랑을 받아 들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의미만이라도 깨달았다면, 가엾은 개츠비의 죽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텐데...

 

게츠비의 장례식은 부와 명성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일부러 신문의 부고란에 개제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대저택에서 놀고 마시던 사교계 인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진실한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하고 오직 데이지에 걸맞는 남자가 되기 위해 애쓴 그의 삶은 이렇게 덧없다

그의 아버지가 닉에게 보여 준 젊은 시절 게츠비의 낙서는 내 가슴을 무척 아프게 한다

가진 것은 없으나 꿈과 야망을 간직한 이 신실한 청년은 새벽 5시에 기상해 잠들 때까지 빡빡한 시간표 속에서 자신을 단련한다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앞을 향해 달리던 게츠비는, 데이지라는 잘못된 목표를 세우는 바람에 허망하게 죽고 만다

인생이란 이렇게 덧없는 것인가...

 

게츠비나 데이지의 심리 묘사가 뛰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화자가 닉이다 보니 그저 관찰자의 입장에서 짤막하게 서술될 뿐이다

오히려 닉이 느끼는 삶에 대한 통찰이 주를 이룬다

게츠비를 만나고 그의 죽음을 통해 인생을 다르게 본 닉의 성장기 같기도 하다

독특한 서술 구조가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다시 한 번 로버트 레드포드의 멋진 연기로 게츠비를 만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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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5
이은희 지음 / 명진출판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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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읽어 주는" 시리즈는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 때문에 신뢰가 안 갔다

한젬마라는 유명세에 비해, 책 내용이 별 게 없어 실망한 기억이 있다

"과학 읽어 주는 여자"의 추천사에서도 나온 말이지만, 과학의 대중화를 외치다 보면 과학 자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대중의 눈높이도 중요하지만, 질적 수준을 떨어뜨린다면 이미지를 위해 본질을 놓치는 꼴이 될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저자, 도킨스가 한 말처럼 대중에게 과학을 알린답시고 과학에 물을 타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단 과학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역사나 철학, 문학, 예술 등등 모든 분야의 학문에 해당되는 말이다)

다행히도 이 책의 저자는 질적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쉽고 재밌는 시각으로 대중에게 다가선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나이 지긋한 학자가 아니라 약간 걱정은 했지만, 과학 교양을 쌓기에 부족함이 없는 좋은 책이다

 

사실 생물학은 물리학이나 화학 등 보다 훨씬 재밌고 쉬운 학문이다

내가 생물학 계통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고 일련의 과정이 마치 소설 읽듯 자연스럽게 전개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학이나 화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다

면역학이나 생화학 교과서를 읽다 보면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들이 하나의 스토리를 형성할 만큼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는 착각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생물학의 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과학이야 말로 인간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훌륭한 예술이라고 했는데, 과학자와 예술가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을 공유한 비슷한 집단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과학은 더 이상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북돋아 주는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우주의 신호를 받아 들이는 세티 계획은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칼 세이건의 유명한 영화 "콘택트"에서 소개된 내용인데, 영화를 봤지만 세티 계획이라는 용어 자체는 처음 접했다

우주의 신호를 수집하는 이 광대한 설비 기구는 MS의 공동 설립자인 폴 앨런으로부터 1000만 달러를 기증받으면서 건설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빌 게이츠 역시 그의 고향 도서관에 천만 달러를 기증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미국 갑부들의 놀라운 기부 문화를 접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도 기업 문화가 정착되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되길 기대해 본다

 

앨런의 기부금으로 설립한 이 대규모 망원경 단지는 외계의 전파를 수집하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전세계 유저들이 잠시 컴퓨터를 쉬는 동안 신호 분석을 시도한다고 한다

컴퓨터를 켜 놓고 잠깐 다른 일을 할 때, 스크린 세이버 안에서 우주 신호 분석이 이뤄지는 셈이다

세티 계획은 드넓은 우주 안에 있을 또 다른 지적 생명체를 찾는 원대한 계획이다

우주 안에 인간 외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 만으로 우리의 가슴은 설렌다

우리의 시각이 좁은 지구에 갇히지 않고 태양계 밖으로 뻗어 가는 순간, 인간의 상상력과 모험심, 호기심 등은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별 이득도 없는 우주 계발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고, "콘택트"의 엘리처럼 우주 신호에 매일 귀기울이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태양계 밖으로 처음 내보낸 파이오니어 10호가 30년 만에 신호를 보내왔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우주 미아가 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원소 모형과 태양계의 구성, 손 흔드는 남녀등이 그려진 (칼 세이건의 작품이다) 파이오니어 10호는, 어딘가에 있을 지적 생명체에게 우리 존재를 알리기 위해 탐험 중인 것이다!!

 

머리카락의 생성 주기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발끝까지 머리칼을 기를 수 없다거나, 잘린 머리칼은 유전자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모근째 뽑힌 머리칼만 유용하다는 얘기, 자외선이 해로운 까닭은 DNA 구조를 파괴해 잘못된 염기 배열을 만들기 때문이며, 장미는 파란색을 만드는효소가 부족해 델피니딘 성분을 합성하지 못하므로 피튜니아 꽃에서 Blue gene을 찾아 아그로박테리움에 이식한 후 장미 유전자에 침투시켜 파란 장미를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 등 흥미있는 주제들이 많다

드라큘라는 포르피린증에 걸려 햇빛에 민감하므로 밤에만 활동했다거나 (니콜 키드먼 주연의 "The others"를 피부과 의사와 함께 봤는데 그도 주인공들이 포르피린증에 걸렸을 거란 얘기를 했다), 멜라토닌을 이용한 생체 시계 조절 (원할 때 잠들고 깨는 것), 2세 이후 더 이상 분열하지 않기 때문에 알쯔하이머 병이나 파킨슨 병 등에 걸리면 치명적인 뇌세포 이야기 등도 흥미로웠다

 

특히 남자들의 피임법에 얽힌 얘기가 재밌다

흔히 피임이라면 여자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호르몬 주기를 이용한 피임약의 탄생이 여성들을 해방시킨 건 사실이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해야 하므로 꽤나 힘든 일이다

남자들이 피임을 할 경우 테스토스테론에 영향을 미쳐 성기능도 함께 저하되므로 절대 남자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정자의 머리에 붙은 애크로솜을 분해해 밖으로 배출을 막는 NB-DNJ라는 피임약도 개발 중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아무리 좋은 효과의 피임약이 나와도 절대 먹지 않겠다고 한다

콘돔 끼는 것조차 쾌감이 줄어든다고 거부하는 이들이니, 여전히 생명 탄생의 책임감을 함께 나누는 것은 요원한 일인 모양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매일 복용하는 번거러움을 줄이기 위해 4주 주기가 아닌, 12주 주기의 피임약이 등장했다

매달 생리를 하는 대신, 1년에 계절별로 4번만 하면 되니까 이름도 Seasonale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문제들이지만, 무심코 넘어가기 쉬운 과학적 주제들이 친절하고 자상한 해설과 함께 잘 서술됐다

많은 삽화와 사진들과 함께 큼직큼직 하게 편집되서 읽기도 편하다

두 어 시간이면 금방 한 권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부담스럽지 않다

우리 일상의 과학에 대해 호기심이 있다면 머리 식히는 기분으로 가볍게 집어 들어도 괜찮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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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생각보다 재미없는 책이다

"달의 궁전"에서 보여준 숨막히는 우연의 일치들은, "신탁의 밤"에서 그 힘을 잃고 길을 헤매는 기분이다

작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동어 반복인데, 폴 오스터는 워낙 개성이 뚜렷해서인지 어떤 책을 읽어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신탁의 밤"이라는 제목은 참 독특하고 매혹적이다

분위기로 봐서 뭔가 예언적인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의미였다

글을 쓰는 것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달의 궁전"에서 보여 준 세 가지 액자 소설을 여기서도 차용한다

시드니 오어는 소설을 쓰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 닉 보언은 편집자이며, 소설 속에서 그는 르뮈엘 플래그가 등장하는 "신탁의 밤"을 읽는다

르뮈엘 플래그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결혼하는 날 밤 사랑하는 신부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미리 보고, 아직은 아무 죄도 없는 그녀를 버릴 수 없어 자신이 목을 매고 만다

미래를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예다

 

"달의 궁전"에 등장한 "문 팰리스"라는 레스토랑처럼, "신탁의 밤"에서는 "페이퍼 팰리스"라는 문구점이 등장한다

이 곳 주인은 중국인 장인데, 시드니를 친구로 생각하고 자신이 투자하는 창녀촌으로 데리고 간다

그는 장을 부도덕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그가 소개해 준 프랑스 미녀 마틴과 섹스를 한다

시드니는 자기도 모르게 유혹에 빠져 섹스했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며, 장에게 인사도 없이 창녀촌을 떠난다

사실 이 부분에서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서로 보면 술집에서 섹스한 것이 도덕적 괴로움을 주는 일인지, 의심스럽다

남자의 본능을 내세우며 스트레스를 푼다든지, 접대 받았다다는 식으로 전혀 양심에 꺼리끼지 않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보면 웃을 일이다

더구나 장은 창녀촌에 투자하는 자신을 비웃으면서, 정작 시드니 자신은 창녀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그와의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린다

여자를 소개만 받고 즐기기만 할 뿐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는 일인가?

바니 클럽에 가면 그녀들의 몸매를 눈으로 즐길 수는 있으나, 직접적인 관계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칭 도덕적이고 보수적이라는 한국에서는 버젓이 자행되는 매매춘이 문란하고 타락한 미국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요구하는 일인지, 참 아이러니컬 하다

우리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성 구조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착잡했다

 

시드니의 아내 그레이스와, 그녀의 후원자 존 트레즈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결론은 모호하다

존은 잘 나가는 소설가로 그레이스의 삼촌 같은 사람이고, 그녀와 결혼한 시드니에게도 무척 잘 대해 준다

시드니는 선배 작가로서 존을 존경한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임신한 후 낙태 여부에 대해 고민하자, 존과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존 역시 그레이스가 낙태하길 원했던 것이다

또한 존의 아들 제이콥은 그레이스를 매우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 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 탓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레이스는 존과 시드니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누구 아이인지 확실치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시드니는 자기 소설 속의 소설인 "신탁의 밤"이 주는 교훈을 생각하며, 혹시 이 소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게(자신과 그레이스의 파멸 같은) 될까 봐 찢어 버린다

궁핍으로부터 구원해 줄 소설이라고 열과 성을 다해 쓰던 소설을 말이다

 

시드니의 예감처럼 소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경우도 있을까?

흔히 불길한 일에 대한 직감이나 육감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불길한 느낌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드니는 존과 그레이스의 관계를 의심하고, 결정적으로 존의 아들 제이콥이 그레이스를 폭행해 유산까지 시키지만 그레이스가 문제 삼지 않는 한, 자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겠다고 다짐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배우자의 부정에 대해, 남자 쪽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데 시드니의 경우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사실이 밝혀지면 낫겠지만, 의심은 현실보다 훨씬 더 끔찍한 상상을 낳기 때문에 더 괴로운 법이다

그런데도 불길한 일을 막기 위해 공들이던 소설을 찢어 버리고, 모든 것을 묻기로 결심한 시드니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 만 하다

 

그의 소설에 빼 놓지 않고 등장하는 우연적인 사건이 여기서도 나오는데, 시드니 소설의 주인공 닉이 돌벼락을 맞고 죽을 뻔 한 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낯선 도시로 떠나는 대목이다

이거야 말로 "달의 궁전"에서 에핑이 사막에서 죽을 뻔 한 후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닉은 전화 번호부 모으는 일을 하는 흑인 운전수 밑에서 일을 하면서, 그가 미치광이가 아닐까 염려하면서도 이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면 새로운 인생이란 없고, 차라리 뉴욕으로 돌아가 옛날 그대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뉴욕에서 돌벼락 맞은 사건이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안 끼친 게 된 셈이므로 그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는 사건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려는 주인공들은, 우연을 강조하는 오스터의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달의 궁전"에 익숙한 독자라면 식상할 것이고, 오스터를 처음 접한 독자라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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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ian 2004-08-1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의 궁전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우연은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