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 - 명화를 만나다
국립현대미술관.조선일보 엮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2013년도에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였던 듯 하다.

못 가 봐서 무척 아쉬웠는데 드디어 도록으로 만나 봤다.

소장 도서관도 적을 뿐더러 책이 커서 대출 불가인 곳이 많아 책바다를 통해 몇 번이나 시도해서 빌린 책이라 더 반갑다.

가끔 서양 유명 화가들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 화가들의 작품도 딸려 오는데 그 때는 별 생각없이 지나쳤지만 자국에서는 나름 명망있는 화가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린 우리나라의 유명 화가들 역시 프랑스로 많이 유학을 떠났고 거기서 열린 전시회에도 작품들을 열심히 출품했다.

지금도 유학이 쉬운 일이 아닌데 1950년대에 이미 프랑스로 떠난 화가들이 이렇게 많았나 깜짝 놀랬다.

이런 세계적인 화단과의 교류를 통해 국제적인 안목을 갖고 성장하는 것 같다.

도판이 훌륭해 그림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해설에 나온 바대로 眼福 을 누렸다.

처음 근대 회화들을 접할 때만 해도 화가들의 이름도 생소하고 처음 접하는 작품들이라 큰 감흥이 없었는데 자주 보다 보니 눈에 익어 새롭게 다가온다.

특히 현대 수묵화의 놀라운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여전히 추상화, 비구상은 감상하기가 어렵지만 김환기나 이응노, 유영국의 작품 등은 눈길을 끈다.



<인상깊은 구절>

26p

반인상파의 기류가 포비즘, 에콜 드 파리풍, 추상미술로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논리적, 이지적인 큐비즘과 추상-창조로 연계되는 경향은 극히 한정된 소수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우리 미술의 특징이다. 논리적, 이지적 작풍의 빈곤은 한국인의 보편적인 미의식과도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세계에 익숙해있었던 한국인에게 논리적인 해체와 구성의 경향은 쉽게 수용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감성적인 포비즘이나 에콜 드 파리풍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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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8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20-04-29 08:32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본 책입니다.
 
조선 왕실여성들의 삶 한국사연구총서 98
박주 지음 / 국학자료원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래도 일반 여성들에 비하면 역사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왕실 여성들의 삶에 대한 학술적 책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소현세자빈이나 정순왕후, 순원왕후 등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비해 은언군의 처 송마리아의 순교 내용이나 영조의 딸 화순왕조, 화완옹주 편은 새로운 내용들이 많아 흥미로웠다.

남편을 따라 죽는 열녀를 표창까지 하면서 숭상했으면서도 막상 자기 딸이 순절하자 인간적인 고통에 괴로워 하는 영조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들 상계군이 역모 모의에 휩싸여 죽임을 당하고 폐족이 된 후 마음 붙일 곳이 없어 천주교에 의지하게 된 두 왕실 여성들, 송마리아와 신마리아 고부간의 사연도 애닯다.

인간적 우수를 잊기 위해 천주교에 입문했다고 진술했음에도 전혀 상관도 없는 역적 모의죄를 뒤집어 씌워 남편 은언군까지 죽여 버린 정순왕후의 처사도 너무나 잔인하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여성들을 얼마나 옭죄었은지, 왜 남인과 여성들이 천주교인이 되어 죽어갔는지 당시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가 충분히 이해되는 바다.



<인상깊은 구절>

29p

강빈은 뛰어난 경영능력으로 국제무역과 농장 경영을 통하여 큰 재물을 모았고, 이 자금으로 조선인 포로들을 속환시켜 농장 일꾼으로 고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경제활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경영능력 뿐만 아니라 당시 역관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역할이 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37p

요컨대 소현세자와 소현세자빈 강씨는 심양에서 볼모생활을 하는 동안에 국내의 극도의 반청적 정치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한 나머지 귀국 후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는데 실패하여 결국 의문의 죽음과 사사를 당하였다. 넓게 보자면 소현세자빈 강씨는 병자호란 패전으로 인하여 억울하게 희생된 비운의 세자빈이었다.

51p

요컨대 정조대에는 왕대비로서 정조의 대를 이을 왕위계승 문제와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인을 역적으로 몰아 토벌에 앞장섰다. 그리하여 여러 차례 언교를 하교하며 정치력을 행사함으로써 정조와 끊임없이 대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수렴청정을 할 때면 정치적 기반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서라도 친정 집안이 예외없이 득세했다. 남성중심 사회였던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후계자 임명권과 수렴청정의 권한을 여성에게 주었던 것은 왕위찬탈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언문은 대왕대비를 비롯한 왕실 여인들의 의사소통 도구였다. 대비나 중전은 한자를 알고 있을지라도 항상 언문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교서나 교지는 꼭 언문으로 작성하였다.

64p

정순왕후는 친자식이 없는 가운데 계비로서의 지위를 누리기 위하여 자신의 친정 가문의 소속 당파인 노론 벽파를 이용하여 지위를 보존하고자 하였다. 그녀는 계비로서 단순히 왕을 보필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노론 벽파 등 정치세력을 유지 강화시키고자 하였다.

정순왕후는 영조 정조 연간 정치권의 중요한 쟁점이었던 신임의리와 임오의리 문제를 선왕(영조)의 유지라는 명분을 가지고자신의 뜻에 맞게 해석하였다. 선왕의 유지를 따르는 것은 수렴청정을 하는 대비에게 정치적 명분으로 중요하였다. 그 결과 정조대에 측근으로 활동하였떤 인물들은 의리를 어겼다는 죄목으로 제거하였다. 그리고 노론 벽파의 인물들이 의리를 지킨 사람으로 다시 등용되어 정국을 주도하며 정국의 변화를 가져왔다.

정순왕후는 총명하고 논리적이고 결단력이 있었다. 그리고 오랜 경험으로 정치 감각이 있었고 늘 명분을 중시하였다. 그녀의 정치적 영향력은 영정조대에는 미약하였으나, 순조대에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녀의 정치적 리더십이 일반 백성을 위한 여러 정책에 발휘되었다면 후세 그녀에 대한 평가가 좀 더 긍정적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리더십은 궁궐안의 정치권력에 한정된 리더십이었다는 것에 큰 한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78p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여성의 정절과 순종은 더욱 강화되었다. 17세기에 들어오면 가문의식으로 열녀 이념이 더욱 규범화, 경직화 되었던 것이다. 같은 열녀라도 순절은 수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편이 죽자 따라 죽는 순절(자결)의 유형으로 목매어 죽는 경우, 굶어 죽는 경우, 물에 빠져 죽는 경우, 독약을 마시고 죽는 경우가 있었다. 여기에서 목매어 죽는 유형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굶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영조의 딸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병사하자 너무 슬퍼하여 단식하여 남편을 따라 죽어 합장되었다. 왕실에서는 처음 있는 烈行이었다. 따라서 영조의 슬픔은 그만큼 매우 컸던 것이다.

"내가 왕세제로 책봉되어 세제가 되어 대궐에 들어갈 때에 효장과 네가 나를 따라 들어왔다. 그 겨울을 견디며 이후로 믿고 의지할 사람은 단지 나뿐이었다. 효장이 먼저 가고 너는 다시 형제가 없는 외로운 몸이 되었다. 임자년에 혼례를 하여 월성위를 사위로 맞이하게 되었고 이 뒤로 내 마음이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낙태가 원인이 되어 기운이 더욱 떨어져서 지금까지 온 것만도 의외였다. 월성위가 죽은 뒤에 늘 몸이 약한 네가 지나치게 애통해 하면서 초상을 치룸이 매우 걱정되어 근심이 깊었었다. 어찌 지난 날의 쇠약한 몸으로 도리어 강단지게 칠일동안 먹지않을 것을 생각이나 하겠는가? 자기 생각을 고집하였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가서 음식을 권하기는 하였으나 성의가 모자라서 너의 마음을 되돌리지 못하였다. 어느덧 열흘이 지나 장문의 편지로 다시 타일렀다.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네 마음을 감동시키리라 여겼는데 전혀 동요되지 않고 끝내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 아! 슬프다. 백발의 늘그막에 네가 절개를 세운 것을 보고 열녀가 있다고 어찌 말하지 않겠는가! 아! 네가 월성위의 유지를 받아 그를 따르려는 뜻이 있다고 해도 백발의 네 아비가 의지하려는 뜻을 생각하고 또한 네 아비가 직접 네 집에 갔던 때를 생각했다면 어찌 한결같은 절개를 지켜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겠는가! 아! 슬프다. 이것인 모두 내가 자애롭지 못한 때문이고, 내가 자애롭지 못하여 초래한 것이니 어찌 너에게 유감이 있겠는가! 그러나 아! 슬프다. 끝내 어찌 돌아보지 않는가! 아! 멀리 떠나는 길에 후회를 할 수 있겠는가? 후회를 해도 후회가 어찌 미치겠는가? 적막한 야차에서 백발을 돌아보며 그 아비는 반드시 눈물을 삼킬 것이다. 한밤중에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내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아! 슬프다. 내게 열녀의 딸이 있으니 어찌 유감이 남아있겠는가? 멀리서 바라보니 눈물이 쏟아진다. 제문을 내가 부르고 쓰게 하여 초상을 주관하는 관원으로 하여금 제사를 올리도록 하고 반우 뒤에 직접 가서 애도를 표하겠다. 화순옹주여, 화순옹주여, 나의 뜻에 감응하여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나의 이 잔을 흠향하기를 바란다. 아! 슬프다. 아! 슬프다."

 위의 제문에서 "아! 슬프다"는 문장이 여섯 차례나 반복되어 나옴으로써 영조는 한달사이에 딸 화순옹주와 사위 김한신의 죽음으로 억제하기 어려운 슬픔의 고통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죽기 이전부터 평소에 몸이 병약했음도 알 수 있다.

(아버지 영조의 슬픔이 너무나 절절하게 느껴지는 제문이라 가슴이 먹먹하다. 높은 절개와 같은 대의명분은 애닯은 육친의 정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것 같다.)

85p

정조는 고모 화순옹주의 집 마을 어귀에 정문을 세우고 "열녀문"이라 명명하라고 한 후 다음과 같이 하교했다.

"사람이 제 몸을 버리는 것은 모두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하가 그리했을 때는 충신이 되고 자식이 그리했을 때는 효자가 되고 부녀자가 그리했을 때는 열녀가 되는 것이다. 부부의 의리를 중히 여겨 같은 무덤에 묻히려고 결연히 뜻을 따라 죽기란 어렵지 않은가? 여염의 일반 백성들도 어렵게 여기는데 더구나 제왕의 가문이겠는가? ... 아! 참으로 매섭도다. 옛날 중국 제왕의 가문에도 없었던 일이 우리 가문에서만 있었으니, 동방에 곧은 정조와 믿음이 있는 여인이 있다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어찌 우리 가문의 아름다운 법도에 빛이 나지 않겠는가?"

 요컨대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죽자 왕녀의 신분으로서 유일하게 남편의 뒤를 따라 자진을 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없이 자란 슬픔, 오라버니 효장세자의 죽음, 無子, 자신의 병약 등 외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화순옹주는 사랑하는 남편마저 갑자기 병사하자 1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하다가 끝내 순절하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불행한 삶이다. 겨우 두살 때 생모를 잃고 9세 때 하나 뿐인 동기간인 효장세자가 죽었고 자식도 없고 본인은 몸도 약해 의지할 곳이라곤 오직 남편 뿐이었을텐데 허망하게 가고 나니 세상 천지가 다 막힌 절박함이 들었을 것 같다. 아버지인 영조 입장에서는 어미 없는 첫 딸이 저리 허망하게 죽고 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차마 열녀문을 세워 위로할 수 없었을 것 같고, 한 다리 건너는 조카 정조 입장에서는 여염에서도 하기 힘든 기개높은 헌신적인 행실을 왕가에서 이루었으니 자랑스러워 표창했을 것 같다.)

92p

일찍이 김한신은 화순옹주에게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자산이 부귀하다고 해서 남을 업신여기기가 쉽습니다. 옹주는 절대 이와 같이 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거처하는 집과 쓰는 물건이 나라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왕가의 후예로서 향곡에 몰락한 자로 충의군과 같은 부류는 거술러 올라가면 본래 한 뿌리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뜻이 가슴속에 늘 있은 뒤에야 덕을 쌓는 도가 될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152p

신유박해 때 많은 여성들이 참수되거나 유배되었다. 특히 여성들은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예속적 지위에 대한 현실적 불만과 사후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교회 설립 초기부터 많이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던 것이다. 

163p

송씨와 신씨는 "인간의 우수를 잊지 위해" 입교하였다고 한다. 즉 나인 강경복의 취조에서 송씨와 신씨가 천주교를 믿게 된 동기는 아들과 남편을 잃고 슬픔과 비탄에 빠져있을 때, 이를 잊고 영혼을 구원받기 위한 것이었는데도, 추국을 맡은 관리들은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는 것으로 몰아갔다. 은언군 이인이 그 음모의 주동자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은언군은 실제 천주교를 믿지 않았는데도 그 상소로 인하여 사사되었다.

180p

순원왕후는 헌종대에 또 다른 외척인 풍양 조씨와 협력을 이루며 정치에 참여하였다. 즉 안동 김씨와 헌종의 외가 풍양 조씨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 인사와 정책으로 정국에 대립을 가져오지 않았다. 이는 순조가 헌종의 보도를 풍양 조씨 조인영에게 부탁했기 때문이다. 순원왕후는 선왕의 유지에 따라 선대부터 이어온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두 가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89p

새로 즉위한 철종은 촌동이나 다름없고 수렴청정을 하게 된 자신도 아는 것이 없어 나라가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위태롭기 그지 없으니, 재종동생 김흥근이 친동생 김좌근과 함께 힘을 합쳐 나랏일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한편 순원왕후는 혜경궁 홍씨의 삼촌 홍인한의 죄명을 씻어줄 것을 당부하였다. 순원왕후는 홍인한이 억울하게 죄를 입었으며 정조도 생전에 홍인한을 단죄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 강조하고 있다. 

(시할머니 혜경궁 홍씨 친정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남편의 사후에도 노력하는 순원왕후의 성품이 인상깊다. 한중록을 읽고 감격한 것인가!)

194p

순원왕후는 김정희가 헌종때 특별한 총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중하지 않고 분수에 넘게 행동하다가 귀양을 가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의 성품이 조급하고 재주가 덕보다 뛰어난 인물이라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순원왕후에게 진종 조천의 문제는 단순히 진종의 위패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왕실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였던 것이다.

 한편 순원왕후는 집안에 혼인, 회갑, 과거급제 등의 경사나 상사, 병고, 유배 등의 흉사가 있을 때 가족들에게 편지로 축하를 하거나 위로를 하였다. '육가 육종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는 경사를 맞이한 순원왕후는 집안 조카들의 대과 급제라는 경사를 맞이한 기쁨과 더불어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강조하였다.

(개인적으로 보면 순원왕후의 성품은 자상하고 다정다감하며 분수를 잘 지키는 조신한 스타일이었을 것 같다. 원치 않게 남편과, 아들, 손자를 다 앞세우고 정치적 전면에 나서 문정왕후나 정순왕후처럼 권력을 휘두르기 보다는 왕조를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느낌이다.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말이다)

221p

천주교는 당시 남녀관계와 부부관계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동정녀들은 결혼을 거부하고 스스로 동정을 택했다. 그들은 동정을 지키기 위해 거짓으로 머리에 쪽을 올리고 자신을 과부라고 하던가 또는 허가 또는 오가의 아내라고 거짓으로 칭해야 했다. 그리고 남녀가 반드시 혼인하여 자녀를 낳고 기르는데 힘쓰며 효를 행해야만 한다는 성리학적 가족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였다. 또한 이들 여성들은 집에서 가출하여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여성들끼리만 함께 생활하고 적극적으로 전교활동을 했다. 유교사회에서 동정녀들이 결혼을 거부함은 당시의 가부장적 유교 질서를 뿌리채 흔드는 것이었다. 천주교도들의 집회가 열리면 신자들간에 남녀유별이나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나란히 앉아 강론을 듣고 첨례나 송경에 참예하였던 것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어기고 남녀가 뒤섞여 집회를 갖거나 내방에 외간 남자를 들이는 것은 당시 유교적인 사회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로 비춰졌다. 

 조선 후기 동정녀들은 성리학적 사회 질서와 윤리도덕을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지배층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으로부터도 심한 핍박을 받았다. 그들은 비록 스스로 원하여 자발적으로 동정을 지키며 살아갔지만 이로 인하여 그들이 기존에 누리고 있던 신분적 특권이나 사회적 지위를 완전히 포기하였던 것이다.

224p

이순이는 천주교를 믿게 된 후 동정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당시 유교적인 관념으로서는 사대부가문의 처녀로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 집안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사회적인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다. 유중철 요한은 향반계급에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도 높은 사대부 가문이었던 이순이와의 결혼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주문모 신부의 주선에 대해 과부였던 이순이의 어머니 권씨는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곧 동의하였으나 친척들은 유중철의 집안의 격이 너무 낮다고 반대하였다. 그러나 권씨는 자기 처지가 어렵기 때문에 부잣집 사위를 얻는 것이 이롭다는 구실을 내세워 친척들을 설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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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 - 자연치료라는 달콤한 거짓말
폴 오핏 지음, 서민아 옮김 / 필로소픽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구미에 딱 맞는 책이었다.

어려울까 봐 걱정했는데 300 페이지가 채 못 되는 분량으로 쉽고 편하게 읽힌다.

의학과 의료 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인 만큼 그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인 대체의학 산업도 아주 활발해 사회적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어려서는 미국에서도 동종요법과 침술 등이 인정받는다고 하면 내가 모르는 의학적 의미가 있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나이 들어 보니 미국은 과학 교과서에 진화론과 창조론이 공평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법정 다툼을 벌이는 나라였다.

선진국에서도 하고 있으니 옳다는 주장은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국으로 치자면 대체의학의 범주에 한의학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침술이 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저자의 분석이 인상깊다.

혈자리니 경락이니 하는 소리는 그저 치료사에 대한 신뢰감을 높이기 위한 언변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피부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든 우리 몸의 엔돌핀이 분비되어 몸이 이완되어 치유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인지부조화 이론에 따라 비싼 돈을 들였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플라시보 효과인데 저자는 이것이 의학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환자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줄 수 없는 의사는 병리학자가 되야 한다는 말이 정말 인상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마음의 작동 기전에 대해 신체만큼 잘 모르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은 대체의학을 찾고 카리스마 있는 무면허 치료사들에게서 위안을 얻고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치료사들의 특성은 개인적인 카리스마가 매우 강하고, 환자에게 1:1로 접근하기 때문에 신뢰감이 높다.

물론 뛰어난 상술가이가도 하다.

저자는 대체의학 종사자들이 거대 제약회사를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도 보건 당국의 감시는 환자 선택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빠져 나감을 지적한다.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플라시보 효과를 인정하고 보건 당국의 규제와 감시를 수용한다면 적은 돈으로 환자들이 큰 부작용 없이 위안을 얻는다는 측면에서 인정할 수도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진심으로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고 사람들은 플라시보 효과 운운하는 제품에 절대로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자궁경부암 백신이 도입되어 청소년들에게 무료 접종이 시행되고 있다.

이 백신은 다른 백신에 비해 원가 자체가 매우 높은 편으로, 개인이 돈을 내려면 십여 만원이지만 국가에서 무료로 접종해 주면 맞는 게 당연히 이익이다.

그러나 인터넷 괴담이 돌아 불임이 된다는 둥, 근육마비가 온다는 둥, 지능 저하가 된다는 둥 보호자들의 두려움 때문에 접종률이 매우 낮다.

예방접종으로 자폐가 됐다는 괴담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저런 국가 예방접종은 국민의 세금으로 무료 공급이 되는데 정작 사람들은 제약회사가 국가와 결탁해 이익을 올린다는 의혹만 사고 있으니 이래서 작은 정부가 좋은 건가 싶기도 하다.

책표지에 나온 말이 주제를 함축한다.

"대체의학은 없다. 치료하는 의학과 치료하지 못 하는 의학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이런 말도 추가하고 싶다.

"한의학이나 서양의학은 없다.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이 있을 뿐이다"



<인상깊은 구절>

13p

나는 전통적인 치료 방법들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더라도, 대체의학에 무임승차권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치료에 동일하게 높은 시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 책의 목적은 대체의학 분야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검토하고, 사실과 미신을 구분하려는 것이다. 사실상 전통의학, 대체의학, 보완의학, 통합의학, 전일론적 의학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려낼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들을 신중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터넷 채팅방이나 잡지 기사 혹은 친구와의 수다로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37p

기원전 2세기에 중국의 치료사들은 질병이 에너지의 불균형에 기인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의 치료사들은 살갗 아래에 여러 개의 가느다란 침을 놓음으로써(침술) 이 불균형을 치료했다. 그러나 중국의 의사들은 인체 해부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신경이 척수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실 그들은 신경이 뭔지도 몰랐다. 척수가 뭔지, 뇌가 뭔지도 몰랐다. 오히려 그들은 인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마치 강이나 노을처럼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을 통해 해석했다. 중국의 의료진들은 인체의 에너지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12경락을 관통한다고 믿었는데, 이는 중국에 12개의 큰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라고 하는 생체 에너지를 발산시키고 음과 양이라고 하는 경쟁적인 에너지 사이의 정상적인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해, 이 경락선을 따라 피부 아래에 침을 놓았다.

51p

여드름과 자폐증에서부터 궤양과 하지정맥류에 이르기까지 온갖 질병들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일러준다. 낱낱의 모든 일에 올바른 방법과 잘못된 방법이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더구나 이 책들은 사람에게 걸릴 수 있는 모든 질병들에 대해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굉장히 단정적이고 대단히 명쾌하게 설명해 놓아, 거의 사이비 종교집단과 다를 바 없는 열렬한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리하면 더 오래 살고, 더 깊이 사랑하며,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한 자녀를 키우리라. 인생이란 본래 제멋대로에 어디로 튈지 모르며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것이라 이런 책들을 읽으면 상당한 위안을 얻기 마련이다.

 대체의학의 또 하나의 유혹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현대 의학을 공부한 의사들은 냉담하고 무심해보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자기가 한 사람의 개인이기보다는 숫자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바로 이 틈새를 대체의학 치료사들이 파고들어 온 것이다.

96p

FDA 국장은 건강기능식품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열거된 도표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생각해보십시오. 처방약의 절반은 식물이 원료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약물이 우리에게 해로운 영향을 줄 거라고는 누구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엄격한 테스트를 고집함으로써 허용할 수 없는 독성물질이 포함된 약물을 가려내기 때문이지요. 식물이 치료 목적의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상황에서 모든 위험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100p

이 법은 주요 재료들 -비타민, 무기질, 허브, 아미노산- 외에 다른 재료를 첨가해 아무리 인공적으로 만든 제품이라 할지라도, 제조업체들이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르면 그냥 건강기능식품으로 규정하도록 허용할 것이다. 예컨대, 약이나 음식에 새끼 양의 뇌를 넣으면 안정성과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들여 수년에 걸쳐 연구할 각오를 해야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에 이것을 넣으면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 없이 순조롭게 허가를 받게 될 것이다.

103p

건강기능식품 산업은 관련 법아니 건강을 위해 자유로운 선택권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믿도록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했지만, 사실상 그들이 말하는 자유란 무지한 상태에서 누리는 자유일 뿐이다. 아는 게 힘이라면, 건강기능식품 건강교육법은 아무런 힘도 주지 않는 것이다.

120p

"효과 있는 대체의약품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이라고 불립니다."

173p

"과학적인 과정은 민주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는다고 과학적인 사실이 되는 건 아니다. 과학적인 사실은 증거의 질, 증거의 영향력, 증거의 재현성과 관계된다.

226p

"뇌 손상은 일단 그 원인이 제거되더라도 증상이 당장 역전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지금 제닝스와 부타르 박사는 제닝스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 킬레이션 치료만 받았는데 건강이 나아지기 시작했으며, 36시간 안에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한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이 회복 과정이 나에게는 그녀의 증상들이 무엇보다 심인성이었다는 단적인 증거로 보인다."

229p

결정적으로 역설적인 점은 부타르가 자신은 효과가 입증되지 않아 허가도 받지 못한 약품을 팔아 큰돈을 벌고 있으면서 대형 제약회사를 비난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의 동기는 연구개발에 자금을 대는 것입니다. 그래야 독점권을 챙길 수 있고 또 그래야 거약의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뉴요커>의 기자는 사람들의 모순된 행동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우리는 대형 제약회사를 싫어한다. 그러면서 대형 플라시보의 품 안으로 뛰어든다."

241p

노벨라는 침술이 그 자체로 가짜, 속임수, 사기라고 믿긴 했지만, 침술이 효과가 없다고 말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오히려 그는 침술이 왜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침술은 치료사의 위로와 보살핌이라는 긍정적인 치료적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의식이다. 환자들은 30분 내지 1시간 동안 긴장을 이완시킨다. 바로 이때 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사실상 피부 속에 침을 찔러 넣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다분히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를 사소한 것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243p

침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상충되는 사실에 부딪친다. 1)침술은 인습적이지 않다. 2)침술은 비싸다 - 한 번 침을 맞는 데 65달러에서 120달러의 비용이 들고, 자주 여러 차례 맞아 하며, 종종 현금으로 지불해야 한다. 이 갈등을 가장 잘 해결하는 방법은 침술이 효과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인지부조화 이론' 이라고 불렀다. 이 이론에 대한 가장 좋은 예로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를 들 수 있다. 여우는 포도가 실 거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킴으로써 이 갈등을 해결한다.

245p

대체의학 치료사는 독특한 분위기가 주는 치유력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말 좋은 치료사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입니다. 당신이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찾아왔다면 당신은 곧 낫게 될 겁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래왔습니다. 결국 이건 사실상 침술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료는 사람과 관련이 있습니다." 블로는 이렇게 썼다. "환자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주지 못하는 의사는 병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249p

첫째, 침술은 속임수다. 침술사들이 정직하다면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침술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2천 년 동안 내려온 선조들의 지혜의 산물을 모두 무시하자. 사실 중국인들은 해부학을 믿지 않았고 신경계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아는 바도 없었다. 그래서 인간의 몸이 중국의 강과 음력에 기반을 둔다는 그릇된 가정을 하게 되었고, 피부 속으로 되는대로 침을 찔러 넣게 된 것이다. 기나 음과 양, 경락을 무시하라. 피부를 살짝 찔렀다가 다시 나오는 침을 사용해도 침술의 효과에는 변화가 없다. 침술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만으로도 엔도르핀은 충분히 분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뱉는 순간 플라시보 반응이 사라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침술사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음, 양, 기에 대한 심상이 치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말은 플라시보 반응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의 필수 요소가 속임수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생명윤리학 교수 아트 캐플런은 플라시보 약물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위험성이 낮은 상태에서 저렴한 비용과 낮은 부담으로 환자를 속이는 것은 윤리적이다. 그렇지만 먼저 그들은 의학 보고서에 자신들의 의료 행위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그들은 플라시보 효과가 강력하다는 사실을, 어떤 것들이 플라시보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의학이 플라시보 효과를 가장 잘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보고해야 한다."

(과연 이렇게 양심적이고 지각있는 대체의료 치료사들이 있을까? 그 정도 지각있는 사람이라면 대체의학에 종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266p

"전일론 의학 치료사들은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깊이 전념하는 경향이 있어 유능한 사업가가 되기 어렵다는 견해는 거짓임이 밝혀졌다. 머콜라 자신은 '탐욕에서 비롯된 의료 분야의 모든 과장 광고'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는 가짜 약장사로 유명한 1800년대의 불행한 전통인 자신의 사업을 키우기 위해 전통적인 마케팅이며 인터넷 직거래며 할 것 없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판매왕이다."

268p

"의학이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대체의학 제품들을 가까이할수록 결국엔 의학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많은 의사들이 환자가 왕이라는 잘못된 전제를 신봉한다. 물론 나는 의료도 일종의 산업이며 대체의학이 산업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의학과 대체의학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는 전문가적 규범과 전문가적인 가치와 전문가적인 책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의료는 시장에 불과하고 환자는 고객일 뿐이며 환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외친다면, 결국 고객의 요구 앞에 전문성이 무너지는 날이 오고 말 것이다. 우리는 환자가 유혹에 약하지 않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를 도와줄 전문성으로 똘똘 뭉친 지지자가 없다면 좋은 환자가 되기 어렵다.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울 치료사들만 득실거릴 것이다."

270p

애석하게도 마법적인 생각은 해가 없지 않다.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의학적 지식의 격차는 에너지장이나 경락이나 점성술이 아니라, 이른바 과학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기준 아래에서 의미 있는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채워지는 것이다."

 과학에 대한 무지, 더 나아가 과학에 대한 부정을 조장한다면 환자들은 질병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어 마침내 최악의 돌팔이 의사들에게 쉽사리 걸려들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과학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과학만능주의라며 진리를 공격하고 현대의학을 서양의학이라고 폄훼한다. 의학은 가치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란 사실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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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가족의 출생과 성장 - 책례가례등록 고전탐독 6
김지영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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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시 생활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흥미롭다.

야사 위주의 가벼운 책들이 아니라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교양서들이라 신뢰가 간다.

이 책의 주제는 왕실 구성원들의 의례, 곧 관례와 혼례, 책봉례의 자세한 절차와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조선은 현대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교적인 사회였고 의례의 복잡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관혼상제야 말로 사람 일생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고 사대부들은 이런 유교적 의례를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국가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듯하다.

예송논쟁이 과연 일어날 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16p

적장자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는 별개로 적처가 아들을 낳기란 쉽지가 않았다. 조선 사람의 일상적 삶에서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횟수가 많아지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 삼년상을 치르는 일이 중요해지면서 적장자를 낳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 기간 동안에 의례의 중심에 서 잇는 적장자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하는 재계 기간을 엄격히 지켜야 했다. 특히 부인과의 성적인 접촉을 피해야 했다.

 의례가 일상인 왕의 경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재계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면서 성적인 금욕 기간이 늘어나 왕실은 저출산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3p

다음은 연산군이 원자를 얻고 신하들에게 한 말이다.

"지금 원자가 탄생하여 국본이 이미 정해졌으니, 이보다 큰 경사가 없다. 설사 내가 아들이 없다손 치더라도 어찌 사왕이야 없겠느냐. 그러나 적장으로 계승하는 것이 순한 일이다. 구차하게 지손으로 입승하면 나라가 편안하겠느냐. 백년의 사직이 나에게 와서 뒤가 없다면 그 한을 어찌 견디겠느냐?"

 연산군의 말대로 자신의 혈육으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더라도 왕위를 계승할 다른 방법은 있다, 그러나 왕비가 낳은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무런 탈 없이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최선이다. 연산군이 신하들에게 내비친 속내가 바로 조선의 왕들이 밤낮으로 원하던 바였다. 

29p

상례에 수반되는 행위 규제는 의례적이고 규범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60p

조선 후기 유교사회의 심화에 따른 예학의 발달이 왕실과 사가에서 유교의례를 보다 세밀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유교의례를 일상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각각의 의례가 갖는 본래의 상징성을 의례 세부 절차와 사용되는 기물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예를 구현하는 수단으로서 으뜸으로 활용된 기물이 복식이었다.

85p

복식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이 아닌 예를 아는 신하들이 형태를 고증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엄격한 신분제가 적용된 전통사회에서 왕실의 복식은 반드시 예와 법도에 맞아야 했다. 왕, 왕세자, 왕세손 등 군주이거나 장차 군주가 될 신분은 신하와 차별화되는 복식을 통해 그 신분적 특권을 가시화했다. 

156p

이렇게 관례에서 자를 지어주는 이유는 성과 명으로 구성된 이름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이름은 누구나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금과 아버지만 이름을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자를 불렀다. 이름은 조상과 가문의 존귀함 및 당사자의 존엄함을 표상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별명으로 자를 지어주었던 것이다.

183p

삼간택에 의한 배우자 선택은 왕가의 특권이었다. 효령대군이 이 방식을 써먹은 것은 예법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는데, 출궁한 왕자는 사가로 보는 것이 당시의 인식이었다.


<오류>

171p

숙신옹주는 태종이 열세 번째 딸이다.

-> 숙신옹주는 태조의 딸이고, 태종의 열세 번째 딸은 숙순옹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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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하는 법 -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
조경국 지음 / 유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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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주제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대출했다.

200 페이지의 아주 가벼운 책이라 정말 30분만에 읽은 것 같다.

책이 너무 많아 헌책방 주인이 된 저자의 약력이 독특한데 에세이 보다는 좀더 실용적으로 책 보관법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애서가를 둘로 나눈다면 나는 장서가 보다는 독서가 쪽이다.

그렇지만 항상 책 소유에 대한 욕심은 있다.

어려서는 돈이 없어 못 샀지만 지금은 공간의 문제 때문에 구입을 못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이 나오는데 그도 책을 처분하지 않는 인간이라고 한다.

책 보관을 위한 작은 빌딩에는 20만권이 있다고 하니 왠만한 도서관 보다 훨씬 많다.

바로 내가 책을 처분하지 않는 인간이라 대학교 때 내 돈 주고 책을 산 이래 단 한 권도 버리지 못하고 수많은 이사 과정에서 이고 지고 다닌다.

공간의 문제 때문에 새 책 구입을 못한다.

이 책에서도 튼튼한 책장에 대해 나오는데, 적어도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있었던 게 틀림없는 아빠의 책장을 물려받아 아직도 많은 책을 꽂아놓고 잘 쓰고 있다.

어려서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포장이사도 없던 시절 이사 한 번 가려면 아빠가 본인 책들을 박스에 넣고 직접 지고 가서 정리하느라 한나절이 걸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나는 수집벽은 없어 도서관을 활용해 공간의 문제는 자유롭지만 도록은 구하기가 힘들어 사다 보니 벌써 책장이 꽉 찼다.

1년에 150권을 읽는다고 하면 10년이면 1500권, 20년이면 3천권이니 이 정도는 충분히 집에 보관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나는 책값이 다른 수집품에 비하면 아주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값 부담은 없지만 어디에 보관할 것인지가 문제인데, 저자는 사무실을 빌려서 서재로 썼다고 한다.

시골이라 그런지 모르겠는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8만원!

7평 정도 공간이었다고 한다.

사실 요즘은 공간 문제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긴 하다.

직장 그만두고 자영업자가 되면서 절대적으로 일하는 시간이 늘었을 뿐더러 집에 오면 아이들을 돌봐줘야 해서 11시 이후에나 겨우 짬을 낼 수 있다.

주말은 애들이 학교에 안 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바쁘다.

독서는 은퇴 후에나 가능할까.

그런데 노안이 와서 그 때는 책을 못 보면 어쩌나 걱정된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고 대부분 빌려 보기 때문에 기록을 해놔야 겨우 흔적이 남는데 알라딘 서재 기능이 참 유용하다.

따로 블로그에 정리할 수도 있지만 내 서평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서평도 같이 읽을 수 있고 관련 주제의 책들도 볼 수 있어 참 좋다.


<인상깊은 구절>

189p

하지만 평생 좋아하는 작가들만 읽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좋아하지 않는 작가의 전기는 뭐하러 읽겠는가.

(정말 200% 공감한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너무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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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9-05-20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습니다. 공감가는 글이네요. 저도 책을 못 버리는 1인 입니다. 저도 장서가보다는 독서가 쪽인데 요즘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질 않고 있어서 점점 장서가가 되어가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