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떠난 독일 역사 문화 산책
손선홍 지음 / 푸른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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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게 느껴지는 제목처럼 내용도 기행문이나 에세이라기 보다는 독일의 각 도시에 대한 정보를 주는 쪽이라 문체 면에서 아쉽다.

답사기의 정석은 유홍준씨 책 같다.

저자가 외교관이기 때문에 정보 전달에 많이 치중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기행문 형식이니 기왕이면 위키 백과 같은 지식 나열보다는 한 편의 에세이로서 완성도를 갖추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은 아마도 저자가 직접 찍은 것인지 어둡게 나온 게 많아 이 부분도 아쉽다.

독일 각 도시를 소개하는 책인만큼 기왕이면 전문 사진 작가의 사진이 많이 실렸으면 훨씬 매력적인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외교관이기 때문인지 다른 책과는 달리 역사 문화 외에도 독일 현대 정치인 소개를 곁들인 점이 특이하다.

빌리 브란트라던가 헬무트 콜, 아데나워 같은 독일 정치인들의 집이 보존되어 있고 저자가 직접 찾아가 설명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우리 같으면 박정희 생가 방문 이런 느낌인가 싶다.

독일은 지방 분권의 오랜 역사가 있고 꽤 큰 나라라 한 번에 소개학 힘든데 한 쪽에 치우지지 않고 다양한 도시들을 소개해 주고 있어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보통 독일 기행문은 미술 쪽에 치우지기 쉬운데 복잡한 독일 역사 부분도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신성로마제국이나 여러 공국들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인상깊은 구절>

305p

오늘날 독일의 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왕이나 제후들이 궁중에 오케스트라, 극장 또는 오페라하우스를 설립하여 음악을 즐기며 장려한 데 있다. 왕과 제후들이 음악가들의 작곡이나 공연을 지원하면서 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고, 돈이 있는 곳에 예술이 있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인 모양)

314p

게반트하우스가 추구하는 모토가 홀에 새겨져 있다. '진정한 즐거움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라는 뜻으로 로마 철학자 세네카의 편지에서 따왔다. 180명으로 구성된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다.


<오류>

76p

작센 공작 모리츠는 황제 편에서 사촌인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와 싸웠다.

-> 작센 공작 모리츠와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는 4촌이 아니라 6촌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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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 난
김선주 지음, 김범 옮김 / 푸른역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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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간만에 너무 재밌는 역사책을 만났다.

역사서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 책.

3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인데도 마치 소설을 읽듯 흥미로워 한번에 쭉 읽었다.

역시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다.

저자의 이력이 독특하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영어로 쓴 논문을 한국인 학자가 번역한 독특한 책인데, 그래서인지 약간의 번역투 문장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가독성이 좋고 무엇보다 사건을 보는 시각이 외부자라서 그런지 훨씬 날카롭고 비판적이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연구자의 이런 실제적인 비판을 듣기 위함이지 단지 역사적 사실 나열을 읽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또 가끔 국내 필자책에서 보는 당위적이거나 명분론, 도덕적 포폄의 서술이 없어 너무 재밌다.

무엇보다 인용한 자료들이 아주 풍부해 저자의 주장에 신뢰가 가고 19세기 당시 조선의 지방 사회와 중앙의 인식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저자는 홍경래의 난이 지배 계층에 대항하는 피지배층의 계급 투쟁이 아니라, 중앙에서 소외받던 지역 지배층이 일으킨 반란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적인 계급투쟁론, 혹은 농민운동 같은 시각은 서구에서도 어쩐지 철지난 이론처럼 취급하는 느낌이다.

역사는 도덕적으로 혹은 정치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 사건이 당시 사회에 미친 "실제적인" 진짜 이유를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억압받던 민중의 힘이 모여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차별받아 온 평안도 지역의 지배층들이 차별에 울분을 느끼고 있던 차에 정감록 같은 유교적 왕조 교체설과 풍수지리, 도참설 등에 힘입어 반란을 꾀한 것으로 본다.

간단히 말해 수탈받는 민중은 반란을 조직할 정치적 의식이나 경제적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항상 의아했던 것이, 왜 조선 정부는 관북 사람들을 차별하고 중앙 정계에 받아주지 않았냐는 점이었다.

조선를 세운 이가 다른 지역도 아닌 함경도 출신인데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비단 관북 사람들만 소외된 것이 아니라 16세기 당쟁이 격화되면서 서울 이외의 모든 지방 사대부들이 거의 중앙으로부터 소외됐음을 지적한다.

또 평안도 지역은 국경에 가까워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여진족과의 투쟁 속에서 영토를 확보해 갔기 때문에 변방이라는 지역적 차별이 존재해 왔다.

기존의 양반층이 세거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이주시키고 유배 등 형벌로써 어쩔 수 없이 정착하게 된 경우가 많아 삼남 지방에 비해 뿌리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16세기 이후 당쟁이 격화되자 지역 산림들의 정치적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유교적 풍습 자체가 늦게 정착되는 바람에 중앙에 진출한 북부인들을 끌어 줄 세력이 없었다.

자연히 이들의 고위직 진출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상업이나 청과의 무역 등을 통해 자산이 증가하면서 북부 양반들의 과거 급제율은 올라가고 관직을 얻지 못하자 불만이 쌓여 갔다.

저자는 지역 지배층의 이러한 울분을 반란의 원동력이라 생각한 반면, 당시 조전 정부에서는 단순히 삼남의 민란처럼 탐관오리의 횡포가 원인이라 봤기 때문에 조선 왕조가 끝날 때까지 북부에 대한 차별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 정부의 군사력도 매우 미약하여 겨우 수백 명의 반란군이 일으킨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5개월을 끌었고 결국은 외세에 의해 망하게 됐음을 지적한다.

어찌 됐든 조선 정부가 홍경래의 난을 진압하고 그 후로도 안정적으로 이 지역을 통제했던 것을 보면, 상당히 안정된 통치체제였음은 분명하다.


<오류>

169p

한국사에서 예언적 신앙을 이용한 것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사건은 17세기 후반 정여립의 음모였다.

-> 정여립의 난은 1589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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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이탈리아 - 김영석의 인문기행
김영석 지음 / 열화당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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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이라면 이 정도의 성실한 내용과 문장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듯한 사진 몇 컷과 오글거리는 유치한 감상문 몇 줄, 인터넷에서 따온 정보 적당히 섞어 적당히 편집해 내는 기행문이 대세다 보니 이 정도 수준의 좋은 기행문을 만나는 게 참 힘들다.

인문 기행이라는 부제에 딱 맞는 책이다.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도 신선한데 다만 아쉬운 점은 2016년도에 출간된 책이니 기왕이면 컬러 사진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본문에 언급된 건물이나 지역은 거의 실릴 만큼 성실하게 잘 찍은 사진들이 많은데 흑백이라 무척 아쉽다.

컬러 사진들로 실었으면 훨씬 책의 볼거리가 풍성했을 것 같다.

이탈리아 대사인 저자는 서양 문화의 근원과도 같은 이 나라의 문화와 전통에 많은 애정을 보인다.

꼼꼼하게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책을 읽고 나니 머릿속에 각 지역들이 그려지는 듯하다.

구글 지도를 띄워놓고 작은 지역까지 짚어가며 읽었다.

통일 전의 이탈리아는 마치 옛날 그리스의 도시 국가 느낌이 든다.

여러 공국으로 나뉘어져 금융업과 무역, 그리고 무엇보다 르네상스라는 문화예술을 선도해 왔지만 절대왕정과 민족주의 국가 시대에 부응하지 못해 외세에 침략당하고 나폴레옹 시대 이후 다시 통일하는 과정이 정말로 역동적이다.

이렇게 복잡하니 지난 번에도 이탈리아 역사책 읽는 것을 포기했던 듯하다.

단지 역사적인, 예술적인 도시로서만 유명한 게 아니라 소렌토, 아말피, 나폴리 등의 휴양지들도 너무나 매혹적이다.

막연히 이탈리아라고 하면 로마 유적과 미술관만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해안가를 보니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건물들도 기억에 남는다.

시칠리아 섬에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식민지의 유적들도 인상적이었다.

기원전 5~6세기에 세워진 멋진 신전들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 걸 보면, 로마 이전의 그리스 시대 위엄이 느껴진다.

확실히 서양은 동아시아 같은 나무 문화가 아니라 돌의 나라인 것 같다.

석재로 지어져 오늘날까지도 2천 년 전 건물들을 관공서나 미술관 등으로 재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류>

18p

메디치가 출신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질녀로 프랑스 왕 앙리 2세에게 시집가면서 여러 모로 유명해진 카테리나 데 메디치

-> 카테리나 메디치는 클레멘스 7세의 조카가 아니라 조카 손녀이다.

196p

조반니 벨리니는 오토만 터키의 요청으로 콘스탄티노플에 건너가 술탄 메멧 2세의 초상화를 그려 지기도 했다.

-> 조반니 벨리니가 아니라 그 형인 젠틸레 벨리니가 그렸다.

238p

산탐브로조 본당 한쪽에 스틸리코의 석관과 신성로마 황제 루이 2세(재위 877-879)의 묘소까지 있는 것을 보면

-> 산탐브로조 교회에 묻힌 황제는 서프랑크의 루이 2세가 아니라 로타르 1세의 아들인 이탈리아인 루트비히 2세이고 재위 기간은 850-87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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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실의 근친혼 이야기
김동섭 지음 / 푸른역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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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을 재밌게 읽어서 신간도 기대를 했는데 자잘한 오류들이 너무 많고 내용도 프랑스 왕실 혼인 관계를 쭉 나열한 느낌이라 약간 실망했다.

역사학자라면 뭔가 사회 구조를 분석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길 기대해는데 위키백과에 나온 내용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느낌일 정도로 밋밋해서 아쉽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근친혼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해서 유럽 왕실의 근친혼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는데 그냥 누가 누구랑 결혼했다는 통혼 관계들 뿐이다.

대신 복잡한 유럽 왕실들의 혼맥은 정리가 되는 기분이다.

간단히 말해 유럽의 왕실은 한국이나 중국처럼 중앙집권체제가 아니고 자식이나 귀족들에게 땅을 분봉하는 봉건제였기 때문에 타 가문과 혼인을 하게 되면 영지가 나누어지므로 자기 가문 내에서 배우자를 찾았다.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대표적이고 이 가문이 유독 삼촌과 조카 사이의 혼인이 많았고, 프랑스 왕실 역시 사촌이나 육촌 정도의 혼인은 아주 흔했다.

가톨릭에서는 근친혼을 금하고 있으나 수도원을 지어 주거나 교회에 땅을 바치는 식으로 편법적으로 왕실과 타협해 승인을 해 줬다.

여자가 시집을 오면 몸만 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상속받을 땅을 들고 오기 때문에 유럽의 왕실들은 결혼 정책을 통해 영지를 넓혀 왔고 기왕이면 자기 가문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다른 가문으로 땅이 넘어가는 것을 막았던 셈이다.

또 격에 맞는 가문을 찾다 보면 왕실 내에서 배우자를 고를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유럽이나 이슬람 지역에서는 4촌끼리 혼인을 허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던데 이 정도의 결합이 유전적으로 특별히 문제가 되는지 궁금하다.


<오류>

35p

도표 <리샤르 1세-리샤르3세-장엄공 로베르>

-> 리샤르 1세-리샤르 2세-리샤르 3세, 로베르이다.

또 보두앵 4세의 아내 엘레오노르는 리샤르 3세가 아니라 리샤르 2세의 딸이다.


윌리엄의 조상은 리샤르 1세인데 그는 911년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의 수장 롤롱의 아들이다. 

-> 리샤르 1세는 기욤 1세의 아들이고 롤롱의 손자이다.

59p

고딕 건축 양식이 태동한 곳이 파리 근교의 생드디 성당이므로

-> 생 드니 성당이다.

84p

헨리 1세가 마틸다를 낳고, 마틸다의 외손이 존 왕이므로, 헨리 1세는 존의 4대 조부가 된다. 결국 존 왕과 글로스터의 이자벨은 4대조인 헨리 1세에서 만난다.

-> 마틸다의 아들 헨리 2세가 존을 낳았으므로 외손이 아니라 친손자이고 헨리 1세는 4대가 아니라 존의 3대 조부이다. 또 글로스터의 이자벨의 증조부가 헨리 1세이므로 둘 다 3대조인 헨리 1세에서 만난다.

85p

존과 이자벨은 4대조가 같은 조상, 즉 헨리 1세였다.

-> 둘의 증조부가 헨리 1세로 3대조로 바꿔야 한다.

98p

루이 9세와 마르그리트의 맏아들 루이는 16세에 요절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동생 필립이 고조부 필립 2세의 뒤를 이어 필립 3세에 오른다.

-> 필리프 2세는 루이 9세의 조부이고 필리프 3세의 증조부이다.

100p

그러니까 영국과 프랑스의 구원은 헨리 2세의 손자(헨리 3세)와 루이 7세의 손자(루이 9세) 대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 루이 7세의 손자는 루이 8세이고 루이 9세는 증손이다.

106p

초대 왕인 위그 카페(재위, 980~996)부터 

-> 위그 카페의 재위 기간은 987년부터 996년이다.

120p

가계도 <루이 8세-프랑스의 샤를 2세>

->루이 8세의 아들은 샤를 2세가 아니라 샤를 1세이다. 

<앙주와 헝가리의 샤를 1세 = 합스부르크의 클레망스>

-> 앙주의 샤를 마르텔의 아들이 바로 앙주와 헝가리의 샤를 1세이고 샤를 마르텔이 합스부르크의 클레망스와 결혼했다.

143p

샤를 6세의 5대 조부인 루이 9세의 동생은

->샤를 6세의 6대 조부가 루이 9세이고 5대는 필리프 3세이다.

167p

펠리페 1세의 아들 카를 5세는 할머니(마리 드 부르고뉴)로부터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았고, 어머니 이사벨라로부터는 카스티야 왕국을, 그리고 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는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았다.

-> 할머니 이사벨라와 어머니 후아나로부터 카스티야 왕국을, 할아버지 페르디난도 2세로부터 아라곤 왕국을 물려받았다.

171p

카를 5세는 독일,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군대를 동원하여 로마를 약탈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2세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 클레멘스 2세가 아니라 7세이다.

228p

루이 16세의 증손자인 루이 16세가 물려받은 프랑스는

-> 루이 16세의 증손자는 루이 15세이다.

232p

그러므로 루이 10세가 프랑수아 1세를 사위로 삼아

-> 루이 12세가 프랑수아 1세를 사위로 삼았다.

239p

앙리 4세는 메디치 가문의 딸이자 카트린 드 메디치의 조카뻘인 마리 드 메디치와 결혼하였다.

-> 카트린과 마리는 위대한 로렌초의 후손인데 조카가 아니라 8촌 손녀뻘이다.

252p

1648년 부르봉 왕가에 대한 귀족세력의 반란이 일어났다. 루이 14세는 스무 살이었고, 재위 6년째 되던 해였다.

-> 루이 14세는 1638년 생으로 프롱드의 난이 일어날 당시 10세였다.

262p

다시 말해 펠리페 4세는 고모의 딸 마리아나와 결혼한 것이다.

-> 펠리페 4세는 고모가 아니라 여동생의 딸과 결혼했다.

264p

카를로스 2세는 다시 결혼을 하는데 상대는 마리아 안나 폰 팔츠노이부르크로, 그에게는 7촌 당숙모였다.

->마리아 팔츠노이부르크의 언니가 카를로스 2세의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의 황후로, 친척이 아닌 사돈 관계이다.

273p

사실 마리 레슈친스카는 루이 15세보다 다섯 살 많았다.

-> 마리 레슈친스카는 1703년생이고 루이 15세는 1710년생이므로 일곱 살 차이가 난다.

284p

세 번째 아들인 루이가 루이 16세(재위, 1774-1789)로 왕위에 오른다.

-> 루이 16세는 1774년부터 1792년까지 재위했다.

288p

이 무렵 루이 16세의 숙모 2명이 프랑스를 탈출하여 

(이 부분이 나무 위키에 나온 문장과 똑같아 누가 먼저 베꼈는지, 아니면 원전이 같은지 궁금하다)

-> 루이 16세의 숙모가 아니라 아버지 루이 페르디낭의 여동생들인 마리 아델라이드와 빅투아르, 즉 고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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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 - 기시미 이치로의 행복해지는 책 읽기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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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를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저자가 쓴 독서 에세이인가 보다.

제목부터 마음이 확 끌리는데 내용도 간략하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현학적인 내용이 없어 마음에 들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다.

왜 책을 읽는가?

독서의 궁극적 목적은 생산적인 뭔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즐거움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수단으로서의 독서가 아닌 목적으로서의 독서라고 할까?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음악도 듣고 공연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옷도 사고 온갖 즐겁고 재밌는 일들이 많은데 독서 역시 바로 그런 즐거움을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즐겁지 않으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본질적으로는 추천 도서 목록 따위는 필요없다고 본다.

그냥 내가 이 책 저 책 손이 가는대로 호기심이 생기는대로 읽으면 된다.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사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저자는 쉽게 절판이 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정말 공감이 된다.

이렇게 쉽게 책이 없어지나 나도 깜짝 놀랠 때가 있다.

그래서 도서관의 역할은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를 구입하기 보다 쉽게 절판되는, 또 개인이 구입하기 어려운 책들을 갖춰 놓는 거라고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의 도서관을 가끔 가는데 여기는 전시회 도록이나 비싼 미술책들이 많아 정말 좋다.

대출도 안 되고 열람 시간도 짧아 자주 못 가는 게 너무 아쉽다.

그래서 가급적 전시회 도록은 사려고 하는데 도판이 대부분이라 가격대가 있어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된다.

이런 도록들이 도서관에 비치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도서관 측에서는 전시회 도록 구입은 안 해주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

궁극적으로 나는 저자처럼 책이 전혀 비싸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문화 활동에 비하면 정말로 싼 편이고 계속 재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보관을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항상 장서의 보관에 대한 문제가 독서가의 발목을 잡는다.

그리고 시간 확보.

저자는 시간이 부족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렇긴 하다.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내는 거니까 아무리 바빠도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일상에서 보다 많은 독서 시간을 만들고 싶어 남들은 어떻게 하나 궁금해진다.

내 경우도 다른 누구보다 바쁘게 살고 있지만 매년 200 여 권의 책을 읽는다.

그래서 책은 더더욱 재미가 없다면 읽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저자의 말처럼 정말로 너무 재밌고 읽고 나면 행복해지기 때문에 바쁜 시간을 쪼개 열심히 읽고 있는 것이다.

지식이 넓어지고 지혜가 쌓이고 (이게 가능할까 싶지만) 이런 것들은 다 부수적인 거고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인상 깊은 구절>

125p

책을 읽는다고 배가 부르지는 않지만, 배고픔을 견디면서까지 침식을 잊고 책을 탐독하는 것이 나는 삶의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과 열중해서 읽을 수 있는 책과의 만남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아무리 바쁘다고 한들 한 글자도 읽지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해 책을 읽으려고 한다면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99p

주어진 현실만 보면 내가 병에 걸렸을 때도, 아버지를 간병했어야 했을 때도 절망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음으로써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는 현실도피라기보다는 책을 읽을 때 느끼는 기쁨과 생명의 고취가 현실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독서는 내게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이 되었다. 간혹 마음이 약해질 때 앞으로 대체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죽는 날까지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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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21-04-2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년 200권이라니 대단하십니다

marine 2021-04-20 16:41   좋아요 0 | URL
읽고 읽고 또 읽고~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