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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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까 봐 걱정했던 책인데 의외로 쉽게 잘 넘어가고 번역도 매끄럽다.

역자가 전공자여서 더 잘 읽히는 느낌이다.

두껍지만 지루하지 않고 천 년에 걸친 합스부르크 가문의 흥망성쇠와 중부 유럽의 거대한 제국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합스부르크 제국이 왜 역사책에서 대단하게 언급되는지 체감이 안 됐었다.

마치 오스만 제국의 후예가 터키로 쪼그라들었듯, 합스부르크 제국 역시 오늘날의 오스트리아를 떠올리면 도저히 과거 위상이 실감이 안 났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역이 정확히 어느 정도였는지 조차 감이 안 왔다.

빈번한 근친혼의 결과로 주걱턱이 길어지고 후손도 남기지 못한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 각인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위스의 작은 지방에서 시작된 한 가문이 어떻게 유럽을 다스리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또 그것은 가문 내 중첩된 혼인을 통해 후계자를 남기고자 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지탱한 것이 기독교와 보편 문명에 대한 강한 소명의식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국가란 하나의 민족이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은 금방 실체가 느껴지는데 제국은 정체성이 모호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성과라면 여러 민족들을 포괄하는 제국이 갖는 성격과 역할에 대해 인지하게 된 점이다.

민족국가는 세계적인 추세였으니 결국 중부 유럽의 여러 민족들을 포괄하는 합스부르크 제국은 독일에게 끌려 들어가 1차 대전 후 소멸하고 말았다.

오랜 세월 한 곳에서 정착해 민족 국가를 이루어 온 동아시아에서는 유럽 연합이라는 현재의 정치 체제가 쉽게 와 닿지 않는 점이 있는 것 같은데 EU 야 말로 오랜 유럽의 역사가 바탕이 된 결과물임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결혼 정책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어쨌든 합스부르크 황제들은 운이 좋았고 후손을 남겨 계속해서 제국의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조선 말에도 왕의 후손이 없어지면서 결국은 몰락의 길을 갔던 것과 비교된다.

적자가 아닌 일종의 사생아에게도 왕위 계승권을 인정한 조선 왕실의 예법도 나름 왕조 유지 전략이었던 셈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말 유익한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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