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의 일상문화코드
박재환 외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사회의 일상 영역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한 책이다
표지부터 확 띄는 게 마음에 든다
여러 명의 필자들이 모여 쓴 글은 통일감이 없고 다소 산만한 편인데 이 책은 비교적 괜찮다
그렇지만 간혹 수준이 떨어지는 글도 있긴 있다
지난 번 "결혼할까 혼자살까" 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왜 박사 학위 씩이나 있는 사람들의 분석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걸까?
지식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피상적이고 단편적이며 감정적이라 읽으면서도 한심할 때가 있다
다행히 이 책의 전체적 수준은 괜찮은 편이고 각각의 글도 무난할 정도의 평균은 된다
때로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글도 보이는데, 내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확실히 교수 두 사람의 글은 정독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 사회의 특징은 전통 문화의 계승과 단절일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 모든 면에서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긴다
더구나 일제 지배와 6.25를 거친 후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룩했기 때문에 몸이 커지는 것에 비해 정신은 그 속도에 맞춰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전통을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시민 사회의 정신 대신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어제 읽은 "양반" 에서도 느낀 바지만 18세기 이후 주자학이 하층민들에게까지 침투되면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이뤄졌고 21세기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가족 중심주의나 체면 중시 풍조,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등이 그렇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대단히 낙천적이다
또 현세 중심주의라 지금 당장의 쾌락을 즐긴다
직선적인 기독교적 사관과는 달리 순환적인 사관을 믿기 때문에 샤머니즘이나 범신론적 속성도 갖고 있다
원죄 의식 대신 타인의 눈치를 보는 문화가 성행한다
정말 한국인이 낙천적일까?
음주가무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그렇지만 과연 현대의 한국인들이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술 마시는 거 말고는 제대로 된 여가 생활이 드물지 않나?
오히려 서양 사람들이 여가 생활을 훨씬 많이 하지 않나?
내가 보기에는 선진국으로 갈수록 노동 시간은 단축되면서 여가 시간은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이 정말 낙천적이고 현세를 제대로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다

저자는 또 비언어적 교류를 지적한다
간단히 말하면 눈치 문화다
말 안 해도 알아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단점이라면 흔히 알려진 대로 상대의 뜻을 오해할 수도 있고 항상 분위기 파악을 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또 대화와 토론이 부족하고 윗사람이나 동료들 눈치를 봐야 하니까 주관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한마디로 피곤하다 이거다
공개적으로 말을 안 하니 사적인 정보망에 의존해야 하고 결국 학벌이나 지연 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 투명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신 말하기 껄끄러운 점을 상대가 알아서 파악하니까 어떨 때는 편하기도 할 것 같다
불편한 얘기는 서로 삼가하니까 인간 관계도 더 부드러울 것이고 친밀감도 높지 않을까?
결과가 좋으면 의미 부여도 좋을 수 밖에 없다
어쨌든 지금 한국이 선진국은 아니니까 눈치 문화를 좋게 해석할 수는 없는 문제다

뭐니뭐니 해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족주의일 것이다
개인주의의 서구 사회가 오히려 사회적 연대 의식이 강하다는 건 참 아이러니컬 하다
흔히 개인주의 하면 이기주의를 떠올리는데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한국 사회는 오히려 남을 돕는데 대단히 인색하다
아니, 그런 전통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하나?
시민 혁명 같은 걸 경험한 적이 없으니 그런 문화 역시 부재할 수 밖에
개인주의의 성립 조건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라고 한다
사실 남의 자유를 존중해 주지 못한다면 내 자유와 권리도 타인에게서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내 권리와 자유를 즐기기 위해서는 상대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런 전제 조건 덕분에 사회적 연대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문화는 개인 대신 우리, 더 정확히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중시한다
나만 해도 그렇다
가족의 가치관에 나 자신을 맞추고 있다
아빠 역시 가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자식의 성공이 곧 내 삶의 의미라는 식으로 말한다
자식과 부모를 따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자식과 부모를 동일시 하기 때문에 자식이 더 높은 계급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기러기 아빠를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힐 정도다
넘치는 교육열도 교육이 신분 보장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가족을 분리하지 못하는 가족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난 가족주의를 넘어 설 자신이 없다
어떤 의미로 보면 한 사람의 개인으로 완전히 독립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나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질 않으려고 하고, 아빠는 결혼한 후에도 정신적으로 나를 데리고 있으려 한다
부모와 자식의 완전한 분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가족주의의 해체도 불가능할 것이다
가족주의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바람직한 대안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개인으로 완전히 설 수 있느냐는 자아 주체성 문제로 보면 극복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야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사회를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내 가족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사회적 연대 역시 불가능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제일 뜨끔했던 것은 몰개성적 합일주의였다
신세대 문화라는 것도 알고 보면 그저 또래 집단과 매스 미디어를 따라가는 것일 뿐이다는 저자의 일갈에 깊이 반성하는 바다
아무리 개성을 중시하고 기성 세대에게 반발하는 신세대라 할지라도 이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왕따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집단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해서 전체가 한 사람을 따돌리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한다는 건 어떤 의미로 보든지 가학적이고 파쇼적인 문화가 아닐 수 없다
또 무조건 유행을 따라야 소외되지 않는 문화 역시 결국 체면을 중시하며 남의 눈치를 보는 기성 세대의 특성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조상들의 사대주의는 욕하면서도 명품에 집착하는 것 역시 결국은 사대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 명품이란 것도 결국 남과 나를 구별짓는 계급적 차이의 확인일 뿐이다
그런데 명품 회사에서는 차이를 강조하면서 무리를 하면 살 수 있는, 약간 더 비싼 가격으로 대량 판매를 하고 있으니 남과 구별되기는 커녕 광고 마케팅에 놀아난 꼴이 될 뿐이다

명예 퇴직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마음이 무거웠다
시위 구호 대신 토플 책이 들려 있다는 비유가 나를 후벼 파는 기분이었다
남들은 자기 경쟁력을 높히기 위해 애쓰는데 나만 한가하게 책을 보는 건 아닌가, 죄책감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한가하게 인문서적 보는 사람은 나 뿐이었으니까
갈수록 무한 경쟁 체제로 바뀌면서 경쟁력이 없는 사람은 화이트 컬러에서 노동자층으로 쉽게 떨어지고 만다
중산층이 얕아지는 것이다
그나마 자격증 때문에 남보다 덜 급하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본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일반 샐러리맨처럼 불안에 떨어야 할 것이다

경쟁 체제의 냉혹함과는 반대로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아주 역설적인 글이다
앞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돈 밖에 모른다고 비난하더니, 뒤에서는 무한경쟁체계라 낙오하면 큰일이라고 겁을 주니 말이다
자본을 소유하지 않으면 언제 탈락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어떻게 돈을 최우선시 하지 않겠는가!!
결국 사회 보장 체제를 확대하고 경쟁 시스템을 완화시켜야 황금만능주의도 사라진다는 얘기다
사회적 연대 의식을 고취시키려면 가족주의부터 넘어야 하고 개인주의 성립을 위해서는 남의 눈치를 보는 대신 나의 주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 부분에서만 개혁해서는 소용이 없다
사회는 유기적 존재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환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조상 숭배와 장례 문화에 정성을 쏟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황금으로 된 수의를 입혀 황골이 되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어찌보면 어처구니 없기까지 한 광고가 먹혀 들어가는 걸 보면 한국인들의 내세관은 여전히 전통적이다
1억원 하는 황금 수의라...
무덤을 치장하는 것도 결국 후손의 재력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에 불과하다
부조금이나 축의금 내는 것이 인맥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사라지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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