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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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좀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로서는 도저히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한 번 더 읽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다만 오스터의 그 놀라운 문장력과 풍부한 예화들에는 감탄을 보낸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도 고전 읽기를 강조했지만 (사실 그가 많이 읽는 것 외에는 소설 잘 쓰는 별 비법이 없다고 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 폴 오스터 역시 아주 많은 고전들을 읽는 것 같다

그가 읽은 책들에 대한 느낌들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또 그의 주인공들은 탐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쉽게 공감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을 계속 읽는 까닭은, 책에 몰두하는 바로 그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뉴욕 3부작"이라는 제목으로 세 중편들이 엮어졌기 때문에, 나머지 두 편을 다 읽으면 뭔가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역시 아무 소득이 없다

세 편의 이야기는 다만 화자가 같을 뿐, 사건 자체로 보면 큰 연관성은 없다

역자의 해설을 보면 오스터가 사건의 전개 보다는 쫒는 자의 심리 묘사에 치중하고 문체를 중요시 했다고 하는데, 소설의 문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스터의 작품을 적극 추천하는 바다

적어도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문체나 묘사력에 있어서는 아주 훌륭하다

사건 전개나 결말은 다소 마음에 안 들지만 말이다

세 편은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별 상관이 없는 독립된 이야기다

다만 세 편 모두 은둔해 버린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고, 쫓기는 사람 보다는 쫓는 사람의 입장에서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령들"에서는 색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블루, 화이트, 그레이, 브라운, 바이올렛 등등

주인공 블루는 사설 탐정인데 화이트라는 사람의 의뢰를 받아 블랙을 감시한다

왜 감시하는 가는 모르고, 다만 화이트가 얻어 준 아파트에서 블랙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매주 보고서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이 일은 1년을 넘기고, 그 사이 일에 충실하기 위해 연락을 끊는 바람에 그의 애인은 다른 남자와 만나 버린다

어느 날 블랙을 미행하던 도중, 거리에서 다른 남자와 팔짱 끼고 가는 애인을 보는 순간 (블루는 그녀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이성을 잃고 의뢰인 화이트에 대한 분노를 폭발한다

대체 나는 왜 이 짓을 1년씩이나 하고 있었던가?

나는 왜 블랙이란 놈을 쫓고 있는가?

혹시 블랙과 화이트가 한통속이 되어 나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소설은 어이없이 이렇게 끝나고 만다

사실 블랙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블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블랙과 화이트가 동일 인물인지도 모른다

혹은 화이트가 블랙에게는 블루의 미행을, 블루에게는 블랙의 미행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

다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인간을, 왜 감시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1년이 넘게 매달리는 남자의 심리 묘사는 그럴 듯 하다

결국 그 과정 속에서 블루란 인간의 삶은 완전히 파기되어, 현실로부터 고립되어 갔던 것이다

 

마지막 "잠겨 있는 방"에서 이 모든 사건의 본질이 자명하게 드러날 거라 기대했는데,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유령의 도시"에서 등장한 화자는 이제 주인공이 되어 팬쇼라는 어린 시절 친구를 쫓는다

어느 날 그는 팬쇼의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팬쇼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거의 형제처럼 자란 두 사람은 성장 후 연락이 끊긴 채 살아가는데, 팬쇼가 행방불명 되기 전 평생 써 온 글을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팬쇼의 아내 소피는 임신 중이었다

팬쇼가 쓴 책은 큰 히트를 치고, 주인공 "나"는 소피와 가까워져 그녀와 결혼한다

어느 날 팬쇼가 쓴 편지가 도착하는데, 그녀와 어린 아들을 니가 책임져 주길 바랬다면서 책을 펴 낸 인세로 잘 살라 당부하고, 절대 자신을 쫓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일까?

팬쇼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집자는 그의 전기를 써 보라고 "나"에게 제안하고 "나"는 꺼림칙 하면서도 승낙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소피와도 멀어진다

마치 사라진 팬쇼가 "나"를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유령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실상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인데 괜한 당의성을 느껴 주인공들은 누군가를 쫓는다

퀸은 스틸먼을 쫓고, 블루는 블랙을 쫓으며, "나"는 팬쇼를 쫓는다

처음에는 다 그렇고 그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 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자기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다

 

팬쇼를 찾아 파리에 갔을 때, 피터 스틸먼이라는 젊은이가 등장하는데 혹시 그가 "유령의 도시"에서 나온 바로 그 스틸먼인가 궁금했다

이 스틸먼의 등장으로 사건이 풀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게도 그냥 등장했을 뿐이다

사실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아 풀어진다면 그렇고 그런 추리 소설 밖에 안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게 위안을 해도, 한숨이 나오긴 마찬가지다

도대체 개연성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처음에 소피가 팬쇼를 찾기 위해 고용한 사설 탐정 이름이 퀸으로 나오는데, "유령의 도시"에서 스틸먼을 쫓던 바로 그 퀸인가 기대했다

그렇지만 그 퀸으로 생각하기엔 정황이 안 맞는다

혹시 또 모르지, 텅빈 스틸먼의 집에서 사라진 퀸은 다른 곳에서 탐정 노릇을 하고 있었을지

오스터는 독자들에게 너무 불친절 하다

어쨌든 퀸은 스틸먼을 쫓았던 것처럼, 자기 삶을 버린 채 또 평생 팬쇼를 찾는다

 

마지막에 팬쇼가 "나"와 만난 후 그 동안의 정황을 기록한 빨간 노트를 주는데, 난 여기에 세 편의 이야기에 대한 해설이 들어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주인공 "나" 역시 그 노트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니, 나같이 추리력 부족한 독자는 당연히 모를 뿐이다

팬쇼는 자살하겠다고 말했는데, 실제 그가 죽었는지 어땠는지는 안 나온다

 

다만 이런 추리는 할 수 있다

팬쇼는 자신을 둘러 싼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어느 날 종적을 감춘다

남겨진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했던 그는 친구 "나"에게 이 책임을 떠 넘긴다

만약 "나"가 조용히 살아 줬으면 그걸로 만족할텐데, 뜻밖에도 "나"는 자신을 뒤쫓는다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었던 팬쇼에게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반면에 "나"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긴 팬쇼로부터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와 인세를 선물받게 된다

그로서는 팬쇼가 제공한 이 행복들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지금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지만, 거저 얻은 것인 만큼 뭔가 꺼림칙 했을 것이다

기왕이면 팬쇼가 완벽하게 사라지길, 즉 죽기를 바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팬쇼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에 팬쇼의 어머니와 섹스를 한다

팬쇼의 어머니 역시 아들로부터 소외당했다는 피해 의식에 젖어 사는 여자인데, 형제처럼 지내고 손자의 아버지까지 된 "나"를 아들과 동일시 한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하는 것은 곧 아들 팬쇼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두어 차례 관계를 가진 후 죄책감에 소피를 피하게 되고, 결국 팬쇼를 찾는데 더욱 몰두한다

말하자면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할 때까지, 미친듯이 매달리는 것이다

이런 "나"의 행동을 보면서 팬쇼는 분노했을 게 틀림없다

 

오스터는 은둔자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달의 궁전"에 등장하는 에핑과 "신탁의 밤"에 나오는 닉 보언에 이어, "뉴욕 3부작"의 팬쇼에 이르기까지 다들 자신을 알고 있는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되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는 부류인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어디론가 증발해 다른 인물로 산다는 것, 글쎄 평범한 이들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스터의 소설에 열광하는 것일까?

오스터가 좋아하는 배경은 야구에 이어 뉴욕인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뉴욕은 살아 있는 하나의 캐릭터로써 다가 온다

다음 소설은 좀 더 독자에게 친절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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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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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뉴욕 3부작"을 어려운 소설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런 느낌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쉽게 몰입이 안 된다

특히 잘 봉합되지 않은 듯한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

"달의 궁전"에서는 환상적으로 딱딱 들어맞는 결말을 맺었는데, "신탁의 밤"이나 "유리의 도시"는 다소 허무하다

 

폴 오스터는 인간이 처한 극단적인 가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가 노르웨이의 노벨상 수상자 함순이 쓴 "굶기"에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의 소설에는 꼭 극단적인 기아가 등장한다

그것도 주인공이 선택해서 겪는 가난과 기아다

말하자면 해결책이 있는데도, 자신의 극기 정신을 시험이라도 하듯 스스로를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아 세운다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퀸은 스틸먼 부부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아파트 앞에서 거의 24시간 내내 보초를 선다

수중에 있는 돈이 300달러였는데, 그것을 다 쓰고 나면 현금지급기까지 가는 동안 침입자가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최대한 아껴서 쓴다

극단적인 단식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남겨 두고 (사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거기에 가까이 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말하자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적은 양의 식사로 버티는 것이다

또 잠자는 사이에 침입자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수면 시간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는 15분 간격으로 잠든다

15분 마다 울리는 교회 종소리에 생활 리듬을 맞춰 깨고 일어나다 보니, 나중에는 종소리와 맥박 소리를 구분하기 힘들다고까지 한다

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철제 쓰레기통 안에서 지낸다

청소부가 오기 직전에만 쓰레기통을 벗어날 수 있다

 

대체 그는 왜 이런 극단적인 일을 하는가?

스틸먼이란 남자를 지킬 필요가 뭐란 말인가?

피터 스틸먼은 생명의 은인도 아니고 국가 기밀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설사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대체 퀸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를 지킬 필요가 있을까?

작가는 여기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아마도 자기 암시에 빠져 스스로를 세뇌시킨 것 같다

 

처음 퀸의 집에 전화가 걸려 오는데, 폴 오스터라는 사설 탐정을 찾는다

피터 스틸먼의 부인 버지니아는 폴 오스터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퀸에게 자꾸 부탁을 하고, 결국 퀸은 호기심이 일어 탐정 행세를 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철썩 같이 믿고 있다면, 때로는 그 사람 행세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퀸은 추리 소설 작가로,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은둔 생활 중이었다

말하자면 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아내와 아들은 일찌기 죽었고, 사람과의 접촉을 꺼려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겼으며, 출판사와의 계약 문제도 대리인을 시키는데 그 대리인과도 직접 만나지 않고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할 정도다

이처럼 자신을 숨기는 데 익숙한 퀸은, 다시 폴 오스터라는 탐정 역할를 어렵지 않게 받아 들인다

(은둔하는 사람도 작가가 좋아하는 캐릭터다)

 

그의 의뢰인은 아버지에 의해 가둬진 가엾은 아들인데, 아버지 스틸먼은 신학 교수였다

인간 본연의 고유한 언어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스틸먼은 두 살 먹은 아들을 9년 동안 방에 가두어 기른다

사회에서 말을 배우지 않아도 언어가 본능이기 때문에 스스로 말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스틸먼은, 과연 그 언어가 어떤 것인지 (바벨탑을 쌓기 전 모든 인류에게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은 바로 그 언어)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실험들이 과거에도 몇 번 행해졌는데 그들은 모두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했다

또 늑대 소년 같은 case가 몇 건 발견되면서, 인간들과 함께 살지 않으면 언어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런데 이 늑대 소년들은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몇 가지 언어를 배우긴 했지만, 물질과 섹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하고, 그 개념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질이야 그렇다 치치만 왜 섹스에 대해서 무감했을까?)

그런데도 스틸먼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에 근거해 바벨탑 이전 최초의 언어를 알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책에 장황하게 소개된 여러 논문들을 읽으면서, 오늘날 인류의 번영을 이끈 건 어쩌면 과학 기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현학적이고 사변적이며 종교적인 담론들은 실상 우리 일상의 편안함에 별 기여를 못하는 것 같다)

 

결국 9년 만에 미치광이 아버지는 경찰에 붙들리고, 13년형을 산다

피터는 언어 치료사와 결혼해 그녀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런데 스틸먼이 출소하면서 협박 편지를 보냈고, 이 부부는 폴 오스터라는 유능한 사립 탐정에게 스틸먼의 동향을 살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퀸은 스틸먼을 집요하게 따라 다닌다

그는 스틸먼의 모든 행동들을 빨간 노트에 기록하고 감시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사라져 버린다

호텔에서 그를 놓친 퀸은 강박증에 휩싸여 아들 스틸먼 부부의 아파트 앞에서 거의 24시간 동안 감시를 한다

말하자면 스틸먼이 아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원천봉쇄 하는 셈이다

 

나는 스틸먼이 퀸을 따돌리고 결국 아들을 죽일 거라 생각했는데, 작가는 뻔한 결말을 거부한다

스틸먼은 자살했고 (신문에 난다), 그가 열심히 지키던 아파트는 텅 비어 있다

스틸먼 부부는 진즉 이사를 갔던 것이다

공포에 시달려서였던지,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전화 번호도 먹통이 되서 찾을 길이 없다

더구나 퀸에게 사례금으로 준 수표는 부도 처리 됐다

몇 달 동안 집을 떠나 있자, 집주인은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버렸고 갈 곳이 없는 퀸은 텅 빈 스틸먼 부부의 아파트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버지 스틸먼을 추적할 때 쓴 빨간 노트에 그 동안의 일을 기록하면서 햇빛이 비치면 글을 쓰고, 어두워지면 자는 식의 일상을 반복한다

신기하게도 음식은 항상 따듯하게 데워져 옆에 차려져 있다

그는 누가 가져다 놨는지 궁금해 하지도, 신기해 하지도 않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3인칭 시점인 줄 알았는데, 역시 화자는 따로 있었다

퀸의 행방을 찾던 책 속의 화자는 그가 남긴 빨간 노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었던 것이다

그 집에 갔을 때 퀸은 사라지고 노트만 남는다

화자는 퀸의 행운을 빌면서 이 어이없는 이야기의 결말을 맺는다

사건의 개요가 밝혀질 거라 믿었던 나 같은 순진한 독자는, 그저 황당할 뿐이다

어쩌면 퀸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어느 낯선 도시로 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오스터는 뉴욕을 떠난 퀸을 대상으로 또 다른 소설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는 특이하게도 작가의 실명이 등장한다

아멜리 노통의 "로베르트 인명사전"에서도 저자가 직접 등장해 주인공으로부터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폴 오스터는 사립 탐정이자 동명이인의 작가로 나온다

이 소설의 화자는 폴 오스터의 친구다

작가가 직접 등장한 만큼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름만 빌렸을 뿐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기 위해서였을까?

 

뉴욕 3부작이라는 제목으로 세 가진 중편을 엮은 작가의 편집이 신선하다

그렇지만 "신탁의 밤"처럼 크게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그 독특한 아이디어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다

확실히 오스터는 내공이 깊은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가 읽었던 소설과 시 평론집 "굶기의 예술"에서도 느낀 바지만,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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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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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이 한 때 무척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일본 소설은 왠지 정이 안 가 (스타일이 나랑 안 맞는다고 해야 하나?) 안 읽고 영화로 봤다

아주 재미없었다

진혜림이 예쁘다는 생각만 했다

그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소설을 읽게 됐다

제목에 우선 끌렸다

"낙하하는 저녁"이라...

"울 준비는 되어 있다"처럼 제목 짓는데 대단한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첫 도입부는 괜찮았다

툭툭 끊어지듯 묘사하는 서술 스타일이 신선했다

그렇지만 갈수록 이야기의 힘을 잃고 방황한다

줄거리의 축이 없다고 해야 하나?

특히 하나코의 자살 장면에서는 좀 황당했다

왜 죽었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혹은 개연성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실망스런 결론이다

꼭 배수아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툭툭 끊어지는 서술들, 일정한 줄거리가 없이 그저 주인공 마음대로 흘러가는 전개, 그리고 늘 황당하리만큼 어이없는 결론들

플롯이 사라진 것도 현대 소설의 특징인가?

혹자는 CF를 보는 듯한 영상미에 치중하는 소설들이라고 하는데, 그런 소설은 읽고 싶지 않다

 

하나코란 여자에 대해 좀 더 개연적인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일상을 스케치 하듯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독자에게 아주 부족하다

하나코라는 캐릭터에 전혀 공감이 안 간다

마지막에 자살한 걸 보고 혹시 친동생을 사랑하는데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결국 죽음으로 끝을 보나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에 대한 작가의 해설이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독자의 상상에 맡길 뿐이다

또 나카지마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다

그저 막연히 하나코의 뒤를 봐 주는 후견인 비슷하구나, 느낄 뿐이다

 

다만 다케오에 대한 리카의 애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15개월에 걸친 실연"이라는 광고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1년을 사랑하면, 그 배가 되는 시간이 흘려야 비로소 이별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익숙해진 신경 회로의 고리를 끊는데 꽤나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래서 혹자는 사랑이란 느낌에 속지 말라는 얘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문자를 보내고, 만나서 영화를 보고, 전화하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들에 얽매여 그 상대가 없어질까 봐 헤어짐을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리카가 8년 동안 함께 산 다케오를 잊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15개월이 안쓰럽다

그렇지만 참 용감하게 잘 이겨낸다

지나친 비련에 빠지지 않고 자기 생활을 견지하면서 비교적 꿋꿋하게 견뎌 나간다

하루 쉬라고 하나코가 권했을 때, 단 하루라도 쉬게 되면 영영 일상의 궤도를 일탈해 버릴 것 같다고 굳이 휴가지에서 직장으로 출근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마지막에 하나코가 죽은 후 다케오네 집에 찾아가 그에게 덤비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확실히 일본은 섹스에 자유로운 것 같다

리카는 거의 다케오를 강간하려고 하는데, 럭비 선수 출신인 남자를 강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남자들은 섹스의 본능에 대해 누누히 강조하지만, 막상 하고 싶지 않을 때 여자가 덤비면 아주 싫은 모양이다

(문득 강간당할 때 너도 즐기지 않았냐는 뻔뻔한 놈들의 얼굴을 갈겨 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리카는 그렇게 거절당한 후 비로소 다케오를 마음에서 접는다

이제 정말로 그를 잊은 모양이다

 

다케오가 단 사흘 만에 반한 하나코와 (리카와는 8년을 살았는데) 리카가 함께 산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생각해 봤다

거의 남편이나 다름없던 남자의 새로운 애인과 한 집에 산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하나코의 캐릭터를 미루어 보면 충분히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는데, 만약 이런 독특한 여자라면 나도 제지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것 같다

하나코가 정작 다케오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다케오가 가엾어 마음아파 하던 리카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너무 사랑하면, 비록 내가 버림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가 행복하길 바랄 수 있는 법이다

나의 비참함은 그대로 놔 두고, 그의 불행에 가슴아파 할 수 있다

 

꽤나 인기가 있어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도 된 모양인데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15개월에 걸친 이별 과정은 공감이 간다

(물론 진짜 이별은 단 사흘 만에 결정됐지만, 마음으로부터의 이별은 길었다)

리카처럼 실연을 견디는 순간들을 담담히 글로 써 간다면 조금은 편하게 이겨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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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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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은 "위대한 게츠비"처럼 고전의 위치를 확립했으면서도, 트렌드 소설처럼 인식된다

그래서 가끔 편집을 예쁘게 해서 출판되기도 한다

고전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현대적 감각을 지닌 재밌는 소설일 거라 기대했는데, 상당히 의외의 책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별다른 감동을 받지 못했다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단 읽기는 쉽다

300페이지짜리 책인데, 세 시간 만에 다 읽었다

1인칭 독백 시점으로, 심리 묘사도 별로 없고 사흘 동안 일어난 일들을 그저 담담히 서술할 뿐이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퇴학 결정이 내려진 후 집에 통보가 오는 수요일 전까지, 집에 들어 가지 않고 며칠간 밖에서 지내는 얘기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을 때 기분이 난다

특정 사건이 없이도 하룻동안 있었던 일들을 담담히 서술해 가는 그런 종류의 소설이다

이 작품이 인정받는 이유가 혹시 그런 묘사력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주인공 홀든은 벌써 네 번째 고등학교에서 성적 불량으로 자퇴하는, 그렇고 그런 놈이다

이 책이 발표된 게 1951년인데, 50년대 미국 고등학교는 성적이 나쁘면 자퇴를 시킨 모양이다

머리가 아주 나쁜 건 아닌데 (그의 형제들은 비교적 똑똑하다고 묘사된다), 공부에 큰 의욕을 안 보여 늘 낙제를 한다

그렇다고 깡패들과 어울리는 불량 학생도 아니다

불량 학생이 되기에는 몸집이 너무 왜소하다

 

확실히 우리 고등학생들과는 다른 점이 많이 나오는데, 일단 담배 권하는 사회라는 게 놀랍다

술은 스물 한 살이 되기 전까지 절대 안 되는데, 대신 겨우 열 여섯 먹은 주인공에게 담배는 허용된다

허용 정도가 아니라, 기차에서 만난 친구 어머니에게 담배를 권할 정도다

"위대한 게츠비"에서도 데이지가 손님들에게 담배를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단 우리 상식으로 보면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안 피우는 법이고, 더구나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혹은 남자 앞에서 담배 피우는 걸 아주 불쾌하게 생각하는데, 우리 정서와 상당히 다른 모양이다

마약 보다는 낫다고 생각되서 그런가?

 

변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특히 동성연애자가 변태로 등장하는데, 아마도 195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그럴 것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성적 취향으로 인정받는 추세지만 (요즘은 동성애를 공적인 자리에서 비난하지 못한다), 당시만 해도 변태적인 성향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였나 보다

참 깨는 이야기인데, 홀든이 퇴학 후 엔톨리니 선생님을 찾아 간다

그 선생님 댁에서 좋은 이야기를 듣고 잠자리에 드는데, 놀랍게도 선생님이 홀든의 머리를 은근히 쓰다듬는다

홀든은 그가 변태성욕자임을 깨닫고 밖으로 뛰쳐 나간다

혹시 남선생과 여제자 사이면 몰라도, 남선생과 남제자 사이에 이런 에피소드를 집어 넣다니, 더구나 엔톨리니 선생님은 홀든의 방황을 잡아 주는 사람으로 나오는데!!

불경하기 이를 데 없는 설정이다^^

 

엔톨리니 선생님의 충고가 기억에 남는다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며 자기 삶에 열정을 갖지 못하는 홀든에게 그는 이런 충고를 한다

너는 바닥이 없는 추락을 계속하고 있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하는 환경에 처하기도 하는데, 너는 니가 처한 환경이 줄 수 없는 것만 찾고 있다, 너는 실제로 그것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니 환경이 절대 주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미리 체념해 버린다...

또 교육이란 자기 머리에 어떤 사상을 수용할 수 있는지 일일이 시험해 보는 시간을 줄여 주고, 자기 역량을 정확히 측정해 주는 과정이다, 자기 역량을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은 지식의 습득이라는 표면적인 기능에 대한, 제대로 된 반론인지도 모른다

지식의 습득은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기능에 불과하다

교육이 흔히 생각하듯 지식의 습득에 불과하다면, 학원 다니면서 검정고시 치는 게 훨씬 이익일 것이다

단순히 학력을 쌓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이 어느 정도이고 나에게 맞는 것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며 교육이 그 과정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선생의 정의가 가슴에 와닿는다

이렇게 따지면 성적 지상주의에 물든 교사들이나, 대학 안 갈 건데 학교 다닐 필요 있냐는 학생들이 학교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네 번이나 학교를 전전하는 홀든에게 너는 지금 바닥이 없는 추락을 계속 하고 있다고 지적한 선생의 말도 무척 인상적이다

바닥이 없는 추락처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자포자기한 사람에게 여전히 지금보다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충고는 무척이나 겁나는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늦었다고 자기 인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를 때라는 얘기는, 지금이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경고인지도 모르겠다

 

홀든이 이 선생님으로 인해 구원받나 했는데, 변태 성욕자로 판명되면서 그의 방황은 계속된다

그는 어지러운 도시를 떠나 광활한 서부로 가서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

사실 그는 변호사의 아들로 무척 유복한 편이다

또 그의 형제들이 똑똑한 걸로 봐서 그도 머리가 아주 나쁜 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처한 환경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걸 보면, 아직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는 서부로 간다 해도 여전히 방황할 게 뻔하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를 구원해 준 것은 놀랍게도 열 살 짜리 여동생 피비다

홀든은 특별히 이 동생을 사랑하는데, 부모가 무서워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오빠를 위해 크리스마스 용돈을 모두 건네 준다

서부로 떠나기 전, 피비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편지를 보내는데 뜻밖에도 오빠를 따라 가겠다고 옷을 챙겨들고 나타난다

인생에 대한 겉멋이 잔뜩 든 열 여섯 짜리 홀든의 눈에도 열 살 먹은 여동생의 가출은 어이없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한사코 떠나겠다는 어린 동생을 달래 회전 목마를 타러 간다

피비가 회전 목마 위에서 손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그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낀다

어쩌면 행복이란, 혹은 삶의 의미란 거창한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자잘한 일상인지도 모른다

홀든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지도 않고, 파란 외투를 입고 해맑게 웃으며 회전 목마 위에 앉아 있는 여동생을 행복하게 바라 본다

 

결국 홀든은 이 날 맞은 비로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물론 도덕 교과서처럼 홀든이 갑자기 철이 들어 다시 학교로 가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다

다만 서부로 떠나겠다는 식의 현실도피적인 유치한 생각은 접고, 좀 더 성숙한 태도를 보이긴 한다

정신과 의사가 열심히 공부하겠냐고 자꾸 다그치자, 열심히 공부할 생각이긴 하지만 나중에 무엇을 할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조소하기도 한다

사실 어른들의 이런 다짐들은 별 의미없는 소리이기 일쑤다

당위가 현실이 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계발서나 공부 잘 하는 법, 돈 잘 버는 법 등도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속어들을 써 가며 평이하게 쓴 책이지만 미국 교과서로 인용되는 고전이라고 한다

빠르게 전개되는 표현력은 높이 살 만 하다

혹 묘사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유심히 볼 만한 책이다

열 여섯 소년이 겪는 방황을 과장하지 않고 산뜻하고 담백한 문체로 가볍게 그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시절에 제대로 된 방황을 했는지 궁금하다

성인이 되기까지 나름대로의 고통과 방황이 있었을텐데, 나는 그 시기를 어떻게 넘겼는지 새삼 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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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록 - 내 붓을 들어 한의 세월을 적는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4
혜경궁 홍씨 지음, 이선형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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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중 가장 흥미진진한 사건을 꼽자면 인현왕후 폐위 사건과 사도 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은 일일 것이다

드라마로도 수없이 만들어졌는데, 사건 자체의 극적 전개는 물론이거니와 이 두 사건을 자세히 기록한 한글 기록이 있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끈다

특히 한중록은 사도 세자의 부인이었던 혜경궁 홍씨의 기록으로써, 신원이 확실하고 당시 정치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 더욱 그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조선사를 돌이켜 보면 비단 그녀 뿐 아니라 한맺힌 비빈들이 많을 터인데, 기록으로 남긴 것이 겨우 한 질 뿐이니 (계축일기와 인현왕후전은 궁녀가 쓴 것이라 제외하고), 유달리 문학성이 뛰어난 분이라 생각된다

비록 자기 가문의 신원 회복을 위해 썼다고 하지만, 조선 왕조 5백년 역사 중에 이런 기록을 남긴 분은 그 분 혼자이니, 그 가치를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한중록의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이덕일의 역사 에세이 "사도세자의 고백"을 통해 처음 접했다

그 책을 보면 단지 한중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료로써의 가치조차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투다

사도세자는 정신병이 없었고 혜경궁은 남편을 버리고 친정을 택한 비정한 여인으로 나온다

사도세자는 영특하기 그지없는 훌륭한 왕재였는데, 노론의 탄압을 받아 아버지의 손에 죽임을 당했고 아내인 혜경궁은 노론인 친정 편에 서서 남편 죽이는데 앞장 섰다고 한다

심지어 아버지 홍봉한은 외손인 정조 대신, 사도세자의 서자를 옹립하려고까지 했으나 어미 된 심정에 차마 그러지는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선뜻 동의하기 힘든 구석이 많아 직접 "한중록"을 읽고 싶었다

다행히 국문으로 쉽게 번역된 책이 나와 흥미롭게 읽었다

 

이덕일의 책을 보면 한중록이 한스럽다 "恨"자가 아닌, 한가할 "閑"자를 쓴다면서 절대 남편을 위한 사모곡이 아님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실제 한중록의 원본이 전해지지 않는 상태에서 여러 이본에는 두 가지 한자가 다 쓰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어떤 한자를 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을 이덕일이 왜 굳이 유리한 쪽으로 해석을 하는지 모르겠다

 

한중록은 총 6권으로 혜경궁 말년 10여년에 걸쳐 쓰여졌는데, 각 권마다 기술한 내용이 다르다

아마도 글을 쓰는 목적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정조가 승하한 후 쓴 책을 보면 확실히 가문의 회복을 위해 손자 순조에게 탄원하는 형식이긴 하다

그렇지만 모든 책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즉 반드시 그 목적만으로 쓴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편으로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곤궁했는지 이해도 간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당연히 즉위하여 왕비가 되리라 믿었을텐데 (더구나 세손까지 낳았으니 무슨 근심이 있었으랴!), 어처구니 없이 남편이 뒤주에 갇혀 굶어 죽은 후 오직 아들에게 의존하며 살얼음 걷듯 살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 정승을 역임하던 친정가문은 멸문지화에 가까운 화를 입고, 왕이 된 아들이 원한을 풀어주리라 믿었는데 느닷없이 아들이 급서한 후 어린 손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정작 정사는 대왕대비의 손에 있고 자신은 궁에서 아무 위치도 아니었다

아들 죽고 나니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였을 것이다

철천지 원수로 보던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신원 회복은 커녕, 오히려 동생 홍낙임이 죽임을 당했으니 70 넘은 그녀가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 있겠는가!

어린 순조의 자비를 바라며 친정의 억울함을 밝히려 피로써 한중록을 써 가던 그녀의 안타까운 노후가 눈에 밟히는 듯 하여 마음이 아팠다

 

사도세자가 노론에 의해 희생됐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그에게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

아무리 편파적이다 할지라도 한중록의 기록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조 역시 다소 독특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보통 아들을 귀히 여기는 법인데, 큰 아들을 잃고 늘그막에 본 하나 뿐인 아드님을 그토록 박대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여러 옹주들 중에서도 유독 화평과 화완만 총애하고, 화협과 화순 옹주 등은 세자처럼 극도로 미워했다니 애정의 편파가 심했던 모양이다

특히 화순 옹주는 남편이 죽고 나자 곡기를 끊고 따라 죽었는데, 아무리 아비 먼저 죽은 자식이 밉더라도 당시의 충효 사상을 따르자면 열녀비 하나는 세워 줄 만 하다

그런데도 밥 먹으라는 하교를 거부했다고 끝까지 모른 척 했다니, 영조가 얼마나 호불호가 뚜렷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이 가엾은 옹주의 열녀비는 나중에 조카 정조가 세워 준다

 

영조의 극단적인 자식 편애에 괴로워 하던 사도 세자는 점점 어긋가는 쪽으로 나가 나중에는 의대병이라는 희한한 병이 생기고, 화를 못 이겨 주변 내인들을 여럿 죽였다고 한다

의대병이란 옷을 한 번에 못 입는 병인데, 이 옷을 입혀 주려다 세자의 후궁 빙애도 칼맞아 죽고 말았다

(그녀는 아들을 낳아 준 여자다)

혜경궁 역시 세자가 던진 바둑판에 눈을 찧어 자칫 눈알이 빠질 뻔 했다고 하니, 사도 세자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급기야 생모인 선희궁이 아들의 상태를 직접 영조에게 고할 정도였으니, 사도 세자의 병증이 심각했음은 분명하다

 

아마도 영조는 아들이 모반하지 않을까 겁냈던 것 같다

무기류를 처소에 쌓아 놓고 관서 지방으로 여행한 것이 결정적인 화근이 되어 참변을 당했으니 말이다

권력 앞에서는 부자지간도 소용없다고 하지만, 혼란스런 시대도 아니고 예와 문치의 나라 조선에서 하나 뿐인 아들을 뒤주 속에 넣고 굶겨 죽인 영조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폐서인 시킬 수도 있고 (양녕대군처럼) 사약을 내려 한 번에 죽게 할 수도 있는데, 굳이 뒤주를 내와 그 안에 들어가게 한 뒤 8일 동안 고통 속에서 죽게 해야 했을까?

더구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삼복 더위였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안에서 대소변은 또 어떻게 해결했을까? 한 나라의 세자가 이토록 비참하게 죽을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애통하다)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가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 본 정조가 얼마나 가슴 졸이며 동궁 시절을 보냈을지 짐작이 간다

또 정조가 사도 세자의 죽은 형인 효장 세자의 아들로 입적된 후, 왕실 내의 어떤 지위도 얻지 못하고 오직 아들에게 신세를 의탁하며 시아버지 눈치를 살피고 살얼음 걷듯 세월을 보낸 혜경궁에게도 동정이 간다

 

사도 세자가 죽은 후 영조가 유일하게 총애하던 화완 옹주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던 혜경궁의 처지가 참 가엾다

사도 세자가 무사히 왕위에 올랐으면 중전이 되어 옹주와는 비교도 안 될 높은 처지가 됐을건만 (인원왕후는 왕실의 법도를 엄히 세워 옹주는 세자빈과 감히 어깨를 나란히 앉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남편이 시아버지 손에 죽고 나니 왕실에서 그녀를 보호해 줄 방패막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영조가 그녀를 귀여워 했다고는 하나, 정치적인 이유로 하나 뿐인 아들 정조를 뺏어가 효장세자의 아들로 삼으니, 아무리 아들이 왕위에 올라도 그녀는 대비 칭호를 받을 수 없고 그저 한낱 "빈"에 불과했다

더구나 친정집은 남편 일에 연루되어 아들 정조로부터도 배척받게 되니, 고립무원이었을 그녀 처지가 안타깝다

정조가 오래 살았으면 말년에 행복했으련만, 하필 50도 못 되어 어머니 앞에 죽으니 얼마나 애통했을까?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혜경궁 보다 10세나 어린데, 이 집안이 사도 세자 죽음에 한 몫을 하고 나중에는 홍씨 가문을 공격한다

정조가 등극한 후는 모두 유배되고 사사됐으나,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한 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면서 다시 혜경궁의 집안은 공격을 받는다

이미 70이 넘은 혜경궁은 어떻게든 동생의 죽음을 막아 보려 곡기를 끊고 자살하겠다고 시위하자, 오히려 정순왕후는 부추기는 놈을 찾아 내라고 성화니 그녀는 한중록에 그 서운함을 토로한다

"너무 이리 마십시오"

한중록을 보면 온통 좋은 말 투성인데, 시어머니 정순왕후에게 이리 말한 것을 기록한 걸 보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해 악에 받쳐 내뱉은 말처럼 느껴진다

 

혜경궁 홍씨의 일생을 살펴 보면 참으로 파란만장 하고, 한맺힌 삶이다

10세 때 세자빈으로 뽑혀 궁으로 들어간 후, 윗전들이 다 귀애하고 아들딸 무사히 순산하고, 본인도 80세까지 살았으니 (조선 시대 80세면 정말 건강했을 것이다) 큰 이변만 없었으면 대단히 복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독특한 성격의 남편을 만나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겪었으니 그녀의 한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간다

다행히 자신의 일생을 자세히 기록한 저서를 남겨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후손에게 전하니, 헛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어로 번역했다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권선징악 식의 서술이 너무 많아 아주 재밌지는 않다

어떤 인물을 논할 때 무조건 착하고 바른 사람, 혹은 악하고 못된 사람이라는 식으로만 묘사하고 충효를 너무나 강조한 나머지 도덕 교과서를 읽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궐의 자잘한 에피소드들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또 당시 정세에 대해 소상하게 기록해 왕실 여인의 눈으로 본 조선 당쟁사를 읽는 새로운 기쁨도 준다

책 편집은 썩 훌륭한 편이다

주석도 많이 달고 당시 제도나 관습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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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2006-03-2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헌책방에 갔다 사놨던 사도세자의 고백을 며칠전에 읽었는데..
그랬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중록을 꼭 읽어보고 싶어지더라구요.
님의 말처럼 선뜻 동의하기 쉽지도 않았었고요..
암튼.. 한중록은 주문은 했는데... 반전을 기대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