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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밤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생각보다 재미없는 책이다
"달의 궁전"에서 보여준 숨막히는 우연의 일치들은, "신탁의 밤"에서 그 힘을 잃고 길을 헤매는 기분이다
작가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동어 반복인데, 폴 오스터는 워낙 개성이 뚜렷해서인지 어떤 책을 읽어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신탁의 밤"이라는 제목은 참 독특하고 매혹적이다
분위기로 봐서 뭔가 예언적인 일이 일어나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의미였다
글을 쓰는 것은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달의 궁전"에서 보여 준 세 가지 액자 소설을 여기서도 차용한다
시드니 오어는 소설을 쓰고, 그 소설 속의 주인공 닉 보언은 편집자이며, 소설 속에서 그는 르뮈엘 플래그가 등장하는 "신탁의 밤"을 읽는다
르뮈엘 플래그는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졌는데, 결혼하는 날 밤 사랑하는 신부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미리 보고, 아직은 아무 죄도 없는 그녀를 버릴 수 없어 자신이 목을 매고 만다
미래를 아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예다
"달의 궁전"에 등장한 "문 팰리스"라는 레스토랑처럼, "신탁의 밤"에서는 "페이퍼 팰리스"라는 문구점이 등장한다
이 곳 주인은 중국인 장인데, 시드니를 친구로 생각하고 자신이 투자하는 창녀촌으로 데리고 간다
그는 장을 부도덕적인 사람이라 생각하면서도, 그가 소개해 준 프랑스 미녀 마틴과 섹스를 한다
시드니는 자기도 모르게 유혹에 빠져 섹스했다는 사실에 괴로워 하며, 장에게 인사도 없이 창녀촌을 떠난다
사실 이 부분에서 공감이 잘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서로 보면 술집에서 섹스한 것이 도덕적 괴로움을 주는 일인지, 의심스럽다
남자의 본능을 내세우며 스트레스를 푼다든지, 접대 받았다다는 식으로 전혀 양심에 꺼리끼지 않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보면 웃을 일이다
더구나 장은 창녀촌에 투자하는 자신을 비웃으면서, 정작 시드니 자신은 창녀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분노해 그와의 친구 관계를 끊어 버린다
여자를 소개만 받고 즐기기만 할 뿐 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는 일인가?
바니 클럽에 가면 그녀들의 몸매를 눈으로 즐길 수는 있으나, 직접적인 관계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칭 도덕적이고 보수적이라는 한국에서는 버젓이 자행되는 매매춘이 문란하고 타락한 미국에서는 양심의 가책을 요구하는 일인지, 참 아이러니컬 하다
우리의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성 구조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착잡했다
시드니의 아내 그레이스와, 그녀의 후원자 존 트레즈 간에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고 짐작은 했지만, 결론은 모호하다
존은 잘 나가는 소설가로 그레이스의 삼촌 같은 사람이고, 그녀와 결혼한 시드니에게도 무척 잘 대해 준다
시드니는 선배 작가로서 존을 존경한다
그런데 그레이스가 임신한 후 낙태 여부에 대해 고민하자, 존과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존 역시 그레이스가 낙태하길 원했던 것이다
또한 존의 아들 제이콥은 그레이스를 매우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자기 아버지와의 부적절한 관계 탓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레이스는 존과 시드니 사이를 오가며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누구 아이인지 확실치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시드니는 자기 소설 속의 소설인 "신탁의 밤"이 주는 교훈을 생각하며, 혹시 이 소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게(자신과 그레이스의 파멸 같은) 될까 봐 찢어 버린다
궁핍으로부터 구원해 줄 소설이라고 열과 성을 다해 쓰던 소설을 말이다
시드니의 예감처럼 소설이 미래를 예언하는 경우도 있을까?
흔히 불길한 일에 대한 직감이나 육감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우리의 인지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불길한 느낌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드니는 존과 그레이스의 관계를 의심하고, 결정적으로 존의 아들 제이콥이 그레이스를 폭행해 유산까지 시키지만 그레이스가 문제 삼지 않는 한, 자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가겠다고 다짐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배우자의 부정에 대해, 남자 쪽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는데 시드니의 경우는 매우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차라리 사실이 밝혀지면 낫겠지만, 의심은 현실보다 훨씬 더 끔찍한 상상을 낳기 때문에 더 괴로운 법이다
그런데도 불길한 일을 막기 위해 공들이던 소설을 찢어 버리고, 모든 것을 묻기로 결심한 시드니가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 알 만 하다
그의 소설에 빼 놓지 않고 등장하는 우연적인 사건이 여기서도 나오는데, 시드니 소설의 주인공 닉이 돌벼락을 맞고 죽을 뻔 한 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낯선 도시로 떠나는 대목이다
이거야 말로 "달의 궁전"에서 에핑이 사막에서 죽을 뻔 한 후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닉은 전화 번호부 모으는 일을 하는 흑인 운전수 밑에서 일을 하면서, 그가 미치광이가 아닐까 염려하면서도 이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면 새로운 인생이란 없고, 차라리 뉴욕으로 돌아가 옛날 그대로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뉴욕에서 돌벼락 맞은 사건이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안 끼친 게 된 셈이므로 그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지 않기로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수 있는 사건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려는 주인공들은, 우연을 강조하는 오스터의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달의 궁전"에 익숙한 독자라면 식상할 것이고, 오스터를 처음 접한 독자라면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