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 기행 - 세계 인문 기행 4 세계인문기행 4
이경덕 지음 / 예담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정말 이 인문기행 시리즈는 내용이 알차고 사진 도판이 훌륭하다.

2001년에 나온 책이니 벌써 20년 가까이 되버렸는데도 어쩜 이렇게 세련됐는지!

서점에는 기행문이 넘쳐나는데 정작 읽을 만한 수준의 책은 참 드물다.

1인 블로그에나 끄적여야 할 글들을 그럴 듯 하게 편집만 해서 책으로 내다 보니, 1인 미디어 시대의 폐해란 생각마저 든다.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그야말로 대중적인 출판 환경이 됐으나 그만큼 필자의 질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절판이 돼서 너무 아쉽고, 다시 새롭게 단장해서 출간하면 좋겠다.

사진 도판이나 편집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무엇보다 필자들 수준이 괜찮다.


오래 전에 교토에 가 보고 근 20여 년 만에 다시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책에서 금각사나 청수사, 료안지 등의 사진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고 중국이나 한국의 절과는 다르게 잘 다음어진 일본 특유의 미감이 돋보인다.

도쿄 편에서는 작년 여름에 다녀와서인지 반가운 곳들이 많다.

도쿄 근처 아사쿠사의 센소지, 도쿄국립박물관, 도쿄 도청 등 사진을 보니 즐거운 기억이 새록해진다.

일정이 짧아 하코네를 못 가본 게 무척 아쉽다.

일본 전 지역을 다섯 개로 나눠 간략하게 그러나 역사적 배경과 의의를 잘 짚어서 소개한다.

문체도 읽기 편하고 중언부언 하지 않아 좋다.


<인상 깊은 구절>

16p

유네스코는 교토의 불교 문화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켰다. 교토라는 도시 전체가 세계인의 문화자산이 된 셈이다.

105p

평소에 칼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칼로 자기 배를 그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칼에 대한 숭배와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없으면 할복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때 이데올로기가 바로 무사도다.



<오류>

58p

고토쿠 천황은 다이카 개신을 통해 권력을 움켜쥔 소가를 몰아냈고 다음 천황인 쇼무는 오사카의 옛 지명인 나니와로 도읍을 옮겼다.

->고교쿠 천황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소가노 이루카를 죽인 을사의 변이 아들인 나카노오에 황자, 즉 후의 덴지 천황에 의해 일어나고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물러난 후 옹립된 이가 외숙인 고토쿠 천황이다. 그 후 다이카 개신이 일어난다. 고토쿠 천황이 다이카 개신을 단행했다기 보다 주체는 조카인 덴지 천황이다. 나니와로 도읍을 옮긴 쇼무 천황은 고토쿠 천황으로부터 한참 후의 사람으로, 덴지 천황의 외증손이다.

81p

임진왜란 때 함경도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의병을 기념해서 세운 비석인데 왜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걸까?

->북관대첩비는 함경도 길주에 있었는데 러일전쟁 당시 전리품으로 가져가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됐다. 2006년 북한에 반환됐는데 2001년 책이라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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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 - 낭만과 야만이 교차하는 그곳, 화해와 공존을 깨닫다
이종헌 지음 / 소울메이트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앞서 읽은 <발칸유럽 역사산책>은 내가 관심있어 하는 중세와 근대사 위주였던 반면, 이번 책은 유고 연방 해체 당시의 현대사적 관점으로 각국을 소개한다.

두 책을 같이 읽으니 서로 보완이 된다.

세르비아 하면 막연히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단어만 떠올랐는데 왜 주변 국가들과 대립하게 됐는지 코소보 사태나 나토 개입은 어떤 환경에서 비롯됐는지 약간이라도 이해하게 됐다.

꽃보다 누나, 시리즈에서 소개된 두브로브니크에 대해 자세히 나오는데 나는 플리트비체 호수가 끌린다.

계단식 폭포와 수많은 호수공원이 나무 데크로 연결되어 무척이나 아름답다.

너무 먼 곳처럼 느껴지지만 이런 절경은 한 번 가서 보고 싶어진다.

과거 역사적 상처에 대한 기억이 집단화 되어 증오로 발전하고 인종청소 같은 범죄가 조장된다고 하는데, 일본에 대한 오늘날 한국인의 태도는 어떤지 묻고 싶다.

우리는 일방적인 피해자니 전쟁을 일으키는 민족과는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야 할까? 

외국인이 한국에 대한 글을 쓴다면 과거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이웃나라 일본에 관용과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고 쓰진 않을까?


<인상깊은 구절>

163p

이렇게 많은 국가들이 독립한 이유는 '같은 민족은 한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민족주의 이념의 결과다. 민족이 분단된 나라는 통일을 꿈꾸며, 다른 민족이 한 국가 안에 있으면 독립을 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과의 민족통일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1민족 1국가'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 중국 정부는 위구르 지역을 독립시킬 경우 티베트 등 다른 소수민족의 독립을 부추겨 구소련처럼 해체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다.

164p

탈 냉전기에 진보세력에 의해 확대된 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반미운동과 통일운동의 논리로 작용했고, 주변국의 민족주의 경향에 대한 반발과 경제성장에 대한 자부심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높아졌다. 민족주의는 영토분쟁과 밀접하다. 영토분쟁 자체가 갖는 문제의 심각성에 더해 민족주의가 개입하면 그 문제는 타협이 불가능하게 된다. 

267p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60년 전에 끝난 일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후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274p

이 같은 상징조직과 개인 우상화는 그가 말살의 대상으로 본 사회주의 국가 독재자들이 계승했다. 특히 북한은 히틀러 집권 당시의 독일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상과 우상화 조형물을 전국 곳곳에 세우고 김씨 왕조의 우월성을 알리기 위한 거대한 선전문구를 바위에다 조각하고 있다.

355p

폴란드의 공산독재를 무너뜨리고 결국 소련의 붕괴까지 불러온 자유노조운동은 정치적 동기가 이니라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불만에서 시작되었다. ...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가격 상승과 원자재 부족이 사회주의의 특징적인 비효율성과 맞물리면서 폴란드 경제는 심각한 어려움에 처했다. ... 사회주의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시중에 숨겨진 돈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예고 없이 화폐를 교환하는 고육책을 쓰는 것이다. ... 그들이 처음에 원했던 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빵이었다. 수십 년째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이 명심해야 할 사실이다.

492p

발칸에서의 비극은 '집단적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상처에 대한 '기억'이 종교와 민족이라는 기재로 '집단화'되고, 그 '집단적 기억'이 정치적 수요에 의해 '집단적 증오'로 발전되고, 그것이 교육의 메커니즘을 통해 확대,재생산되어 20세기 최악의 야만이 발생한 것이다. 자기 종교나 자기 민족의 위대함을 역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웃의 종교와 민족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부추김으로써 '인종청소'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가 조장된 것이다. 그 해답은 '화해와 공존'이다. 


<오류>

150p

수도 오슬로 시내 중심에 노르웨이를 점령했던 스웨덴의 왕 '카를 요한'의 청동 기마상이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로 말하면 일본 '천황'의 동상이 광화문 광장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르웨이 역사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당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독립된 두 개의 국가가 한 군주를 모시는 동군연합으로 칼 14세 요한이 두 나라의 왕위를 겸했다. 일본이 조선을 점령했던 식민지와는 다른 개념이다.

191p

크로아티아의 영토 맨 끝자락, 정교의 나라 숙적 세르비아와 맞붙은 곳에 두브로브니크가 있다.

->크로아티아와 붙어 있는 나라는 세르비아에서 분리된 몬테네그로다. 이 책이 2012년에 출간됐는데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2006년에 분리됐다. 저자가 훨씬 전에 써 놓은 원고를 수정없이 실은 것일까? 아니면 분리는 됐어도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같은 민족이다는 의미로 쓴 것일까?

256p

아브라함이 유일신이라는 신앙을 세상에 소개하고, 그것을 따르는 유목부족들을 이끌고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했다. 그런데 이 지역을 점령한 로마 사람들이 그들을 싫어했다. 기독교로 개종을 거부하자 죽임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갔다.

->로마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을 때는 기독교 역시 로마에 박해를 당할 때였다. 기독교로 개종을 거부해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라 독립을 꾀했기 때문에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화 된 것은 서로마가 거의 멸망하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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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다섯 궁궐과 그 앞길 - 유교도시 한양의 행사 공간
김동욱 지음 / 집(도서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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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관련 책은 너무 많이 읽어서 새로울 것도 없다 생각되지만 읽으면 잘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어 언제나 흥미롭다. 

이번 책은 궁궐 이야기 중 그 앞길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경복궁 앞 육조대로나 창덕궁 앞 돈화문로 등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궁궐 건축 내역과 함께 서술하여 흥미롭게 읽었다.

특히 한양을 유교도시라 정의한 관점은 신선하다.

광장이 없는 대신 궁궐 앞길이 그 역할을 했다는 의견도 새로웠다.


<인상깊은 구절>

6p

조선시대 국왕은 절대적이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권위를 유지했다. 외적의 침입도 있었고 특정 정파 관료들의 전횡도 있었지만 국왕의 지위를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 바탕에는 조선의 통치 이념인 유교가 있었다. 국왕은 유교가 정해 놓은 통치 질서의 정점이었으며 그 틀 안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누렸다.

337p

이 정도 인구 규모로 보면, 한양에는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만 <수선전도> 같은 고지도에는 주민을 위한 시설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큰 명절이 되어 주민들이 한데 모여 왁자지껄한 놀이를 펼칠 만한 장소도 잘 보이지 않는다. ... 교외에는 무수히 많은 왕릉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사직단이나 종묘나 왕릉이나 모두 유교의례를 위한 시설들이다. 이런 시설들을 제외하면 한양에서 따로 내세울 만한 시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결국 조선시대 한양은 유교시설들로 가득한 도시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유교도시에서 그나마 도성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 것은 국왕의 행차였다. 

340p

한 사람 더 떠오른다. 바로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광화문 중건을 관철시킨 흥선대원군이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경복궁과 세종대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반드시 기억해 줄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되다. 만약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이라는 어려운 과업을 이루어내지 못했다면 지금 북악산 아래 경복궁 터나 그 앞 육조대로 길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구한말의 정치적 혼란과 일제 강점기의 폭력적인 상황을 거치면서 궁터나 대로는 우리의 상상을 불허하는 모습으로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세종대로 어디 한쪽에 흥선대원군의 업적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상징물이라도 만들 필요는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류>

179p

이인좌의 난은 불과 6일 만에 진압되었지만 종친인 밀성군 이침이 개입되고~

->밀성군 이침은 세종의 5남이고, 이인좌의 난 당시 왕으로 옹립된 종친은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이탄이다.

250p

단경왕후 신씨는 중종비로, 성종의 둘째 아들 신성대군과 혼인했다.

->신성대군이 아니라 진성대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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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 서다 - 2천 년 중국 역사 속으로 뛰어든 한국인들
최진열 지음 / 미지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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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꼭 재야 사학 같은 사이비 민족주의서 같은데, 내용은 아주 알차다.

중국에서 활약한 고구려인, 백제인, 발해인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흥미롭고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남북조 시대의 인물들이라 정말 유익했다.

특히 북위의 황제들의 어머니가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됐다.

가벼운 야사나 끄적이는 게 아니라 꼼꼼하게 사서와 당시 정황을 잘 분석한 본격적인 역사서이면서도 대중적인 흥미를 잃지 않아 정말 유익한 독서였다.

다만 각 장의 말미에 나오는 현대 정치사에 대한 언급은 출간된지 좀 된 책이라 그런지 시의성에 떨어지고 그다지 적절한 비교 같지도 않다. 

이미 평가가 끝난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는 학자로서의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는 게 좋겠으나 여전히 진행중인 현대사에 대한 비평은 정말 신중해야 할 것 같다.

상대적으로 고대사 부분이 전공 분야라 그런지 깊이있는 분석이 돋보였고, 뒤로 갈수록 특히 조선사 부분은 다소 맥빠지는 뻔한 전개라 아쉽다.


<인상 깊은 구절>

116p

고선지가 안서절도사로 발탁되었던 것도 번장들을 대거 중용했던 이림보의 인사 정책 덕분이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개인의 성공에는 그 자신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이림보의 엉뚱한 생각이 아니었다면 고선지는 고작 중앙아시아 변방의 중견 지휘관으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어쨌든 절도사가 된 고선지와 가서한 등은 뛰어난 전공을 세워 기대에 부응했다. 그런데 안록산은? 그는 성공한 정치군인이었다.

136p

삭방군은 환관들의 견제로 더 이상 활약하지 못했고, 신책군이 최정예 친위대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실제로 신책군은 지방의 절도사 세력을 제압하는 데 활용되기보다는 황제의 후계 분쟁이나 환관들의 권력 투쟁에 더 자주 동원되었다. 그 결과 황제와 신하들은 환관의 사병이 되어버린 신책군의 기세에 눌려 오히려 정치의 들러리 혹은 관객으로 전락하고 만다.

139p

빈공과 합격자들은 일정한 자격과 지식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관리로 임용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부분 6두품 출신이었던 신라 유학생들은 고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학업을 마친 뒤에도 귀국하지 않고 당나라에 눌러 앉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168p

오래전부터 당나라의 법률 체계를 받아들인 동아시아 삼국의 통치자들은 치외 법권을 '오랑캐'들에게 적용하던 기존의 관행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즉 동아시아의 전근대적인 관념 속에서 치외 법권은 상대방의 우위를 인정하는 조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신라인들이 누렸던 자치권과 치외 법권의 의미를 오늘날의 관점에서 부풀리는 것은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부족의 산물일 뿐이다.

228p

따라서 충선왕이 이들과 숙식을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 <원사>에는 충선왕이 카이샨의 즉위 과정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제현이 자신의 주군에게 충성한 나머지 그 역할을 다분이 과장했다는 것이다. ... 이러한 과정을 따라가보면 충선왕이 계승 분쟁의 주역으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가담했다 해도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불과했을 것이다.

291p

물론 최부는 미신을 배격하는 성리학자로서의 자세를 꿋꿋이 지켰다. 최부 일행을 호송하던 명나라 관리들이 용왕묘에서 제사를 지내려 하자 최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참여를 거부했다.

"산천에 제사하는 것은 제호의 일이고 양반과 평민들은 다만 조상에 제사할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분수를 넘는다면 예가 아닐 것입니다. 내가 본국에 있을 때 산천의 신들에게 절한 적이 없는데 하물며 다른 나라의 신당에 절할 리가 있겠습니까?"

312p

심지어는 복수를 법제화한 경우도 있었다. 부모의 원수를 용서하고 화해하는 행위를 私和라고 하는데, 이는 윤리적으로도 불효로 지탄받을 뿐 아니라 법적인 처벌도 받게 되었다. 특히 재물을 받고 원수와 화해했다면 가중 처벌을 받았다. 부모를 위한 복수라면 어떤 의미에서 권장되기까지 했던 것이다.

348p

만주인 사회에서는 군주만이 아니라 군주 씨족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정치에 간여했다. 그래서 심지어 누르하치가 아직 살아있을 때도 그의 아들들은 나라의 주요한 정책 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주인들은 조선의 소현세자도 당연히 일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따라서 자신들의 요구 사항들을 조선 조정에 관철시켜주기를 바랐다. 예컨대 청나라의 황족 아제격은 소현세자에게 마치 그 자신에게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것처럼 둘러대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세자의 정치 개입을 금기시하는 조선의 정치 제도 속에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충고였다. 소현세자는 단지 청나라의 요구 사항을 조선의 승정원에 전할 뿐이었고, 승정원은 이를 인조에게 보고한 뒤 다시 인조가 내린 지시를 세자에게 전해주었다. 

364p

당나라에서는 무예에 능한 이민족 출신들을 군인으로 발탁했기 때문에 능력만 충분하다면 무공을 세워 장군으로 승진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한편 문관인 행정 관료로 활동한 사람들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실무적인 능력보다 정치적 배경이나 문학적 능력이 출세에 더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오류>

50p

고조는 선무제의 고모 고평공주와 결혼했다. 

->고평공주는 효문제의 딸로, 선무제의 고모가 아니라 누이다.

95p

표에 무사확의 손자들인 무승사와 무삼사의 아버지가 물음표로 되어 있어 누군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무삼사는 무사확의 장남 무원경의 아들이고, 무승사는 차남 무원상의 아들이다.

또 무삼사의 아들이 무승훈으로 되어 있는데 武崇訓, 즉 무숭훈이다.

258p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과 마찬가지로 목수 일에 취미가 있었다고 기록했다.

->목수 일에 취미가 있는 황제는 의종, 즉 숭정제의 형인 희종 천계제이다.

339p

강홍립의 가족들은 역신으로 몰려 모두 살해당한 뒤였고, 그 자신도 곧 벼슬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다.

->광해군이 후금에게 항복하라고 밀지를 내렸다는 설은 잘못 알려진 것으로, 여러 정황상 13000명의 병사 중 5천명을 잃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항복했다는 것이 요즘의 정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강홍립이 후금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가족들 역시 고국에서 무사했고 이괄의 난 이후 후금에 투항한 한윤이 거짓으로 가족이 몰살됐다고 전한 사실 때문에 조정에서는 오히려 가족이 무사함을 알려야 한다는 논의까지 있었다. 정묘호란 당시 인조는 강홍립이 중간에서 잘 조율해 주기를 기대하여 아들들에게 벼슬까지 내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영구 귀국할 수 있었다. 1년 여 후 병사했고 인조는 비록 취소되긴 했으나 관작 회복과 장례용품 지급까지 명했다.

342p

중국 땅을 직접 밟아본 조선의 왕으로는 세조와 효종이 있다.

->태종은 왕자 시절 중국 사신으로 가 홍무제와 영락제를 알현했고, 현종은 심지어 중국에서 태어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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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유럽 역사산책 - 초승달과 쌍두 독수리
이기성 지음 / 북랩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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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이라고 하면 그냥 복잡한 동네, 코소보 사태, 이 정도가 아는 상식의 전부였는데 김철민 교수가 쓴 발칸 반도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관심이 생겼고 역사의 중심이 되는 서유럽과는 상당히 다른 개성적인 곳임을 알게 됐다.

잘 모르는 곳이라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가벼운 여행기를 택했는데 생각보다 발칸 반도의 역사와 더불어 터키까지 알차게 정리해 준다.

저자가 발칸의 역사에 대해 꽤 많이 공부를 한 듯 하다.

가벼운 여행기와 발칸 역사가 비교적 고르게 잘 어우러진 책이다.

다소 아쉬웠던 점.

자세한 불가리아 역사 서술은 좋은데 불가리아 사람들이 터키를 싫어하고 러시아에 우호적인 것에 대해 균형 감각이 부족하다고 가볍게 평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

마치 외국인이, 한국인은 오랜 지배를 당한 중국에는 우호적이면서 겨우 36년 식민 통치를 받은 일본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가볍게 서술하는 것 같다.

이웃 나라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질 때는 오랜 역사적 근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인상깊은 구절>

91p

점령한 보스니아의 가톨릭 프란체스코회 수도원과 수도사들에게 허락한 이 칙령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특히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선포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사례였다.

"나 정복자 술탄 칸은 만방에 다음과 같이 선포하노라. 보스니아의 프란체스코회는 술탄의 이 칙령으로 보호받을 것이다. 아무도 그들과 그들의 교회에 해를 가할 수 없다. 그들은 나의 영토 안에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생명과 재산과 교회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없다. 땅과 하늘을 지으신 성스런 신의 이름으로 나의 검을 들어 이 칙령을 선포하노라."

211p

이렇게 역량 있는 국가나 민족은 특정 이데올로기로서의 종교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한다. ... 물론 종교나 인종을 들먹이며 몰아가는 지도자들도 문제지만, 이들의 선동이 먹혀들어가는 사회의 내부 역량도 큰 문제라고 본다.


<오류>

305p

세르비아는 그나마 무라드 2세를 암살하는 기개라도 보였다.

->세르비아가 암살한 이는 무라드 1세로 무라드 2세의 증조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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