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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나르시시스트 프랑스
이선주 지음 / 민연 / 2005년 8월
평점 :
그런대로 읽을만 했다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봤어도 됐을 뻔 했다 아니면 사진을 좀 줄여서 가격을 낮췄더라면 좋았으련만. 신변잡기는 일체 없고 프랑스 사회를 나름대로 분석한 글 같다 마지막에 실린 가벼운 파리 감상문은 차라리 빼는 게 좋았을 정도로, 개인적인 내용이 일체 없다 일반적인 외국 체류 에세이가 아니다 그런데 문화 비평서로 보기에는 좀 약하다 전문적인 내용이 부족하고 그저 스케치에 불과한 느낌이다 어쨌든 80점 정도는 줄 수 있겠다
홍세화 때문에 유명해진 똘레랑스를 비판한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는데, 반대 입장은 당연히 아니고 좀 오버 아니냐, 이 정도로 끝낸다 다른 프랑스 소개 책에서도 똘레랑스 보다 솔리다리떼가 더 중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사회적 연대, 뭐 이런 얘기인데 자유, 평등, 박애 중 정체가 모호한 박애가 바로 연대의식과 연결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자선이나 3세계 국가에 대한 후원, 이런 것도 해당될 수 있겠다
확실히 프랑스는 절대왕정 시기에 최고 강대국이어서 그런지 자존심이 남다름을 느낀다 식민지를 많이 거느려서 그런지 몰라도 자국 내 문제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전인류적인 거시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 든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지구 평화 운운할 일이 있을까? 자국 문제도 해결 못해서 늘 낑낑대는데 지구촌 평화, 혹은 3세계 문제는 너무나 먼먼 얘기같다 아프리카 난민들 얘기 나오면 한국 고아나 돌보라는 식으로 대꾸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의 실체다 보면... 여러가지로 이 문화대국은 부럽다
선진국에 대한 동경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경제적인 발전도 그렇지만, 사회적 성숙도는 후진국과 비교가 안 된다 그들 역시 비슷한 고통의 시기를 먼저 겪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숙한 사회가 됐을 것이다 30년 근대화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고 흉내도 낼 수 없는 성숙함이 어쩔 수 없는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결국 한국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변해가지 않을까? 개인의 자유는 좀 더 확대되는 방향으로, 신자유주의 경제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고, 동성애나 동거 등도 허용되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가족 제도의 붕괴도 겪게 되겠지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독신을 하나의 정상적인 선택으로 인정해 주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프랑스의 경우, 동거와 결혼의 차이를 모르겠다 동거 커플에게도 법적 권리와 의무가 주어진다면 결혼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결혼은 동거보다 조금 더 법적 구속력이 많은, 그냥 정도 차이에 지나지 않는 걸까?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와 함께 살면서 자주 다투는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구조적 문제인가 보다 프랑스의 캥거루족은 탕기족이라고 부른다 대학 입학과 함께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대학 등록금을 낼 재주도 없는 애들이 과연 독립할 수 있을까? 하긴 프랑스는 대학 등록금이 없으니까 생활비는 알바로 벌면 되긴 하겠다 미국 역시 학자금 대출로 학생 각자가 해결한다고 한다 성인이 되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힘든 일인 것 같다 자유를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도 포기해야 하는데 부유하면서도 자유로움을 원하는 이기적인 젊은이들이 늘고 있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더욱 탕기족이 늘고 있다고 한다
복잡한 프랑스 대통령과 총리들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하긴 이런 내용은 내 책 아니었으면 대충 읽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자책으로 봤던 프랑스 얘기 중에서 2002년 르펜이 1차 결선 투표에 당선돼서 너무 황당했다는 얘기가 나온 것 같은데 무심코 지나가서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었다 오늘 보니까 조스팽 총리가 성공적인 정책을 폈음에도 불구하고 1차 투표에서 극우파 르펜에게 져서 정계은퇴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극우파가 나쁜 이유는 사회 불안과 가난, 실업 등을 모조리 이방인들 탓으로 돌려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외친다는 데 있다 노동력 많이 필요했던 70년대에는 값싼 인력을 몽땅 데려와가지고, 이제 와서 니네 때문에 일자리 없어졌으니까 너희 나라로 꺼지라는 이 뻔뻔하고 어처구니 없는 태도!! 아무런 정책도 없으면서 그저 사회적 약자에게 모든 문제의 책임을 떠넘겨 정권을 잡아 보려고 하는 이 파시스트들!!
드골 이후 1981년에 미테랑이 대통령이 됐고, 7년 임기 후 1988년에 또 재선되서 1995년까지 장기집권했고 1996년에 죽었다 1995년에 시라크가 대통령이 됐고 2002년에 다시 재선됐다 86년도에 시라크가 총리가 되면서 좌우동거 체제를 이루었고, 93년도에 발라뒤르가 총리였고, 97년에는 조스팽이 총리를 지냈다 좀 독특한 제도다 보통 국방, 외교는 대통령, 내무는 총리가 맡는다고 하는데 엄격한 분리는 아니라고 한다 어느 나라마다 그 나라만의 특성이 정치 제도를 독특하게 발전시키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최다득표자 2명을 놓고 2차 투표를 한다는 방식은 국민 통합에 좋을 것 같다 특히 프랑스처럼 대통령 후보가 무려 16명이나 되는 경우에는 반드시 있어야 할 제도다
2공화국 3공화국 하길래 대체 이게 뭔가 했더니, 이제 좀 감이 잡힌다 혁명 이후 프랑스 역사는 학교에서 배울 때부터 늘 헷갈리고 7월혁명이니 2월혁명이니 하는 것들도 정확한 의미를 몰랐었는데 이제 좀 알 것 같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1제정이 성립된다 그 유명한 자코뱅 당과 지롱드 당이 나오고, 로베스피에로의 공포정치가 실시되 루이 14세의 목이 잘린다 공포정치에 염증을 내던 중, 나폴레옹1세가 황제에 즉위해 1제정이 성립되고, 엘바섬으로 귀양가자 다시 루이 14세의 동생인 루이 18세가 즉위해 입헌 군주제가 된다 복고 정치로 돌아가려고 하자 폐위된 후 샤를 10세가 즉위하는데 이 사람도 언론의 자유를 탄압해 7월 혁명으로 쫓겨나고 이른바 시민의 왕인 루이 필리프가 즉위하는데, 노동자들이 선거권을 요구하는 2월 혁명이 일어나 (1848년) 나폴레옹 3세가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2공화국이 수립된다 이 놈은 다시 황제로 등극해 2제정을 세우지만, 보불전쟁에서 패해 (그 유명한 비스마르크에게 패함) 쫓겨나고 3공화국이 들어선다 이게 2차 대전까지 간다 독일군에게 점령당하 뒤 비시 괴뢰 정부가 수립되면서 3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2차 대전 후 드골이 임시 국민투표에 의해 4공화국을 세우고 대통령이 되는데, 알제리 사태를 계기로 국민투포를 통해 다시 5공화국으로 바뀌고 오늘날에 이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철종과 고종 시절에 이 엄청난 변화들이 몰아치고 있었던 셈이다 갑자기 흥선대원군이 개혁 정치를 했으면 (메이지 유신처럼)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했을까, 이런 의문이 든다
개인주의 극치는 사데팡, 즉 경우에 따라 다르다, 라고 말해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내 일 말고는 관심없다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이런 무관심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연대감인 솔리다리테의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나도 시위를 하고 파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시위권과 파업권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라고 한다 경찰과 선생님들까지 파업하는 거 보면 정말 프랑스 파업 문화에 예외란 없는 것 같다 이 나라는 의사들이 파업해도 별로 욕 안 먹을 것 같다
동성애에 대한 법률적 인정이 프랑스에서도 이루어졌음 좋겠다 일단 서구 사회가 먼저 수용해야 우리 같은 후진국도 따라갈 모범이 생기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미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했다 사실 동성애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적 취향의 표현일 따름이다 국가를 전복시키는 것도 아니고 사회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결혼을 못하게 하고 억압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국가 제도의 근본인 가족 제도가 무너진다고 하지만, 입양을 허용하면 얼마든지 다음 세대를 양육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구나 요즘처럼 애를 안 낳으려는 시대에 독신자나 동성애 커플의 입양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독교적인 편견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하여간 프랑스 시장조차 동성애자라고 커밍 아웃을 했다고 하니, 과연 프랑스의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는 한국과 아직은 비교할 수준이 아닌 것 같다 게이 프라이드 축제가 있는데 6월이 되면 게이들이 세계 각국에서 행진을 한다고 한다 뉴욕에는 소방관 게이들 모임이 단체 행진을 한다고 하니, 과연 동성애가 일반적인 현상이긴 한 것 같다
사회적 연대의 강조로써 마음의 식탁이라는 행사가 있다고 한다 우리식으로 하면 사랑의 밥퍼 운동, 뭐 이런 거 말이다 노숙자들에게 겨울철 3개월 동안 공짜 식사를 제공하는 운동이다 놀랍게도 프랑스의 유명 연예인이 주축이 되어 많은 연예인들이 무료 공연에 참석해서 이슈를 만들었고 오늘날 대표적인 자선 행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역시 문화 선진국의 연예인답다 또 소액 기부자들에게 조세 혜택을 줘서 많은 이들이 동참할 수 있게 해 줬다 (콜뤼쉬법) 우리나라도 소액 기부자들의 세재 혜택을 주면 기부 문화가 좀 더 활성화 되지 않을까? 역시 제도 정비가 우선인 것 같다 프랑스 자선 행사의 특징은 축제성으로 볼 거리가 풍부하고 (연예인들이 많이 참석하고 가장 무도회 식으로 꾸미고 행진한다) 기부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봉사에 의한 연대의식 이 세가지를 들 수 있다 일단 축제처럼 즐긴다는 것이 마음에 들고, 자원봉사 위주의 실천적이라는 것도 아주 좋고, 기부 내역의 투명성이야 전제 조건일 것이다
똘레랑스는 용서와 관용의 의미라고 한다 다름에 대한 인정이라기 보다는, 좀 더 우월한 처지에서 나보다 못한 이의 입장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준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존중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여간 종교전쟁을 치루면서 발생한 개념이라고 하니, 신교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만 하다 어떤 의미로든 차이에 대한 인정이야 말로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불행할 것인가!! 한국처럼 전체주의적, 집단주의적 문화가 강한 나라는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질서와 조화를 깨는 것으로 인식되니 이래저래 창의력 발휘하기 힘들다 결국 21세기를 이끌어 갈 주요사상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와 연대의식인 것 같다
어떤 의미로든 미국식 패권주의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빅 브라더는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적당한 세력균형을 이루면서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가 됐으면 좋겠다 국경이나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져 전지구적인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올 날은 아직 멀었을까? 우주인이라도 나타나야 지구는 하나라고 느끼게 될까? 리처드 도킨스에 따르면 인종끼리의 유전자 차이는 너무나 작기 때문에 인종차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한다 프랑스에 사는 알제리인도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떳떳히 믿을 수 있고, 한국에 사는 동남아인들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