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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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뉴욕 3부작"을 어려운 소설이라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런 느낌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쉽게 몰입이 안 된다

특히 잘 봉합되지 않은 듯한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

"달의 궁전"에서는 환상적으로 딱딱 들어맞는 결말을 맺었는데, "신탁의 밤"이나 "유리의 도시"는 다소 허무하다

 

폴 오스터는 인간이 처한 극단적인 가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가 노르웨이의 노벨상 수상자 함순이 쓴 "굶기"에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는데, 그의 소설에는 꼭 극단적인 기아가 등장한다

그것도 주인공이 선택해서 겪는 가난과 기아다

말하자면 해결책이 있는데도, 자신의 극기 정신을 시험이라도 하듯 스스로를 극한적인 상황으로 몰아 세운다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퀸은 스틸먼 부부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아파트 앞에서 거의 24시간 내내 보초를 선다

수중에 있는 돈이 300달러였는데, 그것을 다 쓰고 나면 현금지급기까지 가는 동안 침입자가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는 최대한 아껴서 쓴다

극단적인 단식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남겨 두고 (사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거기에 가까이 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말하자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적은 양의 식사로 버티는 것이다

또 잠자는 사이에 침입자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수면 시간도 최소한으로 줄인다

그는 15분 간격으로 잠든다

15분 마다 울리는 교회 종소리에 생활 리듬을 맞춰 깨고 일어나다 보니, 나중에는 종소리와 맥박 소리를 구분하기 힘들다고까지 한다

또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철제 쓰레기통 안에서 지낸다

청소부가 오기 직전에만 쓰레기통을 벗어날 수 있다

 

대체 그는 왜 이런 극단적인 일을 하는가?

스틸먼이란 남자를 지킬 필요가 뭐란 말인가?

피터 스틸먼은 생명의 은인도 아니고 국가 기밀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설사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대체 퀸이라는 남자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를 지킬 필요가 있을까?

작가는 여기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지만, 아마도 자기 암시에 빠져 스스로를 세뇌시킨 것 같다

 

처음 퀸의 집에 전화가 걸려 오는데, 폴 오스터라는 사설 탐정을 찾는다

피터 스틸먼의 부인 버지니아는 폴 오스터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퀸에게 자꾸 부탁을 하고, 결국 퀸은 호기심이 일어 탐정 행세를 하게 된다

상대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철썩 같이 믿고 있다면, 때로는 그 사람 행세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퀸은 추리 소설 작가로, 윌리엄 윌슨이라는 필명으로 은둔 생활 중이었다

말하자면 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아내와 아들은 일찌기 죽었고, 사람과의 접촉을 꺼려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겼으며, 출판사와의 계약 문제도 대리인을 시키는데 그 대리인과도 직접 만나지 않고 우체국 사서함을 이용할 정도다

이처럼 자신을 숨기는 데 익숙한 퀸은, 다시 폴 오스터라는 탐정 역할를 어렵지 않게 받아 들인다

(은둔하는 사람도 작가가 좋아하는 캐릭터다)

 

그의 의뢰인은 아버지에 의해 가둬진 가엾은 아들인데, 아버지 스틸먼은 신학 교수였다

인간 본연의 고유한 언어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스틸먼은 두 살 먹은 아들을 9년 동안 방에 가두어 기른다

사회에서 말을 배우지 않아도 언어가 본능이기 때문에 스스로 말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스틸먼은, 과연 그 언어가 어떤 것인지 (바벨탑을 쌓기 전 모든 인류에게 단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은 바로 그 언어)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실험들이 과거에도 몇 번 행해졌는데 그들은 모두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지 못했다

또 늑대 소년 같은 case가 몇 건 발견되면서, 인간들과 함께 살지 않으면 언어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런데 이 늑대 소년들은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몇 가지 언어를 배우긴 했지만, 물질과 섹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하고, 그 개념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질이야 그렇다 치치만 왜 섹스에 대해서 무감했을까?)

그런데도 스틸먼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은 성경에 근거해 바벨탑 이전 최초의 언어를 알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책에 장황하게 소개된 여러 논문들을 읽으면서, 오늘날 인류의 번영을 이끈 건 어쩌면 과학 기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현학적이고 사변적이며 종교적인 담론들은 실상 우리 일상의 편안함에 별 기여를 못하는 것 같다)

 

결국 9년 만에 미치광이 아버지는 경찰에 붙들리고, 13년형을 산다

피터는 언어 치료사와 결혼해 그녀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런데 스틸먼이 출소하면서 협박 편지를 보냈고, 이 부부는 폴 오스터라는 유능한 사립 탐정에게 스틸먼의 동향을 살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퀸은 스틸먼을 집요하게 따라 다닌다

그는 스틸먼의 모든 행동들을 빨간 노트에 기록하고 감시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사라져 버린다

호텔에서 그를 놓친 퀸은 강박증에 휩싸여 아들 스틸먼 부부의 아파트 앞에서 거의 24시간 동안 감시를 한다

말하자면 스틸먼이 아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원천봉쇄 하는 셈이다

 

나는 스틸먼이 퀸을 따돌리고 결국 아들을 죽일 거라 생각했는데, 작가는 뻔한 결말을 거부한다

스틸먼은 자살했고 (신문에 난다), 그가 열심히 지키던 아파트는 텅 비어 있다

스틸먼 부부는 진즉 이사를 갔던 것이다

공포에 시달려서였던지,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전화 번호도 먹통이 되서 찾을 길이 없다

더구나 퀸에게 사례금으로 준 수표는 부도 처리 됐다

몇 달 동안 집을 떠나 있자, 집주인은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 버렸고 갈 곳이 없는 퀸은 텅 빈 스틸먼 부부의 아파트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버지 스틸먼을 추적할 때 쓴 빨간 노트에 그 동안의 일을 기록하면서 햇빛이 비치면 글을 쓰고, 어두워지면 자는 식의 일상을 반복한다

신기하게도 음식은 항상 따듯하게 데워져 옆에 차려져 있다

그는 누가 가져다 놨는지 궁금해 하지도, 신기해 하지도 않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3인칭 시점인 줄 알았는데, 역시 화자는 따로 있었다

퀸의 행방을 찾던 책 속의 화자는 그가 남긴 빨간 노트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었던 것이다

그 집에 갔을 때 퀸은 사라지고 노트만 남는다

화자는 퀸의 행운을 빌면서 이 어이없는 이야기의 결말을 맺는다

사건의 개요가 밝혀질 거라 믿었던 나 같은 순진한 독자는, 그저 황당할 뿐이다

어쩌면 퀸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처럼 어느 낯선 도시로 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오스터는 뉴욕을 떠난 퀸을 대상으로 또 다른 소설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는 특이하게도 작가의 실명이 등장한다

아멜리 노통의 "로베르트 인명사전"에서도 저자가 직접 등장해 주인공으로부터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폴 오스터는 사립 탐정이자 동명이인의 작가로 나온다

이 소설의 화자는 폴 오스터의 친구다

작가가 직접 등장한 만큼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기대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름만 빌렸을 뿐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기 위해서였을까?

 

뉴욕 3부작이라는 제목으로 세 가진 중편을 엮은 작가의 편집이 신선하다

그렇지만 "신탁의 밤"처럼 크게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그 독특한 아이디어에는 경의를 표하는 바다

확실히 오스터는 내공이 깊은 작가임이 분명하다

그가 읽었던 소설과 시 평론집 "굶기의 예술"에서도 느낀 바지만, 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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