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뒷골목을 읊다 - 당시唐詩에서 건져낸 고대 중국의 풍속과 물정
마오샤오원 지음, 김준연.하주연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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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만 해도 완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중국 번역서들은 한번에 잘 읽히지가 않는다.

특히 당나라 시를 주제로 한 책이라 그런지 형용사가 많고 실제적인 정보가 부족해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학술적으로 논증하기 보다는 피상적인 관찰이 많아 보였다.

당나라는 시로 세워진 제국이라는 저자의 평가가 이해될 만큼 서사보다는 세상을 비유로써 바라보니 21세기 현대인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다소 어렵다.

처음에는 몰입이 힘들었지만 뒤로 갈수록 저자가 그려낸 당나라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잡히는 듯하고, 특히 마지막 그리스 로마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동서양 문화 토양이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중국은 일찍부터 통일을 이루고 집단주의를 추구했는가, 왜 그리스 로마인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 개인의 영달을 꾀했는지 이해가 된다.

왜 서양에서 그리스 로마를 보편적 문화의 뿌리로 보는지도 알 것 같다.

그렇게 보자면 중국 역시 동양 문화의 뿌리라고 할 수 있고 21세기가 서구식으로 세계화가 된 걸 보면, 저자도 그렇고 나 역시 개인을 중시하는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이 훨씬 와 닿는다.

당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인 중국 왕조와는 달리 승부욕이 강하고 탐미적이며 개방적이었다.

저자는 당나라 시문 모음집인 <전당시>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고대 유럽의 일상은 잘 복원이 되어 있는 반면 동양의 미시사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서인지 이런 생활사가 흥미롭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 사람들도 지금의 인간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욕구와 감정과 가치관을 갖고 살았다는 게 참 신기하다.

그래서 역사서가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모양이다.

같이 실린 중국의 서화들이 참 아름답고 멋지다.

우리 옛 그림도 좋지만 중국의 수묵화를 접하면 클래스가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인상깊은 구절>

48p

높은 분께서 접대를 시작하길 기다리며, 자신의 작품과 간알의 서신을 올리기에 바빴던 것이다. 그러나 응시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남에게 부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지기를 구한다' 일컬었다.

 당나라 사람들이 존경받을 만한 점이 여기에 있다. 간알할 때의 태도는 겸손하고 간알하는 대상을 공경하기는 했으나, 인격 면에서는 결코 한 수 아래가 아니었다. 추천의 여부는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다만 내 작품을 알아줄 지기를 찾는다는 마음가짐이었다.

49p

이 때문에 높은 분들은 행권자의 앞길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도움을 주었다. 전자가 단지 재능이 뛰어난 자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거의 모든 응시자에 해당되었다.

 응시자들이 행권을 하기 위해 방문하면 문학적 재능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높은 분들은 모두 약간의 재물을 쥐어주었다. 재물이 많지 않더라도 응시자들의 빈곤한 생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청탁을 하는 사람은 흔히 약자이고 그 대상은 보통 강자이기 마련이다. 당나라 사회에는 분명 폐단이 없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훈훈하고 건강했던 행권 문화가 있었기에 그 시대를 동경하게 만든다. 약자가 강자의 비위를 맞추지 않았고, 강자는 자신의 역량을 흔쾌히 내어주며 약자가 강자로 바뀌도록 도왔다.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보다 더 대단한 점은 당나라에서 행권할 때  문인들이 서로 존중하던 풍조다. 

55p

이상한 점은 왜 당나라가 진사과 시험에서 시부를 위주로 했을까 하는 것이다. 왜 한 나라에서 시 짓는 것을 인재 선발의 기준으로 삼았을까? 세계사를 보아도 이러한 기준은 특이하다고 할 만하다. 생각해보면 정말 진풍경이다. 방대하고 정밀한 국가 기구에서 위아래로 모두가 시인이다. 고위 관료들의 모음은 정치 모임이자 시 모임이며,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직무능력시험은 단지 당신에게 시를 읊으며 대구를 맞출 것을 요구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당나라는 시로 건설된 제국이다.

66p

남녀가 혼인을 하려면 반드시 '부모의 명령과 중매쟁이의 말'을 따라야 했는데, 이는 서주 때부터 시작된 불문율이었다. 당나라 때에 이르자 이것은 더 이상 모두가 속으로 알고 있는 규율이 아니라 확고부동한 법률 조항으로 돌변하여 이전에 비해 더욱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당시 중에도 도덕적 가르침이 법률 조항에 성원을 보냈다.

159p

당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다시 량치차오 선생의 말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도덕적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고 재미가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다. 나는 도박이 부도덕하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도박이 본질적으로 재미없는 지경에 이르고 재미가 없어 내 재미주의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에 도박을 배척한다. 나는 결코 학문이 도덕적이기 때문에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 본질적으로 재미로 시작하여 재미로 끝날 수 있어 내 재미주의의 조건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에 학문을 옹호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 읽는 게 아니라 독서가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한 행위라 열심히 읽는다)

 설령 당나라 사람들의 어떤 전기와 공상적인 이야기가 내친김에 정의를 고취시킨다고 해도 윤리는 애초에 당나라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아니었다. 누가 누구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재미있고 기괴한 것, 아름답고 화려한 것이 관건이었다. 그들이 유독 사랑한 것은 가장 정채로운 공상을 가장 아름다운 말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미학적 의미만 맹목적으로 따르는 전통은 중국에서 후계자가 없었고 오히려 일본에서 이어졌다.

225p

육체적 쾌락은 다만 동물적인 쾌락이라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무미건조해서 아주 금방 지겨워지고, 정신적인 기쁨이 있어야 비로소 가장 순전하고 영속적이라는 것 말이다. 육체적인 만족은 영혼의 굶주림을 없앨 수 없지만, 영혼의 부유함은 사람들이 육체적 빈곤함을 무시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안회가 어떻게 몇 권의 책에 의지해 "한 주발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골목에서 지내는" 환경에서 기꺼이 만족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당나라 때 유곡의 고객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기녀의 용모가 아니라 오히려 기녀의 언행과 행동거지, 음악적 재능, 그리고 기루의 음식 수준이었다. 

231p

문화 예술 훈련은 내용은 아름답지만 방식은 잔혹했다. 그들은 불과 열 살 남짓한 풋풋한 나이로, 대부분이 막 부모와 이별하여 여전히 어린이의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화 예술을 배우는 것은 또 길고 험난한 과정이고, 그러다보면 어쩌다 해이해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평강리와 교방의 선생님들은 인정이 후하지 않아 충분히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는 학생을 마주치면 곧장 손에 든 가죽 채찍을 휘둘렀다. 

257p

만약 스스로 타락할 생각이 없다면 하느님도 당신을 타락하게 만들 수 없다. 설령 신분이 낮다고 해도 절대 정신적 기개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 당나라 가기들이 힘든 생활 속에서 필사적으로 아주 조금이나마 존엄과 즐거움을 얻는 데 도움이 된 것은 꽃과 같은 미모와 뛰어난 재주 외에 그들의 강인한 자존심이었다.

333p

'중국식 설명문'에서는 실질적인 소개나 기술적인 지침이 언제나 분명하지 않고 심지어는 아예 하나도 없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서정적인 묘사로 독자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정보량이 어휘량 만큼 많지 않고 실용성이 문학성만큼 강하지 않으니, 설명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사가부의 변형이라고 하는 것이 낫다. 어떤 때는 이런 의심도 든다. 이런 설명문의 작자는 반듯하고 멋진 대구를 위해 사실과 진상을 희생시키는 것일까? 하느님이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중국식 설명문'이 무엇을 가르쳐주지는 못하지만, 아름답고 휘황찬란한 수사로 어떤 사물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가져다주기는 하니 말이다. 중국인에게 예로부터 치밀하게 사고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습관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어디에 내놓을 만한 철학 체계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느슨한 언어 구조 속에서 시의 생존 공간을 찾아냈다.

350p

사실 인류가 여러 사물에 갖다 붙인 의미를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 높은 곳에 오르면 자신의 왜소함을 깨닫고 내면적 성찰과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고 고집스럽게 믿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천 미터가 넘는 고도에서 모든 것이 개미만 한 세상을 내려다보면 착각이 들기가 아주 쉽다. 자신이 마치 하느님처럼 세상을 움켜쥔 권력을 가졌다는 착각 말이다.

353p

"로마란 도시에는 상업이 없었고, 또 공업도 거의 없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모든 사람은 약탈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 몽테스키외의 풍자가 상당히 매몰차지만 로마인들의 처지를 어느 정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외부와 힘껏 싸우지 않으면 재산, 토지, 그리고 영예가 없었다. 그래서 로마는 작은 성에서 시작할 때부터 오랜 세월의 전쟁에 익숙해졌다. 제국 밖의 세계에서 그들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갑옷을 입고, 더욱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결심을 품고 정복에 나섰으며, 제국 안에서 그들은 각종 경기를 통해 분투와 투쟁에 대한 모든 이의 갈망을 충족시켰다.

359p

나는 언제나 이런 생각이 든다. 로마인들이 죽어야 끝나는 것으로 모든 경기를 설계한 이유가 완전히 피를 좋아하는 본성 때문은 아니라고. 더 큰 이유는 목숨을 걸어야 경기 참여자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장려 수단이 모든 참가자를 전력투구하게 만들겠는가? 가장 좋은 장려책은 보물도 아니고 미인도 아니고 심지어 강산도 아니고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경기 참가자가 전력투구해야만 세상에서 사장 재미있고 강렬한 경기가 될 수 있다. 잔인하지만 로마인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과하게 전투와 영웅, 영예와 열혈을 갈망하고, 과하게 인간 역량의 극한을 찾아내기를 갈망했다

"그리스인은 연극, 도예, 연설, 시, 낭송, 조각 등 어떤 분야에서도 경쟁을 즐겼다. 그리스인은 불가피하고 그들이 가장 아끼는 여가활동 가운데 솜씨를 겨루었다. 그리스인으로 말하자면 어떤 일도 운동회를 개최해야 할 이유가 된다." 고대 중국은 전혀 달랐다. 중국에서는 조화를 귀히 여겨 공자의 "군자는 다투는 바가 없다"는 말씀이 만대의 가르침이었다. 경쟁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 체육활동도 중국 조상들이 할 때는 대부분 그저 심신을 수양하거나 장수하기 위한 것이었다. 치열하게 다투는 경기는 사회 엘리트 계층으로부터 외면받았고, 또 항상 국가가 나서서 각종 경기를 금지시켰다.

 중국은 예로부터 농업 국가로서 집집마다 자급자족하여 밖에 나다니지 않아도 너끈히 살 수 있었던 까닭에 대대로 좁은 땅을 지키고 살았다. 쌀밥이 눈앞의 땅에서 나오고 채소도 눈앞의 땅에서 나오니,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어디가 '먼 곳'인지 잊게 되었다. 게다가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은 대부분 통일을 이루어 대다수 사람은 한평생 싸움을 해야 할 필요가 없고 창을 들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안정되고 착실하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경쟁의식의 토양이 사라졌다. 장기간의 통일은 또 개인이 좋은 게 아니고 나라가 좋아야 비로소 진짜 좋은 것이라는 집단주의의 분위기를 만들어내 개인의 가치보다 집단의 이익이 위였다.

 고대 그리스는 고대 중국만큼 운이 좋지 않았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고, 넓고 푸른 에게해만이 고대 그리스인에게 유일한 출로로 펼쳐졌는데, 이는 곧 외부를 향한 투쟁과 개척을 의미했다. 경쟁은 대다수 국가의 혼란한 국내 정치투쟁으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거리낌 없는 개인주의로도 나타났다 .호머가 말한 대로 그리스인은 '경쟁을 해야 남을 앞선다'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 사명으로 여겼다. 염황자손이 '동고동락'과 '영욕을 함께'를 행위의 준칙으로 삼을 때, 모든 그리스인의 목표는 '재주를 드러내는' '군계일학'이었다. 중국의 점잖은 체하는 이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라와 천지의 도리"라고 할 때 여러 계층의 그리스 사람들은 정정당당하게 완전히 개인에게 속한 영광과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스는 줄곧 강자를 치켜세우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스인은 경기로 심신을 수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그들이 추구한 것은 월계관, 승리, 그리고 타인의 존경이었다. 페르시아인에게 무시당했던 그 올리브 관에 그리스인이 가장 바라는 영광이 담겨 있었다. 고대 중국인은 '화하의 자손'인 것을 영예로 여긴 반면, 고대 그리스인은 자신만을 영예로 여겼다. "그리스인은 경기를 중시한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그리스인은 개인의 영예를 무엇보다 높게 여긴다"는 말이 된다.

 로마인은 그리스인보다 조국이라는 개념을 더 중시했고, 로마제국을 영예로 여겼다. 로마의 경기는 그리스의 경기보다 잔혹해서 그들의 콜로세움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리스인과 마찬가지로 로마인은 개체 생명의 힘을 추구하고 마찬가지로 강자를 숭배했으니, 공히 '개인 영광 지상주의' 일파에 속한다.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공통의 좌우명을 수천 년 뒤의 니체가 이렇게 정리했다. "상관하지 말고 그들에게 가서 탄식하게 하라! 빼앗아라, 그저 빼앗기만 하면 된다!"

 한 지역의 물과 흙이 그 지역 사람을 기르는 법이라 중국에서는 군자가 나오기 쉽다.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영웅이 나오기 쉽다. 고대 중국은 집단의 영예를 추구했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개인의 가치와 이익을 긍정했다. 그러나 고대 중국에는 또 다른 부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당나라 사람이다. 당나라 사람이 경기를 좋아한 것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 뒤지지 않았다.

369p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현실이 아무리 냉담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 얼마간의 詩心 이 남아 있어서, 적어도 현실을 마주하고서도 여전히 그침 없이 시를 읽고 꿈을 꾸는 저 사람들을 비웃지 않기를. 운명이 우리에게서 그 무엇을 빼앗아가더라도 우리가 마지막에는 나보코프처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한마디 감탄을 남기기를. 그러나 요행히 시가 살아남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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