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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미친 남자 - 미친 급 남자시리즈
정종화 지음 / 맑은소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요즘 아빠가 열심히 옛날 영화들을 수집하고 있기 때문에 덩달아 관심이 생긴다
처음에는 시간 때우기로 몇 편 보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이게 나름대로 맛이 있다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겠지만, 확실히 시간의 흐름을 이겨낸 작품들은 분명히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보통 작품 제작 연도가 1950년대부터 시작하니까 무려 50여년의 세월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영화들이다
과연 지금 내가 보는 영화들 중 50년 후에도 DVD로 팔릴 수 있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지 궁금하다
이 책은 아빠처럼 고전 DVD를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딱 어울릴 책이다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를 즐겁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굉장히 흥미롭게 볼 것이다
나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를 읽으면서 대체 이렇게까지 영화에 미친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현실에 등장한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저자의 영화 사랑은 놀랍다
특히 앞부분에 나오는 어린 시절 추억들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유머스러운 표현들이 많아 한참이나 웃었다
그렇지만 사실 슬픈 내용들도 많다
6.25 피난 시절 부산 극장에서 거적을 깔고 본 역마차, 난방도 되지 않은 추운 겨울에 몰래 숨어 들어가 봤다는 7년만의 외출, 저녁 지어 먹을 쌀을 팔아다 표를 샀다는 얘기, 전차값으로 영화를 보고 집까지 걸어오면서도 가슴이 터질 듯하게 행복했다는 얘기 등등 국민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 어린 학생의 영화 사랑과 어울어져 약간은 눈물이 날듯한 웃음을 준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개봉이 안 된 영화도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고, 굳이 영화잡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인터넷을 통해 해외 싸이트에 접속하면 좋아하는 배우와 영화에 대한 정보가 널려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TV에서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영화를 상영해 준 적이 있다
아마도 개봉한 적이 없는 영화였던 것 같은데 인상깊게 본 후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으려고 하니까 검색이 되질 않아 구글에서 직접 영화 제목으로 치고 검색을 했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 영화 잡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에 관한 기사를 많이 읽게 됐다
내친 김에 한국 기사들도 같이 검색을 했는데, 어떤 영화 싸이트에서, 미국에서 쓴 기사를 그대로 번역해서 올려 놓은 걸 발견했다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번역을 해 놓고서, 앞뒤 소개말 등만 첨부하여 하나의 기사를 만들어 자기 이름으로 버젓히 올린 것이다
나름대로 유명한 영화 잡지 싸이트였기 때문에 정말 황당하고 기분이 나빴다
이런 식으로 인용한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면 결국 영어 못하는 사람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싶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진 계기가 됐었다 (그렇다고 진짜 열심히 한 건 아니고 각오만...)
그러고 보면 책을 읽다가 설명이 좀 부족한 것 같아 구글에서 기사 검색을 할 때, 방금 읽은 책에서 나온 대목이 그대로 영어로 쓰여진 것을 몇 번 본 일이 있다
출처도 밝히지 않고서 번역만 해 놓고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이다
저자 생각에는 논문 인용 같은 거창한 일이 아니니까 별 상관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누가 그런 미국 인터넷 싸이트까지 들어가서 보겠냐고 안일하게 생각했을까?
내 성격이 꼼꼼한 게 못되서 일일이 비교대조 하지는 않지만, 간혹 이렇게 출처를 밝히지 않고 외국 기사나 글을 인용한 걸 발견하면 정말 기분이 확 나빠진다
영어 못하는 사람만 바보 아닌가 싶어서 왠지 속은 기분이 든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이 책은 어린 시절 영화에 열광한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글들이 많다
단 저자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나 같은 삼심 대는 모르는 영화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한 번쯤은 명작이라고 입에 오르내리는 영화들이라 직접 보지는 않았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김지미와 엄앵란이 경쟁 관계였다거나, 김승호, 김진규, 신성일 등 유명 배우들의 일화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잉그리드 버그만이나 에바 가드너, 오드리 헵번, 리즈 테일러 등의 흑백사진도 책의 보너스다
흑백이라 그런지 더욱 우아하고 기품있고 정말 여신 같은 분위기다
아쉬운 점은 여러 영화를 다루다 보니 본격적인 영화 해설은 못 된다는 점이다
가벼운 영화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선별해서 한 10편 내외로 자세히 설명하는 그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
두첸의 "세계명화비밀"처럼 범위를 한정시켜 깊이있게 설명하는 책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추천 좀 부탁합니다~~