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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ㅣ 살림지식총서 76
홍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평점 :
부르드외에 따르면 문화적 취향, 예술에 대한 감식력 같은 것이 경제력과 직결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예술이 현대 사회의 지배적 이념인가?
예술가들이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경제력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예술적 심미안이 높은 것을 상류층의 특징으로 꼽는지 잘 모르겠다
부르드외에 따르면 미술관 찾아 다니고 책 많이 읽고 이런 것들이 다 높히 평가받는 지배 계급의 속성 중 하나로 인식되야 하는데,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이것은 지배 계급임을 드러내는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지배 계급, 즉 이른바 상류층이 문화 예술적으로 심미안이 높고 그 쪽으로 투자도 많이 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조건은 될 망정 필요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그냥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 지장없는 그 정도 수준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나 싶다
반대로 가난한 예술가들은 어떻게 해석되야 할까?
상징자본이 이렇게까지 중요하다면 그 상징자본을 생산해 내는 예술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데, 순수예술은 늘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앓는 소리를 해댄다
만약 상징자본은 풍부한데 경제력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배 계급이라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한국 사회에서 상징자본은 경제력에 종속된 하위 개념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일단 돈이 많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음악, 미술, 사진 이런 것들에 대한 취향이 고급스러우려면 경제력을 확보하고 이른바 지배 계급에 편입되야 함을 인정하지만, 그렇게까지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학교 교육을 성실하게 수행해낸 사람이라면 문화적 취향도 고급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일이 안 풀려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산다
문화적 취향이 고급스럽다고 지배 계층에 편입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또 대한민국 부자들이 과연 예술에 대한 감식안이 풍부한지도 잘 모르겠다
증권이나 부동산에는 밝을지언정 예술적 취향도 고상하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술에 대한 취향 자체를 중요시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것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학교 교육이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오히려 계급 불평등을 재생산해 내는 공간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물론 그렇다
노동자 계급의 투쟁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국가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건물을 짓고 교사들을 채용해 공짜로 학생들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의 기본 원리인 기브 앤 테이크의 법칙 아니겠는가?
국가는 학교 교육을 통해 지배 이념에 적절한 인간을 양성해 낸다
그러니 대안학교 어쩌고 하면 국가는 이들의 사회 진입을 막으려고 한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교란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더러 노동자 중심으로 가르치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상징적인 의미에서 모든 인간이 평등할 뿐이지, 능력의 차이는 분명히 있고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든 다 똑같은 수준은 아니지 않을까?
미학 역시 좀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관점은 분명 있다
그런 게 바로 진보 아닐까?
지배 이념이란 적어도 교육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보면 보다 발전되고 세련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도태되어 지배 이데올로기로 남아 있을 리도 없다
그러니 어느 정도 편향적인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또 사회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는 사상이나 문화적 틀을 수용해야만 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부르드외가 주장하는 문제점은 인정한다
노동자의 90%가 다시 노동자 계급으로 재생산 되고, 이들은 자신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낙오됐다고 문제점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가난의 대물림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진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평범하고 무능력한 사람도 왠만큼 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바로 복지국가의 이념일 것이다
능력의 평등은 안 될지라도, 기회의 균등에 있어 가능하면 그 범위를 넓혀 주자는 데 진정한 진보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의 90%가 다시 노동자가 되는 이 시스템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는 아예 상승 자체가 불가능 했기 때문에 아무리 미련하고 모자란 놈도 귀족으로 태어나면 평생 지배 계급으로 군림했으나 현대 사회는 일정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 사람들은 환경이 어지간히 좋더라도 도태되게 된다
반대로 엄청나게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신분제의 한계에 묶였던 것에 비해, 현대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은 지배 계급으로의 편입의 문이 좁게나마 열려 있다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지배 계급이 되는 바로 그 10%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다
어떻게 하면 이 비율을 높이느냐다
노동자로 태어나 지배 계급으로 상승하는 비율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늘릴 수 있을 것인가?
아마 부르드외는 현재의 학교 교육 시스템으로는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 것 같다
능력만 되면 얼마든지 신분 상승의 기회가 보장된 사회가 곧 열린 사회고 발전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기득권 보장도 좀 더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경제 발전을 이룩한 만큼 사회 시스템이 여러가지로 불안정 하지만, 대신 역동적이고 신분의 이동이 활발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큰 해당없는 얘기지만
어쨌든 한국 부모들이 자식 교육에 목숨 거는 이유도 바로 이 신분상승을 위해서 학교 교육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것이리라
돈을 크게 벌어서 신분 상승 하는 것보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 제도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 백만배 쯤 쉽다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부르드외가 주장한 학교 교육을 통한 지배 계급의 재생산과 더불어, 외국 문화에 종속된 후기 식민지성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니가 학벌 사회의 폐해는 전 세계 공통적인 일반적 문제인데 비해, 미국 문화에 철저하게 종속된 것은 대한민국 교육의 특수한 문제인 셈이다
외국이란 곧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고, 다른 문화는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다 미국이 기준이고 영어 실력의 유무가 개인의 능력을 결정짓는 가장 큰 지표가 된다
한국이야 반도 국가의 특성상 과거에도 중국 문화에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었고 그것이 또 생존방식이었다
일제 시대 때는 일본 유학을 통한 지식인 그룹이 형성됐고, 미국에 의해 해방된 이후는 미국 유학 코스를 통해 지배 계급이 만들어졌고 이들이 경제 개발에 앞장섰다
미국 것은 좋은 것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 어떤 다른 이론이나 문화도 용납될 수 없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학벌주의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 모든 고등학교의 목표는 서울대학교 많이 보내기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전형적인 예다
어느 정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 학교 교육이란 것은 인정하지만 그 도가 천박하리만큼 지나치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밤 10시까지 자율학습 시킨다면서 모든 학생들을 잡아두고 심화반이나 기숙사 등을 운영하고 모든 학생들의 목표를 서울대로 잡는 나라!!
그러고 보면 앞에서 우리나라는 프랑스 보다 낫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편견이었나 반성하게 된다
기존의 마르크시스트들이 경제적 구조에 따라서 지배 피지배 계급을 나눴던 반면, 부르디외는 문화지배에 의한 방식으로 계급을 나눴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 자본이나 상징 자본이 경제 구조보다 더 중요시 된 이유는, 바로 경제 발전에 있지 않을까?
먹고 살만해지니까 더이상 빵을 위해 극렬하게 투쟁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 역시 지적한 바지만, 노동자 계층도 (특히 현대 자동차) 휴가철이면 바캉스 가고 외식 자주 하고 자동차도 굴린다
자신들이 피지배 계층이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할 수 밖에 없다
절대적인 부가 커짐에 따라 평등하게 나눠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일정 부분 그 혜택을 누리면서 하층 계급이 갖는 저항 의식 자체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이른바 노동 귀족들이 탄생했다
저자의 말처럼 물적 자본의 소유 유무로 계급의식을 결정할 게 아니라 소비 양식에 따라 나눠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계급의식의 대표적 표현이 바로 투표 성향일 것이다
나도 의문을 가졌었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대다수가 노동자 계층인데 왜 노동당이 정권을 잡지 못할까?
울산의 경우 노조가 그렇게 활발한데도 왜 항상 정몽주가 당선되는 것일까?
금권 선거가 아닌가 이런 생각마저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현대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문화 향유 계급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가족이야기]에서 본 것처럼 그들은 스스로를 일반 노동자들과 다른 계층으로 상정하는 것 같다
사실 전공의들도 노조가 생기고 공무원 노조도 인정한다고 하지만 과연 공무원이나 의사를 노동자로 인정해 줄지는 의문이다
창녀들이 노조 만든다고 하니까 심지어 여성 노동가마저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니까 노동자란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고 일하는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노동자 계층은 이렇다, 는 식으로 단정지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재밌는 부분은, 같은 계급 내에서도 소비 양식이나 표현 양식이 다른 경우들이다
나도 이 점에 대해 참 궁금했다
상류층은 이렇다, 혹은 중산층은 이렇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들이 종종 관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르디외 말을 빌리면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다
같은 계급 내 있더라도 얼마나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혹은 자본 구성이 어떻게 됐냐에 따라, 기존의 계급이 어떤 곳이었냐 등에 따라 계급의식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밑바닥에 올라온 중간계급은 더욱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위로 올라가려는 상승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보수적 성향을 드러낸다
중산층이 진보를 이룩한다 식의 시민사회론은 그저 말을 위한 말에 불과한 것 같다
학벌 컴플렉스,
대한민국에 살면서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학벌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 인정한다
또 갖기 못한 사람들의 패배의식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너무 노골적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온 국민을 피해자로 몰고 간다
누군가의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지배 계급에 편입되는 유일한 방법은, 이제 미국 밖에 없는 것 같다
학벌과 함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하는 게 바로 미국이다
미국 학벌이면 최고층을 점유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소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일단 지식층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같은 중산층이라 할지라도 계급의식은 위쪽을 지향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