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혹시 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 있다면, 좀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로서는 도저히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다

한 번 더 읽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다만 오스터의 그 놀라운 문장력과 풍부한 예화들에는 감탄을 보낸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티븐 킹도 고전 읽기를 강조했지만 (사실 그가 많이 읽는 것 외에는 소설 잘 쓰는 별 비법이 없다고 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 폴 오스터 역시 아주 많은 고전들을 읽는 것 같다

그가 읽은 책들에 대한 느낌들이 책에 자주 등장한다

또 그의 주인공들은 탐욕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다

쉽게 공감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을 계속 읽는 까닭은, 책에 몰두하는 바로 그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뉴욕 3부작"이라는 제목으로 세 중편들이 엮어졌기 때문에, 나머지 두 편을 다 읽으면 뭔가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역시 아무 소득이 없다

세 편의 이야기는 다만 화자가 같을 뿐, 사건 자체로 보면 큰 연관성은 없다

역자의 해설을 보면 오스터가 사건의 전개 보다는 쫒는 자의 심리 묘사에 치중하고 문체를 중요시 했다고 하는데, 소설의 문체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오스터의 작품을 적극 추천하는 바다

적어도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문체나 묘사력에 있어서는 아주 훌륭하다

사건 전개나 결말은 다소 마음에 안 들지만 말이다

세 편은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별 상관이 없는 독립된 이야기다

다만 세 편 모두 은둔해 버린 누군가를 찾는 과정이고, 쫓기는 사람 보다는 쫓는 사람의 입장에서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령들"에서는 색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블루, 화이트, 그레이, 브라운, 바이올렛 등등

주인공 블루는 사설 탐정인데 화이트라는 사람의 의뢰를 받아 블랙을 감시한다

왜 감시하는 가는 모르고, 다만 화이트가 얻어 준 아파트에서 블랙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매주 보고서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이 일은 1년을 넘기고, 그 사이 일에 충실하기 위해 연락을 끊는 바람에 그의 애인은 다른 남자와 만나 버린다

어느 날 블랙을 미행하던 도중, 거리에서 다른 남자와 팔짱 끼고 가는 애인을 보는 순간 (블루는 그녀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이성을 잃고 의뢰인 화이트에 대한 분노를 폭발한다

대체 나는 왜 이 짓을 1년씩이나 하고 있었던가?

나는 왜 블랙이란 놈을 쫓고 있는가?

혹시 블랙과 화이트가 한통속이 되어 나를 감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소설은 어이없이 이렇게 끝나고 만다

사실 블랙은 누군가의 의뢰를 받아 블루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블랙과 화이트가 동일 인물인지도 모른다

혹은 화이트가 블랙에게는 블루의 미행을, 블루에게는 블랙의 미행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

다만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한 인간을, 왜 감시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1년이 넘게 매달리는 남자의 심리 묘사는 그럴 듯 하다

결국 그 과정 속에서 블루란 인간의 삶은 완전히 파기되어, 현실로부터 고립되어 갔던 것이다

 

마지막 "잠겨 있는 방"에서 이 모든 사건의 본질이 자명하게 드러날 거라 기대했는데, 역시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유령의 도시"에서 등장한 화자는 이제 주인공이 되어 팬쇼라는 어린 시절 친구를 쫓는다

어느 날 그는 팬쇼의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는데, 팬쇼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거의 형제처럼 자란 두 사람은 성장 후 연락이 끊긴 채 살아가는데, 팬쇼가 행방불명 되기 전 평생 써 온 글을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팬쇼의 아내 소피는 임신 중이었다

팬쇼가 쓴 책은 큰 히트를 치고, 주인공 "나"는 소피와 가까워져 그녀와 결혼한다

어느 날 팬쇼가 쓴 편지가 도착하는데, 그녀와 어린 아들을 니가 책임져 주길 바랬다면서 책을 펴 낸 인세로 잘 살라 당부하고, 절대 자신을 쫓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일까?

팬쇼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집자는 그의 전기를 써 보라고 "나"에게 제안하고 "나"는 꺼림칙 하면서도 승낙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소피와도 멀어진다

마치 사라진 팬쇼가 "나"를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유령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실상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인데 괜한 당의성을 느껴 주인공들은 누군가를 쫓는다

퀸은 스틸먼을 쫓고, 블루는 블랙을 쫓으며, "나"는 팬쇼를 쫓는다

처음에는 다 그렇고 그런 이유가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 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자기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다

 

팬쇼를 찾아 파리에 갔을 때, 피터 스틸먼이라는 젊은이가 등장하는데 혹시 그가 "유령의 도시"에서 나온 바로 그 스틸먼인가 궁금했다

이 스틸먼의 등장으로 사건이 풀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게도 그냥 등장했을 뿐이다

사실 모든 것이 딱딱 들어맞아 풀어진다면 그렇고 그런 추리 소설 밖에 안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렇게 위안을 해도, 한숨이 나오긴 마찬가지다

도대체 개연성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처음에 소피가 팬쇼를 찾기 위해 고용한 사설 탐정 이름이 퀸으로 나오는데, "유령의 도시"에서 스틸먼을 쫓던 바로 그 퀸인가 기대했다

그렇지만 그 퀸으로 생각하기엔 정황이 안 맞는다

혹시 또 모르지, 텅빈 스틸먼의 집에서 사라진 퀸은 다른 곳에서 탐정 노릇을 하고 있었을지

오스터는 독자들에게 너무 불친절 하다

어쨌든 퀸은 스틸먼을 쫓았던 것처럼, 자기 삶을 버린 채 또 평생 팬쇼를 찾는다

 

마지막에 팬쇼가 "나"와 만난 후 그 동안의 정황을 기록한 빨간 노트를 주는데, 난 여기에 세 편의 이야기에 대한 해설이 들어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허망하게도 주인공 "나" 역시 그 노트에 담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 버리니, 나같이 추리력 부족한 독자는 당연히 모를 뿐이다

팬쇼는 자살하겠다고 말했는데, 실제 그가 죽었는지 어땠는지는 안 나온다

 

다만 이런 추리는 할 수 있다

팬쇼는 자신을 둘러 싼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어느 날 종적을 감춘다

남겨진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했던 그는 친구 "나"에게 이 책임을 떠 넘긴다

만약 "나"가 조용히 살아 줬으면 그걸로 만족할텐데, 뜻밖에도 "나"는 자신을 뒤쫓는다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었던 팬쇼에게 이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을 것이다

반면에 "나"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긴 팬쇼로부터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와 인세를 선물받게 된다

그로서는 팬쇼가 제공한 이 행복들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지금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지만, 거저 얻은 것인 만큼 뭔가 꺼림칙 했을 것이다

기왕이면 팬쇼가 완벽하게 사라지길, 즉 죽기를 바랄 수도 있다

 

실제로 그는 팬쇼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에 팬쇼의 어머니와 섹스를 한다

팬쇼의 어머니 역시 아들로부터 소외당했다는 피해 의식에 젖어 사는 여자인데, 형제처럼 지내고 손자의 아버지까지 된 "나"를 아들과 동일시 한다

그러므로 "나"와 관계하는 것은 곧 아들 팬쇼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다

"나"는 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두어 차례 관계를 가진 후 죄책감에 소피를 피하게 되고, 결국 팬쇼를 찾는데 더욱 몰두한다

말하자면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할 때까지, 미친듯이 매달리는 것이다

이런 "나"의 행동을 보면서 팬쇼는 분노했을 게 틀림없다

 

오스터는 은둔자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달의 궁전"에 등장하는 에핑과 "신탁의 밤"에 나오는 닉 보언에 이어, "뉴욕 3부작"의 팬쇼에 이르기까지 다들 자신을 알고 있는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되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는 부류인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나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 어디론가 증발해 다른 인물로 산다는 것, 글쎄 평범한 이들에게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스터의 소설에 열광하는 것일까?

오스터가 좋아하는 배경은 야구에 이어 뉴욕인 것 같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뉴욕은 살아 있는 하나의 캐릭터로써 다가 온다

다음 소설은 좀 더 독자에게 친절하길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