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가족의 출생과 성장 - 책례가례등록 고전탐독 6
김지영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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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시 생활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와 흥미롭다.

야사 위주의 가벼운 책들이 아니라 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교양서들이라 신뢰가 간다.

이 책의 주제는 왕실 구성원들의 의례, 곧 관례와 혼례, 책봉례의 자세한 절차와 의미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지만 조선은 현대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교적인 사회였고 의례의 복잡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관혼상제야 말로 사람 일생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고 사대부들은 이런 유교적 의례를 사회에 정착시키기 위해 국가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듯하다.

예송논쟁이 과연 일어날 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16p

적장자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와는 별개로 적처가 아들을 낳기란 쉽지가 않았다. 조선 사람의 일상적 삶에서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횟수가 많아지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 삼년상을 치르는 일이 중요해지면서 적장자를 낳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그 기간 동안에 의례의 중심에 서 잇는 적장자는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부정한 것을 멀리하는 재계 기간을 엄격히 지켜야 했다. 특히 부인과의 성적인 접촉을 피해야 했다.

 의례가 일상인 왕의 경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재계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면서 성적인 금욕 기간이 늘어나 왕실은 저출산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23p

다음은 연산군이 원자를 얻고 신하들에게 한 말이다.

"지금 원자가 탄생하여 국본이 이미 정해졌으니, 이보다 큰 경사가 없다. 설사 내가 아들이 없다손 치더라도 어찌 사왕이야 없겠느냐. 그러나 적장으로 계승하는 것이 순한 일이다. 구차하게 지손으로 입승하면 나라가 편안하겠느냐. 백년의 사직이 나에게 와서 뒤가 없다면 그 한을 어찌 견디겠느냐?"

 연산군의 말대로 자신의 혈육으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더라도 왕위를 계승할 다른 방법은 있다, 그러나 왕비가 낳은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아무런 탈 없이 나라를 편안하게 하는 최선이다. 연산군이 신하들에게 내비친 속내가 바로 조선의 왕들이 밤낮으로 원하던 바였다. 

29p

상례에 수반되는 행위 규제는 의례적이고 규범적인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이를 위반했을 때에는 형사적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60p

조선 후기 유교사회의 심화에 따른 예학의 발달이 왕실과 사가에서 유교의례를 보다 세밀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즉 유교의례를 일상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각각의 의례가 갖는 본래의 상징성을 의례 세부 절차와 사용되는 기물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예를 구현하는 수단으로서 으뜸으로 활용된 기물이 복식이었다.

85p

복식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장인이 아닌 예를 아는 신하들이 형태를 고증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엄격한 신분제가 적용된 전통사회에서 왕실의 복식은 반드시 예와 법도에 맞아야 했다. 왕, 왕세자, 왕세손 등 군주이거나 장차 군주가 될 신분은 신하와 차별화되는 복식을 통해 그 신분적 특권을 가시화했다. 

156p

이렇게 관례에서 자를 지어주는 이유는 성과 명으로 구성된 이름을 공경하기 때문이다. 이름은 누구나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임금과 아버지만 이름을 부르고 다른 사람들은 자를 불렀다. 이름은 조상과 가문의 존귀함 및 당사자의 존엄함을 표상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이 부를 수 있는 별명으로 자를 지어주었던 것이다.

183p

삼간택에 의한 배우자 선택은 왕가의 특권이었다. 효령대군이 이 방식을 써먹은 것은 예법에 어긋날 수밖에 없었는데, 출궁한 왕자는 사가로 보는 것이 당시의 인식이었다.


<오류>

171p

숙신옹주는 태종이 열세 번째 딸이다.

-> 숙신옹주는 태조의 딸이고, 태종의 열세 번째 딸은 숙순옹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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