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 100배 똑똑하게 키우기
후지이 사토시 지음, 최지용 옮김 / 보누스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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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00배 씩이나 똑똑해지다니!!

화장실 훈련만 제대로 시켜도 원이 없겠다

하긴, 개가 화장실만 제대로 가도 엄청 똑똑한 거지

그러고 보면 맹인견들은 엄청난 훈련을 할 것 같다

개를 개 수준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똘이에게 복종을 강요한다는 게 솔직히 어렵다

제멋대로 키워지다가 갑자기 안면 싹 바꿔서 우리에 가두고 밥도 제 때 안 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결국 똘이를 위해서 사람이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대로 참을 만 하니까 앞으로도 쭉 참아야 할 것 같다

 

화장실 훈련의 핵심은 가둬 놓으라는 것이다

일단 주인이 없으면 우리에 가둬 놓고 밥도 규칙적으로 하루에 한 두 번만 준다

그래야 일정한 시간에 용변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개를 상전처럼 항상 떠받들 수 없을 바에야 일정한 정도로 인간에게 맞추는 게 개의 평생을 볼 때 더 낫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유기견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완벽하게 복종시키는 게 낫다는 얘기다

그건 그렇다

개는 서열을 중요시 하는 동물이고 지도자의 말에 철저하게 복종하기 때문에 주인을 자신의 지도자로 생각하고 그 말에 따를 때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하긴 우리 똘이도 자꾸 짖는 게 심적으로 불안해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개 입장에서 생각하기, 이게 핵심 내용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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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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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재밌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책 모양이 마음에 들고, 열혈 독자의 책이라는 점에서 공감할 만한 얘기들이 많았다

솔직히 내용 자체는 별로지만, 여기 소제목들을 주제로 내 이야기를 써 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아무래도 동거를 하는 모양이다

동거를 한다길래 30대 여성쯤 되나 했더니, 세상에 50대 후반이었다

아이는 물론 없고 남자 친구와 30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정말 프랑스는 대단하다

동거 커플이 결혼 커플만큼 흔하고 사회적으로도 용인되는 사이라고 한다

어느 사회나 허용할 수 있는 한계치는 다르지만, 유럽의 개방적인 성의식은 참 마음에 든다

가족이 해체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선진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관용이고 여유지 않나 싶다

 

저자의 직업은 앤 페이먼처럼 편집자다

나도 이 쪽 일 했으면 좋았으련만...

은희경 직업도 편집자인데, 확실히 여기 일 하다 보면 글쓰는 재능이 막 솟아 오를 것 같다

 

책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이번에는 아주 꼼꼼하게, 사실은 강박 관념이 생길만큼 파헤치듯 읽었다

그랬더니 상당히 재밌었다

역시 뭐든 집중하고 많이 알아야 진짜 맛을 느끼나 보다

갑자기 혹평했던 책들도 내 독서력 부족 탓이 아니었는지 슬쩍 미안해진다

 

저자가 한자 번역을 많이 해 놔서 그거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네이버 사전은 정말 편하다

한자 1급 자격증을 딸까 했는데 나처럼 교양으로 알고 싶은 사람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필요해서 찾을 때가 바로 공부할 적기인 모양이다

장서표나 판권면, 기수면 우수면 같은 책에 관련된 한자어들을 알게 되서 기쁘다

장서표가 대체 뭔가 개념이 안 잡혔는데 책도장 같은 걸 말하는 것 같다

책갈피라는 의미로도 쓰이는 것 같다

이 한자어를 알게 되서 정말 뿌듯하다

판권면은 책의 발행인이나 발행년도 나온 종이를 말하고, 기수면은 홀수쪽, 우수면은 짝수쪽을 의미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서점을 한자로 쓸 수 있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무엇보다 프랑스인들의 자잘한 일상에 대한 많은 지식이 생겼다

브르테뉴 지방이 어디인지, 카탈루니아는 또 어디에 있는지, 이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지, 서양알버섯 즉 truffle이란 뭔지 소소한 그러나 재밌는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

내 입맛에 맞는 유학생이나 이민자들의 책이 나오길 목빠지게 기다릴 게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게 낫다는 결론도 내렸다

역시 구글은 대단하다

이미지 검색 정말 짱이다

 

벌써 61세에 달한 프랑스 할머니인 저자는, 그러나 여전히 너무 젊고 책에 대한 열정은 젊은이 못지 않다

자기만큼 책을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났다는 점에서 너무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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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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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급하게 읽은 책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한 장면 한 장면 꼼꼼히 읽기 보다는,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성급하게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사실 이런 소설에서, 아니 어느 정도 수준있는 소설에서 줄거리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다지 질높은 독자가 아닌 나로서는 자꾸 결말을 빨리 알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

더구나 한 번에 쭉 읽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만지작거린 책이라, 더더욱 ?기는 기분으로 급하게 읽어 버렸다

이런 걸 두고 체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은희경이 제시한 새로운 갈등 관계, 자식의 삶에 관여하고자 하는 한국 아버지들의 그 가족주의가 마음에 들긴 했는데, 저자 후기를 읽으면서 약간의 반발심이 생겼다

은희경은 평론에서도 인정받고 이름만으로도 책 수 십만권은 팔아 치울 수 있는 이른바 문화권력을 가진 작가인데, 내면의 고민들, 그러니까 나같이 안 풀리는 독자 입장에서 보면 배부른 고민들에 불과한 얘기들을 후기랍시고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는 게 좀 아니꼬왔다

왠지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위 배알이 뒤틀린다

진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고뇌하는 척, 실은 사소한 것에 불과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본질적인 고민들을, 평소에는 가볍게 치부해 버리는 그것들을, 작가후기에 멋진 문장과 함께 필력 자랑하려고 끼워 넣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너무 꼬여 있는 걸까?

하긴 내 고민이라는 것도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 봤는데, 은희경 입장에서 보면 작가로서의 고민은 있을 수 있겠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 더 근원적인 것은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분명 내제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고민이란 것은 너무나 개성적이고 제각각이라 처음부터 크고 작고의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주제 의식에 깊이 공감하는 바다

가족주의로 묶여 있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아들딸들의 공통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직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바로 윗상사가 서울 사람이었는데 전라도 지방으로 혼자 학교를 와서 좋았던 점은, 무리에 쉽게 어울리기 힘들고 외로웠던 점도 있었으나, 가족이나 선후배 같은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진짜로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고 살았다는 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고 들었던 얘기가, 타지로 떠나 있는 요즘 자주 생각이 난다

주변을 둘러  봐도 그렇고 나 역시 가끔은 차라리 가족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이런 발칙한 생각을 해 본다

가족이 없다면 한 학기에 등록금이 300만원씩이나 하는 사립 대학을, 그것도 원룸에서 살면서까지 다닐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가족이 주는 혜택만 누리고 의무나 간섭은 벗어 던지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에 빠진다

대한민국 부모들이 얼마나 자식에게 헌신적인지는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심지어 결혼을 해서도 직장 나가는 딸을 위해 기꺼이 노년을 손자 키우기에 바치는 게 바로 대한민국 어머니들 아닌가?

자식 과외시키려고 식당 아르바이트나 가사 도우미도 자처하는 게 한국의 엄마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리는 게 또 대한민국 사회다

모든 인간관계는 give and take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렇게까지 헌신을 하는데 요구하는 게 없을 리 없다

절대적인 사랑이란 건, 부모 자식간에도 불가능한 말이다

물질적으로 바라지 않을 뿐,감정적인 기대감은 다른 어떤 나라의 부모보다도 클 것이다

 

장남이라면 더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아들의 존재는, 더구나 큰 아들의 존재는 너무 엄청나서 장남 컴플렉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요즘처럼 모든 자식들에게 골고루 경제적 혜택을 줄 수 있을 만큼 잘 살았다면 장남이고 차남이고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던 6-70년대만 해도 딸은 물론이고 나머지 아들들에게마저 똑같은 교육적 혜택을 베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라도 잘 되야 한다는, 그래서 그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 장남에게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자식들은 소외됐을 것이다

소설에서는 영준과 영우 두 형제 밖에 안 나오지만 딸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얘기는 더욱 복잡해졌을 것이다

더구나 이 집안은 아버지가 건설업을 하는, 당시로서는 아주 상류층은 아니나 중산층 중에서도 윗길을 차지할 만큼, 식모를 두고 마누라가 청와대에 초청받을 정도로 유복한 집이었다

그런데도 부모의 기대에 따른 형제간의 갈등은 존재한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돈이 없어서 장남만 가르치고 차남은 팽개쳐서 생긴, 가난한 60년대 집안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능력있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아버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야 하는, 자의식을 잃어버린 형제들의 갈등이라고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상당히 현대적인 소설이다

시대배경은 60년대지만, 주제의식은 바로 21세기에 있다

그래서 내가 깊이 공감하는 것이리라

 


 

촌놈에 관한 정의도 마음에 들었다

쥐뿔도 없으면서 남이 자기 무시할까 봐 어설픈 치기와 자존심으로 버티는 마초의식 강한 놈들

촌놈의 반대는 쿨함이 아닐까 싶다

스타일은 돈을 쳐 발라 바꿀 수 있다 하더라도 감정의 세련됨까지 익히기는 참 힘들 것 같다

컴플렉스와 자기방어로 똘똘 뭉친, 편견과 독선과 아집 강한 촌놈들

사실 내 모습일수도 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서울사람들에 대한 컴플렉스가 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단지 서울에 산다고 감정의 세련됨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 영준이 비록 촌스러움의 대명사인 전라도 시골 출신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인 세련됨, 즉 쿨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쿨하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은희경 소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일 것이다

냉소적이고 사랑을 일회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고, 사람과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고, 순정보다는 비웃음을 택하는, 그러나 삐딱하기 보다는 세상에 적당히 타협하면서, 한 절반쯤만 적응하는 그런 캐릭터들 말이다

아웃사이더 기질을 가지고 있으나 결코 그 기질 때문에 손해보지는 않는 영악스런 캐릭터들

나처럼 감정의 과잉에 빠져 사는, 거기다가 맨날 손해만 보는 아웃사이더 기질을 지닌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쿨한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나도 촌놈에 불과한가?

그래도 소설 속에 묘사된 촌놈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주류를 원하면서도 진짜 주류가 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안정감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지향하는, 사실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매우 강한 사람이고 보면, 마초같은 촌놈들과는 또 일정한 거리를 둘 수 밖에 없다


 

영우의 모습은, 어쩌면 동생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서 사회적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다르겠지만, 거의 흡사하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고 부모가 돌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능력이 부족한 자식으로써 말이다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것은 패륜아가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고 최소한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데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내버려 뒀을 경우 진짜 의미의 서민층이 될 사람들이다

의사들이 자조적인 의미로 나도 서민층이다, 하는 그 위선적인 서민 말고 말이다

 

영우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하급 공무원이나마 안정된 직장을 잡게 해 준 아버지 정욱의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사실 정욱이 한 그 청탁을 아빠도 동생을 위해 해 주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꾸 동생에게 화를 내고 불안해 한다

정욱은 원래 건설업자로써 관공서 공사 따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고, 청탁이나 연줄 같은데는 토가 텄을 것이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알음알음으로 얼마든지 하급 공무원 같은 건 끼워 넣을 수 있는 혼란기였다

아빠가 흔히 하는 말, 세상이 바꿔졌다는 건 바로 그 청탁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얘기와 통한다

동생은 아빠의 불안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자아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진짜 사랑했던 사람은 형이었다는 식으로 분노와 서운함을 터뜨리는 영우를 보면, 동생이 아빠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같다

나 역시 텍스트를 통해 전지전능한 관점에서 두 형제의 삶을 내려다 보기 때문에 정욱의 심정을 이해하는 것일 뿐, 실제 상황에서라면 더구나 내 경우라면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영준의 말에 일리가 있다

영준은 학창 시절 내내 아버지가 원하는 장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한 번도 마음대로 해 본 일이 없다

언제나 우등생 모범생 컴플렉스가 그를 짖눌렀다

반면에 영우는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제멋대로 살아도 아버지라는 든든한 빽 때문에 결국은 제 자리로 무사히 돌아오고 상대적으로 훨씬 자유롭게 산 것처럼 보인다

내가 너처럼 사람을 패서 병원비를 달라고 해 봤냐,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해 봤냐, 넌 아버지가 나에게 뭐든 다 해 줬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일만 했기 때문에 해 준 것일 뿐이었다는 영준의 절규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결국 끝까지 아버지를 외면한 것도 영우가 아닌 영준이었다는 점에서, 영우보다 영준의 마음에 더 큰 상처가 있음이 분명하다

어찌됐든 영우는 아버지 덕에 하급 공무원이나마 하면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었고 마지막 임종까지 지켰다

그러나 법대를 장학금 받고 들어간 영준은, 결국 아버지로부터 도망가 장례식 때나 나타날 정도로 완전히 아버지와 담을 쌓았다

그래서 영준은 가정도 이루지 않았다

 

정욱의 교육법은 옳은 것일까?

능력있는 영준에게는 완전히 틀린 것이고, 모자란 영우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결과만 놓고 본다면 말이다

영우는 한 번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 본 일이 없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우처럼 살다가는 낙오되기 십상이고 아버지 정욱 역시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계속해서 영우의 방황을 처리해 준 것이리라

그러나 결국 두 아들 모두에게서 진정한 이해를 받지 못했으니 불행한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다

자식과 부모가 독립된 인격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은희경은 또, 가족주의에 대해 슬쩍 건드려 본다

사실 소설 전체를 놓고 본다면 마을 청년들이 죽인 L의 집안과 주인공 정씨네 집안, 그리고 경쟁자 최씨네 집안의 얽히고 설킨 애증의 세월이 주제다

그렇게 서로를 미워 했건만 오히려 더욱 질긴 인연으로 묶여, 조부 정성일이 멍석말이로 죽인 L의 딸은 끔찍히도 귀하게 여기던 자신의 큰아들 재욱과 결혼했고, 막내 정욱은 또 원수 같던 최씨네의 외동딸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는다

세 집안에 드리워진 운명은 박수무당이 예언했던 것처럼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집단으로만 존재하는 한국인들, 특히 공동체가 아닌 그렇다고 개인도 아닌 가족으로만 정체성을 찾는 한국들인들의 혈연주의가 너무 버겁고 힘에 겹다

자식에 대한 집착이 시스템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 나는 도저히 자식을 나와 별개의 독립된 인격체로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끔찍하리만큼 질긴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에 발을 딛기가 두렵다

 

영준이 사랑했던 사촌 누이 명선의 죽음이나, 아버지의 사생아인 또다른 명선의 이야기는, 사실 소설에서 방향 제시만 할 뿐 큰 역할을 못한다

소설에 삽입된 영화 역시 그저 영준의 직업이 영화감독이라는 걸 드러내 주는 것으로 그친다

그 점이 좀 아쉽다

은희경이 죽은 사촌 명선이나, 이복동생 명선이의 이야기를 플롯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거나, 영화 내용을 보다 개연성 있게 꾸몄다면 훨씬 재밌는 소설이 됐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독자들이 불만인 모양이다

물론 나는 은희경이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충분히 공감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어쨌든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독자에게 불친절 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녀의 문장력은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새의 선물이나 마지마 춤은 나와 함께 등에 비교했을 때 재미가 떨어진다고 불평들이 대단하지만, 오히려 평론가들은 이번 작품을 더 높히 쳐 준다는 것만 봐도 그녀의 문학적 내공이 깊어 가고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자기 고향이기도 한 고창, 소설 속의 K 읍에 대한 묘사력도 대단하고, 영우와 영준, 아버지 정욱 등의 심리 묘사도 놀랍다

맨 마지막에 두 형제가 상대에 대한,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라 하겠다

따옴표도 없이 줄도 안 바꾸고 쭉 이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설전을 이어가는 그녀의 필력에 정말 놀랬다

너무 마음에 들어 따로 옮겨 놨다

더불어, 조감독의 촌놈 타령도 아주 마음에 든다

인간의 위악성을 파헤치는 은희경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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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00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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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사 놓은 책인데 이제서야 읽었다

1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작은 문고판

유럽으로 미술관 투어를 가려고 결심한 뒤 산 책이다

사실은 4만원 맞추려고 끼워 넣은 거다

최근에 발간된 거라야 하루 배송이 가능해서 고르고 고른 책이다

100번이라는 매력적인 번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 여행의 방법, 뭐 이런 얘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 고대로부터의 여행의 역사가 죽 나오는 거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나오질 않나, 한 무제 때의 장건이 나오질 않나 한 마디로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여행의 역사 부분은 한 챕터에 끝나고 뒤로 가면 내가 원하는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요즘에야 여행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관광과 비슷한 의미로 여겨지지, 과거에는 사회적 국가적 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일종의 모험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콜럼버스의 대항해 이런 것이 과거 여행의 일반적인 행태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교통이 발달하지 않고 천문학이나 지리학 발전이 더디었던 고대 사회에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생명을 건 행위였을 것이다

일단 지구나 평평하다고 생각했으니 세상끝에 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거라는 게 일반인들의 두려움 아니었겠는가?

결국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보하는 것 같다

그 정신이라는 것도 과학기술의 도움이 있어야 한 단계 나아간다는 얘기다


 

여행을 왜 떠나는가?

저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우선 꼽는다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또 관습이나 사회적 규제로부터 저항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좀 더 확대해서 말하자면 내면의 발견, 자아찾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도 있겠으나, 직접 행동하는 것과 단순히 상상력에 의지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다치바나의 말대로 책을 통해 익힌 지식을 경험을 통해 즉 여행을 하면서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경제력이 필수일 것이다

더불어 시간까지

결국 교양인이 되려면 돈과 시간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글쓰기의 메타포가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마치 책을 읽고 나면 할 말이 많아지는 것처럼,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풍경과 삶의 방식을 접하면 이야기거리가 많아질 것 같다

 

소유로서의 여행보다 존재로서의 여행을 즐기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소유로서의 여행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루브르 미술관에 갔다, 사진을 찍었다, 나 거기 가 봤다고 남들에게 자랑한다,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긴 이것도 어렸을 때 말이지 나이가 좀 들면 이런 자부심 같은 건 유치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 어디 가 봤어, 이런 걸로 자신의 가치를 높힐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어딨겠는가?

그렇다면 존재로서의 여행, 자아 찾기로서의 여행은 무엇인가?

천천히 자신에 대해 돌아보면서, 남과 다른 점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특성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과정이라고 할까?

하여간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은 생각의 확장에 큰 도움을 준다

나만 해도 내셔널 갤러리에서 직접 명화들을 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림에는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타인과 시선을 교환하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선진국 여행객들이 후진국을 여행할 때 우월감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 가면 낯선 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행지의 주민들도 실은 우리 여행객들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새롭게 바라보면 그들 역시 나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볼 것이다

솔직히 함부로 막 사진 찍는 사람들, 거부감 든다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여행객이 동정의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 보면서 사진 한 장 찍자고 하면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가난한 아프리카 여행객이 뉴욕에 가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하면 흔쾌히 응하는 백인 별로 없을 거다

그러므로 여행을 떠날 때는 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불편함과 이상함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오는 이질성에서 기원한 것임을 명심하고, 함부로 가치판단을 내리지 말자


 

여행을 자주 떠나고 싶다

여행 중독이 되면 일상은 그저 여행 사이사이의 충전 시간으로만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관광지만 휙 도는, 소유로서의 여행 말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문화권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그런 여행을 자주 하고 싶다

내면의 발견이랄까?

국내 여행도 좋지만 가능하면 해외여행을 많이 해 보고 싶다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낯선 느낌을 자주 느끼고 싶다

외롭고 처량한 기분도 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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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살림지식총서 76
홍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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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드외에 따르면 문화적 취향, 예술에 대한 감식력 같은 것이 경제력과 직결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예술이 현대 사회의 지배적 이념인가?

예술가들이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경제력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예술적 심미안이 높은 것을 상류층의 특징으로 꼽는지 잘 모르겠다

부르드외에 따르면 미술관 찾아 다니고 책 많이 읽고 이런 것들이 다 높히 평가받는 지배 계급의 속성 중 하나로 인식되야 하는데,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지배 계급임을 드러내는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지배 계급, 즉 이른바 상류층이 문화 예술적으로 심미안이 높고 그 쪽으로 투자도 많이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망정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그냥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지장없는 그 정도 수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나 싶다

 

반대로 가난한 예술가들은 어떻게 해석되야 할까?

상징자본이 이렇게까지 중요하다면 그 상징자본을 생산해 내는 예술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데, 순수예술은 늘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앓는 소리를 해댄다

만약 상징자본은 풍부한데 경제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배 계급이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한국 사회에서 상징자본은 경제력에 종속된 하위 개념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일단 돈이 많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음악, 미술, 사진 이런 것들에 대한 취향이 고급스러우려면 경제력을 확보하고 이른바 지배 계급에 편입되야 함을 인정하지만, 그렇게까지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수행해낸 사람이라면 문화적 취향도 고급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일이 안 풀려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산다

문화적 취향이 고급스럽다고 지배 계층에 편입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또 대한민국 부자들이 과연 예술에 대한 감식안이 풍부한지도 잘 모르겠다

증권이나 부동산에는 밝을지언정 예술적 취향도 고상하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술에 대한 취향 자체를 중요시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학교 교육이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오히려 계급 불평등을 재생산해 내는 공간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물론 그렇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국가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건물을 짓고 교사들을 채용해 공짜로 학생들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기본 원리인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 아니겠는가?

국가는 학교 교육을 통해 지배 이념에 적절한 인간을 양성해 낸다

그러니 대안학교 어쩌고 하면 국가는 이들의 사회 진입을 막으려고 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란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더러 노동자 중심으로 가르치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상징적인 의미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할 뿐이지, 능력의 차이는 분명히 있고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든 다 똑같은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미학 역시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관점은 분명 있다

그런 게 바로 진보 아닐까?

지배 이념이란 적어도 교육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보다 발전되고 세련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도태되어 지배 이데올로기로 남아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 편향적인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또 사회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는 사상이나 문화적 틀을 수용해야만 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부르드외가 주장하는 문제점은 인정한다

노동자의 90%가 다시 노동자 계급으로 재생산 되고, 이들은 자신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낙오됐다고 문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난의 대물림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진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평범하고 무능력한 사람도 왠만큼 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복지국가의 이념일 것이다

능력의 평등은 안 될지라도, 기회의 균등에 있어 가능하면 그 범위를 넓혀 주자는 데 진정한 진보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의 90%가 다시 노동자가 되는 이 시스템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아예 상승 자체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아무리 미련하고 모자란 놈도 귀족으로 태어나면 평생 지배 계급으로 군림했으나 현대 사회는 일정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 사람들은 환경이 어지간히 좋더라도 도태되게 된다

반대로 엄청나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신분제의 한계에 묶였던 것에 비해, 현대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은 지배 계급으로의 편입의 문이 좁게나마 열려 있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지배 계급이 되는 바로 그 10%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다

어떻게 하면 이 비율을 높이느냐다

노동자로 태어나 지배 계급으로 상승하는 비율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늘릴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부르드외는 현재의 학교 교육 시스템으로는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 것 같다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신분 상승의 기회가 보장된 사회가 곧 열린 사회고 발전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득권 보장도 좀 더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경제 발전을 이룩한 만큼 사회 시스템이 여러가지로 불안정 하지만, 대신 역동적이고 신분의 이동이 활발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큰 해당없는 얘기지만

어쨌든 한국 부모들이 자식 교육에 목숨 거는 이유도 바로 이 신분상승을 위해서 학교 교육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이리라

돈을 크게 벌어서 신분 상승 하는 것보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제도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백만배 쯤 쉽다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부르드외가 주장한 학교 교육을 통한 지배 계급의 재생산과 더불어, 외국 문화에 종속된 후기 식민지성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니가 학벌 사회의 폐해는 전 세계 공통적인 일반적 문제인데 비해, 미국 문화에 철저하게 종속된 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특수한 문제인 셈이다

외국이란 곧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문화는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다 미국이 기준이고 영어 실력의 유무가 개인의 능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지표가 된다

한국이야 반도 국가의 특성상 과거에도 중국 문화에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었고 그것이 또 생존방식이었다

일제 시대 때는 일본 유학을 통한 지식인 그룹이 형성됐고, 미국에 의해 해방된 이후는 미국 유학 코스를 통해 지배 계급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경제 개발에 앞장섰다

미국 것은 좋은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어떤 다른 이론이나 문화도 용납될 수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학벌주의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모든 고등학교의 목표는 서울대학교 많이 보내기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전형적인 예다

어느 정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 학교 교육이란 것은 인정하지만 그 도가 천박하리만큼 지나치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밤 10시까지 자율학습 시킨다면서 모든 학생들을 잡아두고 심화반이나 기숙사 등을 운영하고 모든 학생들의 목표를 서울대로 잡는 나라!!

그러고 보면 앞에서 우리나라는 프랑스 보다 낫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편견이었나 반성하게 된다

 

기존의 마르크시스트들이 경제적 구조에 따라서 지배 피지배 계급을 나눴던 반면, 부르디외는 문화지배에 의한 방식으로 계급을 나눴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 자본이나 상징 자본이 경제 구조보다 더 중요시 된 이유는, 바로 경제 발전에 있지 않을까?

먹고 살만해지니까 더이상 빵을 위해 극렬하게 투쟁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 역시 지적한 바지만, 노동자 계층도 (특히 현대 자동차) 휴가철이면 바캉스 가고 외식 자주 하고 자동차도 굴린다

자신들이 피지배 계층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할 수 밖에 없다

절대적인 부가 커짐에 따라 평등하게 나눠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 그 혜택을 누리면서 하층 계급이 갖는 저항 의식 자체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이른바 노동 귀족들이 탄생했다

저자의 말처럼 물적 자본의 소유 유무로 계급의식을 결정할 게 아니라 소비 양식에 따라 나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계급의식의 대표적 표현이 바로 투표 성향일 것이다

 

나도 의문을 가졌었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대다수가 노동자 계층인데 왜 노동당이 정권을 잡지 못할까?

울산의 경우 노조가 그렇게 활발한데도 왜 항상 정몽주가 당선되는 것일까?

금권 선거가 아닌가 이런 생각마저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현대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문화 향유 계급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가족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그들은 스스로를 일반 노동자들과 다른 계층으로 상정하는 것 같다

사실 전공의들도 노조가 생기고 공무원 노조도 인정한다고 하지만 과연 공무원이나 의사를 노동자로 인정해 줄지는 의문이다

창녀들이 노조 만든다고 하니까 심지어 여성 노동가마저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노동자란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고 일하는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노동자 계층은 이렇다, 는 식으로 단정지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재밌는 부분은, 같은 계급 내에서도 소비 양식이나 표현 양식이 다른 경우들이다

나도 이 점에 대해 참 궁금했다

상류층은 이렇다, 혹은 중산층은 이렇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들이 종종 관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르디외 말을 빌리면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같은 계급 내 있더라도 얼마나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혹은 자본 구성이 어떻게 됐냐에 따라, 기존의 계급이 어떤 곳이었냐 등에 따라 계급의식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밑바닥에 올라온 중간계급은 더욱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위로 올라가려는 상승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보수적 성향을 드러낸다

중산층이 진보를 이룩한다 식의 시민사회론은 그저 말을 위한 말에 불과한 것 같다

 

학벌 컴플렉스,

대한민국에 살면서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학벌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 인정한다

또 갖기 못한 사람들의 패배의식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너무 노골적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온 국민을 피해자로 몰고 간다

누군가의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지배 계급에 편입되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미국 밖에 없는 것 같다

학벌과 함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게 바로 미국이다

미국 학벌이면 최고층을 점유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소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일단 지식층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같은 중산층이라 할지라도 계급의식은 위쪽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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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9-1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겠지만, 부르디외를 전공하신 분들이나 들뢰즈 전공하신 분들...이 교단에 서기 몹시 힘든 것 같더군요. 제도권의 벽인지? 새로운 시각이 낯선 것인지? 모르겠지만 실력있으신 분들이 지역에서도 힘든 것 같더군요. 학문적 방법이나 도구로 우리사회를 분석, 연구하는 것도 무척 가치있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님의 지적처럼 너무나 암담하기도 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