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이선주 지음 / 민연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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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대로 읽을만 했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봤어도 됐을 뻔 했다 아니면 사진을 좀 줄여서 가격을 낮췄더라면 좋았으련만. 신변잡기는 일체 없고 프랑스 사회를 나름대로 분석한 글 같다 마지막에 실린 가벼운 파리 감상문은 차라리 빼는 게 좋았을 정도로, 개인적인 내용이 일체 없다 일반적인 외국 체류 에세이가 아니다 그런데 문화 비평서로 보기에는 좀 약하다 전문적인 내용이 부족하고 그저 스케치에 불과한 느낌이다 어쨌든 80점 정도는 줄 수 있겠다

 

홍세화 때문에 유명해진 똘레랑스를 비판한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는데, 반대 입장은 당연히 아니고 좀 오버 아니냐, 이 정도로 끝낸다 다른 프랑스 소개 책에서도 똘레랑스 보다 솔리다리떼가 더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사회적 연대, 뭐 이런 얘기인데 자유, 평등, 박애 중 정체가 모호한 박애가 바로 연대의식과 연결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자선이나 3세계 국가에 대한 후원, 이런 것도 해당될 수 있겠다

 

확실히 프랑스는 절대왕정 시기에 최고 강대국이어서 그런지 자존심이 남다름을 느낀다 식민지를 많이 거느려서 그런지 몰라도 자국 내 문제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전인류적인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지구 평화 운운할 일이 있을까? 자국 문제도 해결 못해서 늘 낑낑대는데 지구촌 평화, 혹은 3세계 문제는 너무나 먼먼 얘기같다 아프리카 난민들 얘기 나오면 한국 고아나 돌보라는 식으로 대꾸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실체다 보면... 여러가지로 이 문화대국은 부럽다

 

선진국에 대한 동경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경제적인 발전도 그렇지만, 사회적 성숙도는 후진국과 비교가 안 된다 그들 역시 비슷한 고통의 시기를 먼저 겪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숙한 사회가 됐을 것이다 30년 근대화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고 흉내도 낼 수 없는 성숙함이 어쩔 수 없는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결국 한국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변해가지 않을까? 개인의 자유는 좀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신자유주의 경제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동성애나 동거 등도 허용되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가족 제도의 붕괴도 겪게 되겠지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독신을 하나의 정상적인 선택으로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동거와 결혼의 차이를 모르겠다 동거 커플에게도 법적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다면 결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결혼은 동거보다 조금 더 법적 구속력이 많은, 그냥 정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 걸까?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주 다투는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구조적 문제인가 보다 프랑스의 캥거루족은 탕기족이라고 부른다 대학 입학과 함께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대학 등록금을 낼 재주도 없는 애들이 과연 독립할 수 있을까? 하긴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없으니까 생활비는 알바로 벌면 되긴 하겠다 미국 역시 학자금 대출로 학생 각자가 해결한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힘든 일인 것 같다 자유를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도 포기해야 하는데 부유하면서도 자유로움을 원하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이 늘고 있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더욱 탕기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복잡한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하긴 이런 내용은 내 책 아니었으면 대충 읽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자책으로 봤던 프랑스 얘기 중에서 2002년 르펜이 1차 결선 투표에 당선돼서 너무 황당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무심코 지나가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었다 오늘 보니까 조스팽 총리가 성공적인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르펜에게 져서 정계은퇴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극우파가 나쁜 이유는 사회 불안과 가난, 실업 등을 모조리 이방인들 탓으로 돌려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외친다는 데 있다 노동력 많이 필요했던 70년대에는 값싼 인력을 몽땅 데려와가지고, 이제 와서 니네 때문에 일자리 없어졌으니까 너희 나라로 꺼지라는 이 뻔뻔하고 어처구니 없는 태도!! 아무런 정책도 없으면서 그저 사회적 약자에게 모든 문제의 책임을 떠넘겨 정권을 잡아 보려고 하는 이 파시스트들!!

 

드골 이후 1981년에 미테랑이 대통령이 됐고, 7년 임기 후 1988년에 또 재선되서 1995년까지 장기집권했고 1996년에 죽었다 1995년에 시라크가 대통령이 됐고 2002년에 다시 재선됐다 86년도에 시라크가 총리가 되면서 좌우동거 체제를 이루었고, 93년도에 발라뒤르가 총리였고, 97년에는 조스팽이 총리를 지냈다 좀 독특한 제도다 보통 국방, 외교는 대통령, 내무는 총리가 맡는다고 하는데 엄격한 분리는 아니라고 한다 어느 나라마다 그 나라만의 특성이 정치 제도를 독특하게 발전시키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최다득표자 2명을 놓고 2차 투표를 한다는 방식은 국민 통합에 좋을 것 같다 특히 프랑스처럼 대통령 후보가 무려 16명이나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제도다

 

2공화국 3공화국 하길래 대체 이게 뭔가 했더니, 이제 좀 감이 잡힌다 혁명 이후 프랑스 역사는 학교에서 배울 때부터 늘 헷갈리고 7월혁명이니 2월혁명이니 하는 것들도 정확한 의미를 몰랐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1제정이 성립된다 그 유명한 자코뱅 당과 지롱드 당이 나오고, 로베스피에로의 공포정치가 실시되 루이 14세의 목이 잘린다 공포정치에 염증을 내던 중, 나폴레옹1세가 황제에 즉위해 1제정이 성립되고, 엘바섬으로 귀양가자 다시 루이 14세의 동생인 루이 18세가 즉위해 입헌 군주제가 된다 복고 정치로 돌아가려고 하자 폐위된 후 샤를 10세가 즉위하는데 이 사람도 언론의 자유를 탄압해 7월 혁명으로 쫓겨나고 이른바 시민의 왕인 루이 필리프가 즉위하는데,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요구하는 2월 혁명이 일어나 (1848년) 나폴레옹 3세가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2공화국이 수립된다 이 놈은 다시 황제로 등극해 2제정을 세우지만, 보불전쟁에서 패해 (그 유명한 비스마르크에게 패함) 쫓겨나고 3공화국이 들어선다 이게 2차 대전까지 간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하 뒤 비시 괴뢰 정부가 수립되면서 3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2차 대전 후 드골이 임시 국민투표에 의해 4공화국을 세우고 대통령이 되는데, 알제리 사태를 계기로 국민투포를 통해 다시 5공화국으로 바뀌고 오늘날에 이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철종과 고종 시절에 이 엄청난 변화들이 몰아치고 있었던 셈이다 갑자기 흥선대원군이 개혁 정치를 했으면 (메이지 유신처럼)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개인주의 극치는 사데팡, 즉 경우에 따라 다르다, 라고 말해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내 일 말고는 관심없다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런 무관심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감인 솔리다리테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나도 시위를 하고 파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시위권과 파업권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경찰과 선생님들까지 파업하는 거 보면 정말 프랑스 파업 문화에 예외란 없는 것 같다 이 나라는 의사들이 파업해도 별로 욕 안 먹을 것 같다

 

동성애에 대한 법률적 인정이 프랑스에서도 이루어졌음 좋겠다 일단 서구 사회가 먼저 수용해야 우리 같은 후진국도 따라갈 모범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미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했다 사실 동성애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적 취향의 표현일 따름이다 국가를 전복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결혼을 못하게 하고 억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가 제도의 근본인 가족 제도가 무너진다고 하지만, 입양을 허용하면 얼마든지 다음 세대를 양육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요즘처럼 애를 안 낳으려는 시대에 독신자나 동성애 커플의 입양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독교적인 편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하여간 프랑스 시장조차 동성애자라고 커밍 아웃을 했다고 하니, 과연 프랑스의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는 한국과 아직은 비교할 수준이 아닌 것 같다 게이 프라이드 축제가 있는데 6월이 되면 게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행진을 한다고 한다 뉴욕에는 소방관 게이들 모임이 단체 행진을 한다고 하니, 과연 동성애가 일반적인 현상이긴 한 것 같다

 

사회적 연대의 강조로써 마음의 식탁이라는 행사가 있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하면 사랑의 밥퍼 운동, 뭐 이런 거 말이다 노숙자들에게 겨울철 3개월 동안 공짜 식사를 제공하는 운동이다 놀랍게도 프랑스의 유명 연예인이 주축이 되어 많은 연예인들이 무료 공연에 참석해서 이슈를 만들었고 오늘날 대표적인 자선 행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역시 문화 선진국의 연예인답다 또 소액 기부자들에게 조세 혜택을 줘서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게 해 줬다 (콜뤼쉬법) 우리나라도 소액 기부자들의 세재 혜택을 주면 기부 문화가 좀 더 활성화 되지 않을까? 역시 제도 정비가 우선인 것 같다 프랑스 자선 행사의 특징은 축제성으로 볼 거리가 풍부하고 (연예인들이 많이 참석하고 가장 무도회 식으로 꾸미고 행진한다) 기부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봉사에 의한 연대의식 이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일단 축제처럼 즐긴다는 것이 마음에 들고, 자원봉사 위주의 실천적이라는 것도 아주 좋고, 기부 내역의 투명성이야 전제 조건일 것이다

 

똘레랑스는 용서와 관용의 의미라고 한다 다름에 대한 인정이라기 보다는, 좀 더 우월한 처지에서 나보다 못한 이의 입장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존중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여간 종교전쟁을 치루면서 발생한 개념이라고 하니, 신교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만 하다 어떤 의미로든 차이에 대한 인정이야 말로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한국처럼 전체주의적,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한 나라는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질서와 조화를 깨는 것으로 인식되니 이래저래 창의력 발휘하기 힘들다 결국 21세기를 이끌어 갈 주요사상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와 연대의식인 것 같다

 

어떤 의미로든 미국식 패권주의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빅 브라더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적당한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 국경이나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져 전지구적인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올 날은 아직 멀었을까? 우주인이라도 나타나야 지구는 하나라고 느끼게 될까?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인종끼리의 유전자 차이는 너무나 작기 때문에 인종차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한다 프랑스에 사는 알제리인도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떳떳히 믿을 수 있고, 한국에 사는 동남아인들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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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41
서정민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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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총서의 장점,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

이런 책은 특성상 절대 많은 범위를 아우르려고 하면 안 된다

범위를 최소한으로 좁게 잡아서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가 아닌, 한국 교회의 역사로 한정지은 것이 마음에 든다

교회 하면 기독교 즉 개신교만 의미하기 때문에 천주교는 맨 처음 신앙이 전해질 때를 제외하고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18세기 후반에 자생적으로 천주교가 발생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학문적으로 받아들인 종교를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시킨 조선 남인 선비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들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이 아닐까?

하긴 새로운 대안으로서 혹은 도피처로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특히 남인들은 주도권을 상실한 채 무력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서학은 비단 종교 뿐 아니라 서양 학문과 기술까지 의미하기 때문에 어쩌면 유학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국 천주교가 정치권과 강하게 대립했고 핍박받았던데 반해, 기독교는 정교분리를 내세웠다

의료와 교육 분야에 역점을 두고, 가능하면 정부와 대립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기독교가 신사참배 문제와 부딪치면서 강하게 반발한 것을 두고, 저자는 정교갈등이 아니라 교교갈등이었음을 강조한다

일제의 식민 통치에 반발한 것이 아니라, 국가신도라는 우상숭배에 저항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기독교가 실제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냐는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기독교는 특히 한국 기독교는 대단히 보수적이고 교조적이다

왜 가장 낮은 이들에게 오신 예수님의 예언적 활동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걸까?

배타적이고 교조적인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보면,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거부감이 든다

더구나 단군의 목을 자르는 행위는 폭력이라고 밖에는 해석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기독교가 사회 지도층의 중요한 종교가 됐으면서도 한국의 종교로써 대표될 수 없는 이유를, 토착신학화의 실패라고 본다

불교나 유교가 외래에서 전래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으로 탈바꿈한 것에 비해 여전히 기도교는 외래 종교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불교의 수용 역사가 천여년을 넘지만, 단순히 시간의 문제로 넘어가기엔 걸리는 요소들이 많다

 

이승만 정권 때 기독교는 거의 준국교 수준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기독교인이라는 징표는 하나의 신분증이 되어 사회적 특권과 연결됐다

더구나 이승만은 미국 사회에서 활동한 장로였으니, 기독교식 문화가 익숙하고 편했을 것이다

이기붕 당선을 위해 집회까지 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역설했다니, 한국 기독교의 정교유착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만 하다

모든 종교는 기득권화 될 때 타락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예수님은 분명 기존의 지배 질서를 거부하고 가장 낮은 이들에게 강림하셨는데 왜 그 분을 쫓는 이들은 위로의 상승을 그렇게도 열망하는 것일까?

오직 성경만 의지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근본주의자들일수록 더더욱 사회의 소외 계층은 외면하고 교조화되고 기득권층과 결탁해 권력을 누리려고 한다

카톨릭의 부패를 보면서도 개신교 역시 똑같은 절차를 밟아가는 것이다

그나마 카톨릭은 로마 교황이라는 강력한 지도자라도 있어서 하나의 통일된 체계를 유지했으나, 개신교는 신앙 해석의 자유가 인정된 이래 수많은 교파들을 양산했다

교회의 분열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지만, 한국에만도 수백개의 교단이 있다는 건, 또 서로를 이단시 하고 자기 교단만 옳다고 우기는 건 아무리 봐도 좋은 현상은 아니지 않을까?

더구나 사이비 기독교의 횡행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이단이나 정통의 기준도 모호하긴 하지만, 교주를 신격화 시키고 재산 헌납을 강요하고 종말이 임박했다고 집단 생활을 강조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든 용납하기 힘들다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저자는 토착 신학화를 통해 문화적으로 동화되어야 하고, 민중신학을 통해 소외계층에게 눈을 돌려야 하며, 평신도들의 역할이 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회의 기득권화나 성취 위주의 교세 확장 등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기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건 나쁘지만, 소외 계층을 감싸 안는 것은 중요한 역할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내제적 구원이나 기복신앙만 중시하는 현세적 태도를 줄이고, 역사와 사회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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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정조
박현모 지음 / 푸른역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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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 읽었다

이건 정말 인간승리다

대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 혹시 내가 사학과 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지난 번 [중국, 이것이 중국이다]도 한자어가 많고 분량이 많아 고생을 좀 했지만 그래도 이 책 보다는 훨씬 쉬웠다

한 번 옥편을 찾아 보니까 이것도 관성의 법칙인지, 계속 찾게 되서 진도가 안 나갔다

물론 한자는 익히면 반드시 보답을 한다

다음번에 그 한자가 나왔을 경우, 확실히 인지가 된다

한 번에는 못 외우더라도 다음 번에 또 나오면 그 때는 확실히 알게 된다

문제는 현재 안 쓰는 단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쓰는 한자어와 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뜻이 전혀 다르고 간체자를 쓰기 때문에 한자 공부가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의 진짜 뜻을 알 것 같다

오히려 일본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자는 알지만 한자어를 현재 사용하지 않거나 다른 의미로 쓰기 때문에 낯설고 익히기가 아주 힘들었다

어찌어찌 해서 다 읽었다

사실 뿌듯하다

저자는 참 성실하고 분석적이며 무엇보다 완벽주의인 것 같다

이덕일 책을 읽어 보면 그 사람도 실록을 이 잡듯 뒤진다는 느낌이 드는데 박현모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중언부언이 좀 많긴 하지만, 논리의 일관성 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원래 역사가란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들인가?

그러고 보니 임용한 역시 실록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행간을 읽으려고까지 한다

아, 정말 역사는 세세하고 치밀한 학문이다

 

당위적인 접근 말고 이렇게 실질적이고 비판적인 접근이 좋다

저자의 말대로 아무리 의도가 좋았더라도 정치는 결과로 심판받는 게 아닌가?

정치가가 어떤 의도로 접근했는지 충분히 파악해야 하지만, 결과가 어땠냐가 판단의 근거가 되야 한다

정조 하면 개혁 군주, 문화 군주라는 좋은 이미지만 있지, 왜 그 다음 대에 느닷없이 세도정치가 등장하고 조선이 몰락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순조가 아무리 어려서 즉위했다고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60년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계속됐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은 한 가문이 나라를 수십년 간 좌지우지 할 그런 만만한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분석대로 정조가 붕당을 너무 견제한 나머지 공론 정치 자체를 와해시켰기 때문인 것 같다

적어도 노론독재는 세도정치 보다는 나은데 노론 자체를 와해시켜 버리니, 이제는 아예 견제할 세력도 없이 한 가문에서 모든 것을 독차지 해 버린 것이다

정조가 오래 살고 아들 순조가 성년이 된 후 즉위했다면 조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원군 같은 강력한 국왕세력이 10년을 집권해도 즉 세도정치를 일소에 타파했더라도 위정척사라는 잘못된 지배이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실패했고 식민지로 전락해 버렸다

조선은 적어도 극동에 위치했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유럽 열강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할 만큼 상황이 나쁘지는 않았을텐데, 중국도 아닌 일본이 느닷없이 근대화에 성공하는 바람에 희생양이 됐다

일본이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체질개선에 성공할 무렵, 조선도 시류에 발맞춰 개혁 개방을 했더라면 일본처럼 서구열강에 낄 수 있었을까?

중국의 이념적 지배를 너무 오래 받아 일본보다 독립성이 약하고 의존성이 강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혁은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조 역시 위청척사론을 주장하고 동도서기론과 함께 요순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구나 조정의 공론을 아예 없애야 군왕과 백성 사이에 비로소 바른 정치가 들어선다고 했을 만큼 대의정치에 대단히 부정적인 전제 군주였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정조는 근대적인 군주가 아니었다

과거의 유교 전통에 어울리는 전제군주다

전제군주를 중심으로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 세력을 타도했지만, 왕은 상징적인 존재였을 뿐 실제 권력은 하급 무사들이 잡았다

입헌군주제였단 얘기다

개혁개방이 한창이던 19세기 후반에 정조가 왕이 됐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뀌었을까?

그는 성왕론과 군사론을 주장할 만큼 왕의 자격 조건에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으니, 적어도 19세기 왕들처럼 무력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세도정치 하에 있더라도 그 구조를 깼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과연 일본처럼 완전히 서구식으로 근대화를 이루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정조는 투철한 유학자다

심지어 그는 패관문학을 금지시키는 문체반정까지 내린 인물이다

시란 풍속의 교화에 힘쓰고 나라의 대의명분을 밝히는 데 써야지 감상이나 읊조리고 있으면 안 된다고 소설체를 금지시켰다

또 줄창 주장하는 것이 요순시대 삼대의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신하들 못지 않게 아니 그 보다 훨씬 더 명분론에 집착했다

신하들을 제압하기 위해 신하들 보다 더 철저하게 유교의 명분론에 천착했고 더 많은 경서를 읽고 해박한 지식으로 신하들을 압도하는 왕이었다

박현모의 평가처럼 정조가 미완의 개혁가로 남은 가장 큰 이유를, 나는 명분론에 집착하는 유학자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그는 조선 초기나 중기의 안정적인 시대, 혹은 유학이 여전히 사회의 중요한 이념으로 순기능을 가질 때 의미있는 인물이었다고 본다

18세기는 적극적인 세계 변화에 대응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었다

시대적 한계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그렇지만 서학도 전파되고 천주교 문제로 윤지충 등이 처형될 만큼 여기저기서 사회 변화의 시류가 감지됐다

저자의 지적처럼 정조가 서학 문제를 단순히 남인에 대한 노론의 정치 공세로 격하시켜 무조건 잠재우고 봐야 한다는 식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보다 발전적인 토론이 되지 않았을까?

하긴 이미 심각한 교조주의와 일당 독재론에 빠지 노론이 절대로 결단코 용납할 리 없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서학을 기술적인 측면에서라도 전혀 수용하지 못한 게 아쉽다

 

노론이라는 엄청난 기득권 세력의 수백년에 걸친 정권 장악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선은 쿠테타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개혁은 불가능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인조반정 이후 서인은 한 번도 정권을 내놓지 않았고 반대당들의 씨를 말렸으며 임금까지 택군하는 지경에 이른다

노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왕위마저 위태롭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 것이다

이러니 조심성 많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노론을 배척하는 아들 사도세자는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었고 이 상태로 왕위에 오르면 노론에 의해 쫓겨날 위험마저 있다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더구나 아버지인 자신에게 반역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정조의 한탄대로 다음 보위를 이을 세손이 있는 상황에서 영조의 선택은 그의 말대로 종묘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었던 셈이다

 

노론 체제에서 성리학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너무나 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

성리학에 반대되는 이를테면 서학 같은 대안적인 이념을 가진 세력의 쿠테타는 불가능 했을까?

그러고 보면 노론 세력이 구축한 조선 후기 사회는 나름대로 안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정권 수호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서인반정 이후 반군 세력을 해체시키지 않고 5군영에 편입시켜 자신들의 세력 하에 둔 점이나, 금난전권을 통해 시전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한 점, 국혼물실 정책을 통해 왕비를 자파에서 낸 점 등을 보면 이들의 정권 유지는 대단히 철두철미 했던 것 같다

서학을 중심으로 한 남인들의 쿠테타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메이지 유신처럼 완전히 확 갈아엎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을까?

 

모든 것은 가정에 불과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18세기 조선은 성리학으로 위부터 아래까지 똘똘 뭉친 나라라 일본처럼 서구화 되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층민들의 생활마저 좌지우지 할 정도로 통제력이 엄청났던 것 같고 아직까지도 유교적 가부장제 질서는 살아 움직인다

어쨌든 후대 왕들이 적어도 정조만큼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왕으로서의 책임의식을 강하게 가졌다면 세도정치로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 참 아쉬운 대목이다

순조는 비록 열 한 살에 왕위에 올랐지만 40대 후반까지 30년이 넘게 집권했다

단순히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세도정치가 됐다는 건 안이한 변명에 불과하다

순조는 정치력이 부족했고 왕으로서의 책임감도 아버지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 같은 왕이었다면 같은 상황에서도 충분히 정치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살아서 즉위했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대리청정 시기에 나름대로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하지만 역시 가정에 불과하다

순조의 손자 헌종이 겨우 8세의 나이로 즉위한 점은 조선으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지만 헌종 역시 비록 20대의 나이에 죽긴 했으나, 십여년을 통치했다

정치는 안동김씨나 어머니인 풍양 조씨 일가에게 맡겨 버렸던 게 분명하다

그 다음 철종이야 나무하다가 왕이 된 사람이니 더 말 할 것도 없다

 

요점은 정조 이후 어린 나이에 왕이 즉위하여 대비나 특정 가문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 왕으로서의 책임의식 부재,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성리학 교조주의 등이 조선을 식민지로 끝장나게 했다는 점이다

왕조가 잘 되려면 정궁이 아들을 많이 낳아서 후계자 문제를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져야 하는 법인데, 후기로 갈수록 왜 중전들의 불임이 심했는지 모를 일이다

원경왕후는 아들 넷과 딸 넷을 낳았고, 소헌왕후는 얼마나 금슬이 좋았는지 아들 여덟과 딸 둘을 낳았으며, 정희왕후도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았다

문정왕후도 딸 넷에 아들 하나, 인렬왕후도 아들 넷을 뒀다

그런데 선조의 왕비 의인왕후부터 불임이더니만, 인현왕후나 인원왕후 모두 불임이었고, 영조비인 정성왕후도 불임이고 경종은 본인이 불임이고, 효의왕후도 불임이었으니 참 불행한 일이다

혹시 왕들이 임신이 안 될 만큼 합방을 안 한 게 아닐까?

의학적으로 연구해 보고 싶은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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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는 지루했는데 역시 집중하니까 재밌다

작가의 생각에 아주 많이 동의한다

책은 무상성의 즐거움을 준다

모든 예술과 교양과 문화는 무상성이라는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실재적인 것은 아무 것도 줄 수 없지만, 대신 보이지 않는 내밀한 기쁨을 준다

지극히 정신적인 기쁨 말이다

책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의 그 기쁨!!

현실에서 한 발을 뗀 듯한 느낌이 들 때!!

나는 책 속의 세계로 빠져 드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책만 읽고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거라는 착각에 빠진다

명품도 필요없고 근사한 집이나 자동차가 없어도 심지어 연인이나 가족이 없다 할지라도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고 행복할 거라는 엄청난 착각 속에 빠진다

미시마 유키오의 주인공이 금각사를 보고 느꼈던 그 절대미의 황홀경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몽상적이고 비실재적인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은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지겹기 짝이 없는 연구와 경제활동을 통해 인류 사회 전체가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처럼 책만 읽는 바보들은 물질적인 혜택을 조금 덜 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기여한 바가 적으니 적게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겸손해 마지 않는다

간혹 책만큼 고귀한 것이 어딨냐면서 세상이 책과 독자를 홀대한다고 분통터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독서인들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충분히 감사해 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책 읽는 것 자체가 지극히 어려운 경제적 활동이었다

필사본으로 양피지 같은 데 적힌 책을 무슨 수로 하루에 한 권씩 읽겠는가?

책 한 권의 값이 집 한 채와 맞먹을 정도로 귀한 소비재였으니,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요즘 명품이나 비싼 외제차를 소유하듯 부의 과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래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노숙자에 불과할지라도 도서관에 가면 누구나 엄청난 양의 책을 읽을 수 있게 됐다

대출해서 집에서 편하게 읽을 수도 있고, 신청한 책을 사서 비치해 주기도 한다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환상의 책" 에 나오는 헥터만은 부둣가의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뉴욕시 공공도서관의 대출증 하나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될 수 있었다

글자와 인쇄술의 발명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한글처럼 이렇게도 쉬운 표음문자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세종대왕에게 엄청나게 감사해야 한다

 

저자는 국어 교사로써 학생들에게 억지로 읽는 책이 아니라, 진정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갖도록 노력한다

사실 책읽기가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고도의 취미 생활인가?

이런 즐거움을 평생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난 원래 멍청하다든가, 책은 고상한 사람들이나 읽는다는 식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아예 가까이 갈 엄두조차 못 내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면 되는데 말이다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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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왕세자빈 - 영혼의 한중록
마거릿 드래블 지음, 전경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런 책을 무척 읽고 싶어했다

인현왕후나 혜경궁 홍씨처럼 한많은 조선 시대 여인들의 심리를 현대적 문체로 풀어 놓은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만큼 아주 재밌지는 않고 좀 지루하다

옛날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소설 한중록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기분과 비슷하다

영국인 작가가 심리 묘사를 꽤 꼼꼼하게 잘 하긴 했는데 심리묘사에 치중하다  보니 아무래도 좀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다

 

만약 사도세자가 왕이 됐다면 혜경궁 홍씨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영조가 조선 시대 왕 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오래 살지 않았다면 그래서 사도세자가 즉위했다면 조선 후반기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보나마나 노론과 왕의 기싸움으로 바람 잘날이 없었을 것이다

정조는 영리하게도 노론을 슬슬 구슬리고 위협하면서 자기 세력을 키워나갔던데 반해, 아버지 사도세자는 정치적 능력이 떨어졌던 것 같다

세자 시절부터 노론의 미움을 받아 모든 신하들을, 심지어 장인네 집안까지 적으로 돌릴 게 뭐란 말인가?

 

그래도 혜경궁은 복이 많은 여자다

궁에 들어가자 마자 겨우 열 여섯의 나이로 세손을 생산했고, 비록 그 아이가 세 살 때 죽고 말았으나 바로 임신을 해서 또 정조를 낳아 대통을 확실하게 이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또 두 딸을 낳았으니, 사도세자와 금슬이 비교적 좋았던 것 같다

하긴 항상 아버지 영조의 억압에 시달리다 보니, 부인과는 동지의 관계였을지도 모른다

사도세자가 정신병이 있었음은 확실하다

영조 역시 가까운 사람들에게 과도할 정도로 분노와 애정을 쏟은 걸 보면 정신병리학적 이상이 있었을 것 같다

아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봤던 것일까?

 

화평옹주나 화완옹주가 늘 예쁘다고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미인이었던 것 같다

사도세자나 정조의 초상화를 보면 과히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닌데, 선희궁이 영조와 금슬이 좋았던 모양이다

선희궁은 스스로 왕에게 아들을 죽여 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비정한 어머니지만, 당시 상황으로 보면 아들에 대한 마지막 희망까지 버리고 차라리 세손이라도 보전하자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사도세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장인인 홍봉한네 집안도 어지간 했으면 세자와 손을 잡고 다음 정권을 준비했을텐데, 홍봉한 스스로 뒤주를 갖다 대령할 정도 사위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버렸다

사위 편에 서다가는 자기 집안이 완전히 멸문지화 될 거라는 공포에 떨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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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6-08-0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님의 리뷰 보니 당장 읽고 싶어지네요~~~
닉네임이 분명 바뀌었는데 누구실까 한참을 생각했답니다. 헤헤. 별님 댓글보구 나나님인줄 알았어요~~~ 반갑습니다.

marine 2006-08-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
잘 지내고 계셨죠??
근데 좀 지루하긴 해요
시도가 새로워서 읽어 볼 만 합니다

미친여편네 2007-09-12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중록은요,, 혜경궁홍씨 그 미친 여편네가 자신의 가문을 복원시키려고 쓴 소설일뿐입니다!! 실제로 한중록과 영종기사를 비교해봤을때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뭐? 세손을 살리려고 희망을 버렸다? 노론계인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였겠지요!! 말도 되도 않는 헛소리 쓰레기인 한중록입니다!!

marine 2007-09-2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디와 똑같은 내용의 댓글이네요 역사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