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유혹 - 쇼핑의 역사와 문화에 얽힌 인간 욕망의 9가지 얼굴
토머스 하인 지음, 김종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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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쇼핑을 하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소비 생활을 위해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백화점에 진열된 물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고, 직접 물건을 구매할 때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다
쇼핑 중독자의 경우 백화점 순례하는 게 최고의 여가 활동 아닌가?
돈을 주고 물건을 구입할 때의 그 희열감은, 비록 지불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다
그래서 외상 구매, 혹은 신용 카드가 생긴 거 아니겠는가?
만약 사람들이 합리적인 소비만 한다면 충동 구매를 부축이기 위한 신용 카드 같은 제도는 애당초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쇼핑은 하나의 여가이자 소비 활동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중론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다양한 관점으로 쇼핑을 분석한다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쇼핑을 한다
쇼핑과 소속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그룹에 끼기 위해 비슷한 물건을 구매한다
저자의 분석처럼 취향과 유행은 좀 다른 개념인데, 유행이 잠깐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데 비해 취향은 거의 영구적으로 우리 마음을 지배한다
유행이야 무시할 수도 있지만, 취향은 그 사람의 본질을 지배하는 중요한 특성 중 하나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중년의 남성은 유행 따위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대신 자기가 갖는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은, 누가 뭐라 한다 해서 쉽사리 바뀔 만한 취약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대단히 견고한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쇼핑을 한다
말하자면 그의 쇼핑 목록은, 나는 이런 사람이오, 라고 현시적으로 보여 주는 도구가 된다

이 취향을 공유하는 소수의 집단들은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비단 쇼핑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동호회 같은 것도 여기게 속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참으로 개성적인 존재다
대중 매체에 의해 끊임없이 똑같아지라는 압박을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독특한 생각과 스타일을 어떻게 해서든 드러내려고 애를 쓴다
요즘 같은 다품종 소량 생산의 시대는, 곧 비슷한 취향의 소비자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 주기 쉽다

오늘날 쇼핑의 특징으로는 브랜드 네임 밸류가 있다
옛날에는 점원들의 설명을 듣고 직접 눈으로 확인한 후 구매를 결정했는데, 20세기 후반의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름만 가지고 제품의 품질을 판단한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바로 광고다
광고를 통해 대중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그 제품 품질이 좋다는 것을 수많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겠는가?
현대 사회는 정말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생각이 든다
부어스티니 주장하는 그 이미지의 환상도 결국 매스 미디어 시대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필수 요소다
광고가 없는 21세기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이미지를 팔고, 소비자들은 그 이미지로 제품의 질을 판단한 뒤 대량 구매를 한다
대량 생산과 대량 구매는 광고라는 중간자가 없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쇼핑의 새로운 개념으로 책임감이라는 게 있다
대체 쇼핑과 책임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쇼핑이라는 단어에는 과소비와 무절제라는 속뜻이 숨어 있는 기분인데, 쇼핑을 책임있는 행동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한 푼이라도 아껴서 꼭 필요한 물건만을 구입하는 가정 주부들을 예로 든다
그들은 한정된 액수 내에서 가족에게 최대의 효용성을 안겨 줄 물품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따지고 보면 자급자족 시대가 아닌 이상, 시장에 나가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는 먹고 살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내가 필요한 제화를 구입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게 아닌가?
그러므로 쇼핑의 속성에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책임"이라는 덕목이 들어 간다
(나 역시 그런 면에 해당된다)

쇼핑을 하는 또다른 이유로는 주목(attention)을 들 수 있다
물품 구매를 통해 타인의 주목을 받고 싶은 심리를 말한다
이것은 부유층일수록 더욱 그렇다
유한 계급이란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는 것을 구매할 능력이 있는 계층이라고 누군가 정의했다
여기에는 사치 품목 뿐 아니라 오페라나 클래식, 발레 같은 예술도 포함된다
부유층들은 보다 값비싼 물품을 구입함으로써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계층과 차이를 두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들을 흉내내기 위해 한 달 월급을 명품에 쏟아붓는 서민층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명품을 소유했느냐, 안 했느냐는 본질이 아니다
명품, 혹은 사치품은 그저 차이를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 부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단지 그들이 갖는 몇몇 물건들을 소유했다고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소득 격차를 인정하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

쇼핑을 하는 다른 이유로는 축하를 들 수 있다
제일 쉬운 예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하면 된다
흔히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이 데이를 관련 업계의 상술이라고 비난하지만, 저자의 말을 들어 보면 사람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사실 인간이 얼마나 영리한 동물인데 남의 말에 속아서 돈을 지불하겠는가?)
선사 시대 이래로 사람들은 축제를 즐겼다
생산력이 부족한 시대에 축제는 거의 유일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기회였다
더구나 축제 때는 귀족들이 자선의 은혜를 베푼다
(크리스마스의 불우 이웃 돕기란 이런 맥락의 전통이었나 보다)
1년 중 단 며칠을 쉴 수 있는 축제 기간 동안,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므로써 개인적인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한다
사실 아무 날도 아닌데 친하게 지내자고 선물을 건넨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사람들이 기념일을 찾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크리스마스 등의 축일을 기념함으로써 그들은 새로운 인간 관계를 다진다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인터넷 쇼핑과 홈쇼핑이 빠질 수 없다
세계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쇼핑을 위해 시간을 따로 내기 힘들어진다
대형 쇼핑몰이 번창하는 이유도, 바쁜 현대인을 위해 모든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놨기 때문이다
이제 인터넷 쇼핑이니 홈쇼핑이 대중화 되면서 고객들은 원하는 물건을 앉아서 바로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직접 눈으로 볼 수 없고, 조언자도 없기 때문에 불안한 심리가 있지만, 환불 제도를 통해 극복해 가고 있다
저자는 쇼핑의 마지막 특징으로 이러한 편의성을 들고 있다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다소 깊이가 얕긴 하지만, 비교적 일목 요연하게 쇼핑의 심리에 대해 잘 기술하고 있다
지나친 비약을 피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문제들을 예로 든 것도 이해를 돕는다
일반인이 현상을 분석한 책을 읽었으니, 이제는 보다 학문적으로 접근한 글을 읽고 싶다
확실히 인간은 소비하는 동물이다
도구적 인간, 정치적 인간 등등 인간을 정의하는 수많은 개념 속에 소비하는 인간도 함께 포함시켜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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