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 고대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2
정기문 지음 / 민음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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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지식의 정원> 시리즈는 문고판이면서도 내용이 참 알차다.

전문 필자들을 잘 선정하여 역사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살림문고 같은 얕은 수준이 아니라 전공자들의 역사 해석이 수준있는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다.

이번 책의 주제는 로마가 강대국이 된 비결이다.

로마의 멸망에만 초점을 맞췄지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한 편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를 넘어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으로 뻗어가는 과정에서 제국으로서의 보편성을 유지한 것이 천 년 제국의 비밀이 아니었나 싶다.

시민권이라는 단어는 현대 사회에서나 비로소 가능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수천 년 전 로마 제국이 정복한 땅의 피지배인들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하고 식민지에서 황제가 나오는 것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개방성을 가졌던 것 같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국을 사분한 것도 넓어진 땅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한 유연한 발상이었고 로마 멸망의 원인이라고 일컬어지는 게르만 용병도 제국의 변방을 지키는 역할을 충실히 해냈음을 보여준다.

최종 결과만 가지고 가볍게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 널리 퍼져 국교가 된 것도 하나의 제국으로서 무역과 교류의 폭이 넓었고, 박해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다양한 사상을 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단순히 법률과 건축 유산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위대한 제국이 바로 로마가 아닌가 싶다.



<인상깊은 구절>

27p

왕정을 실시했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왕권은 하늘이 내린다고 생각했다. 그런 왕들은 인민이 아니라 하늘이 자신의 통치를 판단하다고 생각했고, 인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곤 했다. 그러나 로마는 인민의 동의가 있어야 왕권이 성립된다고 생각했으며, 이 생각은 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 유지되었다. 따라서 로마는 이미 왕정 시대에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주권 재민의 원리를 확립했고, 후대 민주주의의 한 원칙을 수립했던 것이다.

35p

이렇게 새로운 면모를 갖게 된 공화국은 '레스 푸블리카'라고 불렸는데, 이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로마 인들은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것이 아니라 인민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참으로 선진적인 것이었다. 근대 초의 서양에서는 서로 다른 나라의 왕자와 공주가 결혼하면 나라들이 통합되거나 쪼개진다. 당시 유럽인들은 국가가 공공의 것이 아니라 국왕의 사유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보면 로마인들이 정치 분야에서 얼마나 선진적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47p

로마는 정복한 지역을 동화시키고 전열을 정비하는 작업을 마치기 전에는 또 다른 전쟁을 벌이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로마 제국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로마는 어떤 지역을 정복하면 그 지역 사람들을 로마인이나 최소한 친로마 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 작업이 끝나서 새롭게 인적 자원이 보강된 다음에 다른 지역을 정복하였다. 따라서 로마의 정복 작업은 '한 걸음 한 걸음'씩 진행되었고,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56p

이 책은 너무나 뛰어난 문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카이사르의 최대 업적은 갈리아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갈리아 전기>를 쓴 것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라틴 어를 배우기 시작하는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교본으로 삼고 있다.

63p

민주정이 잘 운영되지 못하고, 정치적인 혼란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황제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더욱이 제국이 너무 넓었기 때문에 당시의 행정력으로서는 민주정을 펼칠 수가 없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일단 정치가 안정되고, 로마의 군사력이 복원되자 로마는 중흥하기 시작하였다.

75p

포카스는 아마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칭하면서 로마 인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서 대단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동로마 제국인이 진정한 로마 인이며 독일인은 롬바르드인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니케포루스 포카스 황제의 자부심은 당연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제국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이래 콘스탄티노플이 제국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었고, 로마 황가의 혈통이 단절 없이 이어져 왔을 뿐만 아니라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의 제도와 문화를 계속 이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편의상 동로마 제국, 혹은 비하해서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는 제국은 로마 제국의 연장이 아니라 로마 제국 그 자체이다. 즉 로마 제국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로마 제국의 한 시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의 역사를 2200년으로 파악해야 하고 동로마 제국의 전성기 또한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 포함시켜야 한다. 물론 역사가 오래 되었다고 해도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긴 역사 동안 로마 제국이 인류에게 어떤 업적을 남겼는가를 살펴보자.

131p

<로마가 함대를 갖추고 무장해야 하며 시민들이 수병들에게 급료와 물자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먼저 부담을 집시다. 원로원 의원들이여 우리의 신분을 나타내는 징표인 반지를 제외한 모든 금, 은, 주조한 동전을 모두 내일까지 국가에 바칩시다. 국가를 잃는다면 개인들의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여 위기에 처한 로마는 세금을 내라는 포고문 하나 발표하지 않고 해군을 육성할 수 있었다. 이때 원로원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재산을 바치지 않았다면 로마는 결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지배층의 도덕성, 리더십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163p

로마인들은 수많은 전투에서 신분이 높은 자들이 당연히 용감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용감히 싸웠다면 설령 패배했다고 해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패배한 장수를 심하게 문책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패배한 장수의 임무는 자살하거나 문책을 두러워하여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병사들을 수습하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216년 8월에 있었던 칸나이 전투의 뒤처리는 로마 인들의 이런 성향을 잘 보여 준다. 이 전투에서 로마는 약 9만 명을 병사로 5만 명밖에 되지 않는 한니발군에 대패하였다. 명장 한니발의 지도력과 한니발군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한 결과였다. 7만여 명의 병사가 전사했기 때문에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 인들은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전투에서 지난해 콘술, 그해 콘술이었던 수많은 지도자들이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이 전투의 총사령관이었던 바로가 패잔병들을 이끌고 로마로 귀환했을 때, 모든 시민들이 로마 성문까지 가서 그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가 '나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했다. 귀족들로 구성된 원로원도 그가 평민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이렇게 로마는 무능한 장군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던 카르다고와는 정말 다른 태도를 취했고 그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국가를 위기에 처하게 한 패잔병의 사령관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표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눈물나는 대목이다)

175p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고대인들은 모두 각별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로마인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은 신이 세상을 창조했고,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었으며, 인간은 신들이 정해 놓은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믿었다. 원래 고대 세계에서 종교는 도시의 사회 및 정치 생활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신들을 경배하는 것이 공동체의 안녕을 보장하고, 시민들의 유대를 강화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각 도시나 공동체는 그들을 보호하는 신들을 모시고 있었다.

 모든 고대인들이 신들을 믿었고, 신들이 세상을 주재한다고 믿었지만 로마 인만큼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고 신들을 모시는 데 열성적이지는 않았다. 로마 인들은 공적인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모든 일을 신에게 물어본 다음에 했다. 과연 이것이 로마의 세계 정복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종교가 인간에게 강력한 확신을 준다는 것이 그 답이다. 전투를 하기 이전에 신에게 뜻을 물어보았고, 신이 전투를 허락했다면 병사들은 신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승리를 가져다준다는 확신을 갖는다. 전투에 임해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런 로마 인들의 심성을 이해한다면 왜 키케로가 로마의 성공 비결은 투철한 신앙심이라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84p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로마 인들이 법을 너무나 좋아했고,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문화를 발달시켰기 때문에 종교적인 신앙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현대인의 관념이나 편견을 과거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이다. 로마인의 종교 생활을 깊이 있게 살펴본다면 이런 평가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종교와 정치, 종교와 학문, 종교와 일상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는 종교 고유의 영역이 있어서 다른 영역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인은 종교와 정치, 사회, 문화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종교야말로 그들에게 모든 것이었다. 종교는 믿는 자에게 강한 자부심과 확신을 주고, 믿는 자는 거기에서 힘을 얻는다. 로마인들도 그런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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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교계 가이드 - 19세기 영국 레이디의 생활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무라카미 리코 지음, 문성호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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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오타쿠적 성향과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은 참 대단하다.

학문적인 측면으로까지 승화시켜 이런 좋은 책을 내는 걸 보면 감탄스럽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 사회 모습은 어떤가 궁금해 읽게 됐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주제에 딱 맞는 상세한 설명과 함께, 컬러 도판이 많이 실려 있어 책의 품격이 더해진다.

<오만과 편견> 등 19세기 영국 소설을 읽을 때 등장하는 사교계의 실제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귀족들의 몰락 없이 근대화에 성공했기 때문에 영국은 여전히 왕실과 계급사회가 굳건히 존재하는 것 같고 일본도 그런 의미로 영국 사회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노동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프롤레타리아인 나같은 독자는 사실 굳이 읽을 필요도 없는 책이지만, 하여튼 소설과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드레스 입은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인상깊은 구절>

30p

사교계란 귀족이나 지주 등 상류 계급 사람들이 교제하는 커뮤니티다. 거기에는 권력, 권위를 가능한 한 적은 수의 사람들이 쥐게 하며, 신참자가 너무 많이 늘어나지 않도록 막으려는 힘이 존재한다. 사교계에 속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당연히 몸에 익혔을 터인 풍습도 외부 사람들은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 세계의 기본적인 교제 룰을 익히고 있는지의 여부가 안과 밖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다.에티켓이 사교계를 '천한 사람들'로부터 지키는 벽이 되었고, 또한 벽을 통과하기 위한 암호가 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37p

돈을 아끼지 않고 지위를 사려는 것은 일반적인 중류 계급의 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선 친한 친구, 친척이나 지인부터 시작해서, 지인의 지인, 또 그 지인의 지인을 소개받아 나아가게 될 것이다.

82p

당시의 젊은 독신 여성에게, 특히 런던 사교기의 무도회나 정찬회는 신분과 수입이 어울리는 독신 남성과의 만남의 장이었고, 결혼 상대를 붙잡기 위한 장소였다. 즉, 젊은 여성의 풀 드레스에는 낮에는 보닛이나 장갑, 하이넥 옷으로 꼭꼭 숨겨두었던 피부를 이 때다 하고 노출하였고, 여성적인 매력을 발휘해 이성을 매료시키는 역할이 있었다. 여성에게 요구되던 도덕과 조심성이 이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87p

흔들림 없는 지위가 확보된 '고귀하게 태어나고 자란' 상류 계급 사람들이야말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하는' 자유와 독립이 허용되어 있었다. 룰을 설정하는 것도 그들 자신이었으며, 깨트리면서 즐기는 것도 자유였다. 신분이 낮은 외부인들이 드레스코드를 실수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없도록 전전긍긍하는 것과는 달리, 지배 계급인 그들은 에티켓을 조금 위반하는 것 정도로 사교계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다. 자신들 자체가 사교계이기에.

109p

"'가정 초대회'가 성공하기 위한 최대의 비결은 가능한 한 많은 저명인을 모으는 것입니다. 단순히 칭호가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재능이나 인격으로 사교계에서 부동의 지위를 점유하는 그런 남녀가 좋습니다."

137p

'약속'을 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고귀한 신분이거나, 아니면 다양한 희생을 지불하고 얻은 부, 명성, 권력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176p

빅토리아 시대의 무도회란 여성이 주최하고, 여성이 주역이며,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동을 피로하는 것이 목적인 공간이다. 참정권도 없고, 재산의 보유도 제한되어 사회적인 권리가 남성보다 대폭 억제되어 있던 그녀들은, 결혼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여성은 무도회라는 '사냥터'에서, 그저 자신의 매력을 빛냄으로써 남편 후보의 눈에 머물고, 선택받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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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화 - 그 밑바탕을 이루는 것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33
이즈쓰 도시히코 지음, 조영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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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번역서를 보면 조잡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지만, 적어도 역사서에 대해서는 깊이가 정말 대단하다.

지금까지 봐 온 어떤 이슬람 책들보다도 이슬람교의 본질에 대해 체계적이고 깊이있게 설명해 준다.

문고판이라 분량도 적고, 강연록이라 이해하기 쉬운 수준에서 그러나 이슬람이 무엇을 추구하는 종교인지 명확하게 짚어줘 큰 도움이 됐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그저 이슬람 분파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는데 내면의 예언자, 즉 이맘을 마치 기독교의 메시아처럼 본다는 점에서 매우 다른 종교라는 느낌이 든다.

마치 아랍인과 이란인이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별개의 종족인 것처럼 말이다.

이슬람은 사막의 대상들이 믿던 비교적 늦은 시기에 생겨난 종교라 어떤 종교보다도 더 생활에 밀착되어 지금까지 성속의 분리 없이 종교가 곧 생활의 원리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세상은 과학과 합리주의 세계관이 지배하고 특히 민족별로 국가가 세워진 현대 사회에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 되버렸다.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의 지체 현상은 종교를 극복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싶다.

종교가 그저 개인의 개별적인 믿음이 되버린 터키가 이슬람 국가가 가야 할 바람직한 모델이 아닐까?



<인상깊은 구절>

66p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격렬하게 공격한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아들이라 여기는 기독교의 근본적 입장을 명백한 우상숭배로 간주한다. '신이 아들을 낳았다'는 생각 자체가 엄청난 미망이라고 본다. 알라는 "자식도 없고 부모도 없고, 그분과 견줄 자 없는" 유일한 신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그리스도의 신성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

70p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는 단지 사도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도 사도는 몇 명이나 세상에 나타났었다. 또한 그의 어머니도 평범한, 매우 정직한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밥을 먹는 사람이었다."

'밥을 먹는 사람' 혹은 '밥을 먹고, 시장을 걷는 사람'이라는 말은 그 무렵 흔히 사용했던 표현으로, 초자연적인 것을 전혀 갖지 않은 사람, 신이나 천사의 요소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예수관 때문에 이슬람과 기독교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슬람의 철저한 절대 일신교적 성격은 이러한 형태로도 나타난다. 

(사실 삼위일체 교리는 기독교를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 것이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곧 신의 아들이고 더 나아가 신 그 자체라니, 유대교도들이 불경죄로 거짓 예언자를 십자가에 못 박던 심정이 이해된다)

139p

인간의 본성은 원래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는 것이라고 이슬람은 생각한다. 원죄 때문에 본성적으로 더럽혀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고통을 통한 정화는 필요하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통을 겪는, 그러한 고뇌의 실존철학은 이슬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다. 신의 외아들을 희생시켜 인류의 본원적 죄를 대속하는 일 따위는 이슬람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원죄 부분도 비기독교인이 받아들이기 매우 힘든 교리다. 내가 왜 근원적인 죄인이며 내가 저지른 죄도 아닌 조상의 죄 때문에 죄인으로 태어난단 말인가?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원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사면받는다는 것인데, 인간의 죄인이라는 전제부터 인정하기가 참 어렵다. 이런 면에서 이슬람은 후대에 생겨난 종교라 그런지 교리적으로는 훨씬 더 세련되고 논리적인 느낌이다)

 게다가 이슬람에서는 불교에서 말하는 업(카르마) 사상이나 관념도 없다. 인간은 현재의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전생에 행한 일의 업을 운명적으로 짊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은 다시 태어나는 것, 윤회전생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기 때문에 업 사상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슬람은 그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다양하게 인도 사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윤회 사상만은 줄곧 완강히 거부했다. 인도 계열의 사상 가운데 윤회, 즉 죽은 사람의 혼이 이 세상에서 거듭해서 새로운 육체를 입어 태어난다는 사고방식만큼 이슬람에 맞지 않는 것은 없다.

 이슬람은 인간인 이 세상에 단 한 번 태어난다고 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목숨에도 절대적 시작과 절대적 끝이 있다. 

147p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신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의 구분, 혹은 그것과 유사한 어떤 것도 이슬람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19세기 말 이래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이 압도적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근대화 바람이 불어 완전히 서양식 생활 원리에 바탕을 둔, 즉 종교적 질서에서 떨어져나온 세속국가 혹은 그것에 가까운 것이 나타났다. 그러자 근대인으로서의 이슬람교도나 근대인다워지려는 이슬람교도는 매우 곤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근대 내셔럴리즘의 발흥은 이런 의미에서 이슬람의 문화 구조 차레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무엇이었다. 이슬람이 내셔널리즘, 근대화, 과학기술 문명을 이상으로 삼아 서구화의 길을 걷는 데 제일 먼저 직접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聖'의 전폐는 아니더라도 성과 속을 구분하는 일이다. 

(유교와 불교, 기독교가 근대 국가의 지배원리로부터 떨어져 나갔듯이 이슬람 역시 이제는 21세기 국가의 지도자적 역할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종교가 더 이상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맞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종교는 세상을 움직이는 지배 원리가 아니라 그저 마음의 양식 정도로 축소되야 할 듯 하다)

200p

외면적으로 공공연하게 밖으로 드러난 예언자와 내면적 예언자로서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예언자의 특성을 자기 심층에 간직한 사람, 이렇게 되면 이단 냄새가 풍긴다. 적어도 정통파의 입장에서 보면 의심할 여지없이 이단이다. 외면과 내면의 구별은 그렇다치더라도 어쨌든 무함마드 외에 이슬람의 예언자가 여럿임을 인정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208p

이 숨어 있는 이맘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세적 시간의 주기가 끝날 때, 종말의 날에 메시아로서 다시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 국외자에게는 신화적 형상, 신화적 상상력이 지어낸 불가사의한 심상의 연쇄로 보이지만, 숨어 있는 이맘이 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이야기는 시아파적 정신의 소유자들에게는 신화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이다.

(종말의 날 재림하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개념인가?)

 이것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적으로 시아파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서 아무래도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일반적으로 이란인은 본래부터 현저하게 환성적이고 신화적이며, 그 존재 감각도 체질적으로 초현실주의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특질은 이란 문학이나 미술에 흔히 나타나는데, 이 점에서 이란인은 감각적으로 현실주의적인 아랍과 대조적이다. 

219p

수니파가 이슬람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자 무함마드조차 '시장을 걷고, 음식을 먹는' 평범한 인간이라 여기는 것과 달리, 시아파는 이맘이라 부르는 신적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모든 일의 밑바탕이라 여기는 점에서 기독교에 더욱 가깝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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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썸머 에디션) - 친구가 친구가 아니었음을 깨달은 당신을 위한 관계심리학
성유미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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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경험한 여러 케이스를 기반으로 쓴 일종의 심리 치료서다.

문장이 비교적 고르게 잘 쓰여 있어 가독성이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호구가 안 되려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여 화가 누적되지 않게 하라.

타인과의 관계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 에너지를 나에게 돌려 내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자아를 단단하게 하는 게 훨씬 좋다고 한다.

관계의 핵심은 상호성이라고 한다.

한쪽만 감정의 이익을 보는 경우는 다른 한쪽이 상처를 받게 되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가 되어 결국 끝나고 만다.

또 상대를 그것으로 대하지 말고 너로 대하라고 한다.

이익을 얻기 위해 이용하는 사물로 대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라는 것이다.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로 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책 편집이 감각적으로 잘 되어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인상 깊은 구절>

37p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 한다. 설사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며 합리화를 한다. 그러니 잘못된 행동을 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56p

"다른 사람은 괜찮지만 (만만한) 너만큼은 내 뜻대로 해야!"

 만약 당신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다른 주장을 펼치면 굉장한 분노로 제압하려는 '정서적 폭력'을 행사한다.

72p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쓰는 비용이 아깝다면 상대도 마찬가지. 다른 사람이 내게 쓰는 비용이 아깝지 않게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 있다. 만약 10미터에서 100미터로 성장하면 높아진 높이만큼 넓이도 확장하는데, 이 넓이 안에 '좋은 인연'이 들어온다. 그러고 보면 성장만큼 좋은 인연을 끌어들이는 자석도 없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내가 가치 있게 느끼는 대상에게 쓰는 돈은 괜찮지만, 애매하거나 가치가 느껴지지 않는 이에게 나가는 돈은 셈하게 된다. 그러니 타인이 자신에게 쓰는 비용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 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자.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

135p

평소엔 안 그랬던 친구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 친구는 그 목소리를 지지해줄 '좋은 그룹'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굳이 당신이 옆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나는 편했다는 이유로 친구를 마음대로 바꾸겠다는 욕심은 버리자. 대신 자신도 모르게 그 친구를 발판삼아 풀고 있던 자기 욕구나 필요를 혼자서 찬찬히 들여다보자. 그래야 지금 떠나보내고 나중에 받아들일 수 있다.

143p

본래 관계라는 것이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시키진 말자. 그건 목적과 목표를 잃어버린 관계 강박일지 모른다.

 현재 시기심에 휘말려 자신을 소진하는 중이라면 관계에 매몰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길 바란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다. 내가 여유있고 자신감이 있으면 친구가 어디를 가든 SNS 에서 무엇을 자랑하든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러니 비교하고 속상해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특화해 그 성과를 수면 위로 떠올리는 일에 집중하자. 

145p

소우주를 가진 사람은 자아가 충만하다. 남과 비교 불가능한 달란트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워지는 특권을 얻는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만의 것'이 있다는 생각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151p

진짜 관계는 유익을 논하지 않는다. 요구하지 않는다. '함께 존재하는 강한 유대 감정'을 바탕으로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소통한다. 진짜 감정들이 중요하다. 관계 유지에는 에너지가 든다. 그렇지만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상대방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것이 나를 무겁게 하거나 괴롭힐 수 없다. 가능한 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꺼이 협력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짐스럽고 골치가 지근지근 아프다면 가족이라 하더라도 진짜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256p

이별하는 순간에서만큼은 '먼저 결심한 쪽이 강자'다. 헤어짐을 먼저 결심한 사람이 관계의 방향을 주도하고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잘 헤어지는 것은 단호하게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너의 상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상대에게 선포하는 것, 그것이 브레이크다.

258p

누군가 내 손을 놓고자 할 때 그 뜻을 인정하고 같이 놓아주는 것이 최고의 배려라면, 먼저 손을 놓기로 한 사람 역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비록 지금은 함께하는 것이 힘들더 손을 놓을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그 손을 잡겠다는 마음이다. 물론 상대가 건강한 관계 맺기가 가능한 때라는 전제가 붙는다. 이런 전제가 없으면 다시 만났을 때 '그때 네가 날 버렸었지'라는 심리만 발동해 보상만 받으려 들 테니 말이다.

263p

"무언가를 바꾸는 데에는 큰 에너지와 노력,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흔히 "사람은 원래 안 변해"라고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질, 성형, 습관 등 어느 것 하나 바꾸기 쉬운 게 없어요. 그런데 나쁜  쪽으로의 변화는 또 쉽게 진행돼요. 종합하면 '사람은 좋은 방향으로 그냥 변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겠어요."

265p

"일단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자신이나 상대를 향한 신뢰가 바탕에 있지 않으면 힘든 일입니다. 내가 나를 드러내도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을 거라는 믿음. 당신은 이 믿음을 뿌리깊게 가진 건강한 사람입니다."

267p

"이 과정에서 얻은 것과 착오에 대해 요약,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난 이번에도 관계 맺기에 실패했어"라며 좌절만 하고 지나치면 아무런 성장도 이룰 수 없어요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고 모임에 나가라고 하면 "나갔는데 얻은 게 없었어요" 라고들 이야기하는데 이건 만남을 자본화시킨 생각이에요. 자신이 다양한 경험을 할 '기회'를 얻는 것에 초점을 두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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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뒷골목을 읊다 - 당시唐詩에서 건져낸 고대 중국의 풍속과 물정
마오샤오원 지음, 김준연.하주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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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만 해도 완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중국 번역서들은 한번에 잘 읽히지가 않는다.

특히 당나라 시를 주제로 한 책이라 그런지 형용사가 많고 실제적인 정보가 부족해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학술적으로 논증하기 보다는 피상적인 관찰이 많아 보였다.

당나라는 시로 세워진 제국이라는 저자의 평가가 이해될 만큼 서사보다는 세상을 비유로써 바라보니 21세기 현대인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다.

처음에는 몰입이 힘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가 그려낸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잡히는 듯하고, 특히 마지막 그리스 로마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동서양 문화 토양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을 이루고 집단주의를 추구했는가, 왜 그리스 로마인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 개인의 영달을 꾀했는지 이해가 된다.

왜 서양에서 그리스 로마를 보편적 문화의 뿌리로 보는지도 알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중국 역시 동양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고 21세기가 서구식으로 세계화가 된 걸 보면, 저자도 그렇고 나 역시 개인을 중시하는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 훨씬 와 닿는다.

당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인 중국 왕조와는 달리 승부욕이 강하고 탐미적이며 개방적이었다.

저자는 당나라 시문 모음집인 <전당시>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고대 유럽의 일상은 잘 복원이 되어 있는 반면 동양의 미시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인지 이런 생활사가 흥미롭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 사람들도 지금의 인간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욕구와 감정과 가치관을 갖고 살았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래서 역사서가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모양이다.

같이 실린 중국의 서화들이 참 아름답고 멋지다.

우리 옛 그림도 좋지만 중국의 수묵화를 접하면 클래스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48p

높은 분께서 접대를 시작하길 기다리며, 자신의 작품과 간알의 서신을 올리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나 응시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남에게 부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기를 구한다' 일컬었다.

 당나라 사람들이 존경받을 만한 점이 여기에 있다. 간알할 때의 태도는 겸손하고 간알하는 대상을 공경하기는 했으나, 인격 면에서는 결코 한 수 아래가 아니었다. 추천의 여부는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다만 내 작품을 알아줄 지기를 찾는다는 마음가짐이었다.

49p

이 때문에 높은 분들은 행권자의 앞길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었다. 전자가 단지 재능이 뛰어난 자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거의 모든 응시자에 해당되었다.

 응시자들이 행권을 하기 위해 방문하면 문학적 재능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높은 분들은 모두 약간의 재물을 쥐어주었다. 재물이 많지 않더라도 응시자들의 빈곤한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청탁을 하는 사람은 흔히 약자이고 그 대상은 보통 강자이기 마련이다. 당나라 사회에는 분명 폐단이 없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훈훈하고 건강했던 행권 문화가 있었기에 그 시대를 동경하게 만든다. 약자가 강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고, 강자는 자신의 역량을 흔쾌히 내어주며 약자가 강자로 바뀌도록 도왔다.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보다 더 대단한 점은 당나라에서 행권할 때  문인들이 서로 존중하던 풍조다. 

55p

이상한 점은 왜 당나라가 진사과 시험에서 시부를 위주로 했을까 하는 것이다. 왜 한 나라에서 시 짓는 것을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삼았을까? 세계사를 보아도 이러한 기준은 특이하다고 할 만하다. 생각해보면 정말 진풍경이다. 방대하고 정밀한 국가 기구에서 위아래로 모두가 시인이다. 고위 관료들의 모음은 정치 모임이자 시 모임이며,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직무능력시험은 단지 당신에게 시를 읊으며 대구를 맞출 것을 요구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당나라는 시로 건설된 제국이다.

66p

남녀가 혼인을 하려면 반드시 '부모의 명령과 중매쟁이의 말'을 따라야 했는데, 이는 서주 때부터 시작된 불문율이었다. 당나라 때에 이르자 이것은 더 이상 모두가 속으로 알고 있는 규율이 아니라 확고부동한 법률 조항으로 돌변하여 이전에 비해 더욱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당시 중에도 도덕적 가르침이 법률 조항에 성원을 보냈다.

159p

당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다시 량치차오 선생의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도덕적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고 재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다. 나는 도박이 부도덕하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이 본질적으로 재미없는 지경에 이르고 재미가 없어 내 재미주의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도박을 배척한다. 나는 결코 학문이 도덕적이기 때문에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 본질적으로 재미로 시작하여 재미로 끝날 수 있어 내 재미주의의 조건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학문을 옹호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 읽는 게 아니라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한 행위라 열심히 읽는다)

 설령 당나라 사람들의 어떤 전기와 공상적인 이야기가 내친김에 정의를 고취시킨다고 해도 윤리는 애초에 당나라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누가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재미있고 기괴한 것,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 관건이었다. 그들이 유독 사랑한 것은 가장 정채로운 공상을 가장 아름다운 말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미학적 의미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전통은 중국에서 후계자가 없었고 오히려 일본에서 이어졌다.

225p

육체적 쾌락은 다만 동물적인 쾌락이라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무미건조해서 아주 금방 지겨워지고, 정신적인 기쁨이 있어야 비로소 가장 순전하고 영속적이라는 것 말이다. 육체적인 만족은 영혼의 굶주림을 없앨 수 없지만, 영혼의 부유함은 사람들이 육체적 빈곤함을 무시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안회가 어떻게 몇 권의 책에 의지해 "한 주발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서 지내는" 환경에서 기꺼이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당나라 때 유곡의 고객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기녀의 용모가 아니라 오히려 기녀의 언행과 행동거지, 음악적 재능, 그리고 기루의 음식 수준이었다. 

231p

문화 예술 훈련은 내용은 아름답지만 방식은 잔혹했다. 그들은 불과 열 살 남짓한 풋풋한 나이로, 대부분이 막 부모와 이별하여 여전히 어린이의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 예술을 배우는 것은 또 길고 험난한 과정이고, 그러다보면 어쩌다 해이해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평강리와 교방의 선생님들은 인정이 후하지 않아 충분히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 학생을 마주치면 곧장 손에 든 가죽 채찍을 휘둘렀다. 

257p

만약 스스로 타락할 생각이 없다면 하느님도 당신을 타락하게 만들 수 없다. 설령 신분이 낮다고 해도 절대 정신적 기개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당나라 가기들이 힘든 생활 속에서 필사적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존엄과 즐거움을 얻는 데 도움이 된 것은 꽃과 같은 미모와 뛰어난 재주 외에 그들의 강인한 자존심이었다.

333p

'중국식 설명문'에서는 실질적인 소개나 기술적인 지침이 언제나 분명하지 않고 심지어는 아예 하나도 없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서정적인 묘사로 독자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정보량이 어휘량 만큼 많지 않고 실용성이 문학성만큼 강하지 않으니, 설명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사가부의 변형이라고 하는 것이 낫다. 어떤 때는 이런 의심도 든다. 이런 설명문의 작자는 반듯하고 멋진 대구를 위해 사실과 진상을 희생시키는 것일까? 하느님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중국식 설명문'이 무엇을 가르쳐주지는 못하지만,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수사로 어떤 사물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가져다주기는 하니 말이다. 중국인에게 예로부터 치밀하게 사고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습관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어디에 내놓을 만한 철학 체계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느슨한 언어 구조 속에서 시의 생존 공간을 찾아냈다.

350p

사실 인류가 여러 사물에 갖다 붙인 의미를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높은 곳에 오르면 자신의 왜소함을 깨닫고 내면적 성찰과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고 고집스럽게 믿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천 미터가 넘는 고도에서 모든 것이 개미만 한 세상을 내려다보면 착각이 들기가 아주 쉽다. 자신이 마치 하느님처럼 세상을 움켜쥔 권력을 가졌다는 착각 말이다.

353p

"로마란 도시에는 상업이 없었고, 또 공업도 거의 없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모든 사람은 약탈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 몽테스키외의 풍자가 상당히 매몰차지만 로마인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외부와 힘껏 싸우지 않으면 재산, 토지, 그리고 영예가 없었다. 그래서 로마는 작은 성에서 시작할 때부터 오랜 세월의 전쟁에 익숙해졌다. 제국 밖의 세계에서 그들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갑옷을 입고, 더욱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결심을 품고 정복에 나섰으며, 제국 안에서 그들은 각종 경기를 통해 분투와 투쟁에 대한 모든 이의 갈망을 충족시켰다.

359p

나는 언제나 이런 생각이 든다. 로마인들이 죽어야 끝나는 것으로 모든 경기를 설계한 이유가 완전히 피를 좋아하는 본성 때문은 아니라고. 더 큰 이유는 목숨을 걸어야 경기 참여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려 수단이 모든 참가자를 전력투구하게 만들겠는가? 가장 좋은 장려책은 보물도 아니고 미인도 아니고 심지어 강산도 아니고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기 참가자가 전력투구해야만 세상에서 사장 재미있고 강렬한 경기가 될 수 있다. 잔인하지만 로마인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과하게 전투와 영웅, 영예와 열혈을 갈망하고, 과하게 인간 역량의 극한을 찾아내기를 갈망했다

"그리스인은 연극, 도예, 연설, 시, 낭송, 조각 등 어떤 분야에서도 경쟁을 즐겼다. 그리스인은 불가피하고 그들이 가장 아끼는 여가활동 가운데 솜씨를 겨루었다. 그리스인으로 말하자면 어떤 일도 운동회를 개최해야 할 이유가 된다." 고대 중국은 전혀 달랐다. 중국에서는 조화를 귀히 여겨 공자의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다"는 말씀이 만대의 가르침이었다. 경쟁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체육활동도 중국 조상들이 할 때는 대부분 그저 심신을 수양하거나 장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치열하게 다투는 경기는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외면받았고, 또 항상 국가가 나서서 각종 경기를 금지시켰다.

 중국은 예로부터 농업 국가로서 집집마다 자급자족하여 밖에 나다니지 않아도 너끈히 살 수 있었던 까닭에 대대로 좁은 땅을 지키고 살았다. 쌀밥이 눈앞의 땅에서 나오고 채소도 눈앞의 땅에서 나오니,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어디가 '먼 곳'인지 잊게 되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은 대부분 통일을 이루어 대다수 사람은 한평생 싸움을 해야 할 필요가 없고 창을 들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안정되고 착실하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의 토양이 사라졌다. 장기간의 통일은 또 개인이 좋은 게 아니고 나라가 좋아야 비로소 진짜 좋은 것이라는 집단주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 개인의 가치보다 집단의 이익이 위였다.

 고대 그리스는 고대 중국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고, 넓고 푸른 에게해만이 고대 그리스인에게 유일한 출로로 펼쳐졌는데, 이는 곧 외부를 향한 투쟁과 개척을 의미했다. 경쟁은 대다수 국가의 혼란한 국내 정치투쟁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거리낌 없는 개인주의로도 나타났다 .호머가 말한 대로 그리스인은 '경쟁을 해야 남을 앞선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 사명으로 여겼다. 염황자손이 '동고동락'과 '영욕을 함께'를 행위의 준칙으로 삼을 때, 모든 그리스인의 목표는 '재주를 드러내는' '군계일학'이었다. 중국의 점잖은 체하는 이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라와 천지의 도리"라고 할 때 여러 계층의 그리스 사람들은 정정당당하게 완전히 개인에게 속한 영광과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스는 줄곧 강자를 치켜세우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스인은 경기로 심신을 수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그들이 추구한 것은 월계관, 승리, 그리고 타인의 존경이었다. 페르시아인에게 무시당했던 그 올리브 관에 그리스인이 가장 바라는 영광이 담겨 있었다. 고대 중국인은 '화하의 자손'인 것을 영예로 여긴 반면, 고대 그리스인은 자신만을 영예로 여겼다. "그리스인은 경기를 중시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리스인은 개인의 영예를 무엇보다 높게 여긴다"는 말이 된다.

 로마인은 그리스인보다 조국이라는 개념을 더 중시했고, 로마제국을 영예로 여겼다. 로마의 경기는 그리스의 경기보다 잔혹해서 그들의 콜로세움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인은 개체 생명의 힘을 추구하고 마찬가지로 강자를 숭배했으니, 공히 '개인 영광 지상주의' 일파에 속한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공통의 좌우명을 수천 년 뒤의 니체가 이렇게 정리했다. "상관하지 말고 그들에게 가서 탄식하게 하라! 빼앗아라, 그저 빼앗기만 하면 된다!"

 한 지역의 물과 흙이 그 지역 사람을 기르는 법이라 중국에서는 군자가 나오기 쉽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영웅이 나오기 쉽다. 고대 중국은 집단의 영예를 추구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개인의 가치와 이익을 긍정했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는 또 다른 부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당나라 사람이다. 당나라 사람이 경기를 좋아한 것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 뒤지지 않았다.

369p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현실이 아무리 냉담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 얼마간의 詩心 이 남아 있어서, 적어도 현실을 마주하고서도 여전히 그침 없이 시를 읽고 꿈을 꾸는 저 사람들을 비웃지 않기를. 운명이 우리에게서 그 무엇을 빼앗아가더라도 우리가 마지막에는 나보코프처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한마디 감탄을 남기기를. 그러나 요행히 시가 살아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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