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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새뮤얼 헌팅턴이라면 홍정욱의 에세이 "7막 7장" 에서 봤던 사람이다
한국학의 대가라고 알고 있는데 미국 내에서 꽤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인 것 같다
하긴 하버드대라면 우리나라의 서울대랑 마찬가지니까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가서 느낀 거 쓴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래도 외국인과 내국인의 차이겠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를 읽으면서 평범한 미국인의 일상을 느꼈다면 이 책에서는 미국인의 의식과 문화에 대해 또 역사와 그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강한 주장을 펴지 않으면서도 한쪽으로 몰고 가는 기술이 탁월하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은 감정적이고 당위를 논하는 것에 불과한데, 이 책은 학자풍의 느낌이 난다
그래서 더 신뢰가 간다
그렇지만 솔직히 옳은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진보란 국가와 인종, 또는 민족을 넘어 전인류애적이고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헌팅턴은 기존의 개척자 문화로 통일하길 원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중언어 정책이다
효율성으로만 따지면 이중언어는 명백히 낭비다
스위스처럼 4개 국어가 쓰이는 나라를 보라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프랑스어를 쓰는 스위스인과 독일어를 쓰는 스위스인이 만나면 영어로 대화한다는 말이 농담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히스패닉인들의 권리를 무시할 수 있을까?
어차피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인데 언제까지 기득권층 문화만 강조할 것인가?
그래서 헌팅턴은 엘리트 집단이 나서서 이중언어 정책을 추진한다고 비판한다
실제 국민의 80%가 영어 단독 사용을 지지하는데, 다원화 문화에 경도된 엘리트층이 스페인어 사용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또 이들은 공직에 출마하기 때문에 전 미국인의 12%에 달하는 히스패닉인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해 스페인어 사용을 지지하기도 한다
글쎄, 뭐가 옳은 것일까?
개척자 문화와 이민자 문화의 정의는 참 유용했다
개척자 문화란 17세기 영국 정부의 억압을 피해 신세계로 건너와 신앙의 자유를 지킨 앵글로 색슨 청교도를 일컫는다
이들은 인디언과의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혔고 지배 문화를 형성했다
땅은 넓은데 사람은 적으니 노동 인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무분별한 이민자 유입이 좋게 말하면 미국 문화의 다양성을 가져 왔고, 나쁘게 말하면 단결심을 해치게 됐다
이것은 비단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독일의 터키인들이나 프랑스의 북아프리카인들도 마찬가지다
노동력은 필요한데 정식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위선적인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민자 문제는 계속 심각할 것이다
그런데 "관용에 대하여" 를 읽어 보면 집단의 권리를 강조하는 것은 또다른 민족주의에 지나지 않다
개인으로서 차별받지 않는 것은 중요한 문제지만, 집단으로 뭉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진짜 진보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헌팅턴은 집단으로서의 권리를 외치는 민족주의자들의 지도자가 부수적인 이익을 위해 애쓴다고 비난조로 말한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난하는 아라파트 같은 행태라고 할까?
궁극적으로 프랑스처럼 개인으로서는 차별하지 않고, 집단으로서 뭉치는 것은 제재하는 것이, 즉 완전한 동화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이중언어 정책은 폐지해야 할 것이다
영어 못해서 난리치고 심지어 영어 공용론까지 펼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을 정도다
완전한 동화는 가능할까?
이민 1세대야 어쩔 수 없다지만 2세대, 3세대가 되면 자신의 뿌리가 되는 문화를 지킨다는 것이 어려워진다
어차피 그 사회에 살면 동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실제로 얼굴색이나 민족적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는다면 이들이 뭉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또 소수 민족의 수가 많아져 어느 정도 실력 행사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당연히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까?
개인은 약하지만 집단은 강한 법이니까
그러므로 헌팅턴 같은 국가주의자, 혹은 기득권층은 소수 민족주의자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이들이 개인으로서도 차별받지 않도록 사회 정책들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완전한 동화를 이루도록 애쓰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을 정의하는 가치관 중 하나는 기회의 평등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도 바로 이 기회의 평등일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대부분의 사회에서 계급 이동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기득권층에 편입한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힘들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기득권층 형성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계급 이동이 활발한 편이다
자신만 열심히 한다면 말이다
헌팅턴은 이것을 강조한다
즉 미국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고 주장한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기회의 평등이 미국의 신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미국은 유럽보다 빈부 격차가 월등하게 큰 나라다
이민간 한국인들을 생각하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만 열심히 일하면 왠만큼은 살 수 있으니까
반면 흑인들은 워낙 게으르기 때문에 계급 상승이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헌팅턴은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해 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미국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나라인가?
세계 대전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했다는 사실은 좀 놀랍다
전쟁이 때로는 득이 되기도 하나 보다
2차 세계 대전은 핵폭탄의 사용으로 인간성이 파괴된 전쟁으로 유명한데, 오히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애국심을 드높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2차 대전을 수행하면서 소련 국민들이 행복했다고 하는데 정말일까, 과장일까?
어쨌든 2차 대전 때 자발적으로 천여만명의 사람들이 지원하면서 인종, 민족 등을 초월해 미국인의 정체성 아래 뭉칠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남북 전쟁을 통해 모든 백인들이 하나의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은 것처럼 말이다
혹시 6.25도 뭔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까?
전쟁을 하면 빈부 격차가 줄어든다고 한다
다 같이 못 사는 게 상대적 빈곤보다 더 좋은 것인가?
저자는 미국의 선택 영역을 셋으로 나눈다
세계화를 주장하는 엘리트들이 원하는 초월적 국가주의, 아니면 제국주의, 일반 대중이 원하는 국가주의가 있다
물론 저자는 앵글로-기독교 문화가 지배하는 국가주의를 원한다
저자는 이것을 애국심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의 미덕은 서문에 밝힌대로 애국심과 학문적 분석을 혼동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엘리트와 대중 사이의 간극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일찌기 플라톤이 한탄한대로 대중은 어리석고 민주주의는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즘으로 갈 확률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대중에게 국가 정책을 맡겨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선출직으로 뽑힌 엘리트들이 대중과 분리된 정책을 고수할 경우 그들의 특권 유지에 급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의 민주정치라는 기본 이념이 빛을 바랠 수 있다
선출직 관리들이 입법하고 집행할 때는 어느 정도 대중의 뜻을 반영한다는 기본적인 신뢰가 깨진다면 결국 민주주의는 붕괴되는 게 아닌가?
엘리트들이 주장하는 세계화는 곧 우리 지식인들이 자주 거론하는 진보의 실체다
박홍규가 늘상 얘기하는 아나키즘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민족과 인종을 초월해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바로 세계화이고 진보가 아닌가?
왜 대중들은 진보적 사고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나마 있는 기득권이 뺏기리라는 두려움 때문인가?
하긴 헌팅턴의 분석을 읽으면 이해가 간다
헌팅턴은 "폴링 다운" 에 등장하는 노동직 백인 남성을 예로 든다
이제 그들은 소수가 되어 비백인들에게 일자리를 뺏기고 무력하게 거리로 나앉았다
이 영화는 한국인을 비하한다고 문제가 됐는데, 아시아인에 대한 일반적인 분노를 표현했다는 걸 알게 됐다
엘리트로 편입한 것도 아니고, 밀려 오는 이민자에게 치이는 판국에 그나마 정부에서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급급하니, 능력없는 기존의 백인들로서는 불안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헌팅턴은 이들이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처럼 집단으로 단결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미국이 종교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서구 사회가 종교 전쟁을 통해 공적인 영역에서 (심지어 사적인 영역도) 종교를 완전히 몰아 냈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종교적 압박을 느끼지 않은 미국인은 훨씬 더 종교적이다
하긴 종교의 자유를 찾아 그 먼 영국땅에서 미지의 나라로 배를 타고 건너 올 정도면 그들이 얼마나 종교적이었을지 알만 하다
저항하는 프로테스탄트는 개척자 문화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종교가 도덕적 해이를 막는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종교와 도덕이 과연 얼만큼의 상관 관계를 갖는지 의심스럽다
하나님의 선과 인간의 선은 명백히 다르기 때문에 종교는 세속 생활의 원리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미국인들은 공적 영역에 종교를 집어 넣고자 한다
종교가 지배하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개개인의 믿음을 표현하고 그 원리에 따라 사는 건 자유지만, 또 한편으로 바람직한 면도 있지만 종교가 집단을 지배하는 것은 교조주의의 부활에 불과하다
중세 천년을 겪고도 여전히 종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지, 참 한심스럽다
하긴 우리나라가 유교의 폐해를 알면서도 전통적인 유교 사상을 버리지 못하듯, 미국 역시 자신들의 뿌리가 되는 지배 이념을 한순간에 폐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사회를 지배하는 중심 원리가 필요하다면, 기존의 것을 대체할 강력한 이념이나 질서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함부로 기존의 원리를 버릴 수 없겠지
그렇다면 미국을 지배할, 혹은 우리를 지배할 바람직한 가치관과 이념은 무엇일까?
헌팅턴은 실망스럽게도 국가주의를 거론한다
애국심을 바탕으로 미국인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단일 언어를 사용하며 민족의 뿌리를 부정하고 기독교와 앵글로 색슨 족의 전통 위주로 뭉치는 그런 사회 말이다
비록 헌팅턴은 앵글로-개신교인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결국 다원화 대신 기존 질서의 유지를 주장하는 게 아닌가?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하나의 지배 원리만을 중시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태도다
물론 세계화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강력하게 혹은 빠르게 진행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국가에 대한 헌신이 부족한 엘리트 계층이 세계화를 선도하지만, 일반 대중들은 여전히 민족과 인종, 종교 같은 자신의 뿌리에 집착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시대든 거스를 수 없는 시대 정신과 흐름이 있는 법이다
애국심에 기초한 헌팅턴의 국가주의는 왠지 시대에 역행하는 기분이 든다
헌팅턴이 지적하는 다원화주의의 문제점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중 언어 정책이 국가 정체성을 해치고 결국 미국을 둘로 나눌 것이라는 견해는 결코 엄살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헌팅턴 식으로 국가 정체성을 강조해서 문명의 충돌 어쩌고 하는 식으로 이슬람을 적으로 규정해서 미국인의 단결을 촉구한다면 세계는 계속 전쟁을 치뤄야 할 것이다
자꾸 우리를 강조하면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이야 말로 관용의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닐까?
왈짜의 말처럼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평화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수 민족의 집단주의 역시 반대다
민족의 권리를 내세우며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사회를 분열시킨다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지도자란 사람들이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결국 가장 좋은 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개인이 선택하고 사회는 그것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믿는다
집단으로서의 다원화는 반대지만, 개인으로서의 다원화는 인정해 주는 문화, 결국은 아나키즘과 자유 정신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페레가 주창한 자유주의 교육을 받아야 할까?
권력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자유인이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얘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