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사 놓은 책인데 이제서야 읽었다
100페이지를 넘지 않는 작은 문고판
유럽으로 미술관 투어를 가려고 결심한 뒤 산 책이다
사실은 4만원 맞추려고 끼워 넣은 거다
최근에 발간된 거라야 하루 배송이 가능해서 고르고 고른 책이다
100번이라는 매력적인 번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처음에는 재미가 없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 여행의 방법, 뭐 이런 얘기가 있을 줄 알았는데 황당하게 고대로부터의 여행의 역사가 죽 나오는 거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나오질 않나, 한 무제 때의 장건이 나오질 않나 한 마디로 황당 그 자체였다
그런데 여행의 역사 부분은 한 챕터에 끝나고 뒤로 가면 내가 원하는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요즘에야 여행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관광과 비슷한 의미로 여겨지지, 과거에는 사회적 국가적 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일종의 모험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콜럼버스의 대항해 이런 것이 과거 여행의 일반적인 행태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교통이 발달하지 않고 천문학이나 지리학 발전이 더디었던 고대 사회에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생명을 건 행위였을 것이다
일단 지구나 평평하다고 생각했으니 세상끝에 가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거라는 게 일반인들의 두려움 아니었겠는가?
결국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삶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진보하는 것 같다
그 정신이라는 것도 과학기술의 도움이 있어야 한 단계 나아간다는 얘기다
여행을 왜 떠나는가?
저자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우선 꼽는다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또 관습이나 사회적 규제로부터 저항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좀 더 확대해서 말하자면 내면의 발견, 자아찾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도 있겠으나, 직접 행동하는 것과 단순히 상상력에 의지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다치바나의 말대로 책을 통해 익힌 지식을 경험을 통해 즉 여행을 하면서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경제력이 필수일 것이다
더불어 시간까지
결국 교양인이 되려면 돈과 시간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글쓰기의 메타포가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마치 책을 읽고 나면 할 말이 많아지는 것처럼, 새로운 곳에서 다양한 풍경과 삶의 방식을 접하면 이야기거리가 많아질 것 같다
소유로서의 여행보다 존재로서의 여행을 즐기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소유로서의 여행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루브르 미술관에 갔다, 사진을 찍었다, 나 거기 가 봤다고 남들에게 자랑한다,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긴 이것도 어렸을 때 말이지 나이가 좀 들면 이런 자부심 같은 건 유치하게 느껴질 것이다
나 어디 가 봤어, 이런 걸로 자신의 가치를 높힐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어딨겠는가?
그렇다면 존재로서의 여행, 자아 찾기로서의 여행은 무엇인가?
천천히 자신에 대해 돌아보면서, 남과 다른 점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특성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과정이라고 할까?
하여간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은 생각의 확장에 큰 도움을 준다
나만 해도 내셔널 갤러리에서 직접 명화들을 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그림에는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타인과 시선을 교환하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선진국 여행객들이 후진국을 여행할 때 우월감을 갖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우리와 다른 문화권에 가면 낯선 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행지의 주민들도 실은 우리 여행객들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새롭게 바라보면 그들 역시 나를 호의적인 시선으로 볼 것이다
솔직히 함부로 막 사진 찍는 사람들, 거부감 든다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여행객이 동정의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 보면서 사진 한 장 찍자고 하면 얼마나 불쾌하겠는가?
가난한 아프리카 여행객이 뉴욕에 가서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하면 흔쾌히 응하는 백인 별로 없을 거다
그러므로 여행을 떠날 때는 보다 겸손해져야 한다
불편함과 이상함은 나와 다르기 때문에 오는 이질성에서 기원한 것임을 명심하고, 함부로 가치판단을 내리지 말자
여행을 자주 떠나고 싶다
여행 중독이 되면 일상은 그저 여행 사이사이의 충전 시간으로만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관광지만 휙 도는, 소유로서의 여행 말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문화권에서 벗어나 다른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는 그런 여행을 자주 하고 싶다
내면의 발견이랄까?
국내 여행도 좋지만 가능하면 해외여행을 많이 해 보고 싶다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낯선 느낌을 자주 느끼고 싶다
외롭고 처량한 기분도 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